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지긋지긋한 목소리
그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까지 가라앉게 만들어
알아
당신이 전화를 끊고싶어 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아
그게 싫어서 필사적으로 매달렸지
빠르게 얘기들을 꺼내고
이어나가고
당신이 전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는 것이 눈에 선해도
어떻게든 당신의 전화를 붙잡으려고
그래봤자 더 상처받을 뿐인데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
라니 웃기지도 않아
당신의 목소리 덕에 간신히 괜찮아지려던게 안 좋아진지 오래인데
눈치도 빠르다는 사람이 왜 그건 모를까
이러니까 내가 당신께 전화를 자주 안 하지
저번에
아주 짧은 통화 때
당신이 회의 중이라 바로 끊어야했던 그 통화 때
오랜만의 전화라 하고 싶은데 끊어야한다고 말해준 게 기뻤어
고작 그게 기뻐서
전화를 걸었고
나는 또 다쳤네
차라리 기뻐하지 말 걸
당신이
내가 무언가를 바라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상대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어째서 그런 멍청한 짓을 한 걸까
혈연
그놈의 혈연 때문인가
인연따위 만들고 싶다고 한 적 없어
그런데 왜
날 이렇게 괴롭혀
내가 연을 맺는 순간
나는 그 얇은 실 하나로 안절부절 못 하는데
상대에겐 그게 아니지
있어도
없어도
큰 차이가 없는
이야기 하다보면 어느새 옆에 있고
같이 걸으며 다른 이와 얘기를 하면 금새 사라지는
공기와 별 다를 것 없는 존재
차라리
차라리
차라리
아무 연도 맺지 말 것을
그냥 혼자 살 것을
왜 나는
멍청하게 연을, 정을 바라고
상처받고
냉소하는지
그냥 포기하는 게 빠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잖아
그게 네가 지금
모든 사람과의 대화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잖아
왜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거야?
왜?
그냥 포기해
그 아둔함으로 날 더 아프게 만들지 마
놓아버리면 편하잖아
기대하지 않으면 편하잖아
기대하지 않는 삶에 즐거움이란 없다고
혹자는 말하지
나는 기대하는 삶을 살기에
상처투성이야
그러니까
이 지긋지긋한 상처들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즐거움 따윈 필요 없어
그냥 무채색의 세상에서 살아갈테니
제발
내가 또다시 기대를 하는 멍청한 짓을 반복하지 않기를
그냥 그렇게
어느날 스러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