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지금 매우 어이가 없다.
피 흘린채 쓰러진 내 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렇게 죽을줄이야.."

허무함이 밀려왔다

혈혈단신 고아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힘들었던가
힘들었지만 내가 이루고싶은 바를 이루기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던가

"하..."

내 꿈은 그렇게 큰게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유치원교사가 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싶었다

나는 아이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가까이서 지내는 유치원교사를 꿈으로 두게되었다

잘 진행되고있었다
성적도 잘 나오고 이대로만 가면 무리없이 대학도 가고 할 수 있었는데..

나는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반투명한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고작 18살인 나는 죽어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119도 오고 경찰도 오고 날 죽게 만든 원인인 트럭도 보였다

트럭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내가 저 트럭에 치여 죽었다니 저 트럭을 할 수만 있다면 가루로 만들어버리고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오늘이 시험끝난 주 주말이라 고아원으로 빨리 가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려고 했었다
어제 저녁에 애들이 '겨울요정 이비' 라는 동화책을 들고와 내일 꼭 읽어달라고 했었는데
나도 어렸을때 읽었던 동화책이라 낡고 너덜너덜 해진 책이었다.
그다지 재미있진 않았지만 요정나오는건 모든지 좋아했던 어린시절엔 꽤 좋아했었다.

그거 읽어주기로했었는데 못읽어주겠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영혼 상태론 뭔가를 만질 수 없다는걸 알지만 저 트럭을 발로 차지않으면 분이 풀리지가 않을거같았다.

어차피 안되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것보단 나을것같아 나는 어김없이 트럭에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주먹과 트럭이 맞닿는 순간 갑자기 트럭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으...음, 여긴....어디지....."

머리가 멍했지만 애써 눈을 떴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몸을 일으키고 조금 기다리니 멍했던 머리도 곧 맑아졌다

"어...?"

그리고 제대로된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을때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저승인줄 알았는데 왠 숲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다 뒤늦게 알아챘는데 내가 쓰러져있던곳은 땅이 아니라 얼어붙은 호수 위였다

놀란 나는 호수의 얼음이 부서져 빠지면 어떡하나싶어 급하게 몸을 일으켰....

"으아악!!!"

뭐야!! 뭐야 이거!!!
그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려했을 뿐인데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확 떠올랐다

땅으로 내려가려고 발을 휘저으니 갑자기 땅에 빡-!!! 하고 박혔다
아, 땅이 아니라 호수의 얼음 위구나

도무지 적당히라는게 없는 움직임탓에 호수의 얼음에 되게 쌔게 부딪혔는데 얼음이 단단히 얼었던 모양인지 깨지진 않았다
대신 엄청 아팠다

"으으....이게 대체 뭐야...."

일단 위험하니 호수밖으로 나오긴했는데 여긴 대체 어디일까?
겨울인건지 나무와 땅 위엔 눈이 소복히 쌓여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춥지않았다

"음...?"

이제보니 뭔가 손 모양이 이상한데
난 이렇게 가늘고 희고 예쁜 손을 가지지않았는데?

뭔가 싸한 감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호수의 얼음으로 달려갔다
얼음에 비춰지는 얼굴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한번 흘렸다.

"오, 세상에..헉, 목소리도 달라.."

이렇게보나 저렇게보나 이건 내 몸이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가 드디어 미쳤나?

한참 혼란스러워하고있는데 한쪽에서 뽀드득 뽀드득 하며 눈이 밞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오는걸까 싶어 그쪽을 쳐다보았다

"아, 저기있다"

그리고 나무 사이로 누군가가 모습을 들어냈다
각각 화려한 색감의 머리칼과 눈 색을 지닌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은 내게 다가오더니 대뜸 "반가워" 라며 인사를 했다

"누구세요...? 여긴 어디죠? 여기 저승세계 아니죠?"

모든것들이 이해가 되지않았다

분명 죽었는데
트럭에 치일때 그 고통은 지나치게 생생했다
차갑고 어두운 죽음의 감각도 잊을 수 없을만큼 생생했다

저승에서 눈떴어야했는데 나는 왜 이런 숲에서 눈뜬건가
왜 내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인건가 너무 궁금했다

"어...일단 말해줄게, 넌 요정이야"
"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



"꺄르륵"
"요정님 요정님! 전 얼음성 만들어주세요!"

어린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며 꺄르륵 웃어댔다
그게 귀여워서 나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작은 얼음 성도, 커다란 눈사람도 만들어줬다
몇년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지만 이젠 가벼운 손짓만으로도 상상하는것들을 만들 수 있다

"애야! 요정님 힘들게 하지말고 적당히 놀고 오렴!"
"알겠어 엄마! 꺄, 나나 이거봐!"

귀여워서 한참 쳐다보는데 누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날 불렀다.

"이비"
"응?"

고개를 돌리니 화사한 금발에 녹안을 가진 귀엽게 생긴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디이 브리즈' 였다.

"왜?"
"드래곤들이 그러는데 가뭄이 끝났대"
"앗, 진짜?"
"떠날거야?"
"오, 그럼 난 이때를 기다렸는걸"
"아이들이 섭섭해할거야"
"곧 봄이잖아, 겨울이 다시 오기전에 오면되지"

내가 떠나는게 아쉬운 모양이었다
하긴, 아쉬울만도 했다
클로이도 루비도 지금 여기 없으니
내가 떠나면 디이는 혼자 남아야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10년동안이나 가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정말 애타게 말이다

하지만 디이를 두고 가기도 좀 그랬다
봄도 아니고 겨울에 혼자 남겨져서 할게 뭐가있겠나

"지금 당장 떠나는건 아니야,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그때 갈게, 클로이와 루비도 겨울이 끝나기 전엔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정말이지? 나 혼자선 너무 심심해.."
"겨울이 끝나고 가는걸로 약속할게"
"그럼 됬어! 난 가볼게, 요정들이 곧 봄이 오니까 여러가질 준비하고있거든"
"응! 난 애들이랑 좀 더 놀게"

디이는 활짝 웃으면서 공중으로 뜨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디이가 지나간 자리엔 따뜻한 봄바람만이 남았다
그것도 곧 차가운 겨울바람에 뭍혀 사라졌지만

디이는 봄의 요정이었다

여기서 눈뜬지 10년째
처음엔 많이 혼란스러웠다

눈뜨자마자 만난 애들이 나더러 '넌 요정이야' 이러고 죽은게 분명한 나는 살아있고 내 몸도 아니고

나는 한국에서 죽고 이세계에서 환생한듯했다
그 이세계가 '정령왕 엘퀴네스' 라는 책속인듯 했지만

정엘에 요정이라는 존재는 본래 없었는데 원작이 조금 바뀐듯했다

신들이 세계를 만들때 정령보다 먼저 자연을 관장할 존재로 요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들이 이때 실수를 했는데 '물, 불, 바람, 땅' 이 아니라 '겨울,여름,봄,가을' 을 속성으로해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뒤늦게 자연을 관장하기에 겨울 여름 봄 가을이란 계절은 맞지않음을 깨닳았고 그들은 만들어짐과 동시에 잠들어야했다
그냥 없애버리기엔 생명을 너무 쉽게 만들고 없애고 하기가 좀 그렇다는 이유로 일단 당장은 필요없고 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니 그들을 잠재우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아크아돈의 한 섬에 잠들게 된다
엄청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은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겨울의 숲, 여름의 숲, 봄의 숲, 가을의 숲

그리고 나머지는 겨울과 여름, 봄과 가을, 이 4가지가 만나는 곳
그냥 쉽게 말해서 4계절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곳엔 사람들도 살았다

지금 나와 놀고있는 이 아이들이 그 구역에 살고있는 아이들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자고있던 요정들이 왜 깨어났냐고 묻는다면 그냥 신들의 변덕이었다
거의 잊고지내던 요정의 존재가 누군가에 의해 거론되고 영원히 잠재워 둘 순 없으니 이젠 깨워주자고 해서 깨게 된것이다

본래 이 섬은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게 되어있었다

왜냐고 물어보니 요정들을 가두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생긴 구조라고 하는데 요정을 다 잠재워뒀으면서 뭘 가두기까지 하냐고 물었더니 디이가 말하기를

잠든건 요정왕 뿐이고 평범한 계급의 요정들은 잠들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냥 다 잠들게하면되지 뭘 개들은 깨워두고 누구는 재워놓는건지 의문이었다

아무튼 요정들을 깨우고 더 이상 요정들을 가둘 필요가 없어진 신들은 섬을 두르고있는 그 이상한 구조를 없앴다

그래서 일단 나는 요정왕이고 겨울 요정으로 환생했다
신들이 요정들을 더 이상 가두지않고 세상에 내보이겠다고 다짐했을때가 이 섬에서 봄이었던지라 계절에 따라 하나하나 차례로 깨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마지막에 깬 요정이었다

뭐,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않다
지금 내게 중요한건 가뭄이 끝났다는것이다

이 섬은 오로지 요정들의 구역으로 정령의 영향을 받지않는 섬이었다

원작에서 엘이 태어나지않는 바람에 생겼던 가뭄도 이 섬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못했다

그래서 처음엔 여기가 정엘 세상에라는것을 몰랐었다
여기가 정엘 세상이란걸 알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먼저 잠에서 깬 요정들 덕분에 쉽게 적응한 나는 이 세계에 대해 차츰 차츰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째 신들 이름도 다 어디서 들어본거같고 대륙 이름도 어디서 들어본거같고...
그래서 '설마' 하고 있을때 외부로부터 사람이 한명 들어왔었다

요정들이 잠에서 깨면서 외부인의 출입이 가능해진지라 우연히 한 사람이 배를 타고가다 난파당하면서 섬에 들어오면서 그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여러가지 듣다가 알게되었다

여기가 정엘 세상이란것을
그래서 난 당장 우리 엘씨를 만나러 가고싶었다
가뭄이 끝났다는건 엘씨가 태어났다는 뜻인데, 이놈의 가뭄이 영 끝날 기미를 안보이더니 최근 끝난 모양이었다

여기가 정엘 세상인걸 알고나서부터 가뭄끝나면 정령왕 만나러 간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댔는데 드디어 가뭄이 끝나다니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싶지만 디이랑 겨울이 끝나면 가기로 약속해버렸다
지금 이 섬은 겨울이고...
뭐 하지만 곧 봄이 올테니 조금 기다리는것 정도야...

가뭄이 끝나기를 몇년째 기다렸는데 한달정도 더 기다리는거야 어렵지않았다.

겨울요정이다보니 당연히 겨울을 좋아했는데 이번 겨울만큼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있는데 누가 아래서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급하게 시선을 돌리니 아까까지 나와 놀고있던 아이들이었다

"이비님 떠날거야?"

이런, 아까 디이와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가뭄이 끝났어?"
"응"
"그럼 그 정령왕이라는걸 찾으러 가는거야?"
"으앙, 이비님이랑 더 놀고싶은데!"
"다른 요정님들은 이비님 처럼 안놀아준단 말야"

요정들한테 뿐만 아니라 인간들한테도 가뭄끝나면 정령왕 찾으러간다고 말했던가?
...생각해보니 꽤 많이 말한거같다

"겨울이 끝나면 갈게, 그리고 다음 겨울이 오기전에 다시 돌아올테니 그때 놀자"
"으응..."
"어차피 봄이 오면 얼음성을 만들어 줄 수도, 눈을 내려줄 수도 없잖아"
"그치만...눈은 만들어 줄 수 있잖아..."

아이참..골치아프네
애들이 단체로 가지말라며 매달렸다

아이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혈혈단신 고아로 살아올때 유일한 낙이었던 정엘 속에 들어왔는데 주인공 한번도 안본다는게 말이되겠는가
내가 없더라도 디이나 클로이, 루비가 잘 놀아줄것이다

"생각보다 겨울은 더 빨리 올거야, 그리고 아직 겨울이 안끝났는데 이렇게 시무룩하게만 있을거야? 다음겨울에나 만날 수 있을텐데, 이번 겨울이 끝나기전에 놀아야지!"
"앗, 그..그렇지 참!"

아이들은 순수하고 단순해서 참 좋다

"그럼 뭐할까? 커다란 눈 사람을 만들어줄까? 아니면 얼음으로 된 유니콘?"
"와 유니콘! 보고싶어!"
"뿔이 날카로우니 조심해야한다?"
"와아아아!"
"예쁘다!!"

아이고 예쁜 우리 아가들
해가 저물때까지 놀아준 뒤 겨울 숲에 있는 내 집인 커다란 얼음성으로 들어가 내 방으로 들어가니 디이와 클로이, 루비가 있었다

"어? 너네 왔어?"
"겨울이라고 아주 신난 모양이야"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을 바라봤다
볼때마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색들이라 눈이 아프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했다.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파란 머리칼에 진한 녹색 눈을 가진 여름의 정령 클로이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에 붉은 눈을 가진 가을의 요정 루비

각자 입고있는 옷도 '나 무슨 요정이요' 를 말해주는듯한 색감과 디자인인지라 다 다른 색 때문에 매우, 정말 화려했다

어우 눈아파

내가 이중에서 그나마 눈이 덜 아픈 색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하얀 백발에 푸른 눈을 가지고있고 전체적으로 하얗고 파란 디자인에 연보라색을 포인트컬러로 쓰기 때문에 나 자체만 놓고보면 그다지 눈이 아프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이 생김새에 적응하는데 2년이나 걸렸다
거울을 볼때마다 흠칫흠칫 놀랐는데 이젠 내 모습처럼 몹시 익숙했다.

"그래서, 떠난다고?"

멍하니 잡생각을 하는데 클로이가 말을 꺼냈다
내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응, 겨울이 끝나면 가려고"
"정령인지 뭔지 그건 대체 왜 보려는거야? 솔직히 난 개들 맘에 안들어, 신들이 우릴 잘못만든거가지고 잠들게 해놓고 우리 대체품으로 만든 정령인지 뭔지는 잘 살고있다니"
"에이, 개들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클로이 애는 참 별걸 가지고 다 심통을 부린다니까

2
이번 화 신고 2019-12-31 20:50 | 조회 : 1,477 목록
작가의 말
개냔이

아..안녕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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