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당신의 육체의 25%가 손상되었습니다!]
시끄럽게 울리는 시스템의 메세지를 보면서 유현은 이제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아마 전방 50M정도는 멸의 힘이 퍼져 환술이 풀렸을 것이다. 아한과 리언 다른 혁명단원들이 그 근처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니면 내가 죽게 생겼다.
“죽여버리겠어!”
초려혜는 어느샌가 인벤토리에서 동양풍의 검을 꺼내들어 나에게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나는 흔들리는 다리와 무거운 몸을 움직여 뒤로 빠졌다. 아슬 아슬하게 스치면서 뺨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지만 금방 사라졌다.
[패시브 스킬 ‘무통증’ 이 강제 활성화 중입니다.]
안 아프면 뭐하냐. 죽게 생겼는데. 사실 죽지는 않지만 내가 만약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지금 함부로 죽어서는 안됬다.
누가 아는가 내가 죽으면 이 주변 일대가 전부 사라
질지. 아무도 모르고, 나 또한 모르기에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괜히 다른 애들이 죽을라.
근데 이를 어째. 더 이상 몸이 들어가지 않는다. 진짜 꼼짝없이 저 여자의 칼을 맞고 죽을 것 같았다.
초능력을 발동하기에는 집중력도 떨어졌고 몸 상태
가 말도 아니라서 발동 조차 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에는 사용할 수 없어서 어차피 소용없으려나.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에게 조심
하라고 외칩니다!]
아, 미안한데 진짜 몸이 안 움직여요. 진짜 안 죽지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웃는 그 순간이었다.
쾅앙-!
벽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날가온 돌맹이가 초려혜의 칼에 부딪치며 나를 향해서 날아오던 칼날을 반쪽으로 만들었다.
유현과 초려혜의 시선이 동시에 흙먼지를 향했다.
“하하! 이 몸이 또 환술에 걸려서 자빠져 있었다니! 레비트!”
“네!”
레비트의 손에 얇은 와이어 줄이 순식간에 내 몸을 감싸서 초려혜와 떨어뜨렸고 리언이 환술사에게 달려들었다.
‘저, 저 멍청이!’
유현은 무턱대고 몸을 날리는 리언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지금 환술사의 환술을 방어할 수단도 파훼시킬 방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저렇게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저, 저거 말려야!”
“어머, 괜찮답니다.”
레비트는 안심하라는 듯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걸 보세요.”
레비트의 말대로 유현의 시선이 한참 싸우고 있는 리언을 향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리언의 주먹이 푸른 빛에 싸여 있었다. 그것을 본 초려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환술이 상쇄되고 있었다. 초려혜가 할 수 있는 것은 리언의 공격의 괘도를 바꾸어 피하는 것 뿐이었다.
“…어떻게?”
유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역시 리언, 너는 빠져라. 내가 하지.”
그때 마치 물음에 답하듯이 부서진 벽에서 또 한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남색의 짧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움직에 맞춰 푸른 실을 엮에 만든 동양풍의 귀거리가 은은한 푸른 빛을 내고 있었다. 어느 때 보다 더 선명하게 빛나는 바다와 닮은, 푸른 눈동자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한의 몸에서 은은하게 푸른 빛이 나오고 있었다.
[스킬 ‘감정 파악’이 발동 중입니다.]
[현재 대상의 패시브 스킬‘청룡의 축복’이 활성화 중입니다!]
아한의 시선이 짧게 유현를 향했다 이내 거두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한은 초려혜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침대에서 정신을 차렸지만 정신적인 충격에 빠져 흐리멍텅한 눈으로 있는 자신과 비슷한 푸른 머리카락과 눈의 남자들을 짧게 일별하고는 미세하게 눈을 찌푸렸다.
“칫, 내가 하고 싶었는데.”
리언이 투덜데는 소리를 내며 몸 이곳저곳에 얕은 상처가 남은 초려혜를 보며 아쉽다는 듯이 물러났다.
아무리 아한으로부터 청룡의 가호를 일부분 나누어 받았다고는 해도 완전하지는 않아 계속 공격을 빚맞춘것이 아쉬웠다.
“유현을 지켜라.”
“네, 네.”
리언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도 입가와 옷,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유현의 피를 보며 초려혜를 다시 노려보았다. 싸움중에 누군가가 다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괜히 화가 났다. 그래서 웃으며 아한의 어깨를 두번 두드렸다.
“대장, 믿는다?”
“…….”
리언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아한의 눈을 보며 등과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역시 리언은 아한이 가장 무섭고 두려움과 동시에 존경스러웠다.
“아, 아한. …어떻게?”
초려혜는 아한을 보며 동공이 흔들렸다.
“유현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아한은 50M더 떨어진 방에 따로 감금 당해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영향으로 정신을 아슬아슬하게 차렸다. 그리고 알았다. 유현이 멸의 힘을 응용해서 환상을 없애버렸다는 것을.
그래서 생각해냈다. 아한은 멸자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하지만 다른 것은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는 억눌러 숨기고 있었지만 항상 자신을 지켜줄려하는 물을 지배하는 푸른 용의 축복을.
아한은 처음으로 ‘청룡의 축복’을 완전히 해방하였다. 그 결과.
[당신의 패시브 스킬 ‘청룡의 축복’ 으로 인하여 임시 스킬 ‘정신 완전 방벽’이 부여됩니다!]
[당신의 패시브 스킬 ‘청룡의 축복’ 으로 인하여 임시 스킬 ‘독 완전 면역’이 부여됩니다!]
[당신의 패시브 스킬 ‘청룡의 축복’으로 인하여 임ㅂ시 칭호 ‘물을 지배하는 자’가 주어집니다!]
아한은 가벼워진 몸을 느끼며 주저 앉은 추악한 여자, 초려혜를 내려다보았다. 굳이 검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뽑아들은 검에는 청룡의 축복으로 인하여 마치 바다처럼 푸른 빛을 머금은 채였다.
“초려혜.”
아한이 나직히 환술사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눈에는 아주 작은 희망이 생겨났다.
“그래, 나란다! 지금은 보기 조금 추해졌지만 환술로 금방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었어!”
“너였군. 내부 스파이는.”
나직하지만 그 속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에 초려혜의 몸이 딱딱히 굳었다.
해동성국이 빨리 멸망당한 이유는 주위 국가들의 묵인과 제국의 힘도 있었지만 정예들이 많았던 해동성국은 군사력이 높았고 제국도 함락에 꽤나 힘겨워 했었다.
제국에 필적할 만큼 강대했던 해동성국이 빠르게 함락당한 이유, 그것은 내부 고발자에게 있었다.
왕족이 숨어 있는 곳을 제국에 불어 왕족을 모조리 죽게 만든 원흉.
해동성국의 모든 백성들은 왕족을 사랑했다. 청룡 의 가호를 받는 어진 왕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병사들과 백성들은 왕족을, 왕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왕을 잃은 병사들들은 그렇게 절규하며 자신을 비탄하고 원통하게 죽어나갔다.
벽에 달린 왕과 왕비의 목을 봤을 때의 백성들의 표정을 아한은 똑똑히, 아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해동성국은, 후궁을 들이지 않고 평생 한 명의 반려자만을 두지.”
수많은 왕국과, 하나뿐인 제국. 그 어느곳과도 해동성국은 달랐다. 후궁도 후비도 없는 나라. 그렇기에 왕위 다툼도 없는 평화로운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청룡의 사랑을 받은 왕이 다스려 청룡의 가호를 받는 땅에 사는 마음에 여유를 가진 백성들이 사는 나라.
어렸던 아한의 눈에 기억된 아주 아름다웠던 고향. 사랑해 마지 않았던 나의 국가, 나의 백성, 나의 나라였다.
“나는 죽어간 이들의 슬픔이며.”
주위의 순분이 모여 무수히 많은 물방울이 생겨났다.
“또한 분노이며.”
순식간에 물방울들은 뭉쳐져 거대한 물이 되었다.
“심판의 검이다.”
이윽고 물은 거대한 수룡을 모습으로 변해 날카로운 이빨을 초려혜를 향해서 겨누고 있었다.
스스로를 심판의 검이라고 칭하는 아한의 몸은 온통 푸른 빛이 었다.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청명(,靑明)의 빛들이 마치 아한을 감싸 듯이 빛나고 있었다.
“…아, 아.”
그 모습에 초려혜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녀가 줄곧 오랫동안 짝사랑하며 마음 졸이며 아프게 만들었던 남자. 수많은 유혹에도 넘어와 주지 않았던 매정하지만 정직하던 그 왕을.
“아…청하.”
초려혜에게 가온 아한의 아버지, 해동성국의 왕의 이름에 아한은 검이 떨렸다.
“…감히.”
배반자 따위가 담아서는 될 이름이 아니었다.
아한의 분노를 머금은 수룡이 더더욱 시퍼렇게 선명하게 그리고 어두운 심해의 색을 발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심장 박동이 느리게 크게 뛰었다. 유현은 지금 심장은 터질 것 처럼 크게 뛰고 있었다.
-악인아? 너 심장소리가 너무 큰데?
작은 하얀 새의 목소리가 큰 심장 소리에 묻쳐 들리지 않았다. 유현의 시선은 오직 아한을 향해있었다.
“유현님? 어디 안 좋으세요?”
“뭐야, 왜 그래?”
레비트와 리언이 상태가 이상해진 유현을 살폈지만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아한을 향해서 걸어갔다.
“유현!”
보다 못한 리언이 유현을 잡기 위해서 손을 뻗었지만 손은 유현에게 닿지 못했다.
거대하고 투명한 무언가가 리언의 손을 유현으로 부터 막았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에게 경고성을 발합니다!]
리언과 레비트, 아한까지 모두 동시에 권위자의 간접 메세지를 받았다.
“뭐야, 권위자가 어째서?”
레비트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였고 리언은 당황해서 굳어버렸다.
오직 아한만이 침착하게 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유현의 눈이 아한을 향했다. 분명 갈색눈인데 검은 색으로 보였다. 늪처럼 깊은 눈은 아한을 보고 있었지만 아한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한의 너머에 일렁이는 것들, 살아있지 않은 무언가.
유현은 그것들은 보고 있었다.
[거대한 흐름의 근원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에게 ‘권위자’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당신의 《퀘스트 : 멸신의 자격자》의 격이 충당
되어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
[당신의 《퀘스트 : 용의 지식의 계승자》의 보상
이 격의 충당으로 지급됩니다!]
[당신에게 지상에 흐르는 용맥의 일부 지배권이 생겼습니다!]
[당신의 새로운 칭호 ‘용의 계승자’가 추가됩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긴장된 눈으로 유현을 보고 있었다. 격의 차이. 인간을 넘어선 존재. 지금 유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현은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당신은.”
유현의 머리카락의 색이, 눈색이 점점 검게 물들어 갔다.
“아니, 당신들은 누구야?”
완전히 검게 물든 칠흑같은 검은 눈동자가 아한과 함께 있는 이들을 향했다.
그들은 수백, 수천이 넘는 이들이 아한의 곁에 있었
다.
[스킬 ‘귀안(鬼眼)’이 발동 중입니다!]
-우리, 우리는….
그들의 아주 작은 목소리를 유현은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귀를 귀우렸다.
-염려하며 지켜보는 자들….
“누구를?”
-최후의 왕족, 우리들이 사랑하는 왕의 작은 씨앗.
유현의 눈에 천천히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성도 있었고 어린 아이, 병사들까지 가지 각색의 사람이 아한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 아한과 닮은, 완전히 똑같은 머리색을 가진 남성과 아한과 같은 눈색을 가진 여성이 있었다.
여성이 유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부탁, 이에요.
무척이나 힘겹게 애처롭게.
-아한이, 가엾고 미안한 내 아이가….
고개를 떨어뜨린 여성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런 여성을 대신하여 그 옆에 서있던 선한 인상의 남성이 대신하여 말하였다.
-슬픔과 분노로 검을 휘두르지 않게 해주시오….
왕은 죽어서도 아버지였다.
유현은 알았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이것들은 전하
지 못하고 남겨진 것.
원한, 혹은 사념이라고 불리우는 전해지지 못하여 남겨진 가엾고도 슬픈 존재들.
유현은 아한에게 천천히 다가 갔다. 그리고 떨리고 있는 검의 손잡이를 잡은 아한의 손을 덮어 잡았다.
“그만해.”
유현에 뺨에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져 흘러 내렸다.
“분노로, 슬픔으로 심판의 검이 되지 말아줘.”
그것은 유현의 눈물이 아니었다. 아한을 지켜보는 이들의 안타갑고 슬픈 마음의 대변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유현의 모습이 아한에 손에서 검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모습의 수룡이 공중에서 흩어져 사라졌고 아한의 몸에 감돌던 푸른 빛도 사라졌다.
“너의 검은, 너의 미래를 위해서. 너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서 휘둘러.”
유현의 말에 아한은 누군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항상 백성을 먼저 생각하던 그 어지고 정의롭고 상냥한 왕의 말을.
‘한아,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해서 검을 들 것이다. 나의 미래, 그것은 너와 이 해동성국의 모든 이들이란다. 그러니 한아. 너도 언젠가 네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너 자신을 위해 검을 휘두르거라. ’
분노에 휩싸여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말이 유현을 통해 아한에게 다시 전해졌다.
“아한, 너의 부모님은 정말 사랑받는 왕족이었어. 왜냐면 이렇게 백성들이 너를 걱정하고 우려하고 있잖아.”
깊고 투명한 눈동자가 아한의 너머의 것들에게 눈인사를 건네자 죽은 이들의 사념이 고개를 숙이며 저마다의 감사를 전했다.
아한의 눈에 한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안도감인지 모를 감정들이 뒤썩이며 왜 눈물을 흘리는지 몰랐지만 아한은 지금 눈을 흘리고 있었다.
작고 가느다란 하얀 손이 조심스럽게 아한의 뺨을 어루만지며 상냥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왕비이자, 아한의 어머니. 유하연의 것이
었다.
아한은 흔들리는 동공을 멈출 수가 없었다. 유현을 향해서 뻗은 손이 유현에게 닿기 전에 유현은 슬쩍 빠져 나가 초려혜의 바로 앞에서 그녀를 차갑게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