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메세테리우스

샴폐인 용병단이 드디어 모험을 떠났다

나는 주로 라이...그러니까 이사나랑 붙어 다녔는데 그 이유가 뭐냐하면 트로웰이 날 좀 경계하는듯해서였다
엘도 나를 좀 이상하게 여기는게 아무래도 트로웰에게 요정이라는건 존재하지않는다는걸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엘도 알겠지, 내가 쓴건 정령술도 마법도 아니라는걸

애초에 얼음의 능력을 썼으니 알기는 엘이 제일 잘 알것이다
얼음과 눈은 아무래도 물의 영역에 들어가있으니까

여튼 그래서 트로웰이랑 엘이 동시에 날 경계하는듯하니 그들과 가까워지긴 했지만 많이 가까워지지못한 나는 이사나랑 다니게 되었다

이사나도 묘하게 트로웰을 어려워하는듯해서 어쩌다보니 이사나랑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이사나랑 친해지면 엘과도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사나랑 붙어있으면 자연스럽게 엘이랑 있게되고 엘에게 딱붙어 있는 트로웰과도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차피 트로웰은 경계심이 한껏 쌓인 상태라 친해지긴 무리였다
애초에 트로웰에게 엘 외에 친해지고 싶은 상대가 있겠나

그래서 내게 중요한건 엘을 공략하는것이었다

엘은 순수하고 순진한 성격이라 내가 열심히 묘기를 부려주면 꽤 즐거워했다
섬의 아이들같아서 보는 나도 즐거웠다

그래서 엘의 경계심을 다 무너뜨리진못했지만 나름 그와 오래있고 대화를 많이 나누게되어 어느정도 '수상하긴 하지만 착한사람' 정도의 이미지를 만든듯했다

엘은 태어날때부터 모든걸 알고 태어난게 아니라 '정령왕이 알지못하는것이 있다' 라는 사실을 비교적 덜 심각하게 느끼는거같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날 그리 경계하지않은듯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걸으며 대화하는걸 보면 말이다
아직 오크라던지 그런애들이 나오지않아 평화로운 우리는 한가롭게 대화나 나누며 걷는게 일이었다

"와, 이비는 머리색이 굉장히 특이하네요, 눈도 정말 예쁘고..."
"아, 확실히 쉽게 볼 수 없는 색이긴하죠, 저도 가끔은 제 머리 색에 놀라곤하거든요"
"정말 새하얀 눈 같아요"
"엘의 머리칼도 흔한 색은 아니었잖아요, 저는 물의 요정이 나타난줄 알았다니까요"
"물의 요정도 있어요?"
"아뇨, 그냥 비유적인 표현이죠, 계절요정 외에 다른 요정은 없어요"

하하호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나쁘지않았다

"이비는 몸이 꽤 차갑네요"
"저는 별로 그렇게 안느끼는데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겨울요정이라 그런거같은데 솔직히 난 추위라는게 느껴지지않았다
대신 더위라면 굉장히 쉽게 느끼는 편이었다

"근데 엘은 클모에는 왜 가는거에요?"

물론 이유야 알지만 모르는척 물었다

"클모어에 아는 친척이 있어서 만나러가는거에요"
"아 그렇군요"
"이비는 동생 약 때문에 가는거라고 했었죠? 고생이 많네요"
"아뇨 뭘.."

잠깐만, 그러고보니 이러면 클모어에 도착하면 엘이랑은 헤어져야하는건가?

'그러고보니 엘이랑 붙어다닐 핑계거리는 없었지'

아, 형벌의 신전에 가는거라고 처음부터 그럴걸 그랬나?
근데 갈 이유가 없잖아..
클모어부터는 몰래 따라다녀야하나?

'스토커같잖아..'

이미 휴센 스토킹 전적이 있긴하지만..

한참 고민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더니 주섬주섬 무언갈 하기 시작했다

"음..? 뭘 하는거죠?"
"그러게요..?"

뭘 하는건지 모르는 나와 엘, 이사나의 눈이 트로웰에게 향했다
트로웰은 어깨를 으쓱하고선 엘을 쓰다듬어주며....윽, 쓰담쓰담이라니! 너무 귀엽잖아! ..가 아니라, 아무튼 설명을 해줬다

"무기와 짐을 재정비하려는거야, 이 길목부턴 몬스터들이 나오거든"
"몬스터?"
"와, 몬스터가 나오는건가요?"

몬스터라니
신기했다

"몬스터는 어떻게 생겼나요?"
"나도 궁금해"

아직 몬스터의 모습을 봐본적 없는 나와 엘은 트로웰을 쳐다봤다
트로웰은 몬스터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라 '오' 하고 감탄사를 흘리니 헤롤이 물었다

"너네는 어디 딴 세상에서라도 왔냐? 다들 아는 이야기를 어째 하나도 몰라?"

오, 딴 세상에서 온거 맞는데
물론 진실되게 말할 수 없기에 나는 대충 '섬에는 몬스터가 없었고 여기와서도 밖에 거의 돌아다니지 않았다' 라고 말하며 핑계거리를 만들었다
엘도 밖을 잘 다니지않았다는 핑계를 대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는데 한쪽에서 '취이익' 거리는 꽤 기분나쁜 소리가 들렸다

"헉, 뭐야 저거?!"

소리가 들리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보이는 모습에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이사나의 뒤로 숨었다

그곳엔 사람과 돼지를 합쳐놓은것같은 생명체가 있었다

"오크다"

트로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 상상은 해봤었지만...실제로 보니까 좀..내 취향은 절대 아니네..'

이사나 뒤에 숨어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는데 사람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더니 미친듯이 오크를 작살내기 시작했다
절대 보기좋은 광경은 아니기에 나는 이사나 뒤에 숨어 힐끗힐끗 보다가 시선을 내리곤했다

피가 사방으로 튀어댔다

요정왕 되고 정신력도 강해진건지 조금 보니까 적응이 되서 그다지 무섭거나 그러진않았지만 한국에 살았던 내 연약한 정신 그대로 가지고 왔으면 바닥에 튀긴 피도 못보고 덜덜 떨었을것같기도 했다

머리통이 터지고 몸이 갈라지는등 처음에 보니 토할거같았던 장면도 이젠 괜찮아졌지만 엘과 이사나는 영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장면도 얼마안가 끝났다
그 후 카이테인씨를 보고 마이티의 언어유희를 하나도 알아듣지못한 엘을 보며 웃고 이동을 하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여관에 가서 방을 받고 저녁도 먹었고 나는 바람이나 쐴겸 밖으로 나왔다.

"조금 추워졌나?"

섬은 이제 봄일텐데 여긴 이제 겨울이 다시 오는 모양이었다
겨울바람이 조금씩 섞여있는게 느껴졌다

여관 근처를 산책하다가 사육장 한쪽의 돼지를 발견한 나는 오크를 떠올렸다
오크라, 음?

'그러고보니 원작에서 그 오크들 무리에 라피스 형....개 누구더라..메세테리우스 였던가? 그래, 개 있지않았던가?'

뒤늦게 쫓아온 대공파의 누가 남아있는 오크무리를 박살내면서 기절한걸로 기억하는데

조금 흥미가 생겼다

엘과 함께 하게 된 후 즐겁긴했지만 뭐랄까, 모험이랄까 그런게 없어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던 차였다
그리고 다들 끈끈한 우정같은게 있는 반면에 나는 갑작스럽게 아무런 연고없이 들어온거라 그들과 오래 있기도 솔직히 말하면 피곤했다
사회생활이라는게 늘 그렇지..

섬에서 눈뜨고 10년간 하고싶을대로하고 살고 사회생활이랄것도 없이 살아서 오랜만에 이런걸하려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었다

"..잠깐 구경만하고 오는것 정돈 괜찮겠지"

운 좋으면 무려 드래곤이 기절해있는걸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공중에 뜰 수 있으니 아까 오크들이 출현한곳 주변을 살펴보면 보일것이다

순간이동만큼 빠르지않아도 날아서 갈때 딱히 속도 제한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저긴가?"

생각보다 멀지않은곳에 오크들이 쓰러져있는게 보였다
급히 그쪽으로 가니 꽤 가관이었다

"다 죽었나?"

오크들만 얌전히 죽어있는게 아니라 주변도 박살난 상태였다

살포시 땅에 발을 딛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한쪽에 검은머리카락이 보였다

'메세테리우스!'

조용히 그쪽으로 다가가 그의 바로 옆에 있는 깔끔히 잘 잘린 나무 밑둥이 있길래 거기 앉아서 기절한 그를 구경했다

"오, 잘생겼다"

드래곤은 오늘 처음보는데 머리카락도 비단결같고 얼굴도 조각같았다

'언제 깨는거지?'

요정왕되고 모험심도 늘고 베짱도 늘었는지 나는 새로운 도전과 만남을 즐겼다
그니까 뭔 소리냐면 메세테리우스랑 대화해보고싶단 소리다

"으..."

드래곤은 처음이라 신기한 나머지 머리를 툭툭 건들여보고있었는데 그가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곧 비틀비틀거리며 일어났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이꼴로 만든 놈들을 작살내주겠네 어쩌네 하며 중얼거리다가 날 발견하곤 놀라서 팔짝 튀었다

"오, 안녕?"

수줍게 인사를 건내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넌 뭐야?"
"나? 이비 프로스트"
"아니, 이름을 물어본게 아니라..."

그는 유심히 나를 쳐다보더니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말했다

"인간도 아니고 정령도 아니고 드래곤도 아니고 엘프도 아니고...뭐냐 대체? 기운만 보면 정령의 기운과 흡사한데.."

오 뭐야, 드래곤은 이런것도 알아보나?
놀랍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메세테리우스가 또 인상을 찌푸렸다
저러다가 주름생기면 어쩌려고

그는 계속해서 날 쳐다봤다
미남은 좋아하지만 눈빛이 부담스러운건 별로였다
가볍게 화재를 돌리기로 한 나는 내 정체에 대해선 말해주지않고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대충 알고있긴한데 가물가물한 기억을 뒤져내 찾은거라 정확하지가 않았다

"메세테리우스"

아, 역시 맞구나?
10년이 흘러도 정엘 팬이었던 내가 등장인물 이름을 까먹을리가 없지!

"너 정체가 뭐야?"
"글쎄?"

내게 그리 예의있게 굴지않을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로 예의는 밥말아먹은듯한 태도에 괜히 심술이나 알려주지않자 그는 또 인상을 찌푸렸다
애는 한마디하고 인상찌푸리고 한마디하고 인상찌푸리고....인상쓰는게 하루 일과 중 반은 될것같았다

"장난하지말고 말해라"

무기 다뺐기고 인간한테 기절해서 그런가 신경이 꽤나 날카로워보였다
더 장난치면 진짜 어디 한군데 다칠거같은 느낌이긴한데 그렇다고 알려주긴 싫었다

"나도 몰라"

그럼 뭐다?
나도 모르면 된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사이 좋게 모르면 되는것 아닌가

물론 나는 내 정체를 알지만 알려줘야하긴한데 알려주긴 싫을땐 모르는척이 제격이니까

"뭐, 생각보다 재미있진않네"
"뭐?"
"기절한 드래곤을 보면 그래도 좀 재미있는일이 있을줄 알았거든"

그는 시시하게 인상이나 찌푸리고 짜증내고 화내는거밖에 안했다
좀 더 특별한걸 해봐 특별한거!

하지만 그는 발끈하며 "너 내가 누군줄 알고..!!" 라고 말했다
에이, 그런거 말구
흥미로운 무언가 없니?

없나보네

"시간도 늦었고, 나 이제 갈래"
"뭐? 야 잠깐만!!"
"왜"
"너 어디가서 이야기하고 다니지 마라!!!"

그가 살벌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어..그러니까

"인간한테 한대 맞고 기절한거 소문내지말라고?"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약한거같잖아!! 소드마스터고, 난 방심한 상황이었다고!"
"그래도 고작 인간인걸....아, 알았어 안할게"

이거 무서워서 소문낼 수 있겠나

소문 안내기로 약속하고 나중에 소원하나 들어주라고 한 뒤에 그의 대답을 듣기도전에 나는 튀었다


그리고 그날 밤 겨울 요정 모두에게 '메세테리우스라는 블랙드래곤이 고작 인간한테 한대맞고 기절했댄다' 라고 소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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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1-11 23:23 | 조회 : 1,640 목록
작가의 말
개냔이

소문내지말랬는데...나빠..이비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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