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준비

"욱..!"


헛구역질을 하던 나는 질린다는 듯 무신경하게 입가를 닦았다. 속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자 나는 잠시 내 처지를 한탄하며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해봤다. 난 분명히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먹었을 텐데 왜 벌레라도 씹은 듯이 게워내고 있는가. 결론은 생각해내는 건 간단했다.


'분위기가 숨막혔거든.'


내가 생각없이 내뱉은 한마디에 낮게 깔린 분위기 속이라면 그 어떤 활발하고 사교성 있는 사람이 와도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하아...."


'내가 왜 그랬지 진짜..'


난 어디가서 생각이 없다는 평을 듣지 않을 자신 있다. 눈치가 없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지금껏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데. 그런데도 속이 뒤틀리는 건 분위기 좀 풀어보겠다고 제 팔자에 맞지도 않는 '챙겨주기'를 시도했기 때문일까.


"하아...."


아침부터 달갑지 않지만 내심 그리웠던 꿈에서 벗어났고, 그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은 것은 물론이요, 맛있는 아침을 먹고 있음에도 속이 뒤집혔고, 나의 어리석음에 후회 한다.

이 얼마나 한심한가. 이런 아침에 익숙해진 내가 한심했고, 그저 매일 꾸는 꿈에 불과한 것에 매달리는 내가 한심했고, 이런다고 내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자기혐오를 반복하는 내가 한심했다.

정오에 해가 가장 높이 뜬다고 했던가. 그저 한탄만을 늘어놓던 나는 당연히 지금 그 누구보다 높이 떠서 빛나는, 그녀를 닮은 태양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눈을 감고 오늘 오후 계획을 떠올렸다. 몇주 전, 한창 더위가 무르익을 무렵, 더워죽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입학 테스트를 끝내고 합격 통지를 받은 학원, 윈프레드는 뒤에 있는 산 너머가 바로 켈른일 정도로 꽤 구석에 있었다. 그런 끝자락에 있는 학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온 대륙의 축복자가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바람의 7대, 그녀가 죽..

또르륵-


''아, 이런..''


무의식적으로 흐르는 눈물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나는 또 부어오를까 걱정인 눈을 손등으로 비볐다. 손쉽게 제거된 눈물은 금방 잊고 다시 생각을 계속했다.

그래, 그녀가 죽어서 바람의 마녀 자리가 비었고, 아니 사실 비었다는 건 옳지 않다. 그녀는 바람의 8대를 지목했다. 힘을 넘겼지만 아직 찾지 못한 이유는 '각성'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은 자각조차 못하고 있는데 뭘 바랄까...

아무튼 그래서 윈프레드는 우리가 있는 지역에서 꽤 멀기, 아니 거의 로아의 끝과 끝이기 때문에 입학식 1주일 전인 지금 출발해야 얼추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다.

오빠는 나가서 마차를 구하고 있다. 오랜만에 나가서 점심을 먹게 됬다. 적당히 단 걸로 때우면 되겠지, 하면서도 걱정이 된다. 우리같은 처지의 사람들로 거리는 가득차 있을 거고, 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이미 한 번 이별도 겪었고, 미움도 많이 받아봤기 때문일까. 한 끼 안먹는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니까 패스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모처럼 달달한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놓치기는 싫었다.

세수도 하고, 머리도 빗고, 평범한 하복을 입고, 얇긴 하지만 소매까지 내려오는 가디건으로 꽁꽁 싸매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문을 나섰다. 다행히 외곽 마을이라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나에겐 그것도 부담이었던걸까.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겉으로 표를 내지 않아도 귀신같이 알아채서 괜찮냐고 물어봐주던 오빠는 여기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후..."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고 오빠가 자주 사오던 케이크의 가게를 찾기위해 거리를 흝었다. 서점, 옷가게, 꽃집, 음식점, 작은 시골 마을임에도 있을 건 다 있는 걸 보고 신기해하던 나는 문득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생각해냈다.

아마도 오빠 손에 끌려왔을 테다. 어떻게 장벽을 넘었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빠가 나보다 훨씬 힘들텐데 약해빠진 나는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영혼이 나간듯 했다. 마물들의 피가 튄 망토를 뒤집어 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나는 이런 활기찬 풍경을 보지 못했다. 아니, 의도했는지도. 얄팍한 열등감의 사로잡혀 난 이렇게 우울한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살아가는 당신들이 보기 싫었는 지도 모르지.

좋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던 나는 어느새 그 카페를 발견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잉여로운 몇몇이 꽤나 예쁘게 생긴 여자(베키)가 들어오는 걸 보고 수군댔고, 방울소리를 들은 직원이 환영하며 말했다.


"어서오세요~"


난 들러붙는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주문을 했다.


"안녕하세요. 바니.."


바닐라 라떼를 시키려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저, 손님?"


내가 말을 하다 말자 꽤나 인기있을 것 같은 남직원이 고개를 들며 물어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서둘러 다시 주문했다.


"아, 죄송..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그 때 왜 난 아메리카노를 시켰을까? 현실엔 내 인생보다 쓴 것도 많다는 어설픈 위로라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네, 손님. 잠깐 앉아서 기다리시면 금방 나올거에요."


나를 아이처럼 대해고 있네. 뭐, 열다섯이면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니까 딱히 태클 걸 생각은 없다.


"12번 손님!"


정말 금방 나왔다. 5분쯤 기다렸나? 아마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데필요한 시간이 적어서겠지.

그렇게 커피를 받고 빨대를 이용해 쭉쭉 빨아마셨다.


'우욱.. 오빤 이걸 왜 좋아하지...'


한 모금만에 절로 후회가 되는 맛이었다. 그래도 이거 먹으면 속 버려서 마차타는 동안 따로 뭘 먹는 건 엄두도 못낼테고, 기껏 산 돈도 아까우니까 꾹 참고 마셨다.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감추며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꽤나 이쁜 팔찌를 발견했다. '아티팩트 판매' 라고 써있는데 그럼 저건 어떤 용도의 아티팩트일까. 인첸트 축복자가 축복을 사용해 만든 아티팩트는 통신용, 위장용 등 그 용도가 다양했지만, 흔하지 않았다. 근데 저렇게 널려 있다니. 여기 대체 정체가 뭐지. 오빠는 그럼 여기 올 때 저런 걸 같이 샀던 걸까.

통신용 아티팩트를 하나 사서 오빠랑 연락할 때 쓸 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그럴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고개를 저을 때 눈을 잠깐 감았는데, 멈추고 눈을 뜨니 비어있던 내 앞자리에는 로브로 온 몸을 감춘 사람이 앉아있었다.


"아, 리아, 놀랐잖아...!"


아직도 쿵쾅거리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말했다. 지금 리아는 나 말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텐데 괜히 놀랐다가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 건 별로다.

리아의 모습은 끝비 내리던 그 날과 달라진 거 하나 없었다. 내 모습을 투영한 걸까. 아직도 그 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내 모습을 투영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계약자를 잘못만나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자신을 측은하게 쳐다보자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까딱했지만 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젓고는 일어섰다. 슬슬 약속시간이었다.

**

마차를 탄지 5분 후, 나는 지금 그 때 아메리카노를 전부 마신 나를 칭찬하고 있었다. 토할 것 같다. 울렁거려. 원래 비위가 약한 나는 토를 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다. 그 때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케익같은 걸 먹었더라면..!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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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04 00:43 | 조회 : 1,14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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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모네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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