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구원의 또 다른 이름(11)

이곳, 노예 창고에 잡혀와 가장 끔찍한 환상에 사로 잡힌이들은 삶의 의지를 상실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그것은 ‘자신의 삶’ 이었고 그것에 가족들이나 소중한 이들의 삶은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유현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건드리며 도발했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나 칼을 적을 향해 들 수 있도록. 스스로 하나의 거대한 악이 되어주었다.

그것이 거짓된 악이어도 충분했다. 때로는 선보다 악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법이었다. 설령 그것이 구원이란 이름의 기만이라고 할지라도.

유현은 소녀와 다른 노예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뭘할 수 있는데?”

[초능력 ‘염동력이 발동합니다!]

“윽!”

소녀와 유현을 죽일듯한 눈으로 노려보던 모든 이들이 염동력에 막혀 온몸을 구속당했다. 그렇지 않은 것은 혁명단원들과 제이딘 뿐이었다.

유현이 시선이 검의 손손잡를 잡고 있는 제이딘을 향했다.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의 신도. 유현이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유현은 제이딘 버드가 부러웠다.

아마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도 정추권님이시겠지. 그는 오늘 나라는 ‘악을 처치하는 ‘정의’가 될 것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유현의 시선이 아한을 향했다. 건조하고 무감각한 감정은 담기지 않은 칠흑같은 검은 눈이 말하고 있었다.

어서. 너의 역할을 완수해야지.

아한은 그 뜻을 알고 있음에도 움질일 수가 없었다. 그저 주먹을 꽉줜채 아랫입술에 피가 나도록 유현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잡혀있던 빈민가의 사람들은 저 혁명가라는 사람이 저 악당에게 분노해서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울컥하며 감동하고 있었다. 메마른 감성에 서서히 맑은 물처럼 차오르고 있었다.

아한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유현의 시선이 다른 혁명단을 향했다. 리언과 레비트는 유현의 시선에 의미하는 바를 알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레비트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비록 만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레비트는 유현의 행동을 봤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원망하는 듯한 말들이 날카로운 가시가되어 유현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유현은 덤덤하게 그것을 받아드렸다.

혁명단들이 움직일 생각을 안하자 유현의 시선은 다시 제이딘에게 돌아갔다. 유현은 목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 만으로 말했다.

‘난, 악이다.’

그러니 어서 그 검을 휘둘러. 날 공격해.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그리운 시선. 내가 가장 바라는 애정을 주는 분. 하지만 그렇기에 놓아야만하는 것.

슬프지는 않다. 그저 조금 쓸쓸해질 뿐이다.

제이딘은 망설였다. 눈앞의 저것은 분명 처리해야 할 ‘악’이었다. 그런데도 손이 떨린다. 가슴속 알 수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속이 뒤집혀서 내장을 전부 쏟아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째서?’

검을, 뽑고 싶지 않았다.

코끝이 뜨겁다. 눈이 뜨겁다.

지금, 제이딘은 생전처음으로 울것같은 기분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성은 저것이 ‘악이라고 말하는데 감성은 저것이
‘선’이고 지켜야할 존재라고 외치며 이성을 억누른다.

혼란스럽다.

하지만 제이딘은 아랫입술을 피가날 정도로 깨물며
검을 뽑아들었다. 은광을 뿜어내는 검날이 매섭게 빛을 내었다.

제이딘의 존재를 깨달은 아한이 검을 뽑으며 대응하려고 하였으나.

[당신의 현재 구속되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몸이 구속되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유현-!!”

아한의 외침과 동시에 달려나간 제이딘의 검이 유현을 향해 내려칠려는 순간.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검은 스파크가 제이딘의 검을 가로막듯이 튀며 유현을 보호했다.

헤아릴수 없는 죽음, 시작을 알수없는 끝, 형용할수 없는 공포, 가장 원초적인 파괴.

그 모든 것은 인간이 가장 거부감과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멸의 본질이자 근원이었다.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가장 좋은 악당이 사용할 것 같은 힘.

유현은 이 순간 만큼이 멸의 힘이 마음에 들었다.

거짓된 구원을 진짜 구원으로 만들어줄수 있는 연출을 할 수 있었으니까.

제이딘은 여전히 유현을 향해 검은 겨누며 경계하듯이 몇발자국씩 물러갔다. 그리고 잡힌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외쳤다.

“모두 도망치십시오!”

그 외침에 하나둘씩 삶의 의지가 없던 이들이 유현의 말을 곡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 저 검은 괴물은 분명 그리 말했다.

그들의 눈에서는 짙은 분노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유현은 그걸로 만족했다. 이제 저들의 삶의 이유는 복수가 되어 그 칼날이 유현을 꿰뚫을 때 까지는 저들은 삶을 계속하게 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아한을 구속하던 초능력을 거두고 유현은 아한을 향해서 고개를 저었다.

‘어서.’

유현은 재촉에 아한은 유현을 향해서 떨리는 손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어서.’

재촉하는 유현의 눈. 아한은 이 순간, 이 시간이 너무나도 휘회되었다.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유현은 아한은 생각보다 극단적이며 이기적이며 이타적인 구원자였고, 또한 기만이었다.

제이딘은 호박색을 띈 검기를 검에 담으며 다시 한 번 유현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아한은 그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마치 물을 타는 것과 같이 제이딘과 함께 유현에게 검을 내리쳤다.

유현은 그 검들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을 향해 유현은 환하게 웃었다. 일그러진, 감정의 소용돌이같은 미소는 어딘가 애달펐다.

“나중에 다시 보자. 아한, 짭새야.”

[아이템 ‘어디로든 랜덤 이동석☆’이 사용됩니다!]

주머니속 돌이 부서지지면서 유현은 흐릿해져 가더니 검이 직격하기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기만으로 구원받은 자들과 기만을 ‘악’이라고 단정지은 자들 뿐이었다.




※※※




“전하, 도망치십시오.”

금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가 정중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며 애원하듯이 말했다. 이에 금발의 화려한 복장의 준수한 외모의 남자가 읽던 책을 접고 책상에 내려놓고 기사의 압에 섰다.

“내가 도망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같나?”

아그라테 제국, 그곳의 황제는 이미 미쳐있었다. 다른 황족들은 황제의 힘에 눌려 각자의 궁에서 강금당하는 것과 다르바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황제의 감시에서 자유로운 것은 이가 프로딕트 대공 뿐이었다.

“나는 대공과 같이 힘도 없을 뿐더러, 군사권를 움직일권한 또한 박탈당했다. 이런 내가 이곳에서 나가봤자 황제의 암살자나 섬멸자, 그에게 제거 당하는 것밖게 더 하겠나.”

“전하! 하지만 당신은 황태자십니다!”

침울로 얼굴로 외치는 한때는 황실기사단장이었던 노기사에게 금발의 남자, 황태자 리베루오 아그라테는 고개를 저었다.

“코호토. 그대는 현황제를 누구보다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 부황께서는 제 자식을 죽이는 것에 꺼리낌 따위는 느끼지 않으시다는 것을 말이야.”

“송구하오나, 저하. 저하께서는 황제 폐하의 유일한 핏줄이십니다! 그런 전하를 폐하께서 어찌 해하시겠습니까?”

“황제의 혈육은 나를 제외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가 대공이라면 지금쯤 반란의 준비를 마쳐가겠지.”

혁명이 일어나면 이가 프로딕트 대공을 제외한 황족은 아마 모두 숙청 대상이 되어 사형 당할 것을 황태자, 리베루오 아그라테는 아주 잘 숙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받아드렸다.

“알고 계시면서 계속 이곳에 계속 계시겠다고,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리베루오는 대답하는 것을 대신 고개를 돌려 넓은 창에 보이는 밝고 큰 하얀 달을 등을 돌려 바라보았다.

침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루베리오는 애써 듣지 못한 척을 하였다.

“코호토. 그대는 제국의 몇 안되는 소드 마스터이니 황궁을 벗어나도 다른 일을 찾을 수 있겠지.”

“…전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오늘부터 기사, 코호토 안텐트를 나 황태자 루베리오의 호위에서 해임한다.”

“전하!”

여전히 황태자는 등을 돌린채로 코호토에게 명령했다.

“코호토, 내가 표면뿐인 황태자가 아니라면 명령에복종해라.”

싸늘하고 선을 긋는 말에 코호토는 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괴로운 듯이 꽉줜 주먹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기사, 코호토는 그 명령에 불복할 수가 없었다.

루베리오를 표면뿐인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 기사 코호토 안텐트. 주군의 명에 따릅니다.”

한글자 한글자가 무거웠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등을 돌린 황태자에게는 무엇하나 전해지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코호토가 방에서 나가자 황태자, 루베리오는 의자에 쓰러지듯이 주저 앉았다.

“…하아. 이제서야 말할 수 있었군.”

손등으로 눈을 덥고서 루베리오는 넘쳐흐르는 감정을 전부 삼켜내었다.

자신은 곧 죽는다. 하지만 죽어도 같이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릴적부터 자신의 지켜온, 친할아버지처럼 따랐던 사람까지 죽게 둘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이걸로 된 것이었다. 된 것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족쇄라도 달린 것처럼 무거운 감각이 사라지지 않고 숨쉬는 것을 버겁게 느끼게 만들었다.

“…정원에라도 나가봐야 겠군.”

무거운 것은 몸인지, 마음인지 모를 루베리오는 호위는 단 한 명도 대동하지 않고 홀로 작은 정원을 거닐어나갔다.

유폐된 것과 다름없는 황태자의 행동범위중 가장 넓은 곳이 바로 정원이었다. 정원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는데 황태자는 심란할 때며 항상 그 호수를 보며 위안을 받고는 하였다.

찌르르-

풀벌레가 우는 소리와 바람에 신비롭게 흔들리는 화초들, 그 사이에 큰 호수에 작은 파장이 생겨났다.

“…뭐지?”

호수의 위, 흐릿한 빛이 생겨나기 시작하더 이내 사람의 모습이 되어 그대로 그대로 호수에 떨어져갔다.

놀란 루베리오는 서둘러 호수에 발을 담구고 호수 중앙을 향해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첨벙-첨벙-!

그리고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양팔을 벌
려서 잡았다.

“…….”

“…어, 안녕?”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의 섬세한 미모의 미인이 루베리오의 품에 안겨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요, 요정이십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루베리오는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
다.

“요정은 아니고.…지나가던 방랑자?…라고 해야 하나?”

유현은 속으로 랜덤이동석을 욕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울것 같은 기분으로 생각했다.




※※※




유현이 사라지고 아한은 당장이라고 제이딘에게 칼
을 겨누며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계기를 제공하여 유현의 작전에 박차를 가했던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장, 나 사고 한 번만 치면 안될까?”

리언 역시 상당히 분노하고 있는 상태였다. 리언은 유현은 막기위해 타이밍을 재고 있었고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대없이 경비대 한명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한은 같이 사고 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억눌러 참았다.

“…불허한다.”

근처에는 아직 빈민가의 구출된 사람들이 있었고 유현의 시나리오에는 혁명단과 경비대의 충돌은 없었을 것이었다.

“젠장!”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공기는 무겁기만 하였다.

“그 놈은 어디로 사라진건데!”

“모른다. 하지만 다시 보자고 했으니 어디선가 나타나겠지.”

아한은 유현을 믿었다. 무엇보다 확실한 계약서가 있으니 유현은 혁명을 도와야만 했다. 그러니 반드시 다시 나타나게 되어있었다.

아한은 다친 이들을 부축해주고 있는 제이딘을 한 번 노려보고는 혁명대원들에게 말했다.

“철수하지.”

한 편 제이딘은 계속해서 혼란스러웠다. 유현의 말에 따르면 유현인 악이었다. 그런데 혁명대라는 이들은 어째서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적의와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지, 자신은 어째서 이렇게나 울렁거리며 답답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틀렸던 것이었나?’

[정의를 추구하는 권위자가 당신에게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그의 신의 혼란을 주고, 선택을 종용했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을 노려봅
니다.]

그리고 모르는 권위자가 명백한 적의가 담긴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제이딘은 이를 별일없이 그냥 넘기었다.

‘모르겠다. 나는 무엇이 옮은 것이었는지.’

그래서 알고 싶었다. 제이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정의에 가까워 지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제이딘은 경비대를 포기했다.

“당신들은 제국에 반기를 든 반역자들이 맞습니까?”

다가와서 묻는 제이딘의 물음에 아한은 미간을 좁혔다.

“반역이 아니다. 혁명이다.”

혁명. 그것은 ‘악’일까. ‘정의’일까.

확실한 것은 하나.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만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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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0-15 15:26 | 조회 : 1,043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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