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첫만남(2)

17-2화 첫만남(2)

그 뒤로 우리는 좀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이야기라고 해봤자 그냥 서로 관심사랑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정도?
바로 대공에게 가서

'아버님! 아드님을 제게 주십시오!'

'안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허락할 수 없다!'

'그럼 흙을 뿌리겠습니다!'

'이런 당돌한 아이를 봤나?!'

이런 전개는 나타나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그렇게 할까, 라고 아주 조오금 생각했었다.
전혀, 내 사심은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거다.

"오늘은 즐거웠어요."

"네, 저도 당신을 봐서 즐거웠습니다."

어우, 바로 멘트가 날라온다.
저렇게 순진한 얼굴로 말하다니...계략인가? 계략이겠지?
오늘은 그래도 호감을 쌓은것 같다.
저쪽도 별 말이 없는 것 같고, 성공이라고 봐도 될것이다.
그리고 마차에 오르는 순간, 바이온이 손을 내밀었다.

"제 손을."

"아, 안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이럴 때 여성을 에스코트하는게 기쁨이니까요."

순간 나는 오글거림과 함께 웃음이 나올뻔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아직 십대다.
성숙한게 잘 보이는 18세쯤이던가, 20대쯤이면 모르겠지만.
아직 15살 밖에 안되는 꼬맹이가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귀엽게만 느껴졌다.
아무튼 나는 마차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리인~!"

기숙사 방에 들어가자 에리카가 나에게 달려드는 듯이 뛰어왔다.
아무래도 내가 나갔다 오는게 궁금했나보다.

"별거 아니라니까?"

"린이 결거아니라고 했을 때 정말 별거 아니였던 적이 없었는걸."

"그랬....었나?"

에리카의 끈질긴 물음에 나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로 모르쇠 작전으로 갔다.
결국 에리카는 포기하고 나와 함께 과제를 마무리하러 갔다.
우리가 학원 내의 시장에 들렸을 때였다.

'사락'

이였다고 생각한다.
흔히 우리가 아는 영화처럼 운명적인 주인공들이 서로를 모른채 스쳐지나 갈때.
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잠깐만....!"

나는 서둘러 그 옷자락을 잡았다.
지금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조율자님에게 들은 말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길에 분기점이 될 날이 올것이다.'

난 지금이 그때라고 확신했다.
절때 놓칠 수 없어.

"네? 무슨 일이신지..."

나의 말에 돌아본 것은 새하얀 법복, 말끔한 이목구비를 가진 금발의 신관이였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우리 가문이 악마와 관련이 있다'

진짜 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이 맞다면, 십중팔구 악마나 마족이 관여한것이다.
나는 에리카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에리카."

"어, 린? 왜 그래...?"

에리카는 내 분위기를 보고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는지 조심스레 대답했다.

"이 사람하고 할 말이 있어. 정말 미안하지만, 과제는 지금 못 할것 같아."

"그럼 린 점수가...."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야."

"읏...알았어. 그럼....먼저 갈게...."

에리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금 시무룩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우리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신관은 좀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

"뭔가 제가 잘못한 것이라도...?"

"아뇨, 신관님. 저는 신관님에게 상담할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나의 진지한 눈빛에 신관님도 일단 시답잖은 것이 아님을 알았는지 좀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럼, 여기서 이야기 할 수는 없으니 신전으로 갈까요?"

"네. 갑작스럽게 붙잡아서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신의 종자의 일이니까요."

죄송하지만 신관님.
이것은 고민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시겠지요...
나는 신관님과 함께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빛의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다니엘 신관님, 볼일이 있으셔서 나가셨던게...?"

신전에 들어가자 다른 신관이 의아하게 물었다.

"이 아가씨가 잠시 절 붙잡으셔서..."

신관은 무슨 오해를 했는지는 몰라도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진 몰라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니 걱정마세요;;

"이리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상담실이라고 쓰여진 방으로 들어가자 탁자 하나와 의자가 놓여있는 방이 나왔다.
상담인의 편안함을 위함인지 벽은 초록빛과 하늘빛으로 칠해져 있었고, 의자는 푹신했다.

"자, 그럼 무슨 고민인지 들어볼까요?"

나는 돌려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희 가문이 악마나 마족에 관여된것 같습니다."

다니엘 신관은 잠시 입을 열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 이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시는지 아시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나중에 신관이 발견하는 형태가 되면 우리가 죄인이 된다.
그러니 그전에 도움을 구할겸 오해 받는 상황이 되지 않게 하는게 중요하다.

"저는 아그네스 가문의 여식, 린 아그네스 리그렛이라 합니다."

"....."

"저희 아버지가 마족, 혹은 악마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니엘 신관은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나는 속으로 제발 수락하길 빌었다. 나는 세드엔딩이 되는 것이 싫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이곳이다. 불행은 보는건몰라도 직접 불행하게 되는건 싫어.
그러니 제발...!

"알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내 얼굴이 환해졌다.

"다만, 물어볼게 있습니다."

"무엇을....?"

"이건 당연히 비공식적으로 가는 거겠죠?"

"네...그렇습니다."

공식적으로 가게되면 악마든 마족이든 있든 없든 우리 가문은 정치적으로 찍힌다.
표적이 되기 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행은 필연이 될 것이고.

"이렇게 말하면 속물적으로 들리시겠지만..."

"아니에요! 신관님들이 검소하고, 자선적인 생활을 하시는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사실은 그에 따른 장비가 필요합니다."

"장비요?"

"네, 저희는 악마나 마족을 퇴치할때 대악 장비를 착용합니다. 다만 그것은 교회의 것이라 빌리는 형태인거지요.
지금처럼 개인이 할때는 빌려주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필요하신건?"

"가문을 조사하면 되는 것이죠?"

"네, 정확히는 악마와 마족의 유무와 해결책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아그네스 가의 머물 구실이 필요합니다."

그렇다. 뜬금없이 신관이 머물게 된다면 당연히 마족이나 악마측의 의심을 살것이다.
즉, 거짓말을 해햐하는데 금방 들킬 거짓말을 하게되면 안되는 것이다.

"....."

"...."

잠시간의 침묵 후, 다니엘 신관이 말했다.

"지금은 생각해도 답이 잘 안나오는 듯 하니, 나중에 약속을 다시 잡는건 어떻겠습니까."

"네,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관님이 성호를 그으셨다.

"부디 사악한 마족의 술수가 없길 빕니다."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편지를 보내거나 하겠습니다."

"네, 그럼....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기본적인 일을 했을 뿐인걸요."

"네, 그럼 전 이만...."

나는 신전을 나와 다시 시장으로 갔다.
오늘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긴 하지만 과제는 과제다.
내 점수....까이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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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5-07 12:31 | 조회 : 1,118 목록
작가의 말
Deemo:Hans

곧 개학이면 소설 올리는 것도 잘 못올리겠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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