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누구긴, 니 동생이다(1)

“미켈의 상태는 어떤가.”

예랑이 물었다. 셰이드는 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서류를 응시한채 답했다.

“아직 자고 있습니다. 다행히 고비는 넘겼고, 호흡도 안정적입니다. 사살 목적의 공격은 아니였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경고겠지요.”

눈썹이 위로 치켜들렸다. 예랑이 눈에 띄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이 나름 아끼던 아이였다. 사실상 탑을 여행하고 다녔을 때는 마나 응용법도 몇개 가르쳤었기에, 예랑 입장에서는 제자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같이 다녔던 시간도 꽤나 길었다.

“걱정되지도 않나?”

예랑이 퉁명스레 말했다.

“걱정해야 합니까?”

드디어 셰이드의 눈이 예랑을 향했다. 깊게 가라앉은 녹빛의 눈동자 끝에서 예랑은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저렇게나 불안해하면서 미켈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건가? 그렇다면 무엇을 그렇게나 불안해하는 거지?

예랑이 표정을 굳혔다가 엷게 숨을 토해냈다. 괜한 의심은 금물.

“됐네. 자네의 머릿속 따위 알고싶지도 않아. 인간이 뱀의 생각을 어찌 읽겠는가.”

계속 그렇게 사시지.

시비어조였다. 셰이드는 짧게 헛웃음을 웃고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예랑 역시 질린다는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이 상황.”

차갑게 읊조리듯 한 말이였지만 곧바로 답이 날아왔다.

“나한테 그걸 왜 물어보는데? 난 아무짓도 안했어. 알다시피 형이 마나코어까지 토막냈잖아. 여전히 회복중이야. 너무한거 아냐?”

가볍게 투정부리는 말이였지만 꾹꾹 눌러참는 짜증이 드러났다. 셰이드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잡았다. 지끈거렸다.

슬슬 그 시기가 다가왔다. 원정을 보내야할 때였다. 그 원정대 속에 포함될 예정이였던 미켈이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하단 말이죠.”

어차피 원정때까지는 미켈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테였다. 그러니 원정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아니였을거다. 하지만 경고용이라고 하기에는 꺼림직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장소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미켈이 호구취급 당할 수도 있었다. 아니, 분명 그럴것이다.

‘어떤 쥐새끼가 감히…’

결계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 분명 홀 안의 누군가의 짓일 터였다.

“오랜만에 쥐잡이가 필요할 것 같네요.”
“휘유ㅡ 다 죽었네.”

아레우스가 휘파람을 냈다. 분명히 두사람은, 형제는 앙숙이였지만 한가지는 같았다.

“도와줄까, 형? 뒷세계 쪽은 내가 정리할 수 있으니까.”
“좋죠.”

귀족을 증오했다.

* * *

미켈이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한번 피를 개워냈다. 속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느꼈을때 그는 처량하게 웃었다.

“고작, 고작 간단한 마나 활에 꿰뚤리다니.”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강하지 않았다. 상대를 얕보았기에 더더욱 자신은 강할 수 없었다. 쓰러지기 직전 마탑주들이 보이던 행동이 기억났다. 당황한 듯 했지만 침착했고, 간단한 마법이였으나 상대를 강자로 보고 행동했다.

“어리다는 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어리석은 건지.

허탈한 얼굴 위로 반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강해져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혼란스러웠다. 어차피 재물이 되서 죽는 것이 운명인 미켈에게 강해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얼굴에 고뇌를 가득 채운 미켈이 고개를 들어 옆을 바라보았다. 기사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마안으로 보면, 그 밖에도 더 많은 기사와 마법사가 지키고 있을 터였다.

“쓸모없어.”

미켈이 입술을 비뚜름히 올렸다. 기사는 그런 미켈을 당황한 기색으로 바라봤다.

“그, 죄송합니다.”

기사가 사과해왔다. 고개를 숙인 모습이 떨떠름해보였다. 그럴만 했다. 지켜주라는 명령을 받고 지켰더니 무시당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강자여서 따질 수도 없다.

“됐어.”

미켈의 쓸모없다, 라는 소리는 기사를 질책하려는게 아니였다. 그저 기사보다 훨씬 강한 미켈 자신이 그들을 지키는게 맞았는데, 기사가 도리어 지키고 있으니 내뱉은 말이였다.

이쯤되자 기사는 정말 바보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 꼬맹이가 사람을 놀리는건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건지.

“…나 일을 하나 터뜨릴 생각인데.”

아직 앳된 티를 벗지못한 미성이 흘러나왔다. 기사는 긴장한 채 미켈을 바라보았다.

“잠깐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줄 수 있을까?”
“…예?”

황당함이 스쳤다. 기사는 돌이라도 하나 얻어맞은 눈빛이였다. 갑자기? 왜? 드디어 이 맹랑한 꼬맹이가 미쳤나? 아니면 이번 총책임자는 글러먹은건가? 그의 머릿속이 훤히 보이는 미켈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실소를 웃긴 했지만 미켈은 딱히 화나지 않았다. 남이 보기에 자신은 그냥 천민 꼬맹이였고, 운 좋게 피를 타고나서 총책임자가 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말은 그만두었다.

“어쨌든, 경,”

피를 토해낸 사람으로 보기에는 꽤나 멀쩡해보였다. 피가 약간 부족해진 탓에 안그래도 허옇던 피부가 더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고, 그는 멀쩡했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의 마나코어 회복력은 말을 이을 필요조차 없이 강하다.

“정말 미안하게 됬어.”

기사가 주춤하는 사이 미켈이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였다. 기사의 오러가 웅웅 거리다가 마나폭풍에 휘말렸다. 미켈은 공기중의 마나를 소용돌이로 조종하며 그의 몸에 둘러진 오러에 조금씩 상처를 냈다.

실제로 방 안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공간속에 흩어져있던 마나가 소용돌이쳤다. 가구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기사는 소드마스터였다. 그렇기에 이를 알아채지 못할리 만무했다. 그는 오러를 겉으로 둘러 보호하려다가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텔레포트 스크롤이 만져졌다. 그가 텔레포트하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텔레포트 시킬 수 있는 스크롤.

스크롤을 찢을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있던 미켈이 갑작스러운 마나파동에 멈칫했다. 그리고 곧.

“...이게 무슨 개같은 상황이죠?”

팔랑거리는 서류종이가 바닥에 흩날렸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텔레포트 당했기에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셰이드가 짧게 말했다.

제기랄.

기사가 얼어붙었다. 자신이 공격당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채 밖으로 나서려던 미켈 역시 벙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셰이드가 욕을 쓴다고? 이건 정말이지 특종거리였다.

“그, 중앙탑장ㄴㅡ”
“나가요.”
“...혹시 제가 뭘 잘못했ㅡ”
“두번 말하지 않습니다.”

세이드는 자신의 옆에서 뻘쭘하게 말을 건네는 기사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는 기사를 무시했다. 대신 여전히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꼬마를 쳐다보았다.

“미켈 클라우드군.”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자신의 일을 방해했다는 짜증이 그대로 서려있었다. 미켈은 곧바로 그 목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네, 무슨 할 말이라도?”

방긋 웃음지으며 최대한 고분고분하게 말했다. 고분고분 치고는 약간 비꼬는 말투였지만. 그건 평소 셰이드에 대한 경계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정중했다.

“몸은, 괜찮은 것 같고. 세르반 경과 무슨 대화를 했기에 경이 저렇게나 하얗게 질려서 날 부르죠? 방 꼴도 장난 아니고. 보아하니 방음마법이라도 펼쳤나요? 방 바깥의 이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만.”
“음, 간단한 대화였습니다. 그저 이 방에서 나가고 싶다고 했을 뿐이죠.”
“…허.”

셰이드의 입술이 비뚤어졌다. 점점 기어오르려 드는게 눈꼴 사나웠다.

“그래서 어딜 나갈 생각이였어요?”

존댓말의 물음이였지만 어딘가 비꼬는 듯 했다. 미켈이 옅게 웃었다.

“그냥 좀. 산책을 가고 싶어서요.”
“이런, 목줄도 안차고 나가려 하시면 씁니까.”
“인형에게 목줄도 채웠던가요?”
“강아지 인형도 있다죠? 좋은 목줄 두고 어딜 마음데로 나돌아다니려고요.”

신경전이 일었다. 물론 얼굴에는 둘다 부드러운 미소를 띈 채였다.

“한마디도 질 생각이 없네요, 클라우드군, 인형 주제에 말이죠.”
“물론 져라고 하신다면 기꺼이 져드리겠습니다.”

셰이드는 짜증났다. 그 말이 맞았다. 인형으로서 미켈은 셰이드의 명령에 따를 터였다. 그래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는 인형은 싫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게 만드려는 인형은 더 싫었다.

“…헛소리 말고. 다음부터는 꼭 목줄 차고 다니십시오. 진짜로 목줄 채워버리기 전에.”

아마 그 진짜 목줄이란 마나 구속구겠지. 자신과 맞먹게 놔둘 생각이 없다는 뜻이였다.

“살벌하네요. 걱정마세요. 당신 손을 벗어날 생각은 없습니다. 목숨보다 더한 것으로 이루어져있는 계약인데 제가 설마 어기겠어요?”
“…저는 변수를 싫어하는 편이라서. 클라우드군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죠.”

셰이드가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어차피 점심시간이고, 깨어나지 못한 시간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니 배고플겁니다. 나가기전에 식사 먼저 하고 가시죠. 그리고 호위는 반드시 대동하도록 하고요.”

끄덕.

미켈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셰이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시종, 미켈님의 치장을 도와드리게. 식사 후에 나가신다 하시니 참고하고.”
“예, 중앙탑장님.”

능숙하게 바깥의 시종과 마법으로 이야기를 나눈 셰이드가 미켈의 어깨를 툭툭 쳤다.

“다음부터는 쓸데없는 일로 나를 불러드리지 않도록 주의 부탁드리겠습니다.”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하하, 이 인간이 진짜.

압박감이 흘러넘쳤다. 물론 잠깐에 한정된 시간이였지만 미켈이 주춤거리기에는 많은 시간이였다. 셰이드의 입고리가 호선을 그렸다.

“그럼.”

그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으,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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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0-28 15:48 | 조회 : 938 목록
작가의 말
하젤

지금껏 못올렸던 소설들 촤라락 올리고 튑니다(호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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