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소문은 바람을 타고 (7)


“…오늘도 시끌벅적한 1학년 3반.”

3조의 낭독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와 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시의 마지막 부분처럼 반은 시끄러워졌다.

나름 재치있게 1학년 3반을 표현한 시였다.

“기대보다 더 잘 한 것 같기는 한데,”

국어 선생님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3조의 남학생을 째려보았다.

“묘하게 선생님 디스가 들어간 것 같다?”

“와, 쌤.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지켜본다…”

한바탕 웃음바다가 지나간 후, 다시 잠잠해진 교실이었다.

이제 발표는 4조의 차례였고, 대기중인 것을 보아, 임소희가 대표로 낭독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제 4조 차례다…”

쭉 경계심을 갖춘 눈으로 임소희를 응시하던 가을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아주 헛소리만 해봐, 임소희.”

그런 가을을 본 은호는 입을 딱 벌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가을. 우리 점수는 아예 신경도 안 쓰인다는 얼굴인데?”

점수 하나에도, 등수 하나에도 연연하는 가을의 성격상 수행평가에 포함되는 이 시 쓰기 활동을 가볍게 여길 리가 없었는데, 그녀는 이미 손을 놓은 얼굴이었다.

은호의 말에 가을은 하 하고 짧게 한숨을 쉬더니 그의 공책을 가리켰다.

“야, 뭘 신경을 써. 저거면 장땡이구먼.”

“아니 그러니까, 정말 내가 쓴 걸로 결정해도 돼? 오글거리잖아.”

“이미 결정해 놓고 뭘 물어?”

가을은 귀찮다는 듯 팔짱을 꼈다.

하지만 이내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니가 쓴 시로는 우리 조는 문제 없을 것 같다.”

“…결론이 그렇게 되나?”

“이따가 낭독하면 반응을 보던가. 우리 조도 만장일치로 니가 쓴 시 선택했는데 뭘 못 믿는거야?”

은호의 시를 보며 자신만만해하는 가을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만 깜빡이더니 다시 은호를 돌아보았다.

“뭐야, 근데 네 시 주제가 사랑이잖아.”

“어? 그렇지, 뭐…”

“뭔가 애절한 게… 혹시 짝사랑 경험담?”

“엥? 무슨…”

살짝 당황한 듯 보이는 은호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뭔 이상한 소리야… 아, 이제 4조 한다.”

“음…”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게 흘러가는 흐름인 듯 보였지만, 가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다른 이들의 시선을 따라 4조의 임소희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 누군가 말을 합니다

나도 아프고 남도 아프게 만드는

못된 거짓말을 합니다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아둥대고 바둥대봐도

깨끗해질 수가 없습니다


비참해진 스스로를 인정할 수가 없어

나 대신 다른 사람을 더럽히려고

못된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예쁜 겉 가면 속에 숨겨진

추악한 얼굴의 진실을.”


“저…저… XXX이…”

가을은 저절로 나오는 욕설을 묵혀두지 못하고 작게 내뱉었다.

설마 혹시나 했는데, 진짜 대놓고 저격글을 잇는 시를 지어낼 줄이야.

아마 지금 떠도는 소문에 관심이 많은 애들이라면, 임소희의 시가 누굴 뜻하는 것인지는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었다.

“X나 잘 만들었는데? 웬일이래?”

“뭐야, 저거 송지민 얘기 아니야?”

“진짜 쟤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서 뒷공작 쩔게 친거 아님?”

“그럼 뭐, 진짜로 먼저 강지우한테 들이댄거란 소리야? 그래놓고 임소희랑 엮어주는 척 엿 맥인 거라고? 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이미지는 아닌데?”

“임소희가 자꾸 저렇게 말 할 정도면 진짜 뭐 구린 게 있는 거지~”

“그게 정말 사실이면 사이코인데. 대체 뭐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거래?”

“낸들 아냐? 남들 깔보면서 우월감 느끼고 싶은 건가 보지.”

누구보고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낮출 생각이 없는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

지민은 떨리는 양 손을 모아 책상 밑으로 감추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그만 하라고, 사실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고개를 들어 다른 애들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 때’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말은 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확정짓고 멋대로 비난하는 눈.

그런 애들의 눈을 보면, 스스로는 정말 아니라고 부정해봐도

어쩔 수 없이,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아니야

아니라고

정말 아닌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니들이 나에 대해서 뭘 알길래

뭘 알길래 그런 말을

말을 함부로

“…큿…”

목이 턱 매여왔다.

얹힌 듯 가슴도 답답하게 막혔다.

애초에 입 밖으로 나올 용기조차 없는 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속마음 만으로나마 나오지 못하게 막아버리면

“…너무… 잔인하잖아…”

마침내 턱 막혔던 게 뻥 뚫리듯 지민의 입 밖으로 나온 말.

하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지민은 씁쓸하게 웃음지었다.

‘들을 생각 없겠지, 참.’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버리고, 속에 있던 무수한 감정들이 빠져나가 공허한 빈 자리만 남는 것이 느껴졌다.

그 자리를 메꾸려고 애쓰는 건지, 쓸쓸함만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제대로 들려오지 않을 무렵,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라도 날 위로해주려는 누군가일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를 믿는다고 말 해주는 누군가.

하지만 짧게 스쳐가듯 떠오른 그 실낱같은 희망은 이어진 선명한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러게. 누가 거슬리게 하래?”

그녀는 웃고 있었다.

말도 안될만큼 어이없는 이유 하나로 지민을 벼랑 끝까지 내몰며 괴롭히는 그녀가

만족스럽다는 듯, 자랑스럽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지민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가 더 강인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것 쯤은 신경쓰지도 않았을까?’

점점 차오르는 눈물 속에서, 누군가 비춰 보이는 듯 했다.

‘나도 너처럼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에 동요하지 않고 넘길 수 있었을까?’

나약한 사람이라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거라곤 누군가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한심한 생각 뿐.

다른 사람이 대신 나서주겠지 하고 기대하는 자신을 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혼자서는 말 한마디의 용기도 낼 수 없는 현실이 가혹한걸까.

“…나…난…”

지민이 다시 힘겹게 입을 떼었다.

이번에는 무슨 말이라도 꺼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선생님.”

자주 들어오던 익숙한 목소리가 반 안을 메운다.

“이제 저희 조 차례인데요?”

지민의 눈 안에 은호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어어? 그래. 5조는 누가 발표 하지?”

4조 임소희의 시 낭독이 끝난 이후, 점수를 매기는 데에 신경이 쏠린건지 수군거리는 반 분위기는 신경조차 쓰지 않던 국어 선생님이 비로소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제가 합니다.”

은호의 답에 국어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곤 시작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지민과 임소희를 번갈아보며 속닥대던 반 아이들은 이야기를 그만두고 은호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공책을 집어들고 다른 학생들을 향한채 서서 자신이 쓴 시를 천천히 낭독하기 시작했다.


“네가 보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선명한 네가 보인다

스스로도 보이지 않는데 너만 보인다

너만 빛나나 보다


닿고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놓칠까 애태우는 마음으로

애닳음 한 조각 띄워보내

네게 닿아보려 애쓰지만


더 이상 너는 보이지도 않는다

내 욕심에 사라져 버렸다

차라리 볼 수라도 있을 때

행복했었는데”


글자 하나하나에 감정을 그대로 담은 듯 살짝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자신의 시를 읽어내려간 은호의 낭독이 끝나자, 반 아이들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는 얼굴들에, 국어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이야, 최은호. 보통 고등학생들한테서 나올 감성이 아닌데? 너 취미로 글 쓰니?”

“아, 아뇨.”

은호가 멋쩍은 듯 웃었다.

“흔히 보는 시들의 틀을 따라가면서도 뭔가 현대 감성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잘 했다.”

거듭되는 선생님의 칭찬에 이어, 반 아이들도 저마다 하나씩 내뱉었다.

“오올, 글쟁이?”

“글쟁이는 무슨, X나 오글거리기만 하네.”

“시끄러, 니가 쓴 거나 읽어봐라.”

“감~성 충만~”

“잘은 모르겠는데 되게 느낌 있는듯.”

방금 전까지 누구 얘기를 떠들고 있었는지도 기억 안난다는 듯, 반 아이들은 모두 본인들끼리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가을은 조심스럽게 다시 자리에 앉은 은호를 보며 눈짓을 했다.

“봐 봐, 잘 썼다니까.”

다시 반이 시끄러워질 즈음,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국어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채점지를 챙기며 반을 쭉 둘러보았다.

“수행평가 점수는 다음 시간에 받을 수 있을거다. 오늘 다들 수고했어.”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쉬는 시간에 늘 그러했듯 반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 일어나서 웃고 떠들고 교실을 나가서 뛰고 매점으로 출동하기를 시작했다.

임소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기울여 지민에 가까이 갔다.

“오늘 수고 많았어~ 너 아니였으면 이렇게 만족스러운 시도 못 썼을 거야~”

빈정거리듯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임소희 옆에서 그녀의 친구들이 쟤랑 말 섞지 말라며 그녀를 말렸다.

그 친구들은 진짜 임소희가 순진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건지, 아님 같이 약올리는 건지.

“너도 수고 많았어~ 덕분에 귀 썩는 줄~”

가을이 금세 지민의 뒤로 걸어가서는 그녀의 뒤 귀를 살짝 덮었다.

“지민아, 코앞에서 듣느라 네가 제일 힘들었겠다…”

정말 안타깝다는 듯 가을이 지민을 위로했다.

지민은 억지로 웃는 듯한 기색이 훤히 보였다.

“야, 너 계속 시비 턴다?”

“뭐.”

가을을 위아래로 훑으며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은 임소희는 순식간에 빈정거림에서 싸늘함으로 바뀌는 가을을 보며 움찔거렸다.

“니 얘기냐?”

“하, 뭐래? 기가 막혀.”

“아 솔직히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임소희.”

가을이 얼굴을 구긴 채 말을 이었다.

“하는 짓 보면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싶을 정도로 뻔뻔할 때가 많아서 말 하는 것 조차 입아프던데, 가까이서 보니까 알겠네.”

“…뭐, 뭘?”

“철판이 아니라 화장 떡칠한 거였다는 거.”

가을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아있던 반 아이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는 임소희 옆의 두 친구조차도 웃기 일보 직전인 듯 보였다.

“미안한데, 지민이 옆에서 좀 나와라. 비교된다.”

이어진 가을의 말을 듣고 남을 헐뜯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민규까지도 한바탕 웃음바다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봐. 니가 미안해 할 필요 전—혀 없는 애지?”

“응…”

“누누히 말하지만 그런 말들은 귀담아 듣지도 말고.”

가을이 지민의 머리를 톡톡 쳤다.

“응. 미안…”

“웃기지 마시고요.”

주눅 든 상태에서 습관처럼 그러하듯 사과하는 지민에게 가을이 곧장 핀잔을 주었다.

“알잖아, 그냥 말도 안되는 소리 하고 있는거라는 거.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지민아.”

민규 역시 걱정스레 거들었다.

“응. 알았어.”

지민이 힘 내겠다는 듯 살짝 웃어보였다.

조별 활동 때문에 옮겨놓았던 책상을 원상복귀 시키는 것을 마친 은호가 다가오며 덧붙였다.

“언제든 안 괜찮을 것 같으면 말하고.”

“어, 어? 어…”

차분히 미소짓던 지민이 뭔가 걸린 사람처럼 움찔거렸다.

늘 그랬듯 습관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짓으며 마음이 든든해지는 말을 하는 은호였지만,

그런 그를 보고 살짝 당황하는 지민의 얼굴은 평소와 많이 다른 듯 했다.

“음…?”

가을은 조용히 겉눈질로 은호와 지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뭔가 평소랑 많이 다른데.

‘혹시 송지민…’

어쩐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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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8-22 16:58 | 조회 : 9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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