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하준님,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응.”

율리아, 이 여자의 첫 인상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분명 무언가 나에게 불만인듯 굴었었으니까..
오늘도 어쩐지 나를 좋지않은 시선으로 보고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짧게 대답한 후 식탁의자에 가 앉았다.

“이쪽부터 감자 퓨레와 닭가슴살, 이쪽은 시저 샐러드입니다. 차는 러시아식 홍차를 준비했는데 괜찮으십니까?”
-끄덕-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뭐든 잘 먹는 편이라.”
“좋아하시는 음식이 따로 있으시면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응..”

뭔가 달랐다. 확실히 첫 만남 때와는 비교가 될 정도로 확실히 달라졌다.
말투며 태도 하나하나가 내게 다정한 것이 꼭 그때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이곳 생활이 힘드시진 않으십니까? 아무래도 이런 곳은 처음이라 불편하실것 같은데..”

음식에만 두던 시선을 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율리아야 말로.. 왜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지..”
“아, 이곳 수입이 꽤나 빵빵하거든요..ㅋ”
“그래도 그렇지..”
“저도 처음엔 힘들었는데 살다보니 이곳에 좋은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하준님께서도 분명 금방 적응하실 수 있을겁니다. 심지어.... 하준님께서는 보스께서 무척이나 아껴주시니..”

여기에... 이곳 마피아들의 소굴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이 여자도 제정신은 아니구나..?!!

“미샤가 날 아껴?..ㅋ 율리아, 당신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것 같은데.”

난 미샤의 장난감에 불과했다. 지금은 내가 재밌을진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가지고 놀다보면 질릴거고 그렇게 나는 언젠간 갈아치워질 것이다.
그게 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에게서 버려져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

“아닙니다. 분명 보스께선..!”
“이거 다 율리아가 직접 만든거야? 정말 맛있네.”

더이상 말도 안되는 헛소리는 듣고싶지 않았다. 마침 그도 없는데 꼭 미샤 이야기를 해야겠어?!

“맛있어하시니 다행입니다.”
“내가 할 줄 아는건 한국 라면 뿐인데.ㅋ”
“제게는 요리가 돈줄 이니까요.. 하준님만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요리를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뭐, 좋아.”

단지 이야깃거리를 돌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정원에서 먹었을 때는 몰랐었는데 그녀의 음식 맛은 정말 최고였다.

“근데.. 이런 곳에 여자들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보스께선 워낙 깔끔하시고, 또 까다로우신 편이라 남정네들의 요리, 청소 실력을 못 믿으시거든요. ㅋ”

그녀의 웃음은 너무나 예뻤다. ‘웃음 하나로도 남자를 이렇게 유혹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으니까..
첫인상과는 다르게 내게 너무 맘에 드는 여자였다. 붙임성 좋고 굉장히 밝은 사람이라 나마저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불편한 이곳에서 식사내내 한참을 떠들 수 있을 정도로 그녀가 마음에 꼭 들었다.

“율리아.”

식사가 끝나고 정리 후 나가려는 율리아를 붙잡아 세웠다.

“종종 나랑 말 친구 해줄래..? ㅋ.. 그냥... 미샤가 없을 때만이라도..”
“?!!!!!”

오랜 수다와 함께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꺼낸 말이었다.

“싫..어...?”
“하준님.. 친구라니요... 제가 어떻게 하준님과 친구를.... 어후!! 보스께서 아시면 큰일납니다..”
“비밀로.. 하면 되잖아. 단지 오늘처럼만.”
“....하준님....”
“........”

그녀는 내 실망한 표정에 눈치를 살피더니

“....좋아요. 대신 이렇게 단 둘이 있을 때만 입니다. 진짜 보스께서 아시면 안돼요..”
“약속할게. 고마워...”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역시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내게 정말 좋은 말동무가 되어줄 것 같았다.


“율리아도 가고.. 이젠 뭘 하지...?”

원래의 내 인생이라면 이런 따분함 따윈 없어야 맞는건데..

“아아!! 뭘 하지!!!”

배도 부르고 누우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마냥 누워 자고 싶지는 않았다.

“한재민..”

결국은 방 문을 열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문 밖으로 아무말없이 정자세로 서있는 재민과 다른 양복의 사내들이 보였다.
ㅉ 힘들지도 않나..

“하준님, 뭐 필요하신거라도.”
“.....심심해..”

나는 보았다. 이곳 모두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하지만 정말 어떡하라고...!

“보스께서 주신 핸드폰은 어쩌시고..”
“아아!! 까먹었다!”

그들을 뒤로 한 채,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즐기자고! 이런 여유가 어디 쉽게 오나.”

예전 보지 못했던 영화들을 생각하며 리스트를 만들었다.

“오늘은 ‘도둑놈들’ 하고 ‘어니언맨’ 을 봐야지.”

영화를 보기위해 몇 벽걸이 스탠드를 제외하고 밝은 불들을 꺼버렸다. 그렇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한참 뒤, 두번째 영화를 보려 검색하던 중..

-똑똑-

“재민입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재민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잠시 전등을 켰다.

“왜?”
“.... 보스께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 무.. 슨...?”
“보스의 명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어쩐지 나를 가만히 놔둘리가 없었는데..

“닥터 빅토르의 말대로 하루에 세 번.. 그곳에 약을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속까지.. 꼼꼼히....”

친구의 입에서.. 저런 말을 듣게 되다니.......

“자신이 돌아오는 날엔 꼭 아물어있기를 바란다고.. 하셨구요.. 그리고...”
“...... 됐어... 알겠으니까 나가.. 그만.”

얼굴이 터질 정도로 붉게 달아올랐다. 어쩐지 재민의 입을 통해 들으니 더욱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느낌이었다.

“아니요.. 명이 하나 더..”
“....... 뭔데.”

재민이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은 않고 책상 쪽으로 가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을 꺼내왔다.

“!!!.........!!!”
“매일.. 6시간씩 착용하라는 명이...”

유두 조임쇠와 정조대였다.
그래.. 니 입에 담기도 차마 그랬던거지....?

“아.. 알았으니까 내놔!”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 조차 너무 부끄러워서 서둘러 낚아채버렸다.

“하준님..”
“나가...”
“보스께서 내리신 이 명은.. 저와 하준님만 압니다.”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쩌자고.”
“..............”
“왜. 또 저번처럼 날 도왔다가 그 꼴 나게?! 더는 싫어. 정말 싫어! 그런 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정말 그의 손에 죽고 싶은게 아니라면 그만둬. 아무것도 하지마.. 그게 날 돕는거야.”
“..............”
“미샤가 명하면 넌 그대로 따라. 내 일은 내가 반항을 하든 애교를 부리든 알아서 할테니까 신경끄라고. 넌 절대 미샤의 말 어기지마.”
“하준.. 님..”
“그에게 반항하지 말라고 너가 니 입으로 그랬잖아 나한테.”
“..............”
“6시간.. ㅋ 많이 봐줬네.. 하루종일 차던거.. 6시간 못 버틸까...”
“유.. 하준...”
“ㅋ 반말.. 오랜만이네.”
“............”
“이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감당해.”

그가 죄책감 때문에 내게 이러는 것을 알지만... 그렇지만 그때..........
그때 정말.. 재민은 죽을 수도 있었다. 한달동안 음식없이 물만 간간이 먹고 살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미샤는 재민을 정말 죽이려고 했던 거였다.

“내 일에 신경꺼, 한재민.”

한재민.. 바보같은 놈... 그걸 왜 몰라...!? 나 신경쓰다 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너만 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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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05 17:30 | 조회 : 4,070 목록
작가의 말
귤떡콩떡

하준아.. 너가 이 집에서 나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따위는 갖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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