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끝비 내리던 날

답지 않게 온 대륙에 비가 내리던 그날은, 그녀와 이별한 날이었다.

***

1년 내내 봄만 계속되는 남쪽의 끝, 대륙과 동떨어져 외로워 보이는 섬의 이름은 ''''드래곤의 섬'''' 이었다.


기잉-


"열넷. 열.. 다섯. 여섯.. 일곱. 아홉. 스물. 끝!"


곧 육지로 보내질 사탕이 담긴 상자를 포장하는 기계의 소리로 가득 메워진 마요캔디 공장에,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럼, 다녀올게요! 항구에 배 도착한 건 확인했어요. 이실라로 보내는 상자 20개, 맞죠?"


사탕 상자들은 바다건너 대륙 동남쪽에 위치한 가장 더운 나라, ''''이실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 우산 가지고 나가."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열심히 일할 동안 소파에 앉아 책만 읽고 있던 분홍머리의 꼬마가 말했다.


"음? 오늘 기상관측기에 비 얘기는 없었는데요..?"


봄비라도 내리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듯 하다.


탁-


"변수가 생겼어. 이것 보라구."


주륵-

꼬마는 소리나게 읽고 있던 책을 덮고는 손을 자신의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을 가리켰다.


"!!"

"아오, 됐다. 나가지 마. 배를 띄워봤자 중간에 폭풍을 만나겠어... 으으.. 이놈의 눈물..!"


펑펑 울던 꼬마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마.. 마스터..?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우세요..?"


앳된 얼굴, 작은 키,
양갈래로 높이 묶은 분홍색 머리카락,
분홍색 멜빵치마,
손에 들고있는 마요캔디,
하나부터 열까지 ''''꼬마''''라는 단어가 찰떡같이 어울리는 그녀에게 남성이 건넨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스터''''라는 호칭이었다.


"바보야! 이거 내가 우는 거 아니랬지? 요전에도 봤으면서 호들갑이야.. 이건 내 의지가 아냐. 단지 마력에 새겨진 기억일 뿐.."


은둔 중이고, 꼬마같은 모습을 하고, 마스터라 불리는 제 2대 공간의 마녀, 오페라는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이 차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하, 요전에 하나 바뀐 지 얼마나 됬다고..."


지금 내리는 건 7대 바람, 세실리아의 끝비. 요전에 바뀐 것이란 몇주 전에 내린 3대 힘, 리치카의 끝비를 뜻하는 말이리라.


"사람들은 이런거에 민감하단 말이야.. 내 사탕 또 안 팔리겠네. 요전에도 적자나서 겨우 공장 돌릴까 말까인데.. 에휴..."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한숨도 쉬고, 제법 사업자 같은 말을 하는게 상당히 이질적이었지만 남성은 익숙한 건지그 이질감을 못느끼는 듯 했다.


까드득-
주르륵-


죄 없는 사탕에 분풀이라도 하듯 씹어먹는 와중에도 멈출 기미가 않보이는 눈물에 ''''빠직'''' 표시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 눈물은 하루종일 흐르겠지!! 이거 진짜 짜증난다고!!!"

"지, 진정하세요;;"


남성은 쩔쩔매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인 것은 착각일까.


솨아아아-
챙강-


사탕 상자들이 향할 예정이었던 이실라 왕국에 위치한 학원 라이오네에서는 비오는 소리와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기 묘하게 어울리며 울려퍼졌다.


"뮬님!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생각이십니까! 서십시오!!"


꽤나 긴 창을 들고 무서운 기세로 뮬을 쫓아 달리는 분홍색 머리카락과 눈의 소유자는 라이오네에 재학중인 여학생이자 이실라의 왕녀, 제노비아였다.


"결투를 신청받으면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교칙임을 잊으셨습니까?! 오늘은 놓치지 않겠습니다!!"


이실라의 왕자, 제노이프도 힘의 기사로 꽤나 호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그 나물에 그 밥이였다.


"시.. 싫어요!! 매일같이 결투라니..!! 왜.. 왜 꼭 싸워야만..!!"


금발의 여학생, 란테의 수호 마녀, 힘의 4대 뮬 그레이스는 이프가 들었다면 ''''이럴거면 힘이 되지 말았어야지'''' 라며 한소리 들었을 말을 내뱉으며 당장이라도 자신을 꿰뚫을 것만 같은 날카로운 창을 피해 도망다녔다.


쇄애액-


"....!!"


마침내 창끝이 뮬을 향해 그대로 꽂아 내리며 ''''됐어..! 이건 못피한다!!''''라고 생각하던 제노비아의 예상을 뒤엎은 건 뮬이었다.


"꺄아악?!"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건지 허둥대던 뮬이었지만, 어느새 자신의 손은 내리꽂히던 창을 잡고 있었다.


우뚝-

뮬이 얼떨결에 무사히 방어에 성공하자 제노비아는 뮬이 잡고 있어 뻣뻣하게 들린 창에 매달려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이.. 이런..!! 말도 안돼...!!"

"!"


쩌저적-


놀라움도 잠시, 뮬은 그새 힘조절을 실패한 건지 창에 금이 가며 깨져갔다.


"꺄악?!"


뮬은 눈앞에서 커다란 무기가 산산조각나니 무서웠는지 눈을 질끈 감고는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퍼억-


창이 깨지는 파동이 쎘는지 제노비아는 튕겨 나가 벽에 부딪혔다.


"..! 그게.. 미안해요.. 아직 힘을 조절할 수가 없어서요.."


2차 각성을 끝내지 못한 마녀이다 보니 힘조절에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아프죠..? 미안해요.."


안절부절해 하는 모습이 퍽 안 어울렸다. 그렇게 쎈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게 사과를 해대다니.


"..! 그건 뭐죠? 동정은 필요 없습니다."

".. 네? 어라..? 내가 왜.. 울지?"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흐르던 눈물을 제노이프가 먼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동남쪽에 위치한 이실라의 반대쪽, 북서쪽에는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제국 켈른이 위치하고 있었다.


"모든 분들이 아시다시피, ''''침식''''은 이곳 ''''세에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조도 없이 갑자기 시작된 이 침식은 무서운 속도로 세에레를 거의 덮고, 다른 나라로까지 번지기 시작하여 ''''로아''''를 반토막 내고서야 그 기세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들어온 정보원의 말에 의하면, 침식이 완전히 그 진행을 멈추었음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에레에서 자국으로 넘어오려는 피난민에 대한 조치는-"


브리핑이 한참이던 그때, 남자의 목소리를 가르고 위엄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황성회의실에 울렸다.


"잠깐.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짜고짜 갑작스럽게 회의를 중단한 철의 여인은, 창가로 가 비가 내리는 걸 지켜봤다.


"켈른에는 흔치 않은 비입니다.
얼어붙은 비에 백성들이 피해입지 않도록 신경 쓰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황제께 전하세요.
마녀가 죽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술렁거렸다.


"서기관, 급한 서신을 부탁합니다."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고 제 할 말 하는 그녀는 기품이 넘쳤다.


"예."

"이 서신은 대륙의 모든 나라로 보내질 것 입니다. 죽은 마녀는 7대 바람. 일찍이 실종되었던 마녀입니다."


짙은 남색 긴머리에 비녀를 꽂고 따뜻한 솜을 두른 동양풍의 옷을 갖춰입은 그녀는 켈른의 수호마녀, 빙설의 2대, 리즈 아브라멜린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떨리지 않았지만, 다른 마녀들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녀이기에 후임을 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 대 ''''마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이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모든 나라들이 그 마녀를 먼저 찾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입니다.
그 혼란은 막되, 조용히 8대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나라의 협조를 요청합니다."


역시 그녀였다. 800년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쌓인 지혜가 드러났다.
마녀가 수호하는 나라는 비옥해지니 다들 마녀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모든 나라가 응답을 할지는 미지수이지만, 현명한 판단이었다.

서기관은 서신을 다 적었는지 종이를 새에 매달아 날려보냈다. 그리고 날아가는 새를 지켜보는 아이는, 우리 오빠였다.


"세에레로 가는 전서인가."


회의 내용을 듣지 않았기에 속 사정을 알리가 없는 오빠는, 그저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추측할 뿐이였다.


".. 소용 없어. 그곳에 살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산도, 들도, 그 어떤 생물도 살아갈 수 없게 하늘과 물까지 전부 말라버렸지."


침식의 영향으로 세에레에 살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 비는 어떻게 내리는 걸까. 하늘도 당신을 잃은 것이 슬픈 걸까.."


쏴아아-

쏟아지는 비 아래서 볼 수 있는 건 자신이 직접 판 듯한 어설픈 무덤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밝은 남색머리의 우리 오빠 뿐 이였다.

****

답지 않게 온 대륙에 비가 내리던 그날은, 그녀를 만난 날이었다.

***

쏴아아-


거센 비를 뚫고 걷는 사람은, 수상했다.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는 커녕, 성별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앞은 제대로 보이나, 싶지만 걱정해주는 우리를 비웃듯이 한치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이 똑바로 걸었다.
이제 막 몇년동안 빠져있던 뇌사 상태에서 깨어난 주제에 걸음걸이는 평생을 연습한 것처럼 기품있었다.


"허억.. 허억.."


거친 호흡은 수상한 자의 것이 아닌 아까부터 쫓아오는 기사들의 것이었다. 여유롭게 걷는 듯 보였지만, 말을 타고 달려오는 기사들과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쉭-

"?!"


갑작스럽게 사라진 그 자의 행방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당황해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돌아가 그 자를 놓쳤다고 보고할 수 밖에 없었다.


깨어났을 때, 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항상 내 곁에서 지켜줄 것만 같던 오빠는 보이지 않았고, 처음보는 웬 망토입은 수상한 여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느낄 수 있었다.
단언컨데, 그녀의 머리카락 색깔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검은색 중 가장 까만 색일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 역시 까맸는데, 날 흝던 그 탁한 눈동자는 나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 했다.

오소소-

자신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소름이 돋은 걸 눈치챈 듯 망토를 덮어서 더 자세하게는 볼 수 없었다.


"계약합시다."

"?!"


아니, 남이 자고 있는데 와서 다짜고짜 계약이라니?


"당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있으면 얻는 게 많을 거라고 장담하죠."


조금 꺼림칙 하긴 했지만 내가 잃을 건 없었다.


".. 그러죠."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곧 나는 그녀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음표 가득한 그녀였지만, 지금은 오빠를 찾는 게 더 급했다.

동굴 밖으로 발을 내딛으니 곧장 무덤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있는 오빠를 볼 수 있었다.


"블레-"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무덤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허억..!"


나 때문이다. 전부 나 때문이야...! 내가 나약해서 세실리아 님을 지키지 못한 거야!


"아아..! 아아...!"


홀로 나를 비를 피할 수 있는 동굴로 옮기고, 홀로 그녀를 묻는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부 내 탓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당연하게 오빠를 찾은 내가 혐오스러웠다.
살아계실 때의 그녀를, 그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아..! 아아...!"


오빠가 얼마나 힘들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감히 그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었고, 감히 그 어떤 사죄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빗소리가 귀를 때리도록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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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16 08:01 | 조회 : 1,16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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