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존재의 부재

당연히 그 자리에 존재하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건

꽤 많이 무서워

예를 들면

이제 방학이라

학교에 가도 내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이들이 없다던가

서늘한 집에서 그나마의 온기이던 고양이를 잃었다던가 하는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일들이 있겠지

그거 알아?

나는 내 우울의 부재조차도 두려워

항상 우울하면 그건 당연한 일이지만

어쩌다 한 번 우울하지 않으면

그게 언제까지 갈까 두려워지거든

그 우울의 부재가 오래 가기를 바라면서도

더 크게 상처 입게 될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빨리 우울의 부재가 끝나버렸으면 하거든

그래야 내가 입을 상처가 작아질테니

아침과 새벽 사이의

어중간한 생활소음

새들이 지저귀고

차들이 달리는

일상의 소음

나는 그것을 들으며

오늘도 우울을 적어내리고 있네

차라리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건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라

미련하게 떠나지도 못하고 오늘을 꾸역꾸역 흘려

아직 시작도 않은 오늘이지만

괜찮아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미련하게 시간을 버리는 자신을 책하고

그러면서도 시간을 흘리길 멈추지 않으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어

텅 비어버린 집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학생이 남아있는

할 것이 있어 우울을 눌러야하는

그렇게 내 주의를 돌릴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럼

그렇게 하면

또 금새 시간이 흐르겠지

할 것에 치여 하루를 보내고

비척거리며 잠들기가 반복되고

그리고 또 나는 여기서 우울과 외로움을 삼키고 있겠지

아무래도 상관 없어

내 우울

내 불안

내 외로움

내가 삼키고 숨겨야할 모든 것들

그러한 것들을 끌어안고

나는 언제나처럼 이곳을 살아갈테니

내게 우울하지 않은 나날이 올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도 사람인지라 우울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지만

내겐 너무 낯선 이야기인 걸

우울이 함께하지 않는 나날은

그러니까

언제나 그랬듯

기대하지 않아

지금 기준으로 꽤 어릴적부터

난 우울했음을

요즘 과거를 상기시키며 깨닫고 있거든

단지 그 당시에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럼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속이 썩어문드러지는 것도 모르고

행복하다는 듯 웃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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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8-17 06:06 | 조회 : 865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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