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유드그라실

2화-유드그라실

"아가씨, 들어가겠습니다."

"아, 알프레드 들어와."

침대에 누워 멍하게 있자 알프레드가 3명을 데리고 왔다.
문이 열리고 3명이 들어오자 난 그 모습에 조금 많이 놀랐다.

"우와....완전 달라..."

3명은 집사복을 입고 들어왔는데 외모가 아주 그냥 빛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외모버프가 너무 심한거 아냐?!
셋다 완전히 깨끗해지니 그들의 외모가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었다.

"윽, 불편해..."

야생적인 느낌이 드는 핀.

"나 폐 안끼치게 열심히 할게!"

누가봐도 귀여운 알데하이트.

"....잘부탁드립니다."

차가운 느낌의 지니.

"모두 잘 어울린다."

3명의 새로운 멍하니 감상을 내뱉자, 각양각색의 반응들이 돌아왔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고마워!"

"으엑, 이런게 뭐가 어울린다고."

"....."

난 상념에 벗어나 손벽을 쳤다.
이제 앞으로의 할일을 배정해줘야지.

"너희는 일단 기초체력을 기를거야!"

나의 발언에 알데하이트만 이해하지 못하고 물음표를 머리에 띄웠다.
음....알데하이트도 이해하게 할려면...

"앞으로 이 집의 일은 매우 힘들테니까, 너희들의 기초체력을 키워주려는 거야."

"아하!"

"알프레드, 집사교육과 함께 해주겠어?"

"분부대로."

알프레드가 셋을 데리고 나가려 문을 열자 문 앞에서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알프레드는 능숙히 문에서 떨어져 예를 다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아그네스님."

"앗, 어머니!"

나와 알프레드의 반응에 핀은 어버버하고 지니와 알데하이트는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샤를님."

"그래, 너희들이 새로 온 아이들이구나."

샤를 아그네스 에이린. 아그네스 자작가의 안주인.
차분하고 신중하며 지혜로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아름답다. 여자인 내가 봐도 아름답다. 몸매도 아주 좋으시다.
어머니는 청초한 미인상이셨는데 행동과 매우 어우러져 어머니가 처음 사교계에 나오셨을 때 매우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다과회에 갔다오셨는지 매우 잘 꾸미셨는데 어머니는 많이 꾸미지 않는 성격이시라 그게 또 잘맞았다.
아무튼, 어머니가 들어소시면서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시는데, 후광이....비추는 듯 했다.
어머니, 후광이 너무 눈부셔요!

"어...어어....안녕하세요..."

핀은 얼굴이 빨개져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제 고개를 들렴."

전부 고개를 들자 어머니는 천천히 3명을 살펴보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셨다.

"지혜롭고,"

지니를 보시고,

"용감하고,"

핀을 보시고,

"아직 여리지만 굳세어질 아이구나."

알데하이트를 보시고 말했다.
어머니, 근데 알데하이트를 보시기만 했는데도 알아차리신건가?!
아니, 모르시겠지? 모르실거야.

"우리 딸이 아직 많이 부족하니 너희들이 우리 딸을 잘 보살펴 주렴.
너희들은 충분히 잘할 수 있을거란다. 우리 샤를의 친구가 되어주려무나."

어머니의 말에 3명 모두 대답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3명이 마음에 드시는 듯 했다.

"네./네!/네에..."

"샤를님, 이제 곧 저녁시간입니다."

어머니의 전속 메이드 메리의 말에 어머니는 '어머, 그렇구나." 하셨다.
어머니가 알프레드에게 눈짓을 하자 알프레드는 즉시 알아듣고 3명을 데리고 나갔다.

"이제 당신들이 사용할 숙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3명이 나가자 어머니는 나를 살포시 안아주셨다.
아아...좋아라....

"린, 난 네가 위험하지만 않다면 네가 하고 싶은 모든걸 해줄 수 있단다."

"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책임을 져야한단다. 알았지?"

"네!"

"그래, 린. 엄마는 널 사랑한단다."

"저도요."

난 진심으로 이 시간이 좋았다. 어머니와 평범하게 지내는 일상.
이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그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한다.

"엄마는 이만 가보마, 저녁시간에 늦지 말거라?"

"네, 엄마."

어머니가 나가시고 나는 하녀 제니퍼를 호출했다.
제니퍼는 금방 내 부름에 응했다.

"네, 아가씨."

"제니퍼, 이제 가볍게 씻을거니까 준비해줄래? 아, 그리고 쓸 것도."

"네, 아가씨."

그러고보면 이제 나도 귀족에 익숙해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명령하고 하대하는 것이 이리 쉽다니...사람은 참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틀린게 없다.
목욕물이 데워지는 동안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도 한국어는 못 알아보니까 괜찮네.'

내가 생각을 정리할 때는 한국어로 종이에 적어 놓는다.
이러면 누가 봐도 못알아 볼테고 나만 알아볼수 있다는게 편리했다.

'문제는...대체 왜 아버지가 죽은 거지?'

로져스 아그네스 시몬스. 나의 아버지.
정말 평범한 아버지다. 어디 특출난데가 있다면 영지민들을 잘 보살피는것?
그 외에는 정말 평범한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가 왜 죽을까...보통 이런거는 정치 싸움이라던가 아버지에게 무슨 숨겨진게 있거나 등등 여러가지다.
하지만 정치싸움이라면 아버지는 암살 당하는 거겠고, 그걸로 '나'가 흑화하지 않는다.
애초에 정신이 망가지는게 참혹한걸 보거나, 그에 해당하는 충격을 받았을 때인데...
애초에 여기는 외딴 영지라고...그런 일이 생길 정도라면 전쟁인데, 그 전쟁은 이때 안일어났단 말이지...

"아아, 너무 복잡해..."

결론은 하나다. 계속 준비를 해나갈것. 그것외에는 답이 없다.
한참 종이에 끄적이고 있자 제니퍼가 다가와 나에게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아가씨, 목욕물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응, 항상 고마워."

제니퍼와 다른 시녀들이 내 옷을 벗기고 있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여자로써의 몸이 다 완성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몸.
어머니가 저렇게 이쁘신데 나도 크면 저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하며 이쁜 아이를 낳고 주위에서 존경받는 어머니.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좋아, 아버지 문제를 해결한 다음 이걸 목표로 해야지."

목욕 준비를 마친 나는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저녁을 먹으니 적당히 향이 나게하는 장미향 거품 목욕.
우리 하녀들이 아주 센스는 좋다.

"하아아...."

따뜻함이 온 몸을 감싸와 표정이 풀어지자 주위의 시선이 한순간 바뀐 기분이 들었다.

"?"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하녀들은 꼼짝도 않고 서있을 뿐이였다.
음....딱히 상관없나. 목욕을 마친 후 나가서 로션을 바르고 가볍고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미 계셨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날 맞이하셨다.

"그래, 얼른 오거라. 슬슬 음식이 나올 참이였단다."

살며시 자리에 앉자 요리사가 음식을 가지고 왔다.
오늘의 요리는 에피타이져로 닭가슴살 샐러드, 메인 디시로 와인을 곁들은 고기 요리 였다.
이 세계에 와서 좋은 점은 이런 고급요리를 하루에 3끼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였다.

"자, 이제 먹자꾸나."

난 먼저 닭과 샐러드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닭은 매우 부드러웠다. 닭가슴살이라고 했는데 이리 부드러운걸 보면 다른 종류인가?
자작가도 이런 음식을 매일 먹는데 백작이나 후작은 어떨까...
뭐 나는 지금도 좋지만!

"그러고보니 이제 슬슬 린도 유드그라실에 갈 때가 되었구나."

"유드그라실에요?"

왕도 유드그라실. 대륙의 중앙에 있는 세계 최대의 학교.
이곳에는 신분의 귀천 없이 모든 자들이 실력만 있으면 입학할 수 있는 곳이였다.
매년 인재들을 배출해내는 것 덕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얻게 된 유라시아는 하나의 국가로써 『중립』지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게임의 주인공도 이곳을 졸업해야 본격적인 스토리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 3명도 그곳에서 실력을 키운것이기도 하였다.

"네, 좋아요."

슬슬 이정도면 학교 같은 곳을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침 지금인가보다.
적어도 그 학교에 가게되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내 몸을 지킬 수 있어!

"그럼 아비가 신청해놓을테니 린은 준비하고 있거라. 3일 뒤에 갈게다."

그런데 보통 이런 게임의 학원이라함은 보통....권력이 뒤에서 판치는 곳!
그곳이 중립의 지역이지만 학생들 자체의 파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학원에 갔을 때는 이 나라의 공작의 아들 , 왕세자, 공작 영애로 파벌이 나뉘어 있었다.
그거의 과거면.... 미래의 그들의 부모가 파벌을 이루나?

"매우 기대되요!"

예전부터 난 이런걸 좋아했다. 머리싸움이 판치는 그런 것.
자작자 영애가 거기가서 뭘 하겠냐만은 적어도 줄을 잘 서기라도 하면 인생 핀거다.
그렇게 줄을 잘 서서 천천히 애들을 강하게 만들면 작전 단계는 거의 완성.
그 시기에 적당히 변명을 둘러대서 빠져나온다음 아버지를 지키면 된다.

"거기가면은 이제 몇 달에 한번 씩밖에 아비와 어머니를 보지 못할텐데 괜찮니?"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싱글벙글하자 아버지가 약간 쓴웃음을 지으며 물어왔다.
내가 속은 성장한 청소년이지만 외견은 어린아이.
지금은 어린아이의 행동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답이다.

"아, 어어.....저 그럼 안갈래요!"

학원을 가게 된다는 것은 기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
그리고 안절부절하는 표정까지 완벽! 귀족이라면 이런 연기가 들킬 수도 있겠지만 두 분은 나에게 꽁깍지가 씌인 상태.
그리고 나는 어린아이라는 이점! 후후....예상대로 내 연기에 속았다!

"후훗."

"린, 그 마음은 알지만 너도 이제 곧 있으면 어엿한 성년이다. 부모와 떨어져 있는 것을 배워야 어엿한 이 아그네스 자작가의 주인이 될 수 있단다."

내 모습에 다정히 격려의 말을 건네는 아버지.
난 치마자락을 꼬옥하고 잡으며 살짝 풀이 죽고 다짐한 것처럼 보이게 말했다.

"알겠어요."

"그래, 게다가 혼자 가는건 아니란다. 수행원을 데려갈 수 있단다."

여기서 반색을 하며 물어본다!
효과는 굉장했다!

"정말로요?!"

"허허, 그래그래. 밤에 혼자 무섭다고 이불 뒤집어 쓰고 자지 않아도 된단다."

아뇨? 그런적 없는뒈요오? 혼자서 잘 자는데요?
혼자서 어디가서 틀어박혀 잘 살 수 있는데요오?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러면 제가 데려온 아이들을 데려가도 될까요?"

"아, 네가 노예시장에서 사온 아이들 말이냐? 흐음..."

나의 말에 아버지는 조금 고민하시더니 흔쾌히 대답하셨다.

"알았다. 자기 또래 친구들이 있는게 더 편하겠지."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는 알프레드에게 그 애들을 내 방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이제 애들에게 내 계획을 설명할 차례다.

"들어오도록 해."

잠시 후, 3명이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본 3명의 표정은 가지각색이였다. 무표정, 신나고 기대하는 표정, 짜증나는 표정.
예상한대로다. 정말로 알기 쉬운 애들이였다.

"머물 곳은 어때?"

"괜찮습니다."

"되게 좋아, 고마워!"

"...."

아무말도 하지 않는 핀을 잠시 보다가 나는 내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알고 있는게 낫겠지.

"일단 너희는 강해져야해. 그런 조건으로 그 학원에 들어가는 거니까, 열심히 해야해?"

"아니, 갑자기 불러놓고서 강해지라니...무슨 심보입니까."

"아차."

나는 내 상황을 말해주었다. 내가 유드그라실에 들어가게 되었다는것.
그리고 너희는 내 시종으로써 유드그라실에 가게 될 것이라는걸.

"그리고 시종인 너희가 강해져야 날 지키지. 나도 내 몸은 지키기 위해 노력할 거지만 무력은 너희들이 행사해야돼."

물론 내가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은 하겠지만 내가 잘해도 이유없이 습격당하는 일도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너희들이 열심히 수련해서 날 지켜주렴.

"응, 린 곁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

가장 먼저 알데하이트가 힘차게 대답했다.
내가 꿈마법으로 알데하이트의 꿈에 들어갔을 때, 알데하이트의 기억은 충격으로 날아가고, 평민으로 자라고, 우연히 나를 만나서, 지금까지 오게됬다는 기억만이 존재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로써는 씁쓸한 감정만이 남을 뿐이였다.

"지니는 알아서 잘 할수 있지?"

"최선을 다하죠."

좋아, 지니는 됐고...이제 핀이다.
난 핀을 설득시킬 말이나 행동을 생각하며 핀을 봤다.

"핀-."

"알고 있어. 노력하면 되잖아."

"어?"

나는 그대로 잠시 굳고 말았다. 그 핀이 내 말에 대답해주었다.
별 말없이, 내 말을 끊긴 했지만,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지만! 얌전히 대답했다!

"어,응..."

"그래서, 언제 출발하는데?"

"한 2,3일 뒤?"

내 대답에 3명에게서 조금 놀란 대답이 돌아왔다.
아, 너희들은 온지 하루밖에 안됬으니 다르게 느껴지겠구나...
그나저나 지니가 좀 놀란 표정을 짓는건 처음본다.
뭐, 놀란 표정이래봐야 눈썹이 조금 올라간거지만...

"뭐, 그렇게 됬으니까 앞으로 잘부탁해!"

"응!"

"후-"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알데하이트도 마주보며 웃어주었다.
핀은 뭐...기대도 안하고, 지니는 피식 웃었다.
이건 또 처음보네. 미래의 대마법사께서는 항상 무뚝뚝했는데 지금 보니 새롭다.
....이런 것도 좋을 지도?

"자, 그럼 알프레드?"

"네."

"남은 기간동안 시종의 예법을 저 애들에게 확.실.히 가르쳐줘."

"알겠습니다."

음, 역시 누군가에게 맡기는게 편해. 그나저나 알프레드는 지금까지 내가 시킨 것에 대해 한번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알프레드의 업무 사전에는 '알겠습니다', '완료했습니다.'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아, 이거 써먹을까. 나중에 카리스마 보여줄 때 '할수 있냐 없느냐를 입에 논하지마라, 넌 그저 하겠습니다라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라고 해야지.
크으- 내가 생각해도 멋있는 말이다.

"잠깐, 시종의 일?"

"응."

이제와서 뒷북을 치는 핀에게 난 상큼한 미소를 날려주었다.
처음부터 시종일을 한다고 했으면 그정돈 예상했어야지.

"아, 알프레드. 3일이면 핀에게는 좀 촉박한 것 같네요. 핀은 더 혹독히 해주세요."

"예, 아가씨."

내 말에 순간 핀이 나에게 짜증을 내려 했으나 알프레드의 차가운 말이 핀의 짜증을 베어냈다.

"야, 잠깐-"

"조용."

"헙-."

순간, 나도 살짝 놀랄 정도로 차가운 말이였다.
평소에는 그냥 손녀하나 둔 할아버지 같은데, 이렇게 보면 또 멋있다.

"아가씨에게는 '야'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ㄴ...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아가씨."

그 핀이 금세 꼬리를 내릴 정도로 알프레드에게서 나오는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알프레드는 3명을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
나가는 중 하나의 시선에 핀의 노려봄이 섞여있는게 느껴졌지만 난 신경쓰지 않았다.
지가 뭘한다고? 난 갑이란다, 꼬마야?

"음...유드그라실에 대해 더 알아보기나 할까..."

지금의 유드그라실은 내가 알고 있는 유드그라실과 다르다.
표면적으로 있는 과목이라던가 구조는 다르지 않겠지만 안의 인간이 다르다.
그것들을 위해서라도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네, 아가씨."

나의 침대 옆에 놓여있는 종을 살짝 흔들자 문이 살짝 열리며 짧은 금발의 하녀가 들어왔다.
이름이 유니였던가.

"유니, 토니를 만나러 갈거야."

"네, 아가씨."

토니 필즈. 우리 집안의 가정교사다.
인격도 좋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그러면서 겸손하다.
이런 완벽한 인격자가 나의 선생님이시다. 당연히 싫을 수가 없다.
그래서 토니와 만나는 날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가씨?"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날 반기는 고운 미성의 목소리.
언제나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다.

"응, 나 유드그라실에 가게 되었어."

"아, 정말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아가씨도 그곳에 가시게 되었군요."

참고로 토니도 유드그라실 출신이다.
그 때문인지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때는 뭐든지 가르쳐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토니도 유드그라실에서는 중상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다.
나는 딱히 1등을 노리는건 아니니까 상관없지만 토니가 상위권에 머물지 못했다니 정말 놀랍다.
얼마나 괴물들이 있는거야...

"그래서 말인데, 유드그라실에 있는 귀족들에 대해 알려줘."

내 말에 토니는 살짝 눈썹이 올라가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했다.

"그렇군요, 배우는 것은 거기서 배울테고, 거기서 조심해야 할건 다른 귀족...강력한 세력을 지닌 귀족들.
알겠습니다. 이리 오셔서 앉으시지요."

겨우 한마디 말했는데 내 진의를 깨닫고 있는 토니가 새삼 대단히 느껴진다.
이정도는 그야 누구나 간단히 결론이 나오겠지만, 이렇게 금방 깨닫는 사람은 처음이라 더 대단해 보이는 듯 했다.

"지금 제가 졸업한지 꽤 되서 말이죠...일단 유드그라실에 있는 친구에게 저번에 듣기로는 '늑대'가 세력이 확장됬다고 합니다."

"늑대?"

"아, 은어라 아가씨는 잘 모르시겠군요."

궁금해하는 나에게 토니는 천천히 설명을 해주었다.
'늑대'는 개국공신 가문인 로열울프 가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국이 세워질 때부터 지금까지 황가의 검으로써 제국을 지켰다고 했다.
그 덕에 제국이 강대해진 원인으로도 꼽힌다.

"그 가문은 지금 제국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소지하고 있죠.
하지만 로열울프는 대부분 권력에 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변방에서 제국을 위한 칼과 방패가 될 수 있도록 대기하는 것 뿐이죠."

"그럼 그런 가문의 세력이 강해진다는건..."

"예, 요즘 마족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족, 마계에서 사는 저주받은 종. 마왕 아래 뭉쳐 지금까지 인족을 위협해온 최대의 적.
마족은 인족보다 몸이 더 강하고, 마법에 더 특화된 몸을 지녔다.
또 종족에 따라 강해지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묘사로는 악마같은 외모와 검은 피부를 갖고 있으며 매우 사악하다 알려져있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그 가문의 장자는 세력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그 추종자들이 멋대로 활개치는 거죠."

"그럼 문제가 되지 않나요?"

"그게...장자가 알면서 침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암묵적인 동의 속에서 그의 추종자들이 세력을 넓히는 거죠."

음...추종자들이 세력을 넓히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바로 그 추종자들이 무엇을 하느냐.

"혹시 그 추종자들이 일탈을 저지르나요?"

자신의 패거리가 아니라고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양아치 같은 행위.
하지만 이런 곳에선 그런 행위는 금방 묻힌다.
다행이 토니는 웃으며 내 질문을 부정해 주었다.

"아뇨, 다행히 그러진 않습니다. 울프가문의 장자가 그런 것은 싫어하거든요."

"휴..."

하지만 내 안도의 한숨을 날려보내는 듯 토니의 다음 말이 무겁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공작가의 영애, 그녀의 파벌입니다."

골든로즈, 제국의 제일 가는 부자가문.
그 가문의 재력은 작은 왕국은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남자애보다 여자애들이 상대를 괴롭히는게 더 심하다고 했던가.
토니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파벌은 매우 악랄한 방법으로 세력을 넓혀왔다.
신입중 한명을 지목하고 철저하고 은밀하게 괴롭혀 짓밟고, 다른 자들이 들어오게 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대부분 그녀의 파벌에 들어가게 된다.
들키게 될 경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입을 막는다.
남자가 그 광경을 봐도, 여자의 일이기 때문에 섯불리 관여하지 못한다.

"아...위험하네요..."

"제일 조심하셔야 하기도 합니다."

내 위치는 자작가문의 영애. 그렇게 높지도 아주 낮지도 않은 계급.
그렇기에 유야무야 넘어가기 좋은 계급.
유력한 파벌에 들어갔다고 해도 그녀의 파벌이 날 짓밟고 그냥 내가 들어간 파벌에 사과하고 약간의 '성의'를 보이면 넘어가는 계급이다.
그러니까 해결책은 단 하나다.

"그냥 눈에 안 띄는게 최선이네..."

앞으로 고생길이 열리는 미래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토니는 그런 내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그도 여자의 사정을 대충은 알고 있나보다.

"그래도 고마워요, 어떻게 할지 감이 잡혔어요."

"예, 도움이 되었다면 영광입니다."

"그럼 난 가볼게요."

"예,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아가씨."

난 천천히 방에서 나와 나의 방으로 향했다.
시녀들에게 잘 준비를 부탁하고 나는 다른 시녀들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다행인건 그들에게 나는 그냥 삼류 엑스트라. 써먹고 버리기 좋은 존재.'

그렇기에 큰 관심을 끌지 않고 평범하게 어린 자작 영애를 연기하면 그들의 관심은 줄어들것이다.
문제라면...나의 시종으로 되어있는 3명들. 그들의 관심이 3명에게 꽃히면 나는 자작영애라 뭘 할 수도 없이 휘둘리게 될 것이다.
지니야 잘 할것이고, 알데하이트도 왠만하면 내 뜻을 이해할것이다.
제일 큰 고민은 핀인데....잘하겠지...? 미모 하나로 그들의 관심을 끌지 않길 바란다...
아직 애들이기도 하니까 미모가 완성되어 있지 않으니 아직은 좀 잘생긴 아이로 보일 것이다...그럴 것이다.
아아....불안해!

"안녕히 주무십시오, 아가씨."

여러 생각과 불안이 교차하는 동안 어느새 시녀들의 손길이 멈췄고, 천천히 내 방에서 나갔다.
난 푹신거리는 침대에 누워 남아있는 불안을 밖에 있는 시녀들에게 안들리게 이불킥을 하며 떨쳐냈다.

"그래, 고민은 그때부터 하자.너무 고민하는것도 좋지 않고!"

그렇게 스스로 다짐하자 편안히 잠기운이 나에게 다가왔고, 난 편히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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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21 23:08 | 조회 : 1,761 목록
작가의 말
Deemo:H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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