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흐르고 두사람의 사이에는 묘한 분위기가 생겨났다.
“너는 혁명이 끝나면 무엇을 할 생각이에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았다.
“음, 잘 모르겠는데.”
죽기 위한 여정을 떠날 예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대충 말하자.
허공을 조심스럽게 응시하자 다행이도 ‘거짓말 감지기’는 작동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성기사단에 들어오지 않겠어요?”
“어?”
“내 성기사단은 바벨론에서도 전체 10위안에 들 정도로 뛰어나요. 의식주도 안전도 모두 보장되고 너의 능력이면 높은 직에 오르는 건 일도 아닐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스카우트를 제의하는 거지?
“왜?”
앞을 다 짤라 먹고 물었지만 라인은 알아서 대답했다.
“내가 너를 옆에 두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라인의 붉은 끼가 도는 갈색의 눈동자가 더 선명한 적색으로 보였다.
“미안한데, 더 이상의 관심은 사절이야.”
이미 충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보호자 같은 권위자가 둘이었고 섬멸자 미친놈도 있었고.
“더 생각해 보시는게 좋을 거에요. 혁명이 끝나는 순간 너를 보호해줄 곳은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 아니면 새로운 황제의 개가 될건가요? 섬멸자처럼.”
“아니, 잠깐 섬멸자? 그 놈이 황제의 개라고?”
충격적인 사실에 유현의 눈이 커졌다.
그 아무도 안따르고 제멋대로에다가 오만하기 짝이 없는 그 놈이 누군가를 따른다고?
그 ‘섬멸자’가?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비록 유성헌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봐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짧은 시간동안 느낀 것은 있었다.
그 첫번째가 바로 그 놈은 누군가의 말을 고분하게 들을 작자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몰랐어요? 혁명단에 소속이면서?”
잠깐.
“아니, 너는 내가 혁명단 소속인건 어떻게 알아.”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유현의 경계심어린 물
음에 라인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가 대공의 추천으로 들어온 편입생이라면 혁명단의 사람이라고 추측이 가능해요. 반응을 보니 맞는 모양이네요. 어떻게 혁명단이 된 걸까요?”
아차, 혁명단 소속인건 들켰지만 더 이상의 정보 유출은 사양이다. 차원이동자인걸 드러낸 시점에서 더 숨길건 없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겠다.
“그건 알거 없고, 섬멸자가 황제에게 붙어 있는 걸 알면서도 혁명을 한다고? 승산은 있는 거야?”
그 미친놈의 스펙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다. 물론 눈앞의 이 소름 돋는 놈도 스펙이 아주 높지만, 스킬의 양이나 풍기는 느낌이 섬멸자가 더 위험했다.
“이렇게 보여도 랭커인데요. 이길 자신은 없어도 질 자신도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눈이 써늘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마치 자존심이 상했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저을 보며 나는 어떻게 하면 저 소름 놈을 봉으로 잡을 수 짐작했다.
“아하, 그럼 섬멸자를 상대로 오래 버틸 수 있어?”
“물론, 한 30분 정도는.”
30분 정도면 충분히 그놈을 마주쳤을 때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아 보려고 해봤지만 무리였다.
“…왜 그렇게 웃어요? 왠지 두가 싸늘한데 저주라도 걸린 걸까요?”
저주는 무슨.
목줄이 잡혔지, 나한테.
“뒷통수 조심해서 살아. 네가 하는 일은 언제 칼이 너의 뒷통수에 꽂힐지 모르는 일이잖아?”
“그건 걱정해주는 걸까요.”
“어, 넌 오래 살아 줬으면 하거든.”
그래야지 그 미친놈을 막을 방패막이로 쓰지.
라인은 작은 체구의 곱상한 외모의 어린 소년을 내려다 보았다. 흔들리지 않고 똑 바로 직시해주는 눈동자에는 조금의 거짓도 썩여있지 않았다.
그러다 문뜩 생각했다. 저 무표정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오른 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그리고 이제 도서관에 찾아오지마. 나 여기 관둘꺼니까.”
하지만 저 무표정한 얼굴에 나온 말에 순간 사고가 정지한 것 같았다.
“왜요? 어디 가요?”
“애초부터 여긴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온 곳일 뿐이야. 필요한 걸 얻었으니 혁명을 하러 가야지.”
혁명단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었다. 순간 긴장이 풀리며 라인은 멈칫했다. 내가 왜 안심했지?
유현은 교장실을 가기 위해 라인을 지나치려는 순간 단단하게 손목을 붙잡혔다.
“뭐야.”
난데 없이 손목을 잡힌 유현이 라인을 올려다봤다.
“…가기전에 내 방에 와요.”
“왜?”
뜬금없는 라인의 행동에 눈꼬리가 올라간 유현이 뾰로퉁하게 물었다. 그러자 잠시 라인은 고민했다.
“…줄게, 있어서요.”
“알았어. 교장실에 갔다가 갈테니까 이거 놓지?”
붙잡혔던 손목이 거슬렸다. 몸을 구속하는 느낌은 여전히 과거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이킬 만큼 구역질나게 싫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손목을 놔달라는 유현의 말에 라인의 손은 금세 풀렸다. 그제서야 유현의 표정이 풀리며 창백해졌던 안색도 점점 나아졌다.
“네 방 어딘데?”
“기숙사 맨 꼭대기의 1101호 이랍니다. 문앞에 무서운 번견이 지키고 있으니 조심하고 여기 열쇠에요.”
열쇠를 받자 라인은 미련없이 등을 돌려 사라졌다. 등을 돌린 그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뭐지 저놈. 원래도 이상하고 소름 돋았는데 더 이상해진 것 같아.’
항상 능글거릴 정도로 천사처럼 웃던 그 가식적인 웃음은 어디에 버린 건지 표정에서 감정이 다드러나 있었다.
내가 ‘감정 파악’을 사용하지 않아도 다 보일 정도
였다.
“분명해. 저 놈은 나를….”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의 추측에 귀를 귀울립니다.]
“…나를 족칠 생각인게 분명해.”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의 눈치에 격한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왜요.”
난데없는 ‘무허권’님의 반응에 의야해 하며 허공에 메세지창을 봤다.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쉽니다.]
“웬 한숨-”
[무가치한 허식과 어둠의 권위자가 당신을 보며 다시 굳걷히 다짐합니다.]
“뭘 다짐하는 건데요?”
무엇을 하는지 몰라 묻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멈추었던 발걸음이 다시 움직이고 유현은 묘하게 신경쓰였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
교장, 록사나에게 일반적인 통보를 전한 후 유현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기숙사 최상층까지 게이트라고 불리는 일종의 마도구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최상층에는 방에 두개 밖에 없었고 1101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인 문제였지만.
‘그러고보니 번견이 있을 거라고 했었지.’
“이곳은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짧은 머리카락에 여성치고는 다부진 몸매, 그리고 탁한 금발을 가진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가벼운 옷차림에 묵직해 보이는 장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번견이 사람이었어.’
진짜 개를 생각하고 있는 유현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거기다 유현은 여성을, 특히 30대의 여성을 무서워했다.
어릴적의 고아원의 받은 트라우마를 떠올리기 때문
이었다.
“라이 바텐스 강사님이 방에 초대했어.”
손에 줜 라인이 준 열쇠를 보여주자 놀랐는지 여자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고민하는듯 연신 칼 손잡이를 만지작 거렸다.
요즘 들어 그녀의 상사, 라인 베드로는 이상할 때가 있었다. 원래도 이상했지만 그것보다 더 이상했다.
갑자기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강사라는 직업을 위장직업으로 가졌는데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거나.
본래 자기 멋대로이기는 하여도 그것이 역할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었는데 지금은 라인은 무슨 일 때문인지 스파이를 잡는 활동도 멈춘 채 강사일을 하고 있었다.
카산드라는 저 열쇠가 유현의 손에 있었을 때 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저 소년이 바로 라인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을.
그녀는 들여보내도 될까를 고민했다. 저 열쇠를 주면서 라인이 초대할 정도면 많이 신경쓰는 존재임은 분명했다. 여기서 저 소년을 쫒아 낸다면 분명 라인의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저와 성기사단이 될 것은 틀림이 없었다.
“…들어가십시오.”
그것만은 절대로 싫었던 그녀였다. 그녀가 문을 가리고 있던 몸을 비켜주자 유현은 바로 문고리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그러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유현은 그대로 방안에 몸을 넣고 문을 닫았다.
“1인실이 좋기는 엄청 좋네.”
거이 7성 호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넓고 고급진 가구들로 방은 도배되어 있었다. 물론 말이 도배지 적절한 위치에 고풍스럽게 방과 어울러지는 가구들은 마치 그것이 원래 자리인 마냥 자연스럽게 배치 되어있었다.
“방도 참 드럽게 지같은 걸로 쓰네.”
마치 천사가 자고 갈 것 같은 화이트의 톤의 색들이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여기 있으면 되겠지?”
대충 침실로 보이는 방에 들어갔더니 침대와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의 의자에 앉았더니 침대 위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보석인가? 신기해서 자리에서 일어서 침대에 다가 가서 보석으로 보이는 여러색상의 돌들을 관찰했다.
여러 색상의 돌들은 색도 탁하고 투명하지도 않았지만 어딘가 눈낄을 끄는 매력이있었다. 주먹만한 돌들은 총 여섯개가 있었는데 그중 내 눈을 가장 사로 잡는 것은 탁한 붉은색의 돌이었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끌렸다.
“이거 만져도 괜찮겠지?”
순간 만지고 싶다고 충동에 손을 뻗어 붉은 돌을 집어 들었다.
‘하얀 새가 보면 뭐라고 했을까.’
나두고 온 하얀 새는 분명 방으로 돌아가면 놔두고 간것을 화낼 것이다. 작은 날개짓을 하며 틱틱 거릴 것을 상상하니 저절로 웃음이 세어 나왔다.
반짝.
“…?”
순간 붉은 돌이 한순간이지만 맑은 빛을 내었다. 혹시 잘못본건까 보석을 눈에 가까이 대고 확인하여 보았지만 붉은 돌은 처음과 같은 탁한 색에 돌이었다.
“…이상하네.”
“뭐가요?”
“으앗!”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움찔하며 돌아보니 문에 기댄채로 나를 보고 있는 소름 돋는 놈이 서있었다.
“…언제부터 있었어?”
“너가 돌을 올려다보면서 이상하네라고 중얼거릴 때부터?”
…다행이 방금 온 모양이었다.
“왔으면 기척좀 내고 다녀. 놀랐잖아.”
쏘아보며 말했지만 라인은 여전히 특유의 천사같은 미소를 짓으며 말했다.
“설마 침실에서 너가 기다릴 줄은 몰라서 놀라는 중이었어요.”
“침실이 왜.”
이해가 안된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유현을 보며 라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순진, 한건가요? 아니면 그냥 모자란 걸까요?”
“모자라다니. 내가 이곳으로 넘어온지 얼마 안 되서 그런거 뿐이거든! 여기서는 침실에 들어오면 안 되는 규칙이라도 있어?”
“그런 규칙은 딱히 없지만 다 큰 성인 남성의 침실에 함부로 들어오는 건 위험한 행위에요.”
“나도 다 큰 성-”
“거기다 저는 너보다 강하고 여기서 도망실 도주로도 없잖아요?”
26살의 다 큰 성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도주로는 만들면 되거든. 그리고 싸워보지도 않았는데 네가 나보다 강한지 어떻게 알아.”
끝이 올라간 눈꼬리가 샐룩하게 하게 올라가서 도발하는 고양이의 눈처럼 매서웠지만 섬세한 유현의 외모탓에 퇴폐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는 것도 하지 않는게 좋겠네요.”
“뭐?”
유현이 라인을 향해서 불만을 토해낼려고 입을 여는 순간, 순식간에 다가온 라인이 유현의 손에 쥐어져 있는 붉은 돌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천사처럼 화사하고도 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큰 손으로 붉은 돌을 쥐고 있는 유현의 손을 완전히 덮어 잡았다.
“뭐하는-!”
갑작스러운 접촉에 당황한 유현이 손을 뺄 세도 없이 라인의 잡은 손을 자신의 쪽으로 잡아 당기자 유현의 몸이 저절로 라인을 향해 더 가까워졌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쏘아 붙일려고 라인을 올라다 보는 순간, 라인의 입술이 유현의 작은 손에 입을 맞추었다.
“…….”
황당함에 말을 잃을 유현이 입을 금붕어처럼 뻐끔 거렸지만 라인은 좀 더 힘을 줘서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닿은 입술의 온도는 뜨거웠다. 어쩌면 내 손이 차가운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길고도 짧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라인의 입술이 유현의 손등에서 떨어졌다.
“진짜 선물은 이건데, 그 돌이 마음에 든다면 가져 가도 좋아요.”
잡힌 손이 떨어져 나가기 무섭게 유현은 라인으로 부터 세걸음 뒤로 물러갔다.
“…무슨 짓을 한거야.”
“신성력이 필요하다고 하시길래 손등에 조금 새겼어요.”
“새겨? 그걸 마음대로 내 손등에 새겼다고?”
잡혔던 오른쪽 손등을 보니 황금색의 불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문질러 봤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걱정마세요. 단순한 1회 보호막이라서 한 번 쓰면 바로 사라질 거에요.”
…보호막이라니 좋은 거긴 한데. 묘하게 기분이 찜찜했다. 마치 늑대에게 양을 맏겨 둔 것처럼 불안한 찜찜함이었다.
혹시나, 진짜 혹시나.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
킵니다.]
“이거 위치 추적이라던 그런 기능 달려 있는건 아
니지?”
“생각보다 날카롭네요? 보통은 눈치도 못채는데.”
…진짜였냐.
이거 어떻게 처리하지.
“걱정말아요. 나는 그런 변태같은 취미는 없어요. 그건 방어막이 역할을 다해서 사라질 때 한정 위치를 알 수 있을 뿐이니까요.”
그건 다행이었다. 방어막이라니 나야 이득이고 좋지만 저 놈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근데 이걸 해주는 것은 너에게 무슨 이득이 있어?”
손등을 보이며 물었다.
라인은 여전히 가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성을 따지면 이득은 없지만 감성쪽으로는 이득이 있어요. 묘한 만족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진짜 변태는 아니지?”
“물론. 내 ‘트라고이디아’를 봤으면 알잖아요? 제가 그런 욕구가 거세된 자라는 것을요.”
“…….”
물론 알고 있지만 때때로 저 소름 돋는 놈이 나에게 내비치는 감정들은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선명했다.
“넌 없는게 아니라, 대상이 없었을 뿐인거 같은데.”
개미들 사이로 맹수가 있어봤자 다른 종인 그들은 의사소통의 방식도 다르며 생각이나, 사고 또한 다르다. 애초부터 개미는 맹수에게 관심없고 맹수 또한 개미에게 관심이 없다.
서로에게 이물질에 불과하니까.
“그런가요?”
맹수의 영역에 발을 들인 작은 고양이, 그게 아마 나정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