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뒤집히는 빛과 어둠(1)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유현의 검은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가느다란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창가에 기대앉아 하늘을 보고 있는 유현을 황태자, 루베리오 아그라테는 홀린듯이 바라봤다.

“…정말 인간이 맞다고?”

계속되는 질문에 유현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어.”

시선은 여전히 창밖을 향한 채로 대답했지만 루베리오는 전혀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본래라면 황태자인 자신에게 저러한 태도는 무례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허울뿐인, 표면적 황태자인 루베리오에게는 그저 그럴 뿐이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듯 먼곳을 바라보는 인간의 것이 아닌것처럼 깊고 검은 눈동자가 어딘가 시선을 잡아 끌었다.

루베리오는 멍한 눈으로 유현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반면 유현은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 것으로 복잡하여 하늘을 보며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황궁이고 넌 유폐된 황태자다?”

아주 간략히 정리한 내용이었다.

“그렇지.”

“…하아.”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랜덤 이동을 했는데 하필이면, 하필이면! 황궁, 그것도 반란이 일어나면 2번째로 목이 날라가는 황태자의 궁에 이동 할 수도 있지.

이제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덤덤해진 유현이었다.

“…설마 저놈도 정상이 아닌건 아니겠지?”

문뜩 위키의 말이 떠오른 유현이 중얼거리면 유현을 빤히 쳐다보던 루베리오를 슬그머니 내려봤다.

“…혹시 막 세상을 혼자 살면서 마음에 안드는 놈은 죽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그러냐?”

조심스럽게 묻는 진지한 목소리에 루베리오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혼자 사는 건 맞다만 누굴 죽일 권한은 없다. 또한 허울뿐이 황태자가 어떻게 공포의 대상이 되겠어?”

맞는 말이네. 납득한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다 휙돌리며 다른 질문을 하였다.

“그럼 악인이라고 판단하면 무슨 이유가 있던 간에 잔혹하게 죽여야 한다고 생각해?”

“…그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은 하고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는 있지만 법의 정당한 형벌의 받고 속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상인이다.

유현은 이 세계로 넘어와서 처음으로 정상적인 인간을 만난 기분이었다. 무감각하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던 검은 눈동자가 순간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뭐지?”

“친구있냐?”

“…….”

유현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던 루베리오는 슬쩍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 이곳에 유폐된 것과 다름이없어서 외부와의 연결이 힘들어….서.”

“…….”

“…그래도 친할아버님처럼 따르던 이는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왜 없는데?”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반란이 일어나고 그때 나는 죽는다. 그럼 당연히 내 곁에 있는 이도 죽게 되겠지. 나는 내가 아끼는 이가 고작 나때문에 죽게 되는것이 싫다. 그러니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쓸쓸하게 웃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유현의 눈은 환희에 찬듯이 반들반들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현은 창문에 폴짝 내려와 푹신해 보이는 쇼파에 앉아있는 루베리오의 앞까지 걸어와서 말했다.

“있잖아. 나랑 친구하자.”

행복하다는 듯이 초승달처럼 곱게 흰 눈과 볼에 파진 보조개가 마치 순수한 소년처럼 유현을 보이게 했다.

반짝이는 검은 눈을 똑바로 마주보자 루베리오는 심장이 간지러운 듯한 느낌과 함께 묘하게 뜨거워 지는 뒷목이 신경쓰였다.

인간이 아닌것 같은 분위기와 외모.

내밀어진 손이 지옥을 향하는 열차라고 하더라도 루베리오는 망설임없이 잡을 것 같았다.

“…황태자에게 그리 말하는 것은 그대가 유일할 거다.”

“유일. 좋지.”

내밀어진 손을 맞잡아 악수한 두 사람은 악동처럼 웃어버렸다.

유현은 그 순간 루베리오를 살림과 동시에 자신도 이득을 취할 방법을 머리속에서 구상하며 모든 구상을 끝 마쳤다.




※※※




이가 대공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아한을 바라봤고 아한은 간결히 이가 대공에게 설명했다.

“이 소년은 틸스라고 하고 환영을 없애는 힘을 가진 멸자입니다. 유현이 발견해서 혁명단에 넣었습니다.”

“…멸자? 유현이 넣었다고?”

이가 대공은 손으로 이미를 짚고 두통이 오는듯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저 놈은 경비대 입니다만 왠지 모르겠지만 따라왔습니다.”

“…경비대? 이것도 유현이?”

“예.”

경비대라는 제이딘을 보며 이가 대공은 유현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짐덩어리를 떠넘기고 사라졌는지 허탈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혁명에 일조할 수 있는 덩어리라는 거지.’

유현은 영리하면서 영악하다. 계약으로 인해 혁명에 저해되는 행동은 할 수 없으니 저 둘의 선택은 전부 혁명단을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정작 유현은 어디로 사라진거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시 보자고 했으니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다처럼 푸른 빛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가 총기과 믿음을 가지고 반짝였다.

“자네도 달라졌군.”

이가 대공은 분명 그리한 것 또한 유현이라고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유현은 사람을 이끄는 재능과 불러들이는 재능이 탁월했다. 분명 향후 혁명단의 길을 비추는 횟불이 될 것이었다.

믿어 의심치 않은 신뢰감이 유현에게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가 대공, 당신은 분명 황제 폐하의 하나뿐인 혈육이신 분이지 않습니까?”

제이딘의 물음에 이가 대공은 다리를 꼬고 턱을 들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혁명단을 이끌고 계신겁니까?”

제이딘의 말에 이가 대공은 피식 웃으며 서류를 한 장 한장 정리하며 말했다.

“서부 빈민가 주민이 차례차례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 황궁에서 계속해서 사라지는 사채들. 그리고 전 대륙을 어지럽히는 노예상들. 이 모든 것들이 옳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혈육이 나의 정의(正義)가 될 수는 없다네. 나는 혈육이기에 황제를 막을 것이다. 그것이 옮다고 생각하는 신념으로 혁명단을 만들었다네. 내가, 혈육으로서 짊어질 속죄일걸세.”

이가 대공은 제이딘을 보며 이미 결심이 선 굳건하고 단단한 신념을 보였다. 그것은 제이딘에게 있어서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형제를 죽인다는 것은….”

그것은 분명한 ‘악’일 것인데.

“그러니 말하지 않았나, 내가 짊어질 속죄라고.”

제이딘의 눈에는 그것은 ‘악’이 아니었다. 좀더 옮곧고 바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무겁고 진중한 하나의 인간의 삶이었다. 그것을 전부 ‘악’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복잡한 선들이었다.

제이딘은 깨달았다. 하나의 생명을 악과 선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대적인 정의 따위는 없다. 있는 것은 그것을 실현해내는 인간의 옮곧은 신념과 자신만의 삶의 정의(精義)뿐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악과 선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답을 추구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과연 전부 악하다고 부정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뇌하며 마침내 도달한 ‘끝’이 옮지 않았다고 타인이 그것을 재단할 수 있을까?

제이딘은 주먹을 쥐고 이가 대공을 똑바로 마주보며 높낮이 없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딘 버드, 오늘부로 경비대를 사퇴하고 혁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습니다.”

설령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 ‘끝’에 있는 것을 보지 않으면 제이딘은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의 선택에 침묵합니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을 불만스럽게 노려봅니다.]

유현이 사라진 자리 남은 것은 어린 작은 별의 사멸의 지켜보던 자들 뿐이었다.

없어진 자리를 따라 별들의 선을 따라 그 길을 걷기 시작한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동대륙은 아닌것 같아.”

짙은. 검은 색에 가까운 머리카락과 호박색 눈동자를 가진 수려한 외모의 남성이 나무위에서 누워서 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압! 제, 생각도 그래요.”

나무 그늘에서 장검을 휘두르며 같은 자세를 반복하고 있는 풍성한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모아 묶은 머리와 가벼운 가죽 갑옷을 착용한 소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다른 곳을 찾아봐야 겠, 어허! 자세가 흐트러졌다!”

엄한 스승의 표정으로 검은 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의 머리카락의 남자는 손에든 나무가지로 흐트러진 자세를 지적했다. 그러자 포니테일의 소녀는 땀을 흘리면서 다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우, 너무 엄하신거 아닌가요. 하압!”

신음소리를 내며 소녀는 떨리는 팔에 힘을 주며 다시 기합소리를 내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르쳐 달라고 한게 누군데? 난 어리버리하게 가르칠 생각은 없어. 위대한 용생에 실패는 없어야만해.”

흑룡(黑龍), 또는 블랙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지상의 여섯 용들 중에 하나인 앰버는 가볍게 나무에서 떨어지며 소리조차 내지 않고 착지했다.

“하압! 하, 지만! 아무리, 가르쳐 주신대로 해도 안, 늘어요! 하압!”

소녀, 성녀 시엘론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체력도 근력도 늘렸다. 능력치는 크게 올랐지만 이상하게 검술은 잘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그녀는 초조해 하고 있었다.

“그건 재능의 벽이야. 그걸 부술려면 노력 밖에 답이없어.”

앰버는 아공간을 열어 거리에서 사둔 약과라는 것을 입에 물며 우물거리며 말했다. 성의없는 모습이었지만 저렇게 보여도 그는 좋은 스승이었다.

가진건 치유능력밖에 없던 성녀를 성인 남성 2명 정도는 무력화 시킬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전부 앰버의 공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정도로 성장시킨게 어디야. 욕심을 부리고 싶으면 더 노력해.”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당신에게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약과지! 그것보다 너, 진짜 유현이 어디 있는지 몰라?”

앰버는 시스템 창을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당신에게 자신은 이제는 정말 모른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럼 전에는 알았다는거네?”

전에는 알았자는 앰버의 말에 시엘론은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자신의 신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디, 어디에요? 오라버니가 마지막에 있었던 장소는?”

시엘론은 간절히 양손을 모아 기도하듯이 애틋하게
물었다. 지금 시엘론은 당장이라도 유현의 안위를, 무사한 모습을 확인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겨우 만난 새로운 가족을 찾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지금의 검을 드는 성녀, 시엘론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을 아니는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는 고민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의 명령으로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지금은 진짜 유현의 기운은 감지 되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유현이 똑같은 장소에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기에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는 결국 망설이다 메세지 창을 띄웠다.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대가를 지불하고 당신에게 메세지를 보냅니다!]

앰버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메세지를 열었다.

[유현은 중앙 대륙의 동부, 혁명단에 있었습니다.]

“혁명단?”

“혁명단이라니요? 그럼 유현 오라버니는 중앙 대
륙에 있다는 건가요?”

앰버의 말에 시엘론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하지만 더이상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에게서는 대답이없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동대륙에 온게 헛걸음질 이었네? 그걸 넌 보고만 있었고?”

호박색의 눈동자가 한겨울의 눈보라처럼 매섭게 몰
아치며 선명하게 빛을 내었다. 그 기세에 시엘론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을 쳤다. 인외의, 인간의 한계를 태생부터 넘어선 태생부터 다른 강자들.

시엘론은 앰버와 같이 다닌 시간 동안 깨달았다. 저들은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또 말이없다? 내가 아무리 지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도 말이야 어느정도 힘을 보내는 건 가능하거든. 신계에 마력 폭탄 좀 보내봐?”

살벌한 협박에 당하고 있는 본인이 아님에도 시엘론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지만 앰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마력을 해방했다.

주위의 모든 생물이 지상의 지배자의 아우라에 겁을 먹고 몸을 떨며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을때.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당신에게 어쩔 수 없는 명령이 있었다고 항변합니다.]

“명령? 빛의 일곱 기둥인 너에게 명령할 수 있는 존재가 있던가?”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침묵합니다.]

“아, 혹시 그놈? 고대의 이후의 탄생한 주제에 근원의 흐름에 지배를 받지 않고 자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빛의 일곱 기둥의 수장인가?”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당신의 추측을 부정합니다.]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누가…아.”

문뜩 앰버의 기억속에 한 번도 본적이 없던 권위자가 떠올랐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 위대한 용의 지식에도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는 너무나도 오래되어 용들이 태어나기 이전, 고대시대의 전에 탄생한 시초(始初)의 권위자로 추정되는 자였다.

고대 이전, 헤알릴 수도 없는 긴고 긴 시간.

시초의 권위자들은 모두 잊혀져 소멸했다. 그것이 용들이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앰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시초의 권위자는 위험하다.

언제 터질지모르는 세계멸망의 폭팔 버튼이 바로 시초의 권위자다. 소멸하면서 후폭풍을 만들어내는아주 위험한 존재.

“…그런 존재가 유현의 곁에 있었단 말이지.”

앰버의 호박색 눈동자에 동공이 길게 찢어지고 하얀 피부에 검은 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의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등에는 가죽날개가 돋아났다.

“…앰,버님?”

완전히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한 앰버가 앞발로 생리적 두려움에 몸이 굳은 시엘론을 감싸 들었다.

“[빨리, 서둘러 가야겠어.]”

거친, 인간의 음성에서는 나올 수 없는 소리가 생물의 공포를 건드리며 시엘론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재생하는 빛의 권위자가 당신에게 자신의 신도를 조심이 대하라고 호통을 칩니다!]

“[시끄러워, 이제 네 이야기는 안들을거야.]”

검은 거대한 드래곤으로 변한 앰버는 그대로 하늘을 날아올라 유현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중앙대륙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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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21 16:48 | 조회 : 1,278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오랜만에 등장하는 시엘론, 앰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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