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1)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오늘 지구는 아니, 세계 는 멸망합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소중한 가족 곁에 있어주십시오.》

같은 말이 반복되고 멍하게 풀린 눈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던 낡고 때가 묻은 이불을 뒤집어쓴 앳된 얼굴의 소년은 라디오를 들고 던졌다.

콰직!

라디오가 큰 소음을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더 이상 라디오에서 세계의 멸망의 마지막 라디오의 소리는 나지 않게 되었다.

소년은 뒤집어 쓰고 있던 이불을 가볍게 던지며 한 칸의 좁은 방을 훑어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부서진 라디오를 일별하고는 이내 메마른 웃음으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세계가 멸망한다는 비현실적인 일을 앞에 둔 인간의 행동 치고는 소년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생기없던 두 눈은 곧 다가올 멸망이 너무나도 기대된다는 듯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고 창백하던 얼굴에는 생기조차 감돌고 있었다.

미친 광인처럼 혹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처럼 웃는 이는 줄곧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고 바래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 저주받은 몸뚱이와 작별이다!”

소년은 무작정 폐가를 도망치듯이 뛰쳐나왔다. 신발이 없어 대신 붕대를 감아둔 발바닥에 돌이나 나뭇가지에 긁혀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소년은 신경쓰지 않았다. 마치 고통조차 못 느끼겠다는 듯이.

어차피 뼈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몸이 었기 때문에 소년은 흐르는 피를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거친 숨을 내쉬며 내가 도착한 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이름조차 모를 산의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내 눈에 비친것은 압도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였다.

거대한 유성이 탐욕스럽게 붉은 불을 내뿜으며 지구를 향해서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내 눈에 비친 저 거대한 유성이 구원자로 보일 지경이었다.

천천히 자리를 잡고 딱딱한 나무에 몸을 기댄채로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날 일은 없었다. 다시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 내일을 힘겹게 억지로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
이다.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닌 자연의 섭리로 인해 죽는 것. 그것에 죄악감이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거대한 무언가로 인한 절대적인 멸망이었으니까.

몸이 타버릴 것같은 열풍. 다가오는 멸망.

서서히 멀어지는 의식속에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나는 그 누구보다 살아있었다.




※※※




치지지직....

[당신에게 선택권이 지급되었습니다.]

[산다 혹은 죽는다 중 하나를 고를수 있습니다.]

[죽는다를 선택되었습니다.]

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시스템의 값이 설정 및 등록되었습니다!]

[죽음이 당신의 죽음을 묵인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당신의 죽음을 부정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운명의 부름을 받습니다!]

[육체의 재구성 및 차원이동이 시작됩니다!]

[최후의 신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당신에게 최후의 신의 마지막 가호와 축복이 내려집니다!]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


잠든 소년을 보며 괴식물종들은 기척을 숨기며 몸을 감추었다. 그들의 창조주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고요한 숲속의 풀더미에서 죽은 줄알았고 죽음을 원했던 소년이 이윽고 눈을 떴다.

손끝을 간지럽히는 풀의 감촉과 피부에 닿는 시원하고 청령한 공기가 소년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선명하기만 하였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기분이 천 천히 가라앉았다.

“……망할.”

낮게 욕을 하며 원인을 빠르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죽지 않았다. 죽지 못했다.

원인을 생각해 보자면 아마 지금 내 눈앞에 뜨는 이 게임 메세지 같은 창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분명 잠에 드는 듯이 죽었고, 꿈에서 인지 모를 어떤 공간에서 저 창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죽는다를 선택했다. 하지만 죽음이 그것을 묵인 하지 않고 내 죽음을 부정한다고 창이 뜨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무슨 운명의 부름을 받고 차원이동 한다고 했던것 같은데. 최후의 신의 가호와 축복이란 창을 보았던것도 어련풋이 기억이 난다.

…개같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혼란스러웠다. 세계 멸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어지러웠다. 거기다 옷도 내가 입고있던 옷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나았지만 지저분하고 누런, 거지나 입을 법한 옷이었다.

[최후의 신의 가호가 당신의 사고를 빠르게 회전시킵니다.]

그래, 정리해 보자.

첫번째로 나는 죽지 않았다. 두번째로는 운명의 부름인가 뭔가를 받아서 차원이동했다. 세번째는 최후의 신인지 모를 어떤 작자가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축복과 가호라는 것을 내렸다.

분명 메세지 같은 것도 온 것 같았는데.

[메세지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어?”

[메세지가 열립니다.]

[안녕?나는 지구의 최후의 신이자 마지막 신이라고 해. 지금 많이 혼란스러울 거야.하지만 내 가호 덕분에 많이 나아졌을 테니, 감사하라고!]

....신 맞아?

신이라기에 뭔가 어설프고 가벼운 느낌이 강했다. 저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말투도 그렇고.

이미 비현실적인 세계 멸망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건 없었기에 그냥 넘기고 계속 메세지를 읽었다.

[아마 네가 이 메세지를 읽고 있을 무렵에 나는 소멸했겠지. 신앙이 사라진 신의 결말은 항상 같으니까. 어차피 소멸할거 일찍 죽으나 늦게 죽으나 똑같을것 같을 거 아니야? 그래서 나는 가장 불행한 인간에게 나의 힘을 주는 금기를 저지를 결심을 했지. 하지만 직접적으로 내 힘을 주기에는 인간의 육체는 너무나도 연약해서 말이야. 그 세계의 아이템이라는 형식으로 보냈어.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오른쪽의 귀에 생전 처음보는 귀걸이가 체인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흑요석처럼 검은 보석이 왠지 모르게 고급져 보였다.

[멸망해버린 나의 세계가 너에게는 잔혹했을수도 있어. 하지만 너무 나의 세계를 미워하지는 말아주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상처깊은 너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 그 세계에게는 부디 네가 행복하길 바랄게. 부디, 너의 운명을 찾기를.]

나에게 힘을 넘기고 가버린 신은 끝까지 잔혹했다. 난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발버둥치는 것도 이제는 지쳤고 숨을 쉬고 싶지도 않았다.

희망을 품는 것 조차 너무 지쳐버렸다.

양팔을 크게 벌린다음 푹신한 풀밭에 몸을 맡기었다. 차라리 죽을 때까지 여기서 잠만 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숲속을 채웠다. 햇빛은 따사로웠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나무 그림자가 빛을 막아주고 있어서 소년은 편하게 잠들었다.

편안히 잠든 소년의 창백한 얼굴은 마치 고된 삶에 지친 사람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편안한 시간이 흘러가고 이내 밤이 되자 벌레 소리만이 들려왔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일어나지 못했다. 마치 오랜시간 못 잤던 잠을 한번에 해결하려는 듯이 혹은 정말 잠든채 죽으려는 것처럼.

하지만 편안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




남자는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며 시체 사이를 유유히 지나 나무에 기대어 입도 다물지 못한채 안타갑게 떨고있는 하얀 옷의 남자의 목젖에 칼끝을 댄채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며 붉고 매혹적인 입술을 열었다.

“하찮은 신도(信徒)따위가.”

경멸감이 담긴 서늘한 목소리에 신도인 남자는 이를 부딪치며 떨었다. 눈앞의 남자가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 붉은 피를 묻히며 소름끼치는 금안을 빛내는 남자는 그저 신도의 눈에는 악마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신에게 신도를 잃은 다수의 권위자들이 당신을 노려봅니다!]

[경고! 다수의 권위자들로 부터 일정이상의 저주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복수의 권위자들이 대가를 지불하고 당신에게 저주를 걸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모든 스텟이 일주일동안 20% 하락합니다!]

시끄럽게 울리는 시스템 창의 소리에 남자는 작게 혀를 차며 눈앞의 마지막 생존자인 신도를 노려보았다.

“지금 ‘예지자의 진리의 눈동자’는 어디있지?”

겁에 질린 신도는 온몸을 떨며 대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알 바가 아니라는 듯이 칼끝으로 신도의 목을 조금 찔러 넣었다.

그러자 붉은 피가 한 줄기 신도의 목을 타고 하나의 붉은 선을 만들었다. 그 소름돔는 감각에 신도는 다급하게 말을 뱉었다.

“성역(聖域)에……! 켁…쿨럭!”

신도는 갑자기 피를 토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역시 금제(禁制)를 걸어놨군.”

사지를 비틀며 고통스럽게 발작하는 신도를 남자는 무감정한 눈으로 한순간의 망설임조차 없이 칼을 휘둘러 신도의 목을 베었다.

붉은 피가 튀며 땅을 적시며 비릿한 피의 향이 퍼졌지만 남자는 뺨에 튄 피를 더럽다는 듯이 겉옷의 소매로 닦을 뿐이었다. 그는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리 멀지않는 곳에서 추격대가 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텟이 20%나 하락된 지금은 간단히 추격대를 섬멸할 수 없었다.

거기다 꽤나 상급의 신도의 상대를 하느라 몸의 부상도 큰 상태였다.

[경고! 당신의 육체의 40%가 훼손되었습니다!]

신도는 분명 성역이라고 했다.

‘이 근처의 성역의 이름은 분명 녹음의 정원이라고 했던가.위험의 난위도가 최소 [SSS]가 넘는 위험지역이지만 추격대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안전하다.’

서둘러 성역에 도착한 남자는 성역 ‘녹음의 정원’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에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군. 괴식물종들의 움직임이 없다.이럴리가 없을텐데?’

성역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성역을 지키는 괴식물종들이 발로 반응해 침입자를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이 것만 성역은 마치 요람이라도 된 것 마냥 조용하기만 했다.

마치 성역 전체가 숨죽이며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예지자의 진리의 눈동자’를 얻기 위해서는 성역의 깊숙한 곳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안전 구역을 발견하면 더 좋겠지만.

얼마나 깊게 들어갔을까. 남자는 서두르던 발을 멈추고 멀리서 달빛이 비추는 곳을 바라보았다.

마치 성역이 저쪽으로 가라는 듯이 달빛이 비추는 곳으로 가는 길에는 장애물인 큰 나무도 독초나 위험한 괴식물종도 없었다. 심지어 돌조차 없는 인도(人道)가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은 무시했지만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가려고 하였지만 다른 길로 가면 갈수록 길이 점점 험해져만 갔다.

[경고! 당신의 육체가 50% 이상 훼손 되었습니다!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손상의 위험성이 커집니다!]

남자는 작게 혀를 차며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빛이 고여있는 곳으로 몸을 옮기었다.

이윽고 도착한 남자의 금갈색 눈동자에 비친것은 창백한 얼굴로 달빛을 받으며 잠들어 있는 작은 체구에 모자를 뒤집어쓴 낡은 옷을 입은 소년이었다.

남자는 서둘러 검을 뽑아 소년의 머리 바로 옆에 꽂으며 눈썹을 일그려트렸다.

‘...신도인가?하지만 신도라고 하기에는 다른 느낌이군. 하지만 미세하게 풍기는 기운은 분명 권위자와 비슷한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남자의 의문에 답하듯 성역이 반응했다.

[성역, ‘녹음의 정원’이 대가를 지불하고 당신에게 새로운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성역이 의지를 가진 존재인지 모르고 있던 남자의 눈동자 커졌다.남자는 서둘러서 시련을 열람해 보았다.

[ 퀘스트 : 소년의 구조

등급:??? 기한:???

이대로 두면 가엾은 소년은 죽습니다.그걸 녹음의 정원의 주인은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은 소년을 데리고 성역을 벗어나 소년이 살수있게 도와주십시오.

보상:1.신들의 저주의 해제 2.예지자의 진리의 눈
동자 3.녹음의 정원의 자유출입권

*실패시 신들의 저주가 2배로 강화됩니다.]

시련의 내용을 모두 읽은 남자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현재 필요한 것을 대가로 거는 그 행동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나는 모든 신도와 권위자들에게서 세상을 속인 대가를 받아낼거다.”

예외는 없다는 듯이 단호하고 차갑게 안광을 빛내는 남자의 태도에 잠시 땅이 흔들렸다.

[성역, 녹음의 정원이 대가를 지불하고 당신에 간접 메시지를 보냅니다.]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아이는신도가아니다.그아이는그저제멋대로에말려든것뿐이다.그아이는가엾은아이다.그아이는아무것도하지않았다.그아이는죽으면안된다.죽을수없다.그러니살아가야한다.]

강제로 열람된 빼곡하게 쓰여 띄어쓰기조차 되어있지 않은 메세지를 보며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성역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성역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했는지 더이상의 메세지도 창을 띄울 힘도 없었는지 곧 조용해졌다.

남자는 소년을 잠시 내려다 보았다.이제 보니 소년은 신도라고 하기에는 낡고 허름한 옷을 입고 있고 신발이 없는지 발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는데 그 마저도 낡았는지 피가 스며든 붕대가 붉게 변해있었다.

“....젠장.”

창백하고 앳된 얼굴이 무척이나 지쳐보였다. 마치 이세계에 처음 떨어져 고단했던 자신의 어린 나날들 처럼.

그것은 무언가에 무척이나 한계까지 지쳐있는 사람만이 느낄수있는 감각이었고, 지금까지 이런 동질감을 느껴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속마음을 감추며 시련의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소년을 구하는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낮게 욕짓거리를 뱉으며 소년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소년은 몸은 너무 가볍고 얇아서 힘조절을 잘못하면 죽어버릴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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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28 06:40 | 조회 : 2,031 목록
작가의 말
블래티

시스템물 신작이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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