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나이트: 고뇌의 움직임

".........."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솜털처럼 새하얀 무언가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한참을 보고 나서야 바다는 그것이 천장임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왼쪽에 놓인 작은 책상을 보았다. 먼지만 쌓인 빈 꽃병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오른쪽을 비스듬히 바라보았다. 창문 바깥으로 자동차들의 소음이 들렸다.

몸을 일으키자 곳곳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특히 목 뒷부분이 가시에 찔린 듯 따끔한 것이, 바다는 무심코 상처를 매만졌다. 피가 굳어 딱지가 앉아있었다. 어찌나 세게 주사기를 날려댔으면 아직도 피가 나는 건지. 바다는 메두사의 얼굴을 그리며 미간을 좁혔다.

바다는 손목에 달린 링거를 바라보았다. 5개는 족히 되어보였다.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바다는 입원실 내부로 시선을 옮겼다. 빠르게 돌린 고개에 잠시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 앞이 검게 흐리더니 이내 괜찮아지자 눈을 떴다.

'1인실?'

침대는 바다가 누워있는 곳 하나뿐이었다. 그 오른쪽으로 창문이 하나 나 있었고, 앞의 작은 티비가 하나, 왼쪽의 화장실, 그리고 출입문.
바다는 바깥 상황을 확인할 겸 나가려다가 곧바로 포기했다. 한쪽 발을 내딛는 순간 아직 걸을 때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근육에 힘이 쭉 빠져, 지금 걸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대신 바다는 새하얀 이불을 턲끝까지 올리고 가만히 누워있기로 했다.


쿵.
큰 노크소리가 한 번 들렸다. 들어오란 바다의 대답도 없었는데 문이 벌컥 열리었다.

"이쯤이면 깨있을 것 같았지."

팔짱을 낀 다나가 바다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바다 너 3일동안 잠들어 있었다."

".....3일."

바다는 살며시 중얼거렸다. 잠깐 잔 줄 알았는데, 3일이라니. 이렇게 오랫도록 정신이 들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다나의 뒤로 귀능이 함께 걸어들어왔다. 그는 무언가를 받아적기 위한 종이와 펜을 바리바리 들고 있었다.
다나는 하나 남은 의자를 끌고 와 털썩 주저앉았다.

"몸은 좀 어때."

"전체적으로 힘이 없긴 하지만 괜찮아요. 특히 아픈 곳은 없어요."

바다는 시선을 비스듬히 하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소나기가 내리듯 가파르게 머리칼이 쏟아졌다. 생기가 사라진 표정은 딱딱히 굳어있었다. 평소같이 웃을 힘조차 없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뭐야?"

바다는 말없이 끊겨버린 기억을 더듬어올라갔다. 키네시스에게 폭탄같은 발언을 한 번 하곤, 정신을 잃다시피 가물한 눈을 겨우 떴을 때였다. 다급하게 무어라 소리치며 뛰어오던 나가의 형체가 선했다.

"나가가 달려오는 모습이요."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괴물의 뱃속에서 꺼내진 후였다. 오랜 숨을 참다 한번에 토해내는 것처럼, 온 몸의 긴장이 풀렸었다. 그 서늘하고도 개운하던 느낌을 아직도 기억했다.
바다는 나지막히 말했다.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래. 너 다쳤다고 하얀마법사 쫓아가지도 못했다더라."

"......."

대답없는 나가에게 귀능이 물었다.

"그럼 잡혀가기 전의 일은 어땠어요?"

이번에 바다는 딱히 망설이지 않았다. 도리어 기다렸단 듯 말을 쏟아냈다.

"노란색 파마를 한 여자와 오르카가 있었어요. 특기를 못 쓰게 하는 약물이라면서 제 뒷목에 날렸고, 비틀거리고 있을 때,"

말을 멈추곤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양이를 들이밀었어요. 그리고 괴물이 되어 커다란 입으로 절 삼켰어요."

"얘기 전해들었어. 고양이의 형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울음소리가 똑같았다고 했으니까. 널 삼켰던 그 사체는 현재 감식반이 조사 중이다."

다나는 위로하듯 말을 꺼냈다. 혹여나 믿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하던 마음은 녹아 없어졌다.

귀능은 잠시 망설이다 다나의 귓가로 입을 가져갔다. 그리곤 한쪽 손으로 가리고 그녀에게 소근거렸다.

'역시 약은 예전에 송하가 빼돌린 거겠죠.'

'그렇지. 그 약물은 영정님 작품이니까.'

하루종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해서 만들어낸, 영정님 작품.
다나는 깔아내렸던 눈빛을 들었다.

"어쨌든 바다."

"네?"

환자복을 유심히 뜯어보던 바다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작은 손가락으로 꼼지락대며 옷자락을 등 뒤로 숨겼다. 다나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일단 감식반의 결과로는, 그 괴물은 배에 넣어둔 생물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대. 그래서 네가 이렇게 힘이 없는거고. 아마 며칠 더 쉬면 괜찮아질 것,"

똑. 똑. 똑.

정중한 노크소리가 다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파도처럼 갑자기 밀려온 침묵이 숨 막힐 듯 세 사람을 가로막았다. 시선은 쏟아질 듯 문 앞으로 모였다. 마찬가지로 들어오란 말도 없었는데 문은 열렸다.


얼굴을 전부 가리고도 남는 검은색 베일. 당장이라도 장송곡을 불러야할 것 같은 검은색 긴 치마.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또렷한 호박색 눈동자. 바다는 그 색감을 하나하나 눈 속에 녹여 담았다. 그녀는 기껏 병싱에 들어와놓고, 멀뚱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귀능과 다나가 더 난리를 지겼다.

"영정님?"

"여긴 무슨 일로,"

어찌나 다급히 일어났는지 다나가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귀능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영정은 빠르게 손사레를 치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긴장해요. 그냥 산책하는 김에 나온거라 큰 이유는 없어요. 그냥."

영정은 단 한번도 바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몸만 다나와 귀능에게 향하며 대답을 이어갔다.

"우리 회사 직원이 다쳤다길래. 병문안을 온 것 뿐이에요."

".....감사합니다."

바다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이 영정, 스푼을 만든 사장님. 얼굴 한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실험실에 틀어박힌 사장이, 직원 하나 다쳤다고 병문안을 온다니. 주아 선배 죽었을 땐 머리카락 한 올도 찾아볼 수 없던 사람.


"미안한데, 다나. 바다와 잠시 둘이서 할말이 있거든요? 잠깐 나가줄래요."

이제 목적이 나오겠구나. 바다는 괜히 긴장되는 손을 크게 펼쳤다. 느릿하게 이불로 가져다대어 살짝 맺힌 땀방울을 몰래 닦았다. 영정이 계속 보고 있어서 딱히 소용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문을 닫자마자 귀능은 또다시 작게 물었다.

'서장님. 그러고보면 1인실을 내주겠다 얘기한 것도 영정님이셨잖아요. 무슨 속셈이 있는걸까요?'

'영정님이 틀리신 적은 한번도 없으셨어. 항상 몇 번은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분이시니까. 하지만,'

다나는 입을 막았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발설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의 신조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이 안 좋아.'



"음. 이제 좀 자리가 마련됐네요."

귀능과 다나가 나가고 나자, 영정은 곧바로 등을 세웠다.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목까지 돌리고 난 그녀는 한걸음 더 다가왔다. 바다에게로 가느다란 팔을 뻗자 바다는 잠시 움찔했다. 어디에 손을 대려는 것인지 머리가 복잡할 때, 영정의 손가락이 바다의 눈매를 어루만졌다. 알싸한 알코올냄새가 나는 손은 볼을 타고 내려와 머리카락을 스치고 사라졌다.

"마거리트에요. 오는 길에 예쁘길래 사왔는데."

영정은 노란 꽃 몇 송이를 꽃병에 심었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꽃 모양이었다. 흙까지 비닐봉지에 담아 가져온 것이, 충동적으로 샀다기엔 만반의 준비를 한 듯 했다. 그녀는 꽃병에 담긴 흙을 몇 번 두드려 눌렀다. 벽의 그늘에 가려져 절반 정도는 어둡게 보였다.

"물 많이 줘야한다더라고요. 퇴원하기 전까지는 시간 날때마다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영정은 바다를 보고 웃었다. 베일에 가려 웃음이 희미했다. 바다는 미소를 자세히 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그에 영정은 검은 베일을 말끔하게 걷었다. 그 뒤로 매끈한 피부가 드러났다. 얼핏 보아도, 많이 양보해도 30대 중반.


"어."

바다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낸 입을 틀어막았다. 영정이 왜 그러냔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조심스레 다시 말했다.

"....연세가 많으실 줄 알았어요. 사장님이라고 했으니까."

"생각보다 젊죠? 조금 더 젊었을 땐 배우상이라고들 했어요. 그래서 내가 포크 엔터테인먼트를 잘 안 가, 가면 유다가 계속 배우하라고 그러거든요."

"........."

"왜 그런 표정이에요. 설마 믿는 거 아니죠?"

바다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농담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그런 말을 해대니 당연히 진담인가 싶었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얼술을 식히고 싶었지만, 손마저도 뜨거워 별 소용이 없었다. 눈치좋게 영정이 창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그녀는 창가에 한쪽 팔을 기대었다.

"바다를 납치한 건 나이프의 오르카와 메두사라는 인물이에요. 오르카는 한 번 만나봐서 알고 있다 들었어요."

바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정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메두사. 그 능글맞은 웃음을 짓던 여자가 메두사였구나.

"그리고 지하철에서 옆에 있던 사람은 하얀마법사고요."

"네."

바다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스푼이 그간 쫓던 것은 나이프였고, 바다를 포함한 키네시스 일행이 쫓던 것은 하얀마법사였다. 하지만 이 기회에 그 둘이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이 바다 자신을 통해 드러났으니. 부족한 정보를 서로가 서로에게서 얻어내야 한다. 그것은 의도했던 단순한 협력관계가 아닌, 본격적인 연대가 시작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바다."

침대에 걸터앉은 바다의 눈빛에 푸르른 하늘이 담겼다. 햇빛에 반사되어 유리조각처럼 반짝이는 흰 빛이 아른거렸다. 흰 옷을 입은 바다의 피부가 눈밭처럼 더 하얗게 보였다. 갈라진 입술엔 피가 맺혀있었다.

영정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잠시 응시하며 잠시 망설였다. 한숨을 쉬기도 하고, 그 은은한 갈색빛 머리칼을 쓸어넘기기도 하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수십번 생각해온 대로, 그녀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도와줘요. 바다 양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


콜록.
유나는 코끝까지 차오른 큼지막한 마스크를 한 번 정리했다. 코를 한 번 훌쩍여도 감기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이 한여름에 감기라니. 여름엔 개도 안 걸린댔는데.

'약만 사서 가야겠다.'

유나는 신호등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후끈하게 열이 오른 볼은 한여름 열기로 달아올라있었다.

지하철 테러 사건의 뒷처리를 하느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의 특기자도 몇몇 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엔 키네시스와 나가가 있을 터였다. 바다를 구해 온 두 사람이었으니, 상황을 더 상세히 재연해줄 수 있을 거란 이유였다. 굳이 그것 때문은 아니어도 둘은 스푼의 뛰어난 특기자니까.

'칫. 나도 할 수 있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유나의 입이 삐죽 나왔다. 특기를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유나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젠 어느 정도 제어할 순 있다고 반박했지만, 서툰 것도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유나는 그저 여느 때처럼 키네시스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야옹.

아기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약국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손 하나 겨우 들어갈 골목에서 희미하게 꺼질 듯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유나는 망설이다 이내 그 안을 바라보았다. 새카맣게 때가 탄 건지, 원래 털이 그런 색인지, 검고 작은 고양이가 큰 눈망울을 깜빡이며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는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비치다 곧바로 얼굴을 굳혔다.

"미안하지만 널 데려가면 언니한테 죽을거야. 다나 언니 털 알레르기 있거든."

유나는 차갑게 뒤를 돌아섰다.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뒷통수를 찔러댔지만, 불같이 화를 낼 다나만 생각하면 걸음은 싸늘해졌다. 유나는 굳은 발걸음으로 약국에 들어섰다. 하지만 나와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을 보자, 그만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왜 자꾸 울어. 엄마를 잃어버렸어?"

유나가 속삭이듯 작게 물었다. 묻는다고 대답을 할 것은 아니겠지만, 고양이는 마치 알아들었단 듯 두 눈을 깜빡였다. 그제서야 목에 달린 커다란 리본에 시선이 향했다. 정성스레 이름까지 적혀있었다.

'주인이 있었나보네. 그동안만 맡아주면 괜찮지 않을까? 정 안되면 제이네 아지트에서 키워도 될 것 같고.....'

유나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아끌며 이름을 읽었다.

"넬라미디...뭐가 이렇게 길어. 네로야, 같이 가자."

처량한 모습의 고양이가 한 번 더 울며 품에 안겼다. 거친 털끝이 볼을 쓰다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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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왜 빈 손이야?"

하얀마법사가 손에 든 병을 딱딱하게 내려놓았다.

"실패했으니까요."

하얀 실험대 위에 푸른 색 약물이 쏟아져내렸다. 백모래는 창틀에 한쪽 팔을 기대어 비스듬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 속에는 언제나처럼 여유가 있었다.

"더 밀어붙였으면 가능했을 거 아냐. 근처에 나도 있었는데, 불렀으면 갔어. 성공했을 걸. 아마."

"당신은 그게 진짜 목적이 아니잖습니까."

"들켰네. 내 사랑 얼굴을 못 본지 꽤 된 것 같아서. 가끔은 훔쳐보는 거 말고 대면도 하고 싶거든."

백모래는 머리를 몇 번 쓸어넘겼다. 오후의 햇빛관 달리 반짝이는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하지만 하얀 마법사의 색감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었다. 빛을 빚어내어 만든 사람, 그게 하얀 마법사나 다름없다고. 백모래는 항상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저번에도 몇 번 설명했습니다만, 특기는 개인의 기분에 크게 좌우됩니다. 억지로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능력을 확실히 조절하지 못하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그렇게 말하면 좀 상처인데. 근데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백모래는 가슴을 움켜쥐던 손을 내려놓았다. 입구 밖에서 덜컹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마법사는 그곳을 한 번 바라보곤 백모래에게 눈을 맞췄다.

"왜 키네시스였어?"

대답은 망설임 없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처음으로 본, 그리고 가장 강한 특기자였기 때문입니다."

"나가도 강하지 않아?"

"얽매인 게 너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게 많으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게 이치입니다. 키네시스가 최강이라 생각했던 이유는, 그런 얽매임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바다는?"

약물을 닦아내던 손이 멈추었다. 짙고 깊은 푸른 색 눈동자가 가만히 허공을 짚었다. 그는 백모래를 돌아보았다. 백모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왜 인질을 바다로 한 거야?"

"키네시스와 가까운 인물이면서 스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키네시스의 영입과 동시에 스푼에 경각심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꼬리를 말고 도망쳐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으니 긴장하라는 의미였죠."

그가 말을 이었다.

"제이라는 자도 있었지만, 결벽증 때문인지 스푼에 출근하진 않더군요. 그래서 연관성이 덜 했습니다."

백모래가 안대를 슬그머니 내렸다. 노란 금빛 눈동자가 하얀 마법사를 훑었다.
하얀 마법사가 한숨을 쉬며 뒤돌아보았다.

"할 말 있으면 지금 하십시오. 바다에게 계속 관심을 주는 이유가 뭡니까?"

백모래가 냉큼 대답했다.

"그래. 내가 며칠 전에 산책 겸 스푼 주변을 어슬렁거렸거든."

"우연한 만남을 가지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걸었겠죠."

"그것도 그렇지만, 오르카가 전해준 얘기가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오르카 특기라면 보스도 알지? 그걸로 바다도 엄청 당했다던데 아픈 소리 한번도 안냈대. 그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일도 아니지요."

백모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뭘 모르시네' 라 중얼거리기까지 하자, 하얀 마법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기에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는 것인가.

"어쨌든 그 날 듄이랑 바다를 만났는데, 보스는 모르고 있었지? 아무래도 키네시스보단 바다를 영입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뭘 말입니까?"

"하도 꽁꽁 숨겨둬서 말이야. 스쳐 지나가면 잘 못 볼수도 있지."

백모래가 바다를 처음 만났던 날처럼 서늘하게 보았다. 차가운 눈빛이 그를 한겹씩 베어내는 듯 했다. 달밤의 그림자가 미동도 없이 길게 그려졌다. 백모래는 미소를 지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걔 혼혈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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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5-04 00:00 | 조회 : 913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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