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파멸의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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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감고 있던 눈을 뜬다. 밖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이미 사용인들이 전부 나가버린 집에서 소란스럽다는 것은 기쁜일 일까, 슬픈일 일까. 적어도 기쁜일이 아님은 분명하겠지.
하지만 적어도.....후회는 되지 않아. 이미 각오한 일이다.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아가씨, 이제 어떻게 할까요?"

옆에서 한 남자가 나에게 물어왔다. 짧고 거친 갈색의 머리칼과 공손한 말투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듯 했다.
그 옆에는 깔끔한 옷차림과 짙은 녹색의 머리칼을 가진 청년과 황금같은 머리카락, 앳되보이는 인상의 소년이 갈색 머리칼의 남자와 함께 날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가와 눈에는 나에 대한 신뢰와 절대적인 충성심, 연정, 각오가 담겨있었다.

"그래, 드디어 이 순간이 왔네."

내가 어릴때부터 나와 함께 있어준 나의 창이자 방패들, 그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순간이 왔다.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나의 손발들이, 지금...죽으러 간다.

"너희도 알고 있었겠지. 이렇게 될거란걸. ...정말 바보같아."

자조적인 웃음이 섞인 말로 비웃어주자 세 명은 동시에 피식하고 웃었다.
그들은 내가 진심으로 비꼬는게 아닌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나온 웃음.

"우리의 목숨은 당신의 것. 당신은 그냥 명령만 내려주시길."

이미 세명은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에 내 입술이 저절로 짓눌려졌다.

"내 마지막 명령이야. 1층당 한명씩 맡아서 마지막에는 아들만 남겨."

세 명의 남자는 말없이 일어났다.
그대로 문을 나가려는 순간, 금발의 소년이 나지막히 말했다.
그의 눈은 미안함으로 가득차있었다.

"당신에게 그런 표정은 어울리지 않아요. 끝까지 변함없이 있어줘요."

지금의 내 표정이 어떤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평소와 같은 차가운 표정이 아니였겠지.
내게 감정은 사치라고 생각해 버렸는데, 그랬는데도, 나에게는 아직 감정이란 것이 남아있나보다.

"잘가, 모두.....그리고 고마워."

나 한 명 밖에 없는 방에 내 목소리는 도착지를 찾지 못하고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얼마가 지났을까, 더이상 소란스럽지 않았다.
분명 그들이 잘 해준 것이였겠지.

"이걸로....된거야."

내 계획은 전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지막 내가 버려할 것도 전부 버렸다.
태어나서 행복할 줄 알았던 삶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버렸고, 이미 나는 구원받을 수 없었다.
제물이 되고, 아버지를 죽이고, 내 소중한 이를 죽이고.
버릴때로 버린 이 삶에 더이상 버릴게 없는 줄 알았더니 아직 감정이란 것이 내 안에 남아 나의 머릿속을 멤돌고 있었다.

-뚜벅

그리고 이 적막한 공간에 한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
격양되지도 침울해지지도 않은 무뚝뚝한 발소리가, 방 앞에서 멈췄다.
잠시의 침묵이 멤돌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사라졌다.
내 시야에 보이는 것은 훤칠한 키와 곧게 뻗은 눈매, 굳게 다물어진 입가, 나와 같은 검은 머리칼을 가진 미청년이였다.
잘 자라 주었구나. 나와 그 사람의 아이. 나의 사랑하는....아들.

"라만 왕국 기사단장이자 대륙평화의회의 수석, 레오 폰 아그네스가 합스부르크 제국 백작 린 아그네스 리그렛에게 죄를 묻겠다."

레오라는 남자는 굳게 닫은 입을 열며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대륙을 혼란의 빠트린 죄, 여기서 물으마."

어릴 때 제물이 되어 행복다운 행복을 모르고, 파멸밖에 모르는 가엾은 여자와, 그녀의 아들로 태어나 외딴 곳으로 보내져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검을 겨누게된, 기구한 운명의 두 사람이 지금 이곳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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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09 21:52 | 조회 : 1,473 목록
작가의 말
Deemo:Hans

이 소설은 꿈과 희망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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