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하늘, 세계(가제)-6화

“청해, 이렇게 부탁할게.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에 그의 생각이 아주 조금도 없을 리가 없잖아. 내심 그도 네가 반성하고 돌아오길 바라고ㅡ.”

“반성, 망할 반성. 내가 뭘 잘못했어? 창천, 그 때의 인간들은 썩어있었어. 신을 모욕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고, 탐욕에 눈이 멀어 동족을 해하지. 그가 무언가를 들어주기라도 하면 더욱 많은 것을 바라는 주제에, 신앙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을 수가 없었어. 아니야?”

“.....청해, 하지만―.”

“하지만 뭐, 생명은 소중하다고? 결국 다 그의 창조물이라고? 그의 창조물이면 그를 위해야지, 그가 그들을 위할 게 아니라. 그 소중한 생명은 부패하고 타락해 있었고, 난 그것을 정화시켰을 뿐이야.”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이 실수라면 실수겠지. 그는 내가 자신의 창조물을 전부 죽이고 내가 그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고 생각했으니.

“창천, 나는 그에게 먼저 말하고 일을 벌이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그 무엇도 후회하지 않아. 인간의 98%를 죽여버린 것까지도.”

“청해, 들어. 너의 그 아둔한 선택으로 그는 자신의 창조물을 잃었어. 창조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덕분에 그는 아주 긴 시간 동안 회복기를 가져야 했고, 그 덕에 하늘결계가 약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

나는 말이 턱 막혔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말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창조물들은 그의 기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네 말을 들으니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네. 무슨 생각인지도 알 것 같고. 한낱 창조물이 그의 힘을 갉아먹는 것이 싫었겠지. 너 자신보다도 그를 소중히 여기던 너니까. 그래서 치워버린 거지? 어차피 창조물을 잃는다고 힘을 잃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다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를 뿐.”

“...맞아.”

“들어봐, 청해. 그는 너를 추방시키고 곧바로 네가 없앤 98%에 달하는 양의 인간을 다시 창조해냈어.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 그 덕에 그는 큰 힘을 소실했고. 네가 만약 진정으로 그를 생각했다면, 넌 그와 의논해서 점진적으로 수를 줄여나갔어야 해.”

“하지만 그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겠지. 누구보다도 창조물을 사랑하는 그인데. 나도 내가 성급했다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다시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똑같이 할 거야. 그를 위해서.”

고집불통, 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평소 유현이가 내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성격은 착한데 너무 직진이라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 그의 등 뒤에서 푸르스름한 빛의 구체가 떠올랐다. 그, 의 잔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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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06 21:02 | 조회 : 88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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