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녀, 에디스(1)

천년이란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유리시아 제국.
그 곳엔 12대 황제인 로버트와 그의 아들이자 황태자인 에드윈, 그리고 막내 딸인 황녀 에디스, 그리고 수많은 제국민들이 살고 있었다.
로버트의 아내이자 제국의 황후인 엘리스는 이미 타계한 지 오래였다.
그녀는 황녀인 에디스를 낳고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온 국민의 눈물이 비가 내려 대지를 적셨다.
모든 이가 눈물을 흘릴 때, 마음 속으로 깊은 호수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황제 로버트였다.
그에겐 겨우 4살밖에 안 된 아들과 갓 태어난 딸이 있었기에 무너질 수 없었다.
그가 무너진다면 제국도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강해야 했다.
감정에 흐트러지지 않는 그런 강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랬기에 그는 오늘 밤만 슬퍼하기로 했다.
그날 밤, 황제는 독한 양주를 들이붓듯 마시며 이제 추억이 되버린 기억 속에 잠겼다.
그렇게 엘리스의 흔적을 차즘 지워나가니,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다.
5살이 된 황녀 에디스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어느 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유모 릴리안과 시녀들이 따라왔다.
에디스가 바삐 가는 곳은 황족들만 이용이 가능한 황족 서재였다.

"제국의 작은 별, 황녀전하를 뵙습니다!"

서재를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기사가 경례를 했다.
에디스는 반갑게 팔을 붕붕 휘저으며 인사했다.

"나 들어가고 싶어!"

에디스의 힘찬 외침에 기사들과 에디스를 뒤 따르던 시녀들의 얼굴이 푸딩처럼 말랑해졌다.
기사가 문을 열자 에디스는 "고마워!" 라고 말하며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 들어갔다.
덕분에 기사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황녀님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아......"

에디스는 기사들이 코피를 흘리던 주저앉던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 그녀는 그녀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목표에 골인했다.
에디스와 같은 별처럼 반짝이는 금발의 소유자인 남자 아이는 익숙한 듯 그의 품에 안긴 작은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요. 에드 오빠, 나 책 읽어주세요!''''''''

에드윈, (애칭 에드)는 흔쾌히 에디스의 부탁을 들어줬다.
에드윈이 수락하자 에디스는 얼른 에드윈 옆으로 가서 앉았다.
에디스가 올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던 에드윈은 그의 옆에 놓여있던 동화책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 책은 에디스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이었다.
내용은 단순했지만 따뜻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은, 주인공인 남자 아이의 소박한 일상과 성장을 그려내고 있었다.
모험심 가득한 소년의 이야기도, 마녀에게 붙잡힌 공주를 구하는 왕자의 이야기도 아닌 이 동화책을 에디스가 좋아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에드윈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에디스가 걱정하지 않게 표정관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드윈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씩, 거의 1년을 읽고 있는 상황이지만 남매는 질린 기색이 없었다.
남매의 눈은 동일한 감정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부러움''''이었다.
무엇에 대한 부러움일까.
남자 주인공 주위에 있는 많은 친구들일까?
결말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모습일까?
아니면 자상하고 남자 주인공을 생각하는 부모의 모습일까?
아마 모두 맞지 않을 까 싶다.

"에디는요~ 오빠가 책 읽어주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그래. 나도 좋아."

그도 좋단 말에 에디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의 동생인 에디스는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그 또한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남매는 손을 꼭 잡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같이 정원 산책을 하고 낮잠을 자고 난 후에 헤어진다, 이게 남매의 계획이었고 항상 해왔던 일정이었다.
그들의 웃음 소리가 고장이 난 라디오처럼 뚝 끊긴 것은 황제인 로버트가 나타난 순간부터였다.
에드윈과 에디스와 같은 금발을 가진 30대 초반의 남자는 극지방처럼 시린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에드윈과 에디스의 손이 덜덜 떨려왔고, 얼굴은 환자처럼 창백해져만 갔다.
그녀가 이토록 친부인 로버트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모르는 자는 적어도 이곳엔 없었다.

"아바마마를 뵙습니다."

에드윈이 먼저 허리를 숙였다.
그 뒤를 따르던 기사와 시녀들 또한 허리를 숙였다.
여기서 대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은 것은 에디스 뿐이었다.
로버트의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에디스에게로 향했다.
그 안에 담겨진 감정은 결코 따스한 것이 아니었다.

"이젠 인사도 하지 않는 것이냐."

로버트의 싸늘한 목소리에 에디스의 몸이 잘게 떨렸다.
황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에디스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로버트의 무서운 눈빛에 에디스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사람처럼 창백해져 갔다. 그녀의 변화를 제일 먼저 눈치 챈 사람은 에디스의 손을 잡고 있었던 에드윈이었다.

"아바마마, 아무래도 에디스가 몸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이제 그만......"

에드윈의 말을 가위로 종이 자르듯이 잘라버리고 로버트가 치고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에디스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에디스. 네가 말해 보거라. 아픈 거냐."

에디스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웃어주거나 살갑게 대해준 적이 없는 로버트를 두려워했다.

"난 널 벙어리로 키운 기억이 없다, 에디스."

벙어리라니.
결국 에디스의 큰 눈에 눈물이 아침 이슬처럼 맺혔다.

"......아파요."

마음이. 몸이......
뒤에 생략된 말들이 들리는 것 마냥 작고 연약한 목소리가 드디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대답을 듣자 로버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녀 궁으로 태의를 불러라."
"예. 폐하."

황제 뒤에 서 있던 기사가 식은 땀을 닦지도 못한 채 대답했다.
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남매를 스쳐 지나갔다.
황제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에디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에디스!"
"황녀 전하!''''''''

에드윈이 서둘러 에디스를 살폈다.
에디스는 울고 있었다.
혹여나 황제가 듣고 다시 올까봐 소리도 참아가며 끅끅거리고 있었다.
그런 여동생의 모습을 보며 에드윈 또한 눈가가 뜨끈해졌다.
그는 에디스를 안아 등을 토닥거렸다.
에디스는 차마 그를 마주 안지 못하고 그의 윗옷만 구겨질 정도로 잡고만 있었다.

"괜찮아...내가 있으니까. 다 괜찮을 거야......"

에드윈의 목소리 또한 가늘게 떨렸다.
''''''''말''''''''에는 큰 힘이 있었다.
그 힘은 누군가를 상처 줄 수도, 위로해줄 수도, 용기를 줄 수도 있었다.
에디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에드윈은 에디스 뒤에서 안절부절 못한 표정을 짓는 밀색 머리 여자를 향해 말했다.

"에디스를 데리고 가서 쉬게 해 줘."
"예, 전하."

에디스의 유모인 릴리안이 에디스를 안았다.
에디스는 지쳤는지 얌전히 릴리안에게 안겨 자리를 떠났다.
에디스와 그녀의 시녀들이 보이지 앉을 정도로 멀어지자 에드윈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로버트가 왜 에드윈, 에디스 남매에게 그토록 엄격하게 구는 지는 사실 에드윈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로버트가 말을 안 해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에드윈은 그의 여동생이 너무나 가여웠다.
그에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에디스는 아니었다.
태어나자마자 겪은 어미의 죽음과 아비의 냉대.
그녀를 절대 배신할리가 없는 그녀의 편은 에드윈과 유모 릴리안뿐이었다.
황제의 머릿속을 알 리가 없는 에드윈, 에디스 남매와 남매의 심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로버트의 골을 점점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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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4-28 14:20 | 조회 : 1,287 목록
작가의 말
달님이

원래 좀 더 일찍 올 수 있었는데, 쓴 게 다 날아가 버려서.......핳핳 다시 한 번 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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