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고 싶은 말

“자,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어.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나.”

벌써부터 힘들었다. 당연할 거라고 생각한 그 애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배려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니가 내 나이 때 뒤늦은 사춘기인지 그냥 반항인지 엄마랑 매일 같이 싸우고 엄마는 계속 우는 날이 반복됐어.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도 엄마처럼 눈물이 많았거든, 그래서 엄마가 우는 날이면, 그러니까 거의 매일이지. 그 날마다 울었던 것 같아.”

살짝 울컥했다.

“그때마다 나 혼자 했던 말이 ‘오늘만 울자. 나라도 울지 말자’였어.”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나면 더 슬픈 거 있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애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그것에 안심이 됐다.

“시간이 좀 지나고 언니가 진짜, 아주 조금씩 나아져 갈 때쯤 눈물이 잘 안 나오더라. 너무 울지 말자, 참자해서 그랬는지. 그리고 나 지금까지 한 번도 털어 놓을 사람이 없어서 누구한테도 이 말 한 적 없어.”

그래.
“너가 처음이야.”

“어쨌든 그 후로 큰 일이 터지거나 나 혼자 있을 때 엄청 우울했거든, 그럴 때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모르겠더라. 그냥 그런 생각을 할수록 더 울고 싶어지더라.”

나도 모르게 말을 마치고 울었다.
진짜 안 울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이렇게 바닥까지 다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 모든 것을 다 털어놓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한테는. 이렇게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한 번이라도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듣기에는 엄청 사소한 일로 우울해 하고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세상에는 나보다 힘들고 더 어려운 사람이 많을 텐데 겨우 지나가는 반항에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는 건 나도 억울했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또 엄마한테 엄마가 이런 내 생각을 알고 슬퍼할까봐 말한 적 없었고 나에게는 이런 얘기를 할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애는 말없이 일어나서 나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데,”
우는 와중에 말하는 바람에 말이 계속 끊겼다.
“이제는 언니도, 성인 되고, 다, 괜찮아.”
“그리고,”
“이제, 나한테도, 너가, 있으니까.”

내 멘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 우는 몰골이 어땠을까, 너무 못생기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그 당시에는 들지 않았다 그저 그 애의 얼굴, 그 표정이 보고 싶었다. 어떤 표정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고개를 들고 그 애를 바라보았다.

그 애는 웃고 있었다. 다 괜찮다는 듯이 웃어주었다.

그런데, 그 눈은 정말로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그리고 그 애의 눈에서도 나와 같은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런 슬픈 눈이었다.
울지 마. 너는 울지 마. 말하고 싶었다.
“이제는 괜찮아. 말하니까 좀 괜찮지?”
그 애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한 방울,
두 방울.

“어떻게 참았어. 오늘은, 아니 내일도 매일 울어도 돼.”
“너보고 참으라고 한 사람 없어.”
“그냥 울어.”

그래.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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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11 21:52 | 조회 : 880 목록
작가의 말
thffhep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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