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내가 보였던 반응은 첫 살인을 격은 병사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전쟁터에 와있는 사람 대부분이 그 과정을 겪었다고 했다.

내가 무언가를 죽이는데 익숙해진 것은 전쟁터로 간지 약 3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또래보다 확연히 작았던 몸집은 어느새 왠만한 성인보다 커졌다. 더이상 내가 죽인 사람이 꿈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사실 그 병사가 아직도 내 꿈에 나왔다. 난 아직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도 그 전보단 확실히 나아졌다.

그리고 큰 흉터없이 매끈하던 내 몸에는 몸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흉터들이 자리잡았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었다는 증거였다. 또 수많은 이를 죽였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내가 전쟁터로 향한지 5년이 됐을 때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우리의 승리였다. 패전국이 된 제이베스 왕국은 우리 나라에게 막대한 배상금과 크고 작은 영지 몇개를 내놨다.

전쟁을 이겨낸 용사들이 수도로 복귀하자 개선식이 열렸다. 막대한 공을 세운 몇몇의 인원은 귀족 지위와 훈장을 수여 받았다.

그리고 나는. 나는 가문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멀쩡히 살아돌아간다면 공작은 미친듯이 날뛸 것이고 나는 그런 공작을 피해 어디 한군데에 틀어박혀야 했다.

가기 싫었지만. 정말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가문으로 돌아왔다. 발을 들여놓자마자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정말이지 좆같았다.

내게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왠 어린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충 5살 정도 되어보였다.

넒은 공작가에 어린아이 한두명쯤 보이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 은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세상에 은발은 우리 공작가뿐이다. 공작은 외동이었고 따라서 기타 친척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본 그 아이는 내 동생이라는 소리다.

전장에서 우리 가문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아마 일부러 알리지 않은 것일 것이다.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그 짧은 다리로 내게 뽈뽈뽈 뛰어왔다. 그러더니 내 소매자락을 붙잡고는 이딴 말을 짓걸였다.

'형아가 내 형아에요?'

아이는 자신의 몸통만한 공을 한손으로 힘겹게 들고 있었다. 이내 공을 던져버리곤 나를 향해 양 손을 뻗었다.

뭘 어쩌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방방 뛰며 내게 안아달라고 했다.

그런 아이를 희안한 생명체를 보듯 가만히 내려다보자 아이가 '빨리-'라며 칭얼거렸다. 대충 아이를 안아올리자 아이는 연신 내게 무언가를 조잘거렸다.

작았다. 너무 작고 연약해서 조금만 힘을 주면 똑하고 부러질 것만 같았다.

'내 이름은 프로키온 세이건 루시오스에요. 형아는 레이먼드 루시오스죠?'

프로키온, 앞서가는 자란 뜻이다. 성의없이 대충 지은 내 이름과는 다르게 멋진 뜻을 가졌다.

내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아이는 신이 나 재잘재잘 떠들었다.

나는 신선한 충격에 빠져있었다. 어떻게 하면 처음 본 이에게 안아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나와 같은 사람 몸에서 태어난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났다.

밝은 표정이나 잘 정돈된 머리칼, 아이의 체구에 맞게 맞춤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옷 등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사랑받고 자란 이에게는 그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아이에게는 그게 보였다. 나와는 달리.

아이의 재잘거림을 배경음 삼고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 도중 나의 생물학적 모친이자 아이의 어머니를 만났다. 공작 말이다.

'내 아이에게서 떨어져!'

그녀는 아이를 안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아이의 장난감으로 보이는 네모난 나무조각을 집어던졌다. 그리곤 날카롭게 소리쳤다.

내 아이. 아이는 공작의 자식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아이가 아니라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불쾌한 무언가였다.

공작이 던진 물건은 정확하게 내 이마에 명중했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멍청하게 눈만 깜빡거리다가 아이를 내려줬다. 아이는 많이 놀란듯해 보였다.

아이를 내려주고 뒤돌아서 아무렇게나 걸었다. 뒤에서 여전히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걷다가 도착한 곳은 어릴적 내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곤 했던 커다란 나무 앞이었다. 마지막으로 온지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무는 변한 것 없이 그대로 였다.

그 옆에 내가 몰래 파놓은 작은 구덩이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는 내가 다쳤을 때 쓰던 반창고와 연고따위가 들어있었다.

공작이 분을 참지 못하고 내게 무언가를 집어던졌을 때를 대비해 내가 넣어뒀던 것이었다.

연고는 최대 20년은 쓸 수 있는 것이었고 반창고 또한 관리만 잘 한다면 거의 평생 사용 가능할만한 것이었다.

대충 처치를 하고 나무에 기대 앉았다. 그리고선 손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냈다. 잠깐만 이러고 있다가 어서 씻어야 한다. 피가 굳으면 세탁하기 어려우니까.

0
이번 화 신고 2020-08-06 15:31 | 조회 : 696 목록
작가의 말

' ' ' 이 친구가 자꾸 자가증식을 하네요? 왜 이러지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