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해의 시작(1)

지금쯤이면 신혼 부부의 야릇한 분위기로 가득해야 할 신방.주위에는 황후에게서도 나는 시원하면서도 달달한 박하향이 났으며 분위기 있는 양초들이 반짝 거렸다.

그리고 침대 앞 작은 탁자에는 얼음 같다고 생각 될 정도로 차가운 황후가 앉아있었다.그 모습이 어찌나 사무적이던지 이게 신방이 맞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자신보다 더 차가운 사람이 존재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황제는 조용히 황후가 앉아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앙 다물려있는 입술에 찌푸려진 미간. 꽤 깊이 빠져들어 자신이 온 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조심스럽게 탁자를 두드리자 그제서야 '아..'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했다.자신에게 인사를 하려고 일어서는 것을 저지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 마주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무슨 일이지 황후."

서로의 이익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게 된 그들은 이번 만남이 결혼식 까지 합해 3번째였다.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는지 황제는 예측 할 수 조차 없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황후는 대답 대신 자신의 앞에 종이를 밀어 주었다.

"읽어 보십시오."

황후는 종이를 밀어 보였다. 그것은 계약서였다. 계약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서로가 정부, 즉 애인을 두어도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간섭하지 말 것.간단한 내용이었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읽자 마자 어이가 없었다.설마 저 성격에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은 단 1퍼센트도 없었으나 이렇게도 당황스러운 제안이라니.필시 이 계약서를 먼저 제안했다는 것은 황후에게 숨겨진 애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뒤통수를 세게 가격 당한 느낌이었다.

"싸인 하십시오, 폐하."

그리고 싸인을 하라고 만년필을 가져다 주며 재촉까지 한다.황제는 만년필을 잡아들었다.어차피 일일히 자신에게 신경쓰는 여자 보다는 무관심한게 더 편했다. 그리고 제국법상 황제와 황후 모두 정부를 둘 수 있으니 법에 위반 될 일 도 없었다.황제는 수려한 글씨체로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그들의 계약이 성립 된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알지 못했다. 이 계약서에 싸인을 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란 것을.






*





현 고르드에베 제국은 이 대륙에서 유일한 제국이자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제국 건국 때부터 황실에 충성을 다한 유일한 공작가 줄라이엣 있었기 때문이다. 줄라이엣 공작가는 기사가문으로 항상 뛰어난 기사들을 배출해냈으며,역대 공작들 모두가 검술의 최상위 단계인 오러 마스터였기에 항상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왕국이었던 고르드에베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줄라이엣 공작가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 줄라이엣 공작에게는 세명의 자식들이 있었다. 후계자 자리를 단단히 하고 있는 장남 루시우스와 검술 천재라고 불리우는 블로디 그리고 얼음 공녀 그레헨까지, 어디에 내놔도 빠질 것 없이 완벽한 자식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오러 마스터 보다 한 단계는 낮은 소드 마스터였다.

하지만 세간에 소드마스터라고 알려진 것은 두 아들들 뿐 공작은 자신의 딸이 소드마스터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이유는 단 하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에게 기사의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렇게 어릴적 부터 검에는 관심을 갖게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썼지만 주위의 환경이 그런지라, 어릴적 부터 그레헨의 장난감은 예쁜 인형이 아닌 날카로운 검이었다.공작은 밝고 순수하게 웃던 그레헨이 지금의 얼음공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것도 다 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기사가 되겠다고 울고 불고 매달리던 딸에게 단호하게 안된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포기할 공녀가 아니었다. 그레헨은 단식 투쟁을 하면서 까지 기사가 되려고 했다. 자식 이길 부모 없다고 했는가. 결국 딸이 굶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공작은 오러마스터가 된다면 기사가 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공작은 아직 어린 딸이 자신도 20대에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 될 수 있었던 오러마스터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흡족해 했다.그러나, 천재가 노력까지 한다면 못 이루어 낼 게 어디 있겠는가. 그레헨은 단 2년 만에 오러마스터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 이제 기사가 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그레헨은 검에 일렁이는 푸른빛의 오러를 보여주며 말했다. 공작은 당황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서든 기사를 못하게 막아야만 한다.그 때 공작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공작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며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

"이런, 그레헨 아직 오러가 불안정 하구나."

사실이었다. 안정적인 오러는 초록빛이 감돌아야 한다. 자칫 잘못해서 불안정한 오러를 쓰면 몸이 상할 수도 있었다.공작의 말에 그레헨은 시무룩해 졌다.

"하지만, 너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겠다."

"무엇입니까?"

"황제 폐하와 결혼을 하거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뜬금없는 공작의 결혼 제안에 격양 된 목소리에 공작은 애써 눈을 피하면 말을 이었다.

"어차피 네가 기사가 된다면 결혼은 커녕 연애도 하지 않겠지."

그말에 그레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기사가 된다며 오직 무술에만 전념할 생각이었으니까.

"이 아비는 내 딸의 결혼식에서 손을 잡고 입장하는게 평생 소원이다."

공작은 그렁그렁항 눈물을 눈에 가득 채운채 슬픈 표정으로 그레헨에게 말했다. 그 모습에 그레헨의 무표정한 얼굴이 꿈틀거렸다.마음이 동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그레헨은 조금 누그러진 채 공작에게 말했다.

"황제 폐하와 결혼을 한다면 궁에 갇혀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기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1년, 딱 1년 동안만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면, 그 후에는 이 아비가 어떻게해서는 이혼 시켜주겠다. 그 후에는 기사가 되어라."

공작에 말에 그레헨은 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그 정도면 파격적인 제안이었기 때문이었다.공작은 웃는 그레헨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을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며,그리고 공작에게는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다.황제폐하를 통해 그레헨의 얼음이 녹여질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원래 비슷한 사람끼리 끌린다고 하지 않던가.






*





아버지와 이야기를 끝낸 그레헨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방에 가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가족들은 알 수 있었다.복도를 걸어가고 있자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는 둘째 오빠 블로디.그는 오랜만에 보는 동생의 환한 표정에 장난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 우리 동생이 황후마마가 되는건가? 좋겠다 동생."

때 마침 공작에게 동생이 황제와 결혼 할 것이라는 소식 듣고 온 블로디에게는 그 사실이 그레헨을 놀리기 딱 좋았다.더욱 깐죽거리는 표정과 제스처로 놀리고 있는 블로디에게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지긋이 쳐다보는 그레헨이 얼굴하나 변하지 않고 육두문자를 뱉어냈다.

"xxx xx 입을 꼬매줄까?"

그레헨은 순간적으로 검을 뽑아들고 싶은 것을 참고 한 쪽 입꼬리를 말아올려 악독한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오러마스터나 되지 그래? 여동생 보다 못해서야."

"허?참."

웃는 것은 잘 못하면서 사람 짜증나는 표정은 참 잘하네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있던 블로디를 지나쳐 가려는 그레헨에게 블로디가 말했다.

"나한테 그러면 안될텐데?"

"무슨 소리지?"

"황궁에 있으면 검술 훈련은 당연히 못할테고 그렇다면 아직 불안정한 오러가 더 약해질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내 친구 중에 아주 훌륭한 오러마스터가 있어서 말이야. 동생에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도와주려고 했는데.어쩔 수 없지 뭐."

어깨를 으쓱여 가며 말한 말은 동생에게 꽤 효과가 있었다.

"원하는게 뭐야."

블로디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그레헨은 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현실적으로 블로디의 말은 사실이니까.자신에게는 좋은 스승이 필요했다.

"오라버니라고 불러봐. 오라버니."

내심 말하면서도 웃긴 블로디는 내내 키킥 거리며 동생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레헨이 말한다면 웃음을 물론 감동까지 느껴질것이 분명했다.

"........오라...버니...."

개미만한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는 모습이 꽤 귀여보이자 블로디는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호탕하게 웃었다.그런 블로디의 웃음소리는 듣기도 싫은지 바로 말을 이어 나가는 그레헨.

"근데, 대체 황궁에 어떻게 들여올 것이지?"

다시 무표정으로 웃는 동생에게 블로디는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가짜 애인인 척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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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08 23:21 | 조회 : 1,016 목록
작가의 말
chole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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