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누구긴, 니 동생이다(2)

“하...”

식사 내내 셰이드 자식이랑 마주보고 있었더니 체한 것 같다. 진수성찬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그 맛있는 음식들을 꾸역꾸역 입 안에 쑤셔 넣은 기억밖에 없다…

그 와중에 셰이드 그 놈은! 본인 음식에는 입도 대지 않고 내가 먹는걸 그 사악한 미소와 함께 지켜봤단 말이다! 체할 만 한 상황이였지, 암.

이 어이없는 짓거리는 식사때 뿐만이 아니였다. 내가 나가야 한다며 그를 떼어놓기 위해 온갖 억지를 다 부렸는데도 같이 나가자고 조르더니, 갑자기 또 일이 생겼다며 저 혼자 가버렸다. 순 제멋대로인 인간이다.

결국 아까 셰이드에게 한 소리 들었던 기사가 나를 호위하게 됬다. 내 힘에 비해서 약하지만 작은 영주 성 한 채 정도는 무리 없이 부술 수 있다며 억지로 셰이드가 끼워넣었다.

“가시죠, 미켈님.”

기사는 어딘가 모르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눈에 서린 존경심은 내가 아니라 셰이드를 향해 있었다.

“…….”
“왜 그러십니까?”

그걸 몰라서 묻냐, 멍청아.

“정말 그 차림으로 나갈거야?”
“예?”
“너무 튄다고. 내가 어딜 갈 예정인지는 알아?”
“어디에 가시든 저는 셰이드님 명령을 받들어 예비 총책임자님을 보호할 것입니다.”

아니... 그걸 물은게 아니잖아...

“말 좀 알아 먹어라. 그 번쩍번쩍한 기사단 옷을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퍽도 아,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겠다, 그치?”
“예, 그렇겠죠?”
“아니, 하, 진짜. 알아서 해라. 대신에 은신해서 따라와. 소드마스터라면 당연히 가능하겠지?”
“예, 물론입니다!”

어휴, 저것도 참 셰이드만큼이나 답없는 놈이다.

“은신한 거 들키면 알아서 처신해.”

내 말에 기사가 눈을 빛냈다. 약간 불안한 눈빛이였다. 뭔가 대형 사고 낼 것만 같은 그런 눈빛.

“죽여도 됩니까?”
“아이고 두야.”

아니나 다를까, 이 미친 기사가 셰이드같은 짓을 하려고!

셰이드가 중앙탑장에 임명되기 전까지는 미친 개로 통했다던데. 블리아드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놈은 6살 때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한 가정교사를 동강낸 걸로 유명했다. 그러니까, 싹부터 남달랐다.

그리고 지금, 기사 하나가 그의 길을 잇고자 한다. 곡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안됩니까?”
“절대로. 차라리 기절시키거나 날 불러. 내가 기억이라도 지워줄테니까.”
“예...”

왜 그렇게 서글픈 표정을 짓는건데. 마치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다는 듯했다. 누가 셰이드 부하 아니랄까봐, 똑같이 미친놈이다.

* * *

“그래서 저희는 어디갑니까?”

귓가에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뭐랬던가. 세르반이던가?

미켈이 작게 웃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후드를 꾹 눌러쓴 그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디가냐니까요.”

그의 발걸음은 으슥한 골목길만 찾아다니고 있었다. 세르반은 이런 곳에선 사람들 눈에 띌 리가 없으니 은신을 드러내도 괜찮지 않느냐고 투덜거릴 때는 언제고, 연신 묻기만 했다. 물론 미켈은 귀찮기만 했다.

“총책임자님.”

다시 한 번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미켈은 이를 무시하고 나아가기만 했다.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골목을 울렸다. 소드마스터답게 은신도 수준급이였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결국 답답해진 세르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미켈을 앞을 막고 섰다. 마법사라면서 워프도 안타고 걸어가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는데, 점점 더 으슥한 곳으로 향하는 미켈이 더 신경 쓰였다.

방금전에 살짝 웃는 듯 했지만, 다시 그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래, 무표정이 아니라 완벽하게 표정이 사라진 것이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뒤늦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세르반은 계속 물어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비켜.”
“물음에 답해주시죠.”
“지 좋다고 따라온 주제에 갑자기 왜 이러는데?”
“미켈님이야말로 간단한 질문인데 왜 답해주시질 않는겁니까?”

미켈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곤 입모양으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약간의 욕설이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그가 한숨과 함께 후드를 벗었다.

“비켜. 내가 너보다 상위야. 나랑 맞붙고자 하는 거라면 네가 손해다.”
“압니다. 맞붙고자 하는게 아니라 묻는겁니다.”

허.

“셰이드 D. 블리아드”

낮게 읊조린 말에 세르반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가장 존경하는 이의 이름이였다.

“일러도 괜찮지?”

악마라도 보는 듯 세르반의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더니,

“쿡”
“…?”

“아니, 크흡, 죄송합니다, 큽”

뭐야. 이미 미친 주제에 더 심하게 미쳤나. 움찔거리며 웃음을 삼키는 세르반을 미켈이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미켈님은 재밌는 분이군요, 크흡, 좋습니다. 저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을테니 걱정 마시죠.”
“드디어 조용해지겠군.”

또다시 나와야할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세르반은 무릎을 꿇고 후드 로프 사이로 흘러내린 미켈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흉터 가득한 손이 새하얀 손과 포개졌다.

“미켈 클라우드, 판게아의 축복을 빌어 당신을 셰이드님과 같이 제 주군으로 모실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아까의 쿡쿡거리던 표정은 완전히 사라져, 평소와 같은 기사의 무뚝뚝한 표정이 되었지만 나름 진심이 담긴 말이였다.

진지한 세르반과 다르게 미켈은 당황했다. 기사들은 생애 단 한 명의 주군을 모실 수 있었다. 그리고 셰이드와 더불어 미켈이라면 주군이 둘이 되는 셈이였다.

“기사가 그게 가능해? 그리고 기사의 맹세는 가장 중요하게 여겨질텐데 대체 무슨 이유로 날?”

세르반은 웃었다. 다른 이유는 솔직히 별로 없었다.

그저 이 작은 소년의 눈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게 신경쓰였을 뿐이다. 보석같은 눈이 어둠에 가려져 거무죽죽한 걸 이제야 깨달았을 뿐이다. 벼랑 끝에 밀려, 살짝만 떠밀어도 추락할 것 같은 걸 잡아주고 싶었을 뿐이다.

“저는 특별하니까요.”
“...?”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서열 17위 검사, 세르반 바스입니다.”

미켈의 입매가 굳었다. 바스가는 유명한 검사가문이였다. 마검술도 아닌 검술만으로 서열 3위에 올랐던 평민 라인우드가 만든 가문으로, 탑주까지 해먹었으니 특별할 만 했다. 그 시대에서는 귀족들이 가장 싫어하는 가문이자 가장 존경하는 가문이였다.

“바스 가문이였나. 확실히 셰이드를 불러오는 대처가 빠르긴 하다 싶었지. 보통은 거기서 자신을 보호하느라 급급하거나 그냥 도망치더라. 확실히... 고위 검사들의 룰은 다를지도 모르겠네.”

아마 셰이드를 그리 존경하는 이유는 바스 가문이 세워지도록 도운 것이 셰이드의 블리아드 가문이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바스가의...”
“공자입니다. 아직은 아버지가 가문의 수장이시죠.”
“아니, 나는 공자가 아닌 기사에게 묻고 있는거야. 바스가의 작은 검, 어째서 나를 선택했지?”

잠시 세르반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획 돌렸다. 그의 오러가 날카로운 살기를 띄었다.

“열... 스물... 스물다섯인가.”

그가 중얼거렸다. 이미 접근하고 있는걸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미켈은 심드렁했다.

“다 죽일까요?”
“냅둬. 내가 보러 온 사람들이니까.”
“...예?”

세르반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이런 골목길에 온 이유가 저 사람들을 보러 온 것이라고? 얼마나 대단한 위인들이면 총책임자가 직접 찾는거지?

머릿속이 술술 읽혔다. 미켈이 웃었다. 기사 주제에 허당이였다. 그 와중에 오러는 날카로웠다. 그래서 더 우스웠다.

“비켜.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세르반이 뚱한 얼굴로 뒤로 빠졌다. 미켈은 다시 작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여러명의 기척들에게 말했다.

“백색 꽃이 찾아왔는데 임은 없고 새만 남겨졌으니, 울타리는 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대표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높은 지붕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착지했다. 미켈보다 두배는 더 큰 키의 남자가 소년을 노려보았다.

“처음 보는 새군. 나를 모르나?”

미켈이 흐드러지게 웃었다. 그럼에도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는 남자가 미켈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우위는 미켈에게 있었다. 실력과 격의 차이랄까.

“울타리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은 건가? 그대는 누구지?”

살기를 가득 머금은 물음이였다. 정면으로 마주한 남자는 잠시 입을 달싹 거리더니 무릎을 꿇었다.

“당신은 총...책임자님이 아니십니까. 이런 곳은 무슨 일로.”

결국 모른다는 것이였다. 꽃이 아닌 총책임자라 불렀으니. 그리고 꽤나 당황할만한 상황이긴 했다. 으슥한 골목에 총책임자가 나타나서는 자신들의 암호로 이야기를 한다.

“나는 네가 누군지 물었는데. 고작 새 주제에 꽃에게 덤비는건가?”
“…디안입니다.”

확실히 처음 듣는 이름이였다.

“울타리로 안내해.”

디안이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동료들과 눈빛을 공유하더니, 다시 미켈을 보았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백색... 꽃이여.”

미켈의 입이 만족스러운 호선을 그렸다. 멀리서 은신한 채 이를 바라보는 세르반이 웃음을 참았다. 마치 셰이드와 비슷한 미소를 짓는 미켈을 바라보며.

* * *

“베키시, 무슨 일입니까?”

평소의 싱글벙글한 베키시였지만 오늘만큼은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녀가 다급하게 부르는 일은 많지 않았다. 셰이드의 표정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어머니가 실종됬어.”
“...네?”
“어머니가 미켈 공격한 놈들 찾다가 연락이 두절됬어.”

그럴리가. 셰이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럴리가, 없어야 하는데. 대현자 스칼렛 쟌, 베키시의 어머니 되시는 분은 굉장히 쟌 가문의 초대 가주였다. 가문이 세워진지 1000년은 되었음을 생각하면 왜 대현자라는 칭호가 붙었는지도 알만했다.

오래된 연륜만큼이나 힘도 무척 강했다. 한때 남방 탑주였으며 심지어 직접 일을 해결하기 귀찮아서 용을 부려먹는 사람이였다. 또한 셰이드와 베키시의 스승이기도 했다.

“연락 두절 전에는 어땠죠?”

셰이드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마나의 주인을 찾았다고 했어. 그걸 쫓고 있다면서 걱정말라고 했지. 그리고 평소처럼 끊었어.”
“이상한 점은 없었고요?”
“전혀.”

오히려 없어서 이상할 정도지.

기습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스칼렛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었다. 스칼렛이 방심할만한 상황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말이였다.

“생사는요?”
“살아계셔. 그건 잘 느껴져. 어머니와 나는 마나를 공유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연락이 안돼.”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요. 의식을 잃은 건가요.”
“그런 것 같아.”

여기서 기사단을 파견했다가는 끽소리도 못하고 당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적이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는 사실이니까.

“스승님보다 약한 사람들은 안되겠죠?”
“안되겠지.”

셰이드와 베키시가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셰이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감을 잡은 모양이였다. 탑주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이 세계의 시스템을 이용한다.

“스승님이 의식을 잃을 정도로 강하다니, 서열에 오르기 좋은 조건이네요.”

스칼렛은 서열 3위였다. 그렇다면 지금 서열 3위는 스칼렛을 쓰러뜨림으로서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기록되었을 터였다.

베키시가 탄성을 터뜨렸다.

“적의 이름 하나를 찾은 것 같군요”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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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28 15:48 | 조회 : 958 목록
작가의 말
하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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