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날부터 꼬인다(2)

[EBIR]
Evil Babylonia Is Returnning의 줄임말. 간단히 읽으면 이블.
같은 발음을 가진 evil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듯 하다.
정부에 대항하는 유일무이한 반역단체의 이름이며 이와 관련된 말을 언급하는 순간 정부에 불려가 조사받을 위험이 있다.
이블은 각종 폭탄테러, 사이버 테러, 유괴, 강도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공인된 반역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하는 짓이 두서없다'(시민연합 유대표의 말 인용). 대부분의 전문가에 따르면 '그들은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질서를 허물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아, 드디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련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치 고양이가 털을 빳빳하게 세우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듯 말이다. 어린애 혹은 미친 중년 남자의 목소리를 기대(?)했던 세련에게, 20대 초중반 즈음의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당황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련은 곧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목소리와 그 배경에서 들리는 잡음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차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상대는 야외에 나와 있는 것이 확실했다. 만약 장난전화라면 따끔하게 욕을 퍼붓고 끝낼 생각이었지만,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라면 바로 신고할 작정이었다.

"어이, 레드 퀸, 왜 아무 말도 안 해?"

"누.구.세.요."

"아아, 생각보다 어리네? 나는 화이트 비숍. 그냥 비숍이라고 불러도 되고. 본명은 한시현. 지금 스물셋이고 11월 2일생. 더 궁금한 거 있어?"

"당신들 대체 뭐하는 단체에요?"

세련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매섭게 쏘아붙이자 자신을 비숍이라고 지칭하던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동안 세련은 남자의 개인정보-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를 기록했다.

"..어째서 우리를 단체라고 생각한 거지?"

"이상한 코드네임. 그쪽이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자신을 소개할 때 본명이 아니라 닉네임을 먼저 이야기할 리는 없겠죠."

"설마 처음에 내가 '여기는 화이트 비숍'이라고 한 거에서 추리한 거? 진짜 대단하네. 코로나가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니까. 물론 좀 심하게 쌀쌀맞긴 하지만..."

세련이 생각하기에 이 남자는 사기꾼은 아닌 것 같았다. 범죄자도. 물론 본심을 감추고 있는 사이코일수도 있지만. 그냥..정신병원에서 13시간 45분 26초 전에 탈출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세련은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가 전화기에 대고 내뱉은 짧은 문장 때문에.

"크레이지 체스맨."

"..그게 어쨌다는 거죠."

"너, 네티즌 수사대에 소속되어 있지? 우리는 네티즌 수사대의 운영진이나 마찬가지인 크레이지 체스맨이야."

"제가 알기로 크레이지 체스맨은 네티즌 수사대의 구제불능 단체라던데요."

"그건 코로나가 지어낸 말이고. 아, 참. 코로나는 전대 레드 퀸이야. 코로나가 그만두면서 레드 퀸 자리를 너한테 넘긴 거지. 그만둘 때는 대타를 직접 뽑거든?"

"그거, 귀찮을 것 같은데요?"

세련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녀의 귀차니즘은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것이었기에...심지어 작년에는 순전히 귀찮아서 1학기 학급 회장을 기권하기도 했다. 다만 2학기때는 담임이 아예 기권을 못하게 만들어서 학급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음..사실 경찰에서 미스터리한 사건들만 추려서 우리한테 넘기거든? 그러니까 사건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어. 훨씬 덜 귀찮을 거야. 그러니까.."

"미스터리한 사건을 찾아다니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 사건을 해결하는게 귀찮다고요."

"안보와 안전이 보장된 우리나라를 위해서 너의 뇌세포를 조금 더 작동시키는 게 귀찮다니. 그리고 뇌세포는 쓰면 쓸수록 많아지기 때문에 너한테도 이득일걸."

"뭔가 모르시나 본데,"

세련은 막타를 날리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오른쪽 입꼬리를 씨익 들어올리며 빠르게 랩을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학생들이나라를위해가장열심히해야하는것은공부라고생각하는데요저는?솔직히제가지금중3이고지금은11월이니까원서쓰고기말고사마지막내신준비하는데에만해도하루하루가벅차다구요그런데지금저보고각종미스터리한사건들을해결하는데제뇌세포를쓰라는말씀이신거죠?물론각종살인사건과절도사건을해결하는것도재밌겠지만일단제머리는피타고라스의정리와우리나라현대사와태양계여덟개행성의특징에대해서생각하는것만으로도잘돌아가고있는것같으니사양하겠습니다."

“......”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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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13 16:17 | 조회 : 2,453 목록
작가의 말
히에

[대한민국_중고딩의_슬픔]을 읊은 주인공의 랩(?). 다 읽으신 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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