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소문은 바람을 타고 (4)




“하… 이런 미친.”

가을이 확인한 학교 커뮤니티 글은 아침 댓바람부터 그녀를 빡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1학년 3반 송지민. 중학교부터 남자 엄청 밝히는 걸로 유명했었는데, 진짜인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1학년 4반 강지우 꼬셨더라? 근데 걔가 고백하니까 순진한 척 거절하려는 것 같던데… 주변에 피해자라는 애들 엄청 많더라ㅠ 짝남 혹은 남친 있는 애들 조심하길.]

익명으로 올라온 글은 당연하지만 누군지 특정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둘러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가을이 아는 바로는 지민의 중학교 소문을 아는 사람, 지민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사람, 그리고 이런 추잡하고 더러운 저격글을 올릴 사람은 단 한명 뿐이었다.

“임소희 이…”

입에서 상스러운 욕이 나오려는 충동을 참고, 가을은 열이 뻗치는 머리를 짚었다.

누가봐도 임소희의 짓인 게 뻔했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그녀에게 찾아가서 뭐 하는 짓거리냐며 따질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가을은 지민의 중학교 때 소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지민과 친해진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고, 그 전까지 지민에게 딱히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숫기가 없다 보네, 하고 성격 때문이라 넘겨짚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워낙 문제 없던 중학교였기도 했고, 가을이 주변 일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은 것도 있고, 해서 그녀는 지민이 중학교 때 무슨 소문에 휘말렸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가끔 가을과 친해지기 전의 중학교 때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움츠려들며 말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아하는 지민의 태도에, 가을은 그녀에게 따로 묻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 글이나 임소희가 하던 말만 들으면 뭔가 남자 문제 때문이라는 건 알겠는데…’

어딘가에서 흔히 나오듯 지민이 남의 남자친구나 짝사랑 하는 남학생을 뺏었다거나 하는 소문인가, 유추만 해 볼 수 있었다.

‘남자친구 사귈 생각 없다는 말은 늘상 했지만… 중학교 때 소문이라는 거랑 연관되어 있어서 그런건가…?’

오랫동안 친했던 것은 아니어도, 가을은 지민이 그럴 애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힘들어 할 것을 뻔히 알면서 지민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나돌아다니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도 없었다.

지민이 이야기하기 꺼려하는 주제를 언급하며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굳이 지민에게 물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

가을이 다시 화면 안을 들여다보았다.

익명글에 담긴 글쓴이의 지민에 대한 원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

가을은 입을 꾹 닫은 채 등교할 채비를 했다.










지민은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복도를 걸었다.

당연히 학교 커뮤니티의 익명글은 그녀 역시 보았다.

학교 안 모든 학생들이 그녀를 알고 있을 리도 없는데, 어쩐지 스쳐 지나가는 모두가 그녀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다.

“쟤가 그…”

“남자 문제 엄청 많지?”

“와 진짜, 왜 저러고 산대?”

“추잡해…”

분명히 자신을 바라보는 게 아닐텐데, 자신을 향해 떠들고 있는 것 같았다.

손가락질 하면서. 혀를 차면서.

어렴풋한 소리들이 몇년 전의 기억들과 맞물려 지민의 주변을 배회했다.

나에 대해서 떠들지 말라고, 수군거리지 말라고 소리칠 용기를 낼 수도, 아주 사소한 반항도 내비칠 수 없었다.

그녀의 귀 안까지 파고드는 비수같은 소리가 자꾸만 들려왔다.

그 소리들이 들릴 때면, 지민은 아무런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무기력하게, 누군가 그만하라고 대신 말 해줄 때까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지민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착각이야. 아무도 내 얘기같은 건 안하고 있잖아.’

애써 스스로를 달래 보려하며, 지민은 어느새 다다른 반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 애들아…”

매일 아침 반갑게 인사하면, 반 친구들 역시 웃으며 반겨 주었다.

그래,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반겨주겠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거야.

우울함과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을 숨기며, 애써 미소를 지어 반 친구들을 돌아본 지민의 얼굴은, 금세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밝은 지민의 인사에 돌아온 것은 따듯한 미소가 아닌, 싸늘함과 차가움이 묻어있는 시선.

눈빛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뻔뻔하게 인사를 붙이는 거지?’

고요한 정적 속에서 지민을 사납게 노려만 보고 있는 몇몇의 학생들과,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눈물 범벅을 하고 처량한 듯 지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임소희였다.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비열한 미소를 지은 채.









은호는 학교 커뮤니티의 익명글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침부터 3반 뿐만 아니라 어쩐지 1학년 전체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보다 수군거리는 애들이 많네.’

이 나이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극적인 주제.

흥미롭게 여기는 남들의 가십거리.

분명 누군가에 대해서, 그것도 좋지 않은 내용을 조잘거리고 있을 게 뻔했다.

‘아마 임소희가 퍼뜨린다는 소문이겠지…’

은호는 어제 점심시간에 들었던 임소희와 안서윤의 대화를 떠올렸다.

‘생각보다 발이 넓은가본데.’

차분한 눈으로 미묘한 미소를 살짝 머금은 그는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혼자 웅크린 채 책상 위에 엎어져있는 지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어제 그렇게 하얗게 질려서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내내 기운도 없었던 것을 보면, 지민이 혼자 감당할 수 있을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제 일에 이어서 오늘 퍼진 그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당연하겠지만 지민을 죄여만 올 것이었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이라면 몰라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혼자 버텨내기 힘들것이다.

“소희야 울지마… 넌 잘못 없어.”

“그래. 너 속인 송지민 잘못이지.”

“쟨 어떻게 자기가 거짓말 해놓고 본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있었대?"

반 아이들이 사이에서는 익명의 글 말고도 나돌아다니는 추가적인 이야기가 하나 더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 다른 반 학생들 역시 알게 되겠지.

소문이라는 건 원래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에 대해 안 좋은 내용이거나 비난받을 일일 수록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소문의 대상자를 고려하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바람에 섞여든 조약돌이 날아와 맞춘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생채기에서 시작되지만, 어느새 온몸에 상처를 남긴다.

흘러들어오는 말소리에 정말 상처라도 입었는 듯, 지민의 뒷모습은 보다 더 움츠러들었다.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할까 생각했지만, 역시 지금은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쟤들한테 그만하라고 해도 시치미나 뗄 테고…’

은호는 물끄러미 지민을 쳐다보다가 안쓰러운 듯 시선을 떼고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꼭 앞에서 할 말 못하는 것들이 뒤에서 속닥거려. 찌질하게.”

앞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가을은 누구 들으라는 듯 대놓고 임소희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너 방금 뭐라고 그랬어?”

뻔히 자신들에게 한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임소희의 친구 중 하나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가을은 신경조로 묻는 여학생에게 무슨 일이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대응했다.

“응, 뭐가? 니들한테 한 말일까봐 찔려?”

모르쇠 식으로 나오겠다 결정했는지 얼굴에 철판을 깐 가을이 비웃듯 미소를 띄웠다.

“왜?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데?”

가을의 말을 듣던 여학생은 결국 얼굴을 찌푸린채 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임소희를 둘러싼 여학생들이 모여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가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머금던 얼굴을 금세 똥이라도 씹은 듯 굳혔다.

그리고 지민의 엎드린 모습에 잠시 머물던 가을의 시선은, 뒷 문 쪽에 내내 서 있던 은호에게로 향했다.









“임소희가 익명글로도 모자라 헛소리를 더 늘어놓은 것 같더라.”

“반 애들은 거짓말 한거 들었으니까, 걔네들한테는 거짓말을 덮을만한 변명거리가 필요했겠지. 좀 억지같이 들려도 죄다 본인 친구들인데, 뭐.
사실인지가 중요하겠어? 뭐래더라, 강지우가 임소희한테 마음 있는 것 처럼 행동했다고 귀뜸해준 사람이 송지민이랬던가?”

가을은 어이없다 못해 우습다는 얼굴이었다.

“지민이는 강지우 알지도 못하는데, 웃기지도 않아. 게다가 만약 그게 사실이래도 본인이 거짓말 한게 정당해지나?”

“예전 소문을 수면 위에 띄우고, 상황과 맞물리는 연기에 거짓말까지… 아주 제대로네.”

“듣기로는 발이 좀 넓다던데, 뭐 보나마나 똑같은 양아치들이겠지만. 소문 하나는 잘 내겠더라.”

험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가을의 나지막한 욕 몇 마디가 이어졌다.

그녀는 열린 문 사이로 얼핏 보이는 지민의 엎드린 모습을 다시 눈에 담고는 왈칵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대체 왜 송지민이 힘들어하고 있어야하는건데? 대체 뭘 잘못했길래?”

참다못한 가을이 벽을 내리칠 기세로 성질을 부렸다.

“…일단 그 소문이 뭔지 모르니까…”

날뛰기 직전의 맹수를 달래보려는 듯 은호가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가을은 속사포처럼 읊어댔다.

“말 하기 싫어하는 것 같으니 굳이 캐묻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근데 그게 뭐가 됐던간에 지금까지 이어와서 욕 먹을 이유가 되나? 그리고 임소희는 그럴 자격이 되고? 물어볼까 했는데 어차피 물어봐봤자 그게 사실인지 아님 또 거짓말인지 어떻게 알아?”

“그치. 일단 지금 나도는 이상한 소문부터 어떻게 좀 해야할 것 같은데.”

“…이건 애초에 강지우 그 새끼가 원흉 아니야?”

가을이 눈을 부릅떴다.

“맞잖아. 걔가 뭐라고 말 좀 하면 좀 무마될 수 있는거 아니야? 적어도 송지민이 강지우를 꼬셨다니 뭐니 하는 개소리는 없어질 수 있을 텐데?”

가을의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은호가 불쑥 물었다.

“그럼. 직접 가서 말해볼까?”

은호의 물음에 가을이 얼굴을 구겼다.

말해보는 건 나쁘지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이 세상의 중심인 양 구는 강지우가 본인들 말을 귓등으로도 들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민이가 직접 부탁하면 모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들어준다는 보장 역시 없었지만.

게다가 지금 지민의 상태를 보면 강지우와 다시 마주하는 것 조차 부담스러울 게 뻔했다.

“아, 지금 강지우 또 오는데?”

또다시 생긴 머리아픈 일에 이마를 짚던 가을은 이어지는 은호의 말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4반 문에서 나와 뻔뻔하게 3반 앞문으로 들어서는 모습은 확실히 강지우였다.

부탁인지 뭔지는 둘째치고, 일단은 마치 제 반인양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강지우가 지민이를 더 이상 곤란하게 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에이씨,”

가을과 은호는 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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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16 15:24 | 조회 : 125 목록
작가의 말
앤드리아

많이 늦었네요ㅠㅠ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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