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1) -바아보오님



“여태 잘만 해오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수십 번의 목격이었다. 다른 여자와 하하호호, 다정하게 놀아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가끔은 몇 없는 친구에게 듣기도, 가끔은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가 마주치기도 하였다.

그러면 늘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가는 건 그였다.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맞닿은 그와 나의 시선이 엇갈리는 것이었다. 그는 보란 듯이 꼬옥― 곁에 있는 여자를 감싸 안는다.
그것을 본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와의 약속도 깬 채로 집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나였기에, 내가 한 발 뒤처지게 되었다.

먼저 반한 쪽이 죄였던가, 그렇다면 나는 그 죄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잘만 해오다가 갑자기 왜 이러냐는 그의 말에 나는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다.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당신에게 있어서 내가 잘 해왔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야…? 나는 정말 궁금해서 그래. 나는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확고한 결심이 서니 평소에 못 다한 말들이 막힘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한 건 네가 아니었나?”


이전보다 더욱 싸늘해진 그의 목소리에 나는 더욱 숨이 가빠져오는 듯했다.


“그래…. 이성애자였던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다가간 그때의 내가 원망스러워질 정도야. ……그래도 난 다 참아보려고 했어…. 그런데 제일 미치겠는 건, 당신이 다른 사람의 체향을 묻히고 오는 거야…. 나는…, 나는… 그게 제일 용납이 안 돼서… 그래서….”


눈물로 목이 메어왔다. 집에서 혼자 연습 삼아 수없이 해봤던 말이다. 최대한 직설적이도록, 최대한 냉랭하게, 최대한 정이 안 느껴지게끔 계획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심지어 나 자신마저도 말이다.

이렇게 울어도 따스한 말 한 마디 건네주지 않는 사람이 그였다. 오히려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의 이면을 알기에, 나는 더욱 더 서럽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할 말은 해야 했기에, 조금은 참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 거야…. 이제 나도… 당신도… 힘든 일은 없게 할 거니까…….”
“너―”
“우리 이제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눈물이 시야를 가려오는 듯했다. 점점 그의 형상이 흐려져 간다. 차가운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린다. 더 이상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기가 힘들었다. 입술이 덜덜 떨려오고, 눈은 점점 촉촉이 젖어 갔다.

그의 말 또한 성공적으로 끊어냈다. 소심한 내 복수였다. 이별은 그에게 아무런 타격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나마 복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내가 너처럼 울어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질 그의 말이 두려워 두 귀를 막았다.
그러자 그가 곧장 내 팔을 붙잡고 끌어내렸다.


“너는 그나마 시원한 애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봐. 아―주 구질구질한 녀석이었어.”


그 말과 동시에 그가 나를 밀쳐냈다. 그러고는 나를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너같은 녀석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이 나도 참… 갈 데까지 갔구나.”


그의 말에 나는 혼이 빠져 나가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듣고자, 여태 그렇게 온갖 눈물이란 눈물은 다 흘리며 청승맞게 그를 기다린 것이었던가.




“뭐―!!!!!!!”
“까, 깜짝이야….”
“정말, 정말, 정말 그렇게 끝낸 거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런 놈은 발로 한 번 차줘야지―!”


그와 헤어지고 난 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오랜 친구인 이형이었다.


“아니…. 홧김에 손이 먼저 나가더라.”
“설마―”
“뺨 한 대… 쳐버렸어.”


내 말에 이형이는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기쁨에 몸서리를 쳤다.


“아, 그러게 내가 뭐랬냐―!! 너도 한다면 하는 애라니까? 네가 안 해서 그렇지. 에휴, 그래 걔가 네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몰라서 그래. 알았으면 그렇게 했겠냐? 이 답답한 녀석. 그런 녀석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질질 빨고 다닌 거냐.”
“하하….”


이형이의 말에 나는 조용히 웃음만을 흘릴 뿐이다. 그러자 이형이가 답답한 녀석이라며 너는 할 말도 없냐며 딴청을 걸어왔다. 하지만 나는 내 속에 응어리진 채 있던 말들을 모두 이형이가 대신 내뱉어줬기에, 역시 조용히 웃어 보일 뿐이었다. 고마운 친구였다.


“에휴… 일주일 동안 연락도 없어서 죽은 건가 싶었더니,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이형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로, 거의 유일하게 내 성향을 알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준 고마운 친구였다. 하지만 그런 이형이가 있는 반면에, 나를 무시하고 폄하하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늘 나를 지켜주고 함께 싸워준 사람은 이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늘 이런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이형이를 만나게 되었다. 오늘도 그렇게 된 것이다.


“미안, 그 이후로 머릿속이 너무 답답하고 복잡했어….”


가만히 멍때리고 있으면, 마치 금방이라도 그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게 바깥에 나오면 느껴지는 바람결이 그의 손길이라도 된 것만 같았고, 모든 것이 그의 대체품으로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것은 잠이었다. 잠을 자면 잠시라도 그를 잊을 수 있었고, 평소 꿈을 잘 꾸지 않는 나로서는 그와 멀어질 수 있는 최적화된 방법이었다.


“인마,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그럴 때일수록 친구를 찾는 거야―! 그래, 기분이다. 일주일 만에 집도 탈출하고, 드디어 속세의 향기를 맡으러 나온 친구를 위해 이 몸이 오늘 밤새도록 쏜다―!!”
“와―!!”


나는 이제 그에게서 벗어나 이전과 다름없는, 친구와 놀고 먹기를 좋아하는 나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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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18 17:18 | 조회 : 9,24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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