00. 내가 지쳐서 그래, 그냥.

“민현아.”
“새끼가. 답지않게 분위기 잡고 난리야. 왜.”
“강민현.”
“…어. 왜 그러는데.”
“우리 그만할까.”
“…뭐?”

뭐라는 거야, 이 새끼. 새벽 3시의 시간이었다. 오랜 불면증 끝에 겨우 든 잠을 깨운 것은 연인의 전화 한 통이었고,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한동안 말이 없는 것이다. 주변이 시끄러운 게 꼭 시내에라도 있는 사람 같아서,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냐고 재촉 좀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뭐?

“…헤어지자고?”
“…”
“야, 이준. 술 취했냐?”
“…”
“어디야. 데리러 갈게.”
“강민현.”
“어, 나 여기있어. 겉옷만 챙기고 바로 나갈 테니까 주소나 찍어.”
“나 농담 아니야.”
“…야.”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말도 아니고.”
“이준.”

강민현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야, 이게 농담이 아니면. 이어지는 짧은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시끄러운 잡음. 그리고, 이준의 친구들로 추정되는 목소리들. 강민현은 귀를 기울였다. 이준이 입이라도 한 번 벙긋 해줄까 봐.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한 시간같은 30초가 흘렀다. 여전히 이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준. 너 지금 어디인데.”

결국 강민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질문에도 이준은 답하지 않는다. 이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민현은 그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의 연애사에 뭐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들려오는 이야기는 정말 가관이었다.

‘야, 이준. 찼냐?’
‘미친 새끼. 너 그 새끼 좋아한다고 말할 때부터 알아봤다.’
‘다물어, 인마. 얘 아직 통화 중이잖아.’
‘뭐 어때. 이렇게 시끄러운데 들리겠냐?’
‘걔 성격 안 좋기로 유명하거든, 원래. 얘가 등신인 거지. 웬일로 걔가 고백을 받아주나 했다.’
‘이 정도면 오래 간 거다.’

말하려면 안 들리게 말하든가. 새벽부터 진짜. 강민현은 구겨지는 미간을 짚었다.

“이준.”
“…”
“네 친구들이 뭐라고 하냐?”
“…”
“너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사귀냐고. 그런 식으로 말해?”
“사실이잖아.”
“…무슨.”
“나만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너 내가 좋아한다고 했을 때, 한 번도 받아준 적 없잖아.”
“…”
“낯 간지러운 말을 잘도 한다면서. 어영부영 넘기기 바빴잖아.”
“야, 그건….”
“…알아. 너 원래 그런 사람인 거. 듣기 민망한 말은 잘 못 꺼내고, 애정표현 자체에 서투른 거.”
“…”
“내가 지쳐서 그래. 그냥… 내가 지쳐서.”

그러니까, 우리 그냥 헤어지자. 나도 사람이라서 이런 거 지치거든. …미안해,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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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13 14:16 | 조회 : 1,27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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