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2)

오랜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편하고 길게 잠들 수 있었다.

항상 밖에 경계하고 소리에 귀를 귀울려야 했기 때문에 편히 잠들어 본적이 없었다. 살아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고 삶의 의지가 있었다.

조금만 버티면 살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이 거지 같은 생활도 저주받은 몸도 괜찮아질 것이다.

조금만 더. 언젠가는.

기약없는 나날들을 그렇게 26년을 버티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몸은, 나의 시간은 15살의 소년의 몸으로 그대로 머물렀다.

그것이 무척이나 절망스러웠고 또 증오스럽고 고통스러웠다.

마치 나에게는 이 앞으로 나이갈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미래를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하지만 괴로웠던 것 이상으로 살고싶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함부로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의 삶만이 그들의 삶의 증거였으니까.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이 떠졌다.

“……아.”

등에서 느껴지는 푹식한 침대의 촉감과 빨려들어갈 것 같은 베개의 푹심함.

살아있다.

몸을 일을켜 양손을 움직이여 보았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분명 숲속에서 잠들었는데 왠 침대에 누워있다. 그건 분명 누군가 날 옮겨서 침대에 올려놓는 엄청난 수고를 했다는 건데.

누군진 몰라도 얼굴 한대만 치고싶다.

진심으로 멱살 잡고 싶다.

쾅!

그때 거칠게 방문이 열리고 쾌활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한 여자가 다가왔다.

“어, 일어났네?”

오렌지색의 머리카락과 짙은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외국인인가?

“꼬마야, 몸은 괜찮니?”

스스럼없이 다가온 20대 초반쯤 되보이는 여자는 쾌활한 목소리와 같이 밝은 인상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의 손에는 과일바구나와 과도도 있었는데 여자는 침대 옆에 그 과일바구니와 과도를 놓고서는 할 말이 많은지 한참 동안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떠들어 댔다.

“……”

말하기 싫다. 아무리봐도 저 여자 보다 내가 훨씬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날 혐오 할 것이다.

“음?”

혼자서 떠들고 있다고 깨달은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떨떠름을 표정을 보자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렸다.

“이상하네?”

쿵!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이상하다는 말에 손끝이 차가워지고 초조함이 생겨난다.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머리속에서 부터 올라온다.

무섭다.

“이럴리가 없는데?”

여자의 손이 한순간에 내 턱을 움켜쥐었고 아래로 떨어졌던 내 고개를 순식간에 들어올렸다.

후드가 벗겨질까 싶어 서둘러 낡은 옷을 다시 뒤집어 썻다.

“너…정말 섬멸자가 데리고 온 사람이 맞아?”

…섬멸자?

그게 무슨 중2병 같은 소리일까?

여자는 눈앞에 비맞은 강아지처럼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후드를 뒤집어쓴 얼굴조차 보이지않는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그 섬멸자가 더려온 사람치고는 너무 유약하고 무해해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버려진 개처럼 더럽고 마르긴 했지만.

“너무 정상적인걸?”

“에?”

이게 무슨 개가 풀을 뜯어먹는 소리야. 정상적 인게 당연한거 아닌가?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보이는 저 창 덕분에 이성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다. 저건 또 뭐지.

이 공중에 있는 메세지의 창들은 도대체 뭐고.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었다.

“…저기.”

“응?”

“섬멸자가 누구야?”

“그를 모른다고?”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동물을 보는 듯한 커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 턱을 잡고 있는 손을 놓고서 여자는 침대 옆 의자의 앉아서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었다.

“널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섬멸자야. 가장 잔혹하고 냉혹며 모든 이들의 생명을 가리지 않고 필요에 따라 가볍게 앗아갈수 있는 자.”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미친놈이라는 뜻인것 같다.

“그 섬멸자가 데려온 사람중 제정신인 사람은 없었는데 말이야. 보아하니 너는 정신이 제대로 잘 달린 사람인것 같은데 섬멸자가 왜 데리고 온거지?”

여자는 한쪽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 턱을 괸채로 심각한 얼굴 고민했다.

저도 그 대륙의 공식 또라이같은 미친놈이 저를 왜 데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 눈앞에 보이는 저 창들은 뭐야?”

“그걸 모른단 말이야?”

여자는 내가 섬멸자가 누구냐고 물었을때 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짙은 갈색의 눈동자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내 입을 열어 내게 설멸을 해주었다.

“이 시스템 창들 같은 것들을 통틀어서 우리는 ‘제3자의 눈’이라고 불러. 정확한 것은 발혀진 적이 없지만 모두가 그렇게 부르지. 이 ‘제3자의 눈’은 우리의 정보를 값을 매기고 정확한 수치를 환산해 주는 역할도 하고 여러가지 상황들을 말그대로 ‘제3자의 눈’에서 보는 대로 알림창을 올리기도 하지. 마음속으로 자신의 정보를 떠올리면 정보가 보일거야.”

태어나면서 부터 모든 지성을 가진 생명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한가지를 의미했다. 여자는 얇게 뜬 눈으로 소년을 응시했다.

“너 설마 차원이동자야?”

익숙하지 않은, 소설속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분명 차원이동을 했다는 메세지를 들었으니까 나는 차원이동자이지 않을까. 그럼 여기는 이 세계인가?

“이럴수가. 괜히 섬멸자가 데려온게 아니었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질적인 존재이자, 유일무이한 차원이동자. 그것이 섬멸자가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그 유일이 지금 여자의 눈앞에 후드에 얼굴이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소년에 의해 깨졌다.

여자가 말이 없자 문뜩 불안해졌다.혹시 이 세계에 서는 차원이동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인가?




※※※




칼이 살을 가르는 소리가 어둠속에서 잔혹하게 들 려오고 남자는 가뿐 숨을 크게 내쉬면서 마지막 남은 권위자들의 꼭두각시를 처리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의 주위는 피로 물들었고 남자 스스로도 피에 물들어 있었다. 비릿한 혈향으로 가득 차서 코에 마비 될 지경이었다.

남자의 삶은 항상 같았다. 차원이동을 해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도 남자의 삶은 언제나 치열한 삶과 죽음의 싸움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죽이고 싸우고 투쟁해야 하는가.

뒷말을 삼킨채 남자는 퀘스트를 살펴보았다.

[ 퀘스트 : 소년의 구조

등급:??? 기한:???

이대로 두면 가엾은 소년은 죽습니다.그걸 ‘녹음의 정원’은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은 소년을 데리고 성역을 벗어나 소년이 살수있게 도와주십시오.

보상:1.신들의 저주의 해제. 2.예지자의 진리의 눈
동자. 3.녹음의 정원의 자유출입권.

*실패시 신들의 저주가 2배로 강화됩니다.
*경고!시련의 달성률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경고! 현재 시련 달성률 56% 으로 하락했습니다.]

[경고! 현재 시련 달성률 55% 으로 하락했습니다.]

[경고! 현재 시련 달성률 54% 으로 하락했습니다.]
.
.
.
.
.

계속 뜨는 경고창에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에 균열
이 생겼다.

소년이 살수있어야 달성하는 시련의 달성률이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소년이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빌어먹을 꼬맹이가!”

자신답지 않게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적이었지만 하지만 그런걸 신경쓰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지금은 그 망할 꼬마의 생명이 더 중요했다.

외투의 주머니에서 호박색 보석을 깨내들고 그것을 꽉 쥐어 부수자 남자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시끄럽던 여자가 사라지자 조용해졌다. 드디어 혼자가 된 거였다. 과일바구니 옆에 있던 아담한 사이즈의 과도를 작은 체구의 소년이 들자 과도는 더 이상 작게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아프면 될거야. 고통은 금방 끝나니까.”

스스로를 다독이며 과도를 꽈 쥐고서는 손목을 그었다. 따끔하며 뜨거운 고통이 손목에서 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분수처럼 피가 쏟아지듯이 흘렀다. 하얀 이불이 붉게 물들었고 짙은 피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개이치 않고 한번더 반대쪽 손목을 그었다.

피가 멈출려 할때마다 계속 손목을 그엇고 하얀 침대를 침범하던 피는 이제는 바닥에 피의 웅덩이를 만들 만큼 넘쳐 흘렀다.

아프지만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패시브 스킬 [무통증]이 발동 중입니다.]

이 ‘제3자의 눈’은 뭐가 그리 말이 많은지 연신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게임과 비슷한 체계로 이루어진 시스템인것 같은데.

아까 분명 마음속으로 프로필을 생각하면 보인다고 했는데 죽기 전에 한번 보기나 해볼까.

[시스템 오류 발생!]

이게 뭐야.

[시스템 오류 발생!]

다시 한번 해봤지만 똑같은 창만 뜰 뿐이었다.

“…하.”

실소가 흘러나왔다.여기서도 나는 이물질에 불과했다. 나의 운명을 찾으라는 메세지의 신에게 말해 주
고 싶을 지경이다.

나는 결국 이물질에 불과하다고.

점점 현기증이 심해졌다. 몸에 피가 부족해지는 것
이 느껴졌다.

[경고! 과다출혈로 사망률이 올라갑니다!]

제3자의 눈이 시끄럽게 울렸다. 저거 끌수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피를 더 내기 위해서 과도를 들어 손목으로 가져대는 순간 갑자기 큰 폭팔음이 들렸다.

챙그랑!

깜짝 놀란 나머지 과도를 침대 밑으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손을 뻗어 과도를 주울려는 순간 크고 거친 손이 내 손목을 낚아 채듯이 잡아챘다.

그리고 열려있는 방문과 오만상을 쓴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시야에 비춰졌다.

언제 들어온거지? 아무 소리도 기척도 없었는데. 심
지어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금갈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상당히 미남이었으며 머리색과 같은 눈동자색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신성해 보이기 까지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눈매가 날카로운게 칼도 자를수 있을것 같았다.

남자는 피웅덩에 빠져있는 과도와 붉게 젖은 침대를 한번식 일별하더니 마지막으로 내 팔을, 정확히는 손목을 보았다.

“…빌어먹을 꼬맹이가.”

낮게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는 중저음의 매우 듣기 좋은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불편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목소리에 살이 떨릴 지경이었다.

왜 이 사람은 화내고 있는거지? 영문을 모르겠다.

남자는 한손으로는 내 양팔을 잡고 한손으로는 허공에 손을 집어 넣었다. 사라졌던 손에서 주먹만한 황금빛이 도는 액체가 담긴 병을 꺼내들었다.

그 신기한 광경에 멍하니 그것을 구경했다.

남자는 그 황금빛의 액체를 내 손목에 쏟아 부었다. 그러자 따스하게 스며드는 느낌과 함께 손몬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어지럽고 매 스꺼웠던 속도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무슨 짓을 한거야!”

이러면 내가 죽을수가 없었다.

“그 입 다물어.사지를 구속해서 묶어두기 전에.”

살벌한 남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움추러 들게 되었다. 등골에서 식은 땀이 타고 흐르는 것이 마치 포식자에 앞어선 피식자가 된 것 같았다.

저 남자는 포식자였고 나는 피식자였다. 그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는 내리지 않은 채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최후의 신의 축복의 효과가 상대방을 꿰뚫습니다.]

[상대방의 모든 방벽을 무시합니다.]

시스템 창과 함께 방대한 양의 정보가 허공에 떠올
랐다.

[이름:유성헌(에브게니아) 나이:23살(???)

직업:섬멸자(殲滅者)(신화),그랜드 소드 마스터
(신화),차원이동자(???),초능력자(???)


능력치:체력[120],근력[160],민첩[170],지력[180],정신력[20],마력[60],초능력(중력 지배)[120].

속성:투쟁(鬪爭), 절망(絕望)

칭호:권위자들의 공적자(신화),세계의 이단아(신화 )흐름의 반역자(전설),검의 끝의 돌달자(영웅),위대
한 공포(영웅),고독한 절망자(영웅)……(중략)

스킬: 섬멸의 검기(L),예상예지(豫測豫知)(L),가르는 검격(S).

패시브 스킬: 괴귀한 섬멸의 빛(측정불과), 대학살(L),대상 감지(S), 날카로운 감각(S), 정신 방벽(S), 저주 저항(S), 독 저항(S), 화염 저항(S)……(중략)

*대상은 현재 당신과 관련된 시련을 진행중 입니다.
*대상이 현재 당신에게 동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방대한 정보량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 세계에서 S급과 전설이랑 신화가 흔한 건지 아니면 내 눈앞에 남자가 괴물인건지.

그리고 밑에 동질감을 느낀다니? 나와 같은 차원이 동자라서 그런가? 거기다 나한테 화가 났단다. 영문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
킵니다.]

그러니까 나와 관련된 퀘스트란게 대충 게임속 퀘스트 같은 거라고 했을 때, 내가 죽으면 그 퀘스트란걸 깰 수 없기 때문에 화가 난 것 같다.

그런데 이름을 보아하니 한국인 같은데 되게 신기하게 색소가 옅은지 남자는 하얀 피부와 옅은 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를 노려보다 문득 이름 옆에 갈호안에 희안한 이름이 보였다.

“에브게니아?”

이건 또 뭐지?

내 손에 붕대를 감고 있던 남자가 내 말에 갑자기 놀랐는지 커진 눈으로 날 보더니 이내 매섭게 노려 보며 붕대를 묶다 말고 내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윽!”

10
이번 화 신고 2019-06-03 16:39 | 조회 : 1,684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시스템물 쓰시는 작가님들 정말 존경스럽네요.저거 프로필 언제 다써..ㅠ((폭스툰 오류가 너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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