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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행기를 탔다. 그 목적지는 내 17살의 길 위였다.
그곳에서 20살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내 정신이 끊긴 후부터 다른 의사가 수술을 집도했고 그 의사는 성공했다. 나는 실패했다.
그 뒤로 어울리지 않던 반지는 빼앗기고 나의 방, 옷, 음식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나를 벌 따위를 주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만 이곳엔 법도 감옥 따위도 없기에 의사라는 구색을 갖춰 다시 전쟁터의 의사로 돌려보냈다.

나는 길 위에 주저앉았다. 다시 되돌아왔다.
그 지옥 같은 일 년을 보내고 겨우 편한 생활을 해 왔는데 그 뒤엔 다시 이곳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던 선택지는 무엇이 있었을까.
아니,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살아남아야 하니, 빨리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뒤돌아보지 말아야 했다. 허황되게 다시 뒷걸음질 치지 말아야 했다.

나는 발을 뗐다.
그런데 다시 멈췄다. 길이 무너져 내려 있었다. 17살 처음 멈춰 섰던 그 지점과 같은 지점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메울 수 없는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이다. 더 벌어진 간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입의 호선을 따라 낯선 이물감도 느껴진다. 짜기도 했고 비릿하기도 했다.
숨을 내쉬었다.

나의 길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열리지 않는다. 뒤돌아가는 것 또한 의미 없는 한풀이에 불과했다. 내가 갈 수 있는 선택지는 이 길 뿐이었다.
내가 저 너머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 너머에선 흔한 총상 하나 처치 못해서 바닥에 나앉은 내가 과연 저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구멍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전보다 심해진 두려움과 걱정이 구멍을 더욱 넓혀간다.
공부하자.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았다. 오랫동안 피지 않았던 책을 펴고 노트에 기록을 했다. 여러 상처들을 머릿속으로 수술하고 꿰매고 치료했다. 다양한 병들을 분석하고 실험했다. 내 스스로 상처를 내고 다시 꿰매며 손놀림이 익숙해질 때까지 다양한 동작들을 반복했다.
2년간의 공백은 여전히 넓었지만 이제 저 멀리서 뛰어와 건널 정도는 되었다.
나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 상처는 내 길을 위해서였다.
내 삶, 내 생존, 내 존재를 위해.
그 삶의 기억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긴 공백을 건너 전쟁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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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3-08 18:45 | 조회 : 49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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