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녀, 에디스(2)

오늘은 에디스의 5번째 생일 파티가 열렸다.
5살밖에 안 된 아이지만 황녀이기에 좋게 말하면 호화롭고, 나쁘게 말하면 사치스러운 파티였다.
에디스가 준비를 하고 나오자 이미 준비를 마쳤던 에디스의 오빠인 에드윈이 기다리고 있었다.
살벌한 분위기로 주위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기운이 에디스를 보자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아직 어렸던 에디스는 어두운 기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해맑게 웃으며 에드윈에게로 다가가 안겼다.
에드윈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에드 오빠, 오늘도 멋지세요!”
“고마워. 우리 에디도 오늘도 예쁘네.”

에디스는 얼굴에 홍조를 띠웠다.
에드윈은 가끔 저렇게 낯부끄러운 말을 뱉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에디스는 부끄러워서 죽을 맛이었다.
먼저 시작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에디스의 얼굴이 달아오르자 에드윈은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눈빛에는 에디스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한 사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에드윈이 에디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만 갈까?”
“네!”

에디스는 망설임 없이 에드윈의 손을 잡았다.
에디스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라프네 궁으로 가자 남매의 얼굴을 알아 본 기사가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윈 레르그 유리시아 황자 전하와 에디스 라플리에 유리시아 황녀 전하 드십니다!”

문이 열리고 눈부신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생일 연회는 매년 진행되었고, 황제 로버트와 황자 에드윈의 생일 연회도 참석하는데도 이만한 인구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에디스가 잠시 주춤하자 에드윈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혹여 아플까 봐 에드윈은 본인의 힘에 반도 주지 않은 것이었다.
에드윈의 응원에 힘을 입어 다시 미소를 지으려고 할 때,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윈, 에디스. 이리 와서 앉도록 해라.”

황제, 로버트였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눈동자를 지닌 채 남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버트가 가운데, 제일 상석에 앉고 양 옆으로 에드윈과 에디스가 앉았다.
에디스는 로버트와 옆에 앉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경련이 온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에드윈도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로버트를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는 건 에드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만큼 로버트와 남매의 갈등의 골이 깊었다.
로버트가 먼저 연회의 시작을 알리자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즐거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자 에디스는 리듬에 몸을 맡겼다.
그래 봤자 고개를 조금 흔드는 것뿐이었으나 귀족들은 그런 황녀가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우리 황녀님께서는 예술 감각이 뛰어나시네요. 연주에 맞춰서 흔드시는 것 보세요!”
“어머, 너무 귀여워요! 온 세계를 다 부실 것 같은 사랑스러움이에요!”
“다들 뭘 모르는군! 우리 황녀님은 요정이야! 온 우주도 다 황녀님을 사랑한다고.”
“모르는 건 당신이야! 요정 따위가 아니라고. 천사야!”

그들의 목소리는 황족들의 귀에까지 들렸다.
에디스는 귀족들의 넘치는 사랑에 어버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에드윈은 본인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에디가 귀엽긴 하지. 다들 보는 눈은 있나 봐.”
“오…오빠!”
“조용.”

로버트의 말로 인해 풀어졌던 분위기가 다시금 싸늘해졌다.
정말 분위기를 훼방 놓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며 에드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진짜 도움이 안 되는 아버지였다.
파티가 끝나고 귀족들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그리고 에디스는 로버트의 침실로 불러 들어갔다.
로버트가 에디스를 부른 이유를 눈치챈 에드윈이 자신도 함께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황명을 거역할 순 없었다.

“에디스. 짐이 왜 널 불렀다고 생각하느냐.”

에디스는 이 때가 제일 두려웠다.
황제와 독대하는 상황이 너무나 무서워서 차라리 이대로 기절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을 정도였다.
어릴 적에 경험한 트라우마는 쉽게 잊혀지지도 극복되지도 않았다.
에디스는 로버트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입만 달싹거릴 뿐이었다. 왜 자신은 이토록 친부를 두려워할까?
에디스는 겁쟁이인 자신이 죽을 만큼 싫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과는 다르게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리는 에디스를 보고 로버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답하지 않겠다면 짐이 알려주마. 누가 의자에 앉아 춤을 추라고 했지? 누가 연회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누가 널 향해 웃도록 놔두느냐!”
“하…하지만! 그들은 나쁘게 웃은 게 아니……!”

에디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가 자식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다.
에디스의 몸이 두려움에 잠식되어 떨려왔다.

“넌 아직 진심과 가식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니 짐의 말에 감히 토를 달 생각하지 마라. 다 너를 위한 일이니.”

에디스는 ‘널 위한 말’이란 말에 집중했다.
로버트가 에디스를 마음 속의 일부분이라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위하는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에디스는 작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설령 그게 그녀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도.…..
어리석은 황제이자 아버지인 로버트는 에디스가 그의 관심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답을 들은 로버트는 그대로 에디스에게 축객 령을 내렸다.
5살짜리 아이에겐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보통의 부모였다면 그들의 방에서 재우겠지만 황제는 그러지 않았다.
엄하게 키우기 위해서였다.
부모가 언제까지도 자식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미래를 위해 황제는 남매를 강하게 키우기로 했다.
어머니의 존재도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 자신이 직접 악인을 자처하기로 말이다.
그 누구도 로버트에게 악해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건 그가 스스로 만든 가시였다.
누구도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로버트에게 혼난 에디스도, 에디스가 혼날 것을 알고 있는 에드윈도, 에디스를 혼낸 로버트도 눈물로 지새우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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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06 13:19 | 조회 : 1,15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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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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