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허송세월을 보냈다.

“하준님!! 하준님..?!!”
“?! 아, 세르게이..”
“하아.. 하준님, 아무리 노크 해도 인기척이 없으셔서 무슨 일 난 줄 알았습니다.”
“아.. 노크했었어..? 미안, 내가 뭐에 집중하면 뭘 잘 못들어... 지금 몇 시지..?”
“16시 입니다.”
“곧 재민이 오겠네.”
“예, 근데 배 안고프십니까..? 또 점심을 안드셨어요..! 이른 저녁이라도 준비 시킬까요?”
“딱히 생각 없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재민과 달리 세르게이는 유별나게 호들갑스럽고..
너무 시끄럽다.!.!

“자꾸 식사를 거르셔서 보스께서 많이 걱정하십니다..”
“아, 미샤 내일이면 오나..?..”
“예, 내일 저녁 도착 예정이십니다.”
“와... 시간 금방가네...”
“하준님! 왜 자꾸 말을 돌리십니까..! 식! 사! 더 이상 거르시면 안된다구요..!!”

하지만 역시 나는 밥보다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알겠어. 이따가, 이따가 이것만 마저 읽고.”
“... 하아.. 이러시면 안되는데.. 허면 보스께는 어떻게 전달을...”

예상대로 내 일거수일투족 미샤에게 다 보고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따가 먹는다니까?! 뭘 그런 것까지 보고해..!”
“보스께서 그리하라 명을 내리셨습니다. 사소한 것 까지 하나 하나 다 보고하라고..”
“쳇, 나가, 나가! 조금만 더 읽으면 되니까.”
“그 조금만이 항상 6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잖아요..!!”
“시끄러워..! 내 마음이야! 나가!”

자꾸 조잘대는 세르게이를 문 밖으로 밀어버리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휴우.. 정신 사나워! 집중하자. 책에 집중!”

나는 다시 정신을 다잡고 책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


“크흠!”
“아, 또 누구야!”

갑자기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짜증을 내며 겨우 책에서 눈을 뗐다.
그런.. 데.......!

“미.... 미샤......?!!!!!”

나도 모르게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재로 온 것인지 양복 차림 그대로였다.

“얼마나 집중을 하면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몰라?”
“미.. 미안해요...”
“많이 놀랐구나? 다시 존대를 하는 걸 보니..”
“.............. 원래... 내일... 오는 거 아니었나... 요...?”
“하준이 걱정돼서.. 하루나 앞당겼지 뭐. 잘 지냈나? 그 동안.”

근 일주일 안봤다고 너무 어색하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저는 뭐... 매일 뒹굴뒹굴 하면서 책 읽고, 영화 보고... 그랬죠..”
“잘했네. 근데 하준, 반말. 나는 반말이 더 좋아.”
“아.....”

오랜만에 봐도 역시 그는 참 잘난 얼굴이었다. 남자인 내가 봐도 이렇게 잘생겼는데..
하얗고 뚜렷한 저 조각같은 얼굴로.. 대체 왜 게이 인거냐고...!!

“뭘 그렇게 보지?”
“아...... 그게..... 팔은...... 왜..... 그렇게 되었나 해서..”
“ㅋ 일찍도 물어보네. 조금 삐끗한 것 뿐이야. 걱정할 만큼은 아니라고.”

미샤가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것에 놀라 그의 깁스한 오른팔은 뒤늦게 발견했다.

“깁스할 정도면.... 부러진거.. 아니야...?”
“하준은 신경 쓰지마. 내겐 이런거 정말 별거 아니니까.”

부러진게 별거 아니라니..

“......그래도.. 아프겠다.”
“딱히.”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했다.

“배는? 고프지 않아? 점심도 안 먹었다며. 내가 없는 동안 왜 그렇게 식사를 자주 거른거지? 건강 해치면 어쩌려고.!”
“..............”

이상하게도 그는 오히려 내 걱정 뿐이었다.

“하준이 먹지 않았다 해서 나도 먹지 않았어. 같이 먹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자꾸 식사 거르면 억지로라도 먹일 수밖에 없어. 모든 걸 억지로 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잘 해야지. 응?”
“.... 응..”

대답과 동시에 그에게 손목이 붙잡혀 그대로 서재에서 끌려나왔다.

“미.. 미샤....! 너무 빨라....!”

다리는 왜 저렇게 긴 건지.. 따라가기에 너무 벅찼다.
하지만 내 말에도 속도를 줄여주기는 커녕 어째 더 빨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끌려가다가 도착한 곳은 미샤, 그의 방이었다.

“재민, 율리아에게 전해. 내 방으로 배가 터질만큼의 식사를 준비해오라고.”
“예, 보스.”

재민을 향하던 시선을 돌려 다시 나를 바라보는 미샤.

“내 방은 처음이겠군.”
“..... 아닌데.....”
“왔었나?”
“.... 그게.. 예전에.. 열쇠 가지러 왔었는데..”
“어떤?”

미샤는 항상 내게 짓궂었다. 알면서 꼭 집고 넘어가는 나쁜 새끼...

“정.. 조대.. 열쇠..”
“아, 그렇지? 그래도 이렇게 자세히 보기는 처음 아닌가?”
“뭐.. 그렇네..”
“그건 그렇고. 내 명령을 잘 따랐더군. 6시간씩 꾸준히.”
“.............”
“ㅋ 기대돼. 얼마나 감도가 좋아졌을지.”

그렇게 말하고는 여전히 놓지않았던 손목을 끌더니 그대로 침대로 향했다.

“자.. 잠깐....! ... 미샤..!”

침대로 내던져지는 내 몸뚱이..

“오랜만이다. 나의 작은 아기새여.”
“...!!”

아니야........! 이렇게 오자마자 한다고........?!! 힘이 남아돌아.......?!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미샤에 나도 모르게 온 몸이 경직 되었다.

“힘 풀어, 하준.”

목소리와 함께 그의 차가운 손이 내 손 끝으로 느껴졌다. 온 힘을 다해 쥔 주먹을 조심스레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웃기게도 그의 손길에 너무도 쉽게 풀려버리는 힘..

“마음은 알겠지만 하준, 그건 밥 먹고나서 생각해보자. 내 팔도 이 모양이라. ㅋ”
“무.. 무슨....”
“일단은 키스만 하려한거야. 너무 겁먹고 있길래. ㅋ”
“.................”

우선은 안도했다.
일단은..
삽입이 아니라니까....

긴장 풀리는 것이 미샤에게도 보였는지 조각같은 그의 얼굴이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쪼옥-
처음에는 아주 살짝 맛만 보듯 입만 맞추었다.

하지만..
내가 안심하는 그 사이, 그의 혀가 열리지 않으려하는 내 입술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하준.”

그의 소름끼치도록 낮은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퍼져들어왔다.

“열어. 찢어버리기 전에.”
“우움..”

협박하듯 그렇게만 말하고는 살짝 땠던 입술을 다시 맞붙이더니 열려버린 내 입 속으로 결국 침범해 들어왔다. 그는 익숙한 듯 내 입 안을 헤집고 다녔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할 바를 몰라 단지 그에게 의지하고만 있었다.

“흐음.......! 우음......”

질척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더럽다고 느낀 것도 잠시, 딴생각을 한다는 것이 미샤에게도 느껴진 것인지 더욱 파고들어와 날 혼미하게 만들어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타액을 느끼다가 호흡이 곤란해질 즈음 에서야 떨어져나갔다.

“하아.. 하아..........!”
“하준, 운동 좀 해야겠어. 이게 뭐야. 난 더 할 수 있는데.”
“미안..”

대체 난 뭐가 미안하단거지..

“하아.. 역시 하다 만 기분이야..”

가만히 그의 불만을 듣고 있었는데 뭔가 턱 쪽으로 축축한 타액이 느껴졌다.

“으음..?”

당연히 나는 팔을 들어올려 닦아내려했지만..

“스읍. 함부로 닦아내려 하다니.”

바로 그에게 붙잡혀버린 팔.

“후룹.”
“....!!!....”

내 턱에서부터 입술까지 그의 말캉한 무언가로 묻었던 타액이 쓸려올라갔다.

“하준.”
“.... 으응........”
“... 보고싶었어.”
“..............”

그의 간절한 눈빛..

“그대도..?”

그리고 애절한 저 목소리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였다.

“전화 한 번을 안하다니.. 재민이나 세르게이를 통해 한 번쯤은 할 수 있었잖아.”

어울리지 않게 삐진 척이라도 하는 건지 입이 이만큼 나와있었다.

“조금은 서운했다고 하준..”
“미샤도.. 안 했잖아.”
“나야 바빴으니까.”
“응, 미샤 바쁠 것 같아서 안 한거야.”
“.... 흐음....”

웃기는 자식이야.! 자기가 하면 될것이지!

“... 그대는 내가 할 말 없게 만드는군. 좋아, 이번 것은 내가 잘못한 것으로 하지.”

그렇게 한참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내 입술에 다시 한 번 도장을 찍고는 벌떡 일어섰다.

“자, 하준. 나머지는 식사 이후에 계속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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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17 21:23 | 조회 : 3,701 목록
작가의 말
귤떡콩떡

날이 많이 풀렸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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