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획득(獲得) 뒤엔 상실(喪失), 상실(喪失) 뒤엔 획득(獲得)

「보다 순조로운 이해를 위하여 세계관 설정을 참고 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읽으시면서 이해가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것은 세계관 설정을 참고하셔서 봐주세요.」

“ 끄..끄억..허억.. ”

신들라는 말을 내뱉기는커녕 겨우 숨을 토해내었다.
아빌의 의해 족히 몇십 번을 죽은 신들라가 몸을 비틀며 위기를 직감한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 아,.. 아아.,.으 ”

신들라가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급하게 출구를 찾아 달렸다.
그에 놓칠세라 아빌이 큰 입을 벌려 신들라의 몸통을 반으로 뜯어내었다.
점점 재생이 더뎌지던 몸은 분리된 상체와 하체를 실처럼 겨우 이어붙여 재생이라 부르지 못할 재생을 해갔다.
아빌이 손을 들어 다시 신들라의 머리를 터트리려던 때 갑자기 신들라가 날카로운 괴성을 질렀다.

“ 끼에엑!!!! ”

“ 꺄아악! ”

놀라거나 공포에 질려 도망가지도 못하고 굳어 있던 사용인들이 신들라의 괴성에 귀를 막았다. 끝을 내려던 아빌도 뇌를 쑤시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
아빌이 뒷걸음질 치자 신들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훨씬 가늘고 힘없어진 뿌리로 제 몸을 들어 빠르게 벗어났다.
아빌은 쫓아가려 했으나 뇌를 뒤흔들었던 소리가 아직도 이명을 남기며 맴돌았다.

‘ 쯧.. ’

아빌은 눈을 감고 어느새 모습을 감춘 신들라의 기를 쫓았으나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 기에 이를 갈았다.
그러나 동시에 죽은 사람 없는 현재에 안도했다. 그의 안도함도 잠시 제게 모인 많은 시선들에 아빌은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살기로 가득 찼던 금안은 각오와는 다르게 불안으로 흔들렸다.
소란스럽던 홀은 밤이 내려앉은 듯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 ..오, 오른님?! ”
적막을 깨는 시종의 목소리에 아빌은 대리석 바닥을 걷는 구두 소리의 주인을 눈으로 쫓았다.
오른이 거침없이 아빌에게 다가오며 어느새 그의 앞에 오보를 남겨두고 멈춰섰다.
아빌이 의아함을 드러내기도 잠시 오른이 갑작스럽게 상체를 숙여왔다.
아빌은 물론이고 사용인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오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감사합니다. ”

“ ... ”

감사 인사를 전한 오른이 잠시 그대로 멈춰 있다가 이내 아빌에게만 들리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 ..백작님. ”

“ ... ”

오른의 말에 아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라고 말하기 무섭다는 것보다 혐오도, 다그침도 없는.. 오히려 부드러운 오른의 어조가 아빌의 입술을 꽉 붙들었다.
아빌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오른은 다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 ...밝히고 싶지 않으신 것이라면.. 이대로 문을 통해 나가십시오. 그리고 2층 창문을 통하여 다시 들어와 방금 막 이 사태를 보러 온 것처럼 행동하십시오. 그 소란을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태라면 모두들 그러려니 하고 넘길 겁니다. ”

“ ... ”

그제야 상체를 들어 올린 오른은 반듯하게 서서 아빌은 바라보았다.
그의 곧은 눈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아빌은 그의 말을 따라 몸을 감추었다.
아빌이 홀을 나가자 그제야 숨이 트인 사용인들이 살았다는 기쁨의 환호를 내지르는가 하면 극심한 공포 탓에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도 귀에 닿아왔다.
아빌은 빠르게 2층 창문을 통하여 제 방에 도달했다.
피를 많이 흘린 리자가 이 이상으로 버티는 것은 힘이 들 터이니 빨리 치료를 해주어야 했다.
완전체를 풀고서 지면에 발을 덴 아빌이 어딘가 서늘한 방에 미간을 좁혔다.

“ ...리자? ”

아빌은 리자는 없고 피가 고여있는 바닥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에 멍하니 리자를 불렀다.
그의 작은 부름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리자..? 리자! 리자!! ”

아빌은 사색이 되어 다급히 제 시녀의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사라진 리자의 몸처럼 아무런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혀가 잘린 그녀이니 대답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아빌은 이를 갈며 주변의 기를 느꼈다. 답답한 제 속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기만 느껴질 뿐 정작 리자의 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불이 지펴진 것 같은 속에 핏줄을 세우던 아빌이 발에 닿는 이물감에 고개를 내렸다.

신들라의 여린 조각.

손에 쥐자마자 파스라지는 여린 뿌리가 공기중에 휘날렸다.
공기를 타고 사라지는 신들라를 보던 아빌이 사색이 되어 숨을 삼켰다.
다시 완전체에 들어간 아빌은 불안에 떨리는 제 몸을 겨우 움직여 창문으로 다시 나왔다.
다리에 힘을 주어 순식간에 튀어 나간 아빌은 숲을 가로지르며 제 신경을 곤두세웠다.

‘ ...놓치면 안 됐는데..!’

아빌이 다시 쿵쾅거리는 제 심장을 억누르며 속도를 계속해서 올렸다.
여린 뿌리는 리자의 손가락과 혀를 잘랐던 억센 뿌리와는 달랐다.
만지기만 해도 파스라지는 뿌리는 너무 약했다.
마치 자신에 의해 약해졌던 그 뿌리처럼.
뇌가 뒤엉킬 것 같은 소리일지언정 그 자리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아빌은 속으로 자책하며 정신없이 리자를 찾아내려 달렸다.

***

“ ...백, 작님? ”

오른은 갑자기 사라진 백작을 기다리며 소란스러워진 백작저를 안정시키고 최대한 이 사태를 수습하고 있었다.
밤이 찾아오고 어느새 여명이 피어오르자 그제야 사라졌던 백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은 아빌을 본 순간 무어라 말하려던 것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심하게 어그러진 느낌이었다.

“ 백작님.. ”

“ ... ”

“ ...무슨 일 입니까.. ”

“ ...사...다 ”

아빌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오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재차 물었다.

“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 ..사라졌다. ”

“ ...? ”

아빌이 몸을 비틀거리더니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오른은 다급히 다가가 그를 부축하려다 아빌의 얼굴을 본 순간 몸이 굳어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가 이토록 무너진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과거 약에 절었던 때에도 오만과 욕심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던 이였다.
저가 무너질 것 같다면 기어코 남의 다리를 잘라 제 몸뚱이에 붙여서라도 자신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더 그가 무너지는 모습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 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이 곧고 강해 보였다.
그런 오른의 생각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앞에 있는 아빌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 ..리자가, 리자가 사라졌다. 그 녀석이 데려갔어. ”

“ ... ”

땀에 젖은 몸이나 헝클어진 옷매무새들이 그가 얼마나 그녀를 절실하게 찾아다녔는지 보여주었다. 오른은 아빌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일단 일으켜 세웠다.

“ 공문을 올리겠습니다. 최대한 리자에 대한 수사를 시켜 찾아내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쉬시지요.. ”

“ ... ”

“ ..쉬시는 게 먼저입니다..그럼 물러가겠습니다. ”

오른은 아빌을 방에 홀로 남겨두고서 씁쓸하게 복도를 걸었다.
아직까지도 괴물의 모습이 제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이 눈을 뽑아 그 기억이 사라진다면 당장이라도 뽑아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는 고작 본 것으로 이런데 그는 어떨까.
그는.. 모든 것을 끊어내고 싶지 않을까..

우웅--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 마치 이를 알기라도 한 듯 푸른색의 마구가 빛나고 있었다.

***

“ 꺼..끄으..하.. ”

신들라는 너덜거리는 제 몸을 힘겹게 이끌고 겨우 붙어 있는 한쪽 팔로 리자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겨우 유지하고 있는 몸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렸다.

“ 어..? 으..으아악!! ”

참으로 안타깝게도 길을 잃어 신들라의 앞까지 온 불쌍한 청년은 도망가려 몸을 돌리기도 전에 신들라의 얇은 뿌리가 이마를 꿰뚫었다.
뿌리가 반복적으로 울렁이더니 곧 청년은 미라처럼 말라 갔고 반대로 신들라는 점점 조금씩 재생해 갔다.

“ 더...어어...더... ”

신들라가 쇳소리를 내며 다 빨아 먹은 청년을 뒤로하고 다시 움직였다.
신들라가 유혹을 참지 못하고 마을 쪽으로 발을 돌리려던 때 그녀의 머리통을 누군가 잡아 들어 올렸다.

“ 아..- 아아.. ”

“ 신들라..꼴이 말이 아니구나.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

“ ...아..나..아아..타아님... ”

“ 이런 몸으로는.. 얼마 못 가서 죽겠구나. ”

“ 시..러....아...죽...기이..시, 어..”

신들라가 죽는다는 말에 몸을 바둥거리며 얼마 없는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그런 신들라를 보며 남자는 나른하게 웃음을 흘렸다.
매력적인 음성으로 퍼지는 낮은 웃음소리를 누군가 들었다면 필시 저도 모르게 다가올 소리였다.

“ 말해봐. 누가 그랬어? ”

“ ...아...하아....비이...일....흐..사-..자하.. ”

신들라의 말을 들은 남자가 곧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며 조금 더 물어왔다.

“ 흑 사자? 티어였어? ”

남자, 나타의 말에 신들라는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우리였으나 우리가 아니었고 우리가 아니었으나 우리와 닮았다.
그것을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을까.
신들라는 어지러운 제 머리를 겨우겨우 쥐어 짜내며 느릿하게 대답했다.

“ ...배...신-...자아.. ”

신들라의 말에 나타는 곧 제 눈꼬리를 부드러이 접으며 짙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침을 삼킬 만큼 몹시 달콤했지만 동시에 한 번에 잡아먹힐 듯 서늘했다.
신들라의 머리를 놔 준 나타가 조곤조곤 말하며 신들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 잘했어. ”

바닥에 늘어진 리자를 보는 나타의 눈이 세로로 길게 찢어지더니 곧 점점 그의 몸이 커져갔다. 마차를 넘고 낡은 집 한 채를 넘어 계속해서 커지던 나타가 순식간에 신들라를 삼켰다.
신들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나타의 뱃속에서 녹아 내려갔다.
꿀렁이는 작은 소리가 들리고 나타는 리자도 그대로 입안에 넣고 몸을 움직였다.
커다란 몸과 빠른 속도와는 달리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었다.

***

‘ ..오른 ’

“ 예, 후작님. ”

‘ 그곳에 무슨 일은 없었나. ’

오른은 평소와는 다르게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있는 알리카를 보며 저쪽도 문제가 있었음을 직감했다.
알리카의 눈동자가 오른을 찌를 듯이 다급하게 재촉했다.

“ 없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큰일이 있었습니다. ”

‘ ..말해봐라. ’

알리카의 말에 오른은 잠시 숨을 고르고서 오늘 있었던 일을 차근하게 말했다.
손가락의 일부터 타부의 일까지..
오른은 그 타부와 싸운 것이 흑 사자임을 이야기하려다 아빌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가 남에게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른의 말을 끌고 들어간 탓이었다.
평소라면 말했을 터이지만 오늘의 아빌에게 이 이상 무게를 실어주고 싶지 않았다.

“ ..그리고 백작님의 시녀가 그 타부에게 끌려간 듯싶습니다. 백작님이 밤낮으로 찾아다니셨으나... 끝내 못 찾고 돌아오셨습니다.. 많이 힘들어 보이더군요. ”

‘ ...오늘의 그자들은 단체에 의한 녀석들인 것 같다. ’

“ ... ”

‘ 나타라는 신을 모시는 단체였고.. 우리도 오늘 그 단체를 만나 싸웠다. 위험했고 하마터면 그대로 죽었겠지. ’

“ !! ”

‘ 그 단체와 아빌은 관계가 깊은 것 같다.. ’

오른은 아빌을 의심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나오다 바로 숨어들었다.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고 제가 그럴 일도 아니었다.
알리카의 짙은 한숨이 들려오고 약간의 침묵이 흐르자 다시 알리카가 말을 이었다.

‘ ..아빌은 많이 힘들어 보이던가? ’

“ ...예 ”

‘ ...가능한.. 빠른 시일에 찾아가지. ’

알리카의 말에 오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문을 표했다.
감시 및 조사 차원에서 보러 온다기보다는 마치 제 사람을 보러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이유도 모두 아빌의 관한 것들이었다.
그 초조함은 불안도 분노도 아닌 그저 걱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가 정말로 아빌을 의심하는 것인가?
오른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제 주군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싶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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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4-26 18:02 | 조회 : 1,43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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