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7화(주의)

레냐가 한 말에 뤼양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의 '애인'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들어줄 수 없어."


"제발요.. 부탁이예요. 안그러면 저 혼난단 말이에요.."


눈물을 보이면서까지 호소하자 뤼양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꽤나 머리 아픈 상황이다.


"그럼 하는 척만 하면 안될까?"


"...소용없어요.. 어디서 감시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하아.."


레냐는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뤼양이 레냐를 안지 않는다면 결국 레냐는 예전처럼 지하실로 내려가 벌을 받아야 했다.


"그럼 딱 한번으로 끝내자. 내가 이런 짓 한거 알면 날 혼낼 사람이 있거든."


뤼양은 아까 전 앉아있을 때 보았던 테이블 위의 바구니를 가지고 다시 레냐의 앞에 섰다. 대체 누구의 취향인지 몰라도 적나라한 핑크빛의 젤과 가지각색의 콘돔들을 휙휙 던지며 제일 무난한 것을 꺼내들었다.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 네가 하는게 더 나을까?"


"..상관 없어요."


레냐는 가운을 묶었던 허리끈의 매듭을 풀렀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관능적인 새하얀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뤼양은 그런 레냐의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자잘한 흉터와 허벅지 위에 찍혀있는 낙인이 레냐가 그동안 무슨 일을 겪어왔는지 보여주었다.


"누워봐. 금방 끝내줄게."


뤼양은 손에 젤을 한가득 짜냈다. 손바닥의 열과 반응하자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것이 별로 기분좋지는 않았다.


레냐는 침대에 엎드렸다. 차라리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편이 더 나았다.


"으흣.."


끈적한 젤이 한가득 묻은 손가락이 레냐의 에널 주위를 쓸었다. 고작 이주 쉬었다고 온 몸이 경직되어 쉽게 열리지 않을것 같았다.


"미안. 내가 노력해볼게."


뤼양은 망설임 없이 손가락 두개를 에널에 쑥, 집어넣었다. 레냐가 놀라 높은 교성을 질렀지만 뤼양은 멈추지 않고 에널 안을 거칠게 휘저었다.


"하아, 하악..."


이제는 눈물도 매마른 것인지, 전과는 다른 유형의 손님이어서인지 레냐는 이상하리만큼 지금의 상황이 무섭지 않았다. 뤼양, 그의 손길은 거칠긴 해도 어딘가 다정함이 묻어났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쾌감과 전율을 느끼며 레냐는 허리를 파르르 떨었다. 뤼양도 그저 똑같은 손님일 뿐인데 왜 자신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레냐는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제 꺼낸 것인지 레냐의 하얀 엉덩이 위에 툭 하고 딱딱한 것이 닿았다. 레냐는 숨을 한번 삼키고 곧 제 안을 헤집고 들어올 것을 얌전히 기다렸다.


"..후우.."


호흡을 내뱉으며 뤼양은 어느세 커져버린 페니스에 콘돔을 씌웠다. 괜히 그냥 했다가 레냐가 제 아이라도 가져버리면 큰일 날테니.


"넣을까?"


허리 숙여 레냐에게 조심히 물었다. 처음 들어보는 물음에 레냐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레냐는 말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베개 속에 얼굴을 묻었다.


"...미안."


뤼양의 짧은 사과와 함께 레냐의 에널 안으로 제법 굵직한 것이 천천히 살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안의 것을 받을 때처럼 아프고 버거운 느낌에 레냐는 가늘게 떨리는 신음을 흘렸다.


"아학...! ..으, 읏..."


터져나온 신음을 참지 않으며 레냐는 이성을 놓고 뤼양에게 매달렸다. 레냐에게 더이상 희망같은 것은 없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그 앞에 주어진 현실이 너무나 냉혹했다.


"아흑, 흐, 아..! 조...조앗...으흑..."


고개를 살짝 돌려 레냐는 뤼양을 보았다. 그의 표정에 죄책감이 묻어났지만 레냐는 그런 걸 세세하게 볼 틈이 없었다.


"..하아..."


짧게 탄식하며 뤼양은 요염한 자태를 보이는 레냐를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입술을 부딪혔다.


레냐의 허리를 감싸안고 침대와 맞닿아있던 상체를 들어올려 품에 끌어안은 뤼양은 더욱 거칠게 박아넣었다.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비집고 나왔다. 이미 레냐는 인사불성으로 뤼양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레냐는 더욱 애절한 표정으로 뤼양을 바라보았다.


"하윽, 좀...더... 깊게 넣어줘요..흑...으읏..."


레냐는 그 어느때보다 자신이 싫어졌다. 점점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져 가는것이, 자신의 몸이 이러한 것에 달아오르고 기분좋아지는 것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이안이 제게 했던 말처럼, 레냐는 자신이 너무나 싫어졌다.





옷정리를 하며 뤼양은 침대에 엎드려 축 늘어져 있는 레냐를 살폈다. 비쩍 마른 새하얀 몸이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걸 보면 숨은 쉬는듯 했다.


'그녀석이 왜 화를 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네.'


허리까지만 덮었던 얇팍한 이불을 끌어 레냐의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레냐는 그의 손길에 흠칫 놀라며 돌아가려는 것인지 몸을 돌려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런 미약한 시도는 곧바로 제지당해 그대로 레냐를 침대에 눕혀버렸다.


"좀 더 쉬어. 내가 늦게 나가면 되니까."


"...그런 배려는 필요 없어요. 당신이 오해받을거예요..."


"뭐, 관음에 취미가 있다고 하지 뭐."


뤼양은 의자를 끌어다 침대 옆에 놓고 앉았다. 레냐는 그런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너 혹시 말야.."


조용한 와중에 뤼양이 말을 꺼냈다. 레냐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겠지 뭐."


"..."


말을 하다 만 뤼양에 레냐는 그의 뒷말이 궁금했지만 점점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요즘들어 잠이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


레냐는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레냐는 자는 와중에 뤼양이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너무나 졸려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ㅡㅡㅡㅡㅡ


뤼양은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제 앞에 놓인 난자된 시체들을 발로 밀어 치우며 칼의 피를 털어내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뤼양의 비서이자 오른팔 같은 존재였다.


"톈, 좀 살살 하라니까. 이러니까 침대에서도 난폭하지.."


"..침대에서 난폭한 건 내가 아니라 형일텐데."


뤼양과 같은 성을 쓰며 유일하게 그의 총애를 받는 그는 리뤼톈, 뤼양과 의형제를 맺은 '혈연이 아닌'사이다.


단도를 잘 갈마무리해 커버에 끼워넣고 뤼톈은 금고로 보이는 것에 다가갔다. 꽤 높은 하이힐을 신고도 마치 날아다니듯 걷는 모습이 많이 익숙해보였다.


"그애는 어때? 설마 손 댄건 아니지?"


"대버렸는데..."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금고에 손을 뻗던 뤼톈이 멈칫 하고 쓰레기를 보는듯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세상에, 저런 쓰레기가 또 있을까. 하고.


"그래도 콘돔도 제대로 꼈고 내가 하자고 한게 아니었는ㄷ.."


"야이 미친놈아... 아무리 그래도 '유일한'친구의 애인을..."


"나 친구 많거든!"


뤼양은 답지 않게 울먹이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조용히 해 멍청아. 지금 금고 따고 있잖아."


뤼톈은 다시 금고에 집중하며 귀를 금고 문에 대었다. 열심히 돌려가며 소리에 집중하니 안에서 달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허술해서야.. 어떻게 그동안 버텨온거지?"


뤼톈은 궁시렁거리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 옆에 펼쳐진 책장들엔 오랜 옛날, 아주 오래전 전쟁때부터 쓰여진 장부들이 가득했다.


장부의 이름표에는 년도가 주욱 나열되어 있었는데, 제일 끝부분에 현재 므라크의 장부가 꽂혀 있었다.


"1994년 부터... 2011년까지...흠... 뭐야, 없는데?"


고개만 빼꼼 내밀고 뤼톈은 인상을 찌푸리며 뤼양을 보았다.


"없어? 그럴리가, 여기에 있다고 들었..."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가지고 있어."


뤼양은 품에 숨겨두었던 권총을 목소리를 향해 빼들었다. 워낙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 눈치채지 못한 것이 뤼양에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네가 그 데니스구나?"


"정말 미안한데 나 중국어 잘 못해. 외국어엔 소질없거든."


"장부 넘겨."


아까와는 다르게 흉흉한 눈빛을 보이며 뤼양은 데니스와 그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장부 4권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어느세 다가온 뤼톈도 다시 단도를 꺼내들어 데니스에게 겨누었다.


"...주려고 가져온거야. 성질급하긴."


데니스는 검은색 장부 두 권을 뤼양에게 건냈다. 하지만 나머지 두권은 여전히 데니스에게 있었다.


"그건 왜 안 주는거지?"


"여기엔 내 이름이랑...레.. 아무튼. 나도 보험이란게 필요하잖아?"


데니스는 레냐를 떠올렸다. 이곳엔 레냐의 이름도 여럿 적혀있었다.


"...."


"걱정 마, 그 두권이면 뒷세계 절반 이상은 없엘 수 있을테니."


"...일단은 믿도록 하지. 집행은 4주 뒤다."


데니스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 4주 안에 레냐를 데리고 도망치면 되는 것이었다.


"미리 시선은 끌어놨어. 나가는데 문제되는건 없을거야."


"..."


뤼양은 장부를 뤼톈에게 건냈다. 단도를 집어넣고 장부를 받아든 그는 다급하게 움직였다.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뤼양도 그를 뒤따라 밖으로 나갔다. 데니스는 금고 문을 활짝 열어 그 안의 장부들을 모두 책장에서 빼내었다.


금고 안이 엉망이 되었을 때 즈음, 데니스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조직원들이 다급하게 왔을 때, 이미 그들은 떠난 뒤였다.


이제 데니스는 이 모든 것을 위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조직 내에 스파이가 있다. 모두 조사에 임하도록."


ㅡㅡㅡㅡㅡ


레냐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 앞엔 의자 등받이에 기대 잠든 데니스가 있었다. 데니스가 레냐의 방으로 움겨준 것인지 제 몸에 약간씩 미약하게 그의 향이 묻어난 듯 했다.


그가 깨지 않게 레냐는 조심히 몸을 돌렸다. 데니스가 자는 모습은 왠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거의 오랜만에 눕는 침대는 푹신했다. 레냐에게 침대는 공포스럽고 소름끼치는 장소인 탓에 눕기가 꺼려졌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뒤척이다가 그만 침대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레냐는 화들짝 놀라며 데니스를 보았지만 이미 그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미안.."


레냐는 자신이 깨운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그에게 사과했다. 데니스는 못알아들은 것인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잘 잤어?"


"응. 혹시 나 데니스가 데려다준거야?"


"응."


"그렇구나.."


더이상 할 말이 없는지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데니스는 자켓의 주머니에서 흰 약봉투를 꺼내 베드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거.. 필요는 없겠지만 가지고 있어. 혹시 모르니까."


그가 건넨 약은 아이를 없에는 약이었다. 먹고 나면 복부를 찢을듯한 고통과 불태우는것 같은 뜨거운 아픔이 찾아오는, 그 약.


레냐는 순간 2주 전 이안이 떠올랐다. 분명, 기억속에 그때 레냐는 콘돔도 없이 섹스했었다.


'어쩌지..'


"..난 그만 가볼게. 지금 좀 중요한 일이 터졌거든."


데니스는 레냐의 머리를 헝클이며 스다듬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약 봉투를 레냐는 결국 손에 쥐었다.


레냐는 제 손에 쥐어진 약봉투를 보며 손톱을 깨물기도, 이불을 쥐었다 펴기도 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레냐는 기억을 더듬었다.


이안과 하기 전에는 거의 콘돔을 썼었고 안에 사정당해도 바로 다 닦아냈으니 결국 레냐의 안에 들어앉을 아이는 이안의 아이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수차례 약으로 죄책감 없이 아이들을 떼내었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이가 있으면... 날 봐주지 않을까.."


비쩍 마른 제 복부를 손으로 스다듬으며 레냐는 약을 가지고 욕실로 향했다. 약을 뜯어 뽀얀 알약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렸다.


"...괜찮아... 다 괜찮을거야..."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자신의 배를 소중히 매만지며 레냐는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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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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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28 16:59 | 조회 : 429 목록
작가의 말
밍구는 밍구밍구해

레냐 TMI : 순진하고 미련하고 여기저기 잘 휘둘리며 오직 하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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