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폭풍전야

특별할 것 없는 일주일이 지났다.

바다는 가만히 병실에 누워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사람들의 병문안을 맞이했다.
반면 감기가 심해진 유나는 며칠을 끙끙 앓았다. 키네시스는 바다를 한 번 찾아갔다 남은 시간에는 유나의 옆에서 병간호를 해주었다.

"선배. 몸 상태는 좀 괜찮아요?"

바다의 곁에는 나가가 남아있었다.

그 사이에 세 개였던 주사바늘은 하나씩 줄어들어, 마침내 남은 마지막 하나마저도 뽑히는 날이 찾아왔다. 바다는 파랗게 피멍이 든 손등을 문질렀다. 스치기만 해도 온 몸까지 찌릿함이 올라왔다. 오랜 주사로 살이 부풀어있었다.

"이제 좀 괜찮네요. 사실 며칠 전에는 말만 괜찮다했지, 많이 피곤했거든요."

마지막 날, 나가는 퇴원을 축하한단 듯 음료수 박스를 하나 가지고 왔다. 바다는 평소처럼 축 쳐진 눈매를 들어올리며 웃어보였다.


새하얀 병원복은 고이 접어 침대 위에 올려졌다. 바다는 화분 속 노란 마거리트로 고개를 돌렸다. 바다는 머뭇거리다 화분을 조심스럽게 안았다. 달콤한 향기가 안개처럼 훅 들어왔다.

"언니, 퇴원 축하해! 일주일이나 걸릴 줄이야. 많이 위험했나봐."

혜나가 평소처럼 달려와 안기려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혹시나 몸상태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바다는 한손으로 화분을 끌어안으며 혜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다나 언니는 요즘 많이 바빠서 병문안 오기도 힘들었나봐. 그때 그 '네루' 가 나타난 이후로 잠도 못 잔대. 그래도 잠깐은 와 보지."

바다가 격하게 손사레를 쳤다. 다시 살아난 해파리처럼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눈동자는 동그랗게 떠져 혜나를 바라보았다.

"아냐. 그럴 필요 없었어. 그런데 네루가 뭐야?"

"언니를 삼켰던 고양이괴물 이름. 그것보다 이 얘기 좀 들어봐. 요즘 밤마다 고양이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자꾸 들어오더래. 그래서 해결하러 갔는데, 거기에 그 괴물이 엄청 많았대. 다섯 마리는 훨씬 넘었었나봐."

혜나가 팔을 크게 휘저었다. 입까지 크게 벌리며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려 했다. 바다와 나가는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바짝 집중했다.

"언니를 삼켰던 네루한테서 얻은 정보로는, 뭔가를 삼켜서 뱃속에 저장하면 그걸로부터 영양분을 계속 빼내나봐. 그래서 언니가 엄청 힘이 없었던 거고."

바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입원실에서 처음으로 눈을 뜬 날, 내색하지 않았을 뿐 그녀는 서 있는 것 조차 힘겨웠다. 그래서 영정과의 긴 대화에서도 침대에 걸터앉아있었다. 괜히 일어서려했다 고꾸라지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어쨌든 많이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겨우겨우 다 처리하고 남은 마지막 괴물 목에 '네루' 라고 적힌 목걸이가 걸려있었대. 그걸 보고 네루라고 이름을 지었다나봐."

'목걸이?'

바다는 기분나쁜 찜찜함을 애써 덜어내려했다. 왜 갑자기 그렇게 많은 수가 도심에 나타난 것인지. 목걸이가 있다면 그것을 걸어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건 하얀 마법사인가, 백모래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제 삼자의 인물인가.

따르릉!

한껏 긴장해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웠건만, 고작 혜나의 알림음에 바다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곧바로 나가와 바다를 번갈아보았다.

"앗, 나 오늘 친구랑 약속있었어! 퇴원축하만 생각한다고 깜빡 잊고 있었네. 미안, 나 빨리 가봐야할 것 같아."

"괜찮아. 어서 가 봐."

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바다와 나가도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발자국소리가 희미해지다 못해 마침내 사라졌을 때, 둘 사이의 침묵은 붉은 저녁 속 그림자처럼 길어져있었다. 고요하지만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그 편안함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나가였다.

"선배. 이제 집에 갈 생각이에요?"

바다는 고개를 돌려 나가를 마주보았다. 회색빛 눈동자가 고스란히 푸른 바다에 잠겼다. 그녀는 소리없이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이 어둑해 비가 올 것 같았다. 입원해 있는 동안은 그렇게 날씨가 좋더니. 그녀는 다시 나가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근처를 좀 걸어볼 생각이에요. 계속 방 안에만 있었더니 답답했거든요. 산책하면서 바람이라도 쐐명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같이 걷자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다시 뱃속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왜 그렇게 소심하게 행동하냐 물을지도 몰랐다.

나가가 도착하자마자 하얀마법사는 자리를 피했다고 했다. 적어도 소문은 그렇게 나 있었다. 누가 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이들이 알고 있는 정황은 그랬다. 하얀 마법사 조차도 나가를 두려워해, 인질인 바다를 내버려두고 도망쳤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나가가 도착했을 땐 이미 하얀마법사는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에 두려움은 없었다. 당당한 발걸음과 펄럭이는 옷자락엔 아쉬움 뿐이었다.


그랬기에 나가는 바다에게 당당할 수 없었다. 구하지 못했다고 책망하진 않았으나, 내가 당신을 구했다고 떳떳할 수도 없었다. 옷깃을 손끝으로 눌러잡은 바다의 물음에, 그렇게나 놀랐던 것은 그 이유에서였다.

"같이 갈래요 나가?"


-


"아까 제이한테 문자 받았는데, 혹시 같이 있으면 아지트로 올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나가한테 줄 게 있대요."

나가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이 행여나 보일까봐 바다를 제대로 마주보지도 못했다. 바다는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앞만 보고 걸어나갔다. 꼿꼿이 세워진 등과는 달리 기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 속도였다. 아직도 체력이 다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나가는 조용히 바다에게 발을 맞췄다.


"선배는 언제 다시 복귀할 생각이에요?"

"내일부터요. 병실비용은 제가 다시 내려고요. 영정님이 대신 내주셨댔거든요."

"힘들지 않아요? 아직 다 회복한 건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퇴원하기 하루 전날 밤, 바다는 링겔대를 이끌고 담당의사를 찾아갔다. 진료라곤 약물투여밖에 해준 것 없는 사람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다드니, 그런 전문지식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것도 그 의사 뿐이었다.

'가능한 한 빨리 퇴원시켜주세요'

바다가 나가에게로 빠르게 돌아보며 웃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게 낫잖아요!"

희미하게 초승달처럼 구부러진 눈매 사이로 보석같은 반짝임이 엿보였다. 홱 돌린 몸에 옷자락이 치마처럼 휘날렸다. 날아가기 직전 꽃잎같은 모습이었다.

바다는 한걸음 앞에 서서 그를 마주보았다.

"나가. 그동안 고마웠어요."

나가는 눈동자만 굴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스크라도 챙겨올 걸, 얼굴 가리는 건데. 나가는 한참을 후회하면서도 바다와 맞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바다는 조곤조곤, 하나씩 읊어가며 나가에게 웃음을 보였다.

"그 때 구하러 와 준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매일마다 병문안 와주기도 했잖아요. 1인실 병실이라 밤에는 조용했는데, 나중엔 괜찮았어요. 나가 덕분이었어요. 한 밤 중에 시끄러울까봐 티비도 못 틀고, 잠도 잘 안 와서 눈만 뜨고 있었거든요.
아, 물론 1인실이 싫단 건 아니었어요! 넓고 깨끗해서 엄청 편했어요."

바다는 뒤늦게 허둥거리었다. 창피함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잘익은 사과같았다. 살짝만 건드리면 터질 듯 한 건, 둘 다 마찬가지인 듯 했다.
바다는 내저었던 손을 내려 깍지를 끼었다.

"...어쨌든 고마워요. 나가는 친절한 사람인 것 같아요."

"아녜요."

나가는 손을 내저었다. 친절한 사람이라니, 그건 나가가 바다를 볼때마다 항상 든 생각이었다. 그 당사자에게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민망함 때문인지, 황송에 가까운 감사때문인지. 귀까지 붉어진 나가는 바다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자 흔들린 팔에 손끝이 서로 맞닿았다. 그대로 얼음이 된 나가와 달리, 바다는 재빨리 팔을 끌어안으며 멋쩍게 웃었다. 간질간질한 분위기가 심장을 뒤덮었다.

".....어서 가요."

바다는 애꿎은 앞머리만 헝클였다.



-



"어. 왔구나."

제이가 담담하게 두 사람을 맞이하며 손안의 마카롱을 먹었다. 들어있던 크림이 입술에 묻기도 전에 그것은 통째로 삼켜졌다. 동시에 바닥을 긁는 고양이의 발톱 소리가 났다. 기괴한 소리에 움츠러들자 제이가 자리에서 벌컥 일어섰다.

"유나가 얼마 전에 유기묘를 하나 데려와서 여기서 키우고 있거든. 집에 데려가면 서장님이 화낸다면서. 아, 미안. 괜히 여기 놔뒀네. 방에 들여보낼게."

제이가 바다의 눈치를 살폈다. 바다는 그 모습을 보고 바람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평소와 달리 환한 웃음이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길로 검은 털을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그런 걸로 트라우마 생기진 않았어요. 나 고양이 좋아하는걸요."

제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바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머리가 허리를 쓸어넘겨 허공을 휘저었다. 바다는 걸리적거렸는지 머리카락을 전부 한 쪽으로 옮기곤 고양이를 매만졌다. 갸르릉거리는 소리가 조금 들리는 듯 하자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퍼졌다.


"이름은 네로래. 그나저나 아무리 집에서 키우기 힘들었어도 그렇지, 결벽증 있는 사람한테 유기묘를 맡기면 어떡해?"

"그것도 그렇네요. 길에 내버려두기에는 많이 가여웠나봐요."

"처음 데려와서 씻기는 것만 한나절 걸렸다. 원래 계획대로면 쿠키 쉐이크 사오려고 했는데."

궁시렁거리며 방으로 들어간 제이는 테이프 하나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곤 고양이가 지나간 길마다 한번씩 빠진 털들을 수거했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워, 나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몇 번을 킥킥댔다. '난 심각해!' 라며 나가에게 소리치는 모습까지 완벽했다.

제이는 민망한 헛웃음을 몇 번 내뱉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랍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는 듯 하더니, 손에 집히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대자 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쨌든, 내가 너희보고 오라한 건 이것 때문이야. 받아."

제이는 뒤의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둘을 향해 팔찌를 던졌다. 나가는 염력으로 그것을 잡아챘다.

하얀 색 바탕에 파란 불빛이 이따금씩 반짝거렸다. 나가는 신기한 듯 물건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첫눈에 봐도, 평범한 물건은 아닌 듯 했다. 그런 거라면 제이가 저렇게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리가 없었다.

"뭐 신기한 기능이라도 들어가있어요?"

바다가 주섬주섬 손목에 매달며 물었다.

"어. ESP 리미터. 초능력 제어기야. 키네시스 포함해서 너희 3명한테만 만들어준 거니까 어디 가서 잃어버리면 안된다. 만드는 데 힘들었어."

나가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팔찌를 맸다. 그와 동시에 숨이 막히는 것처럼 갑갑한 느낌이 목을 애워쌌다. 그는 애꿎은 목매를 매만지며,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이게했다. 딱히 소용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도 조절 못해서 써버리면 안되잖아. 실수로 건물 부수거나, 사람을 너무 세게 치거나, 뭐 그런 거. 그럴 때 대비해서 적당히 특기를 제어하는 용도야."

"항상 차고 있어야해요?"

벌써 숨이 차오른 나가가 물었다. 제이는 한 쪽 눈썹을 까딱이며 대답했다.

"특기가 안정되어 있으면 굳이 그럴 필욘 없지. 바다나 키네시스는 웬만하면 제어가 가능하니까. 근데 넌 아니잖아. 그러니까 웬만하면 차고 다녀."

"저 뼈 맞아요..."

"그리고 일차원적으로 봤을 때, 제어고 조절이고, 넌 그냥 특기가 강하잖아. 그 특기가 도심에서 터지면 답이 없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그 리미터가 도움이 될 거야. 물론 힘 줘서 끊어내면 부서지겠지만, 어느 정도 일은 하겠지. 없는 것보단 나을 거야."

나가는 그제서야 소중한 무언가를 찾은 듯 팔찌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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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한 오후였다.

느리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보였고, 더위에 헉헉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문이 열릴 때마다 가게 안에선 시원한 공기가 훅 들어왔다.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겨우 찾아낸 오아시스였다.

그럴 때마다 혜나는 당장이라도 그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문 앞까지 쪼르르 달려가도 바다가 민폐일 수도 있다며 말렸다.

"괜찮아, 난 애잖아. 그냥 철없어서 그러는가보다 싶을거야!"

라며 떼를 써도, 단호하고 확실하게 안된다 말하는 바다에 혜나는 시무룩해졌다. 입을 삐죽 내밀긴 했지만,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할 테니 조금만 참으란 말에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이미 알고 있잖아. 영악해..'

나가는 그 대신 화를 내는 혜나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이리저리 휘저었다. 하필이면 제일 더울 한낮에 일을 내보내다니. 그건 다나를 향한 귀여운 분노였다.

"그래도 이게 제일 피 안튀기는 일이라잖아. 오빤 그런 거 무서워."

"난 괜찮은데. 내가 만약 오빠였으면 오히려 그런 일이 더 좋았을 걸. 힘쓰는 쪽 같은 거 말야! 그리고 뭣보다 빨리 끝나잖아."

혜나가 나가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 같이 겨우 붙은 그녀가 손에 닿은 팔찌를 주시했다. 하얀 색에 푸른 불빛이 불규칙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얼핏보면 마치 시계같았다.

"그나저나 이 리미터인지 하는 건 더 세지는것도 아니고 약해지는 거라며! 나 같으면 증폭기같은 거 만들어달라고 했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오빠는 겁이 많아서 공격도 잘 못하는데, 이것 때문에 더 제약걸리는 것 아냐?"

"혜나야, 제이가 열심히 만들어준 건데 그러면 어떡해."

바다가 혜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며시 나무랐다. 혜나는 입 안으로 공기를 집어넣어 입술을 내밀었다. 볼이 빵빵하게 차오른 것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다.

"하지만 사실인걸!"

"됐어 혜나야. 도착했으니까 그만하자..."

나가가 선 곳 뒤로 말끔하게 닦인 유리창이 보였다. 얼굴이 비칠정도로 깨끗하단 것은 도로 너머에 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제법 신경써서 손질한 듯 했다. 간판 글씨완 달리, 그 안으로는 꽃집이라도 온 것 마냥 수많은 식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물들은 더 안에 위치한 듯 했다.

바다는 쓰고 있던 안경을 살며시 들어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상점 안을 빠르게 훑어보며 보이는 곳만의 구조를 기억했다.


"근데 언니."

혜나가 높다란 바다를 올려다보았다. 바다가 고개를 살짝 까닥이자 그녀가 물었다.

"우리 너무 미성년자같지 않아? 진짜 펫샵이라면 우리랑 거래 안 해줄 것 같은데."

그래. 그건 그렇지. 바다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나는 열여덟에 하나는 열일곱, 나머지 하나는 초등학생. 이런 무리에게 영물이며 혼혈을 덥석덥석 안겨줄 리가 있나. 수상해서라도 무조건 안 들키려 하겠지. 무언가 이상해서라도 꽁꽁 숨기겠지.

"근신 풀렸으면 사사 선배랑 같이 오는 건데. 그래도 어른이 있으면 괜찮잖아요. 근데 선배 근신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서."

무슨 잘못을 했길래.
바다는 나가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 고개돌렸다. 일부러는 아니었으나, 고개 돌린 곳은 아까 전의 애완동물 샵이었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하긴 했는데, 하는 수 없죠. 최대한 어른스럽게 연기하면서 해내야해요. 요즘 스푼이 많이 바빠서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는 생각을 못 했나봐요. 그냥 남은 업무 중에서 제일 쉬워 보이는 걸 준다고 했는데, 하필 미성년자들한테 오게 된 것 같고. 일단은 어떻게든 성공해가야죠."

바다는 쓰고 있던 안경을 한 손으로 벗어내렸다. 가려졌던 동그란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어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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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5-11 15:22 | 조회 : 907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어제 넘 피곤해서 일찍 잤어요...그러고 아침에 일어나서 까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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