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
힘들어
지쳐
어차피 풀리지도 않을 걸 알면서 문제를 풀으려 발악하는 것도
그렇게 한 문제를 풀어도 풀어야할 문제는 수두룩하다는 것도
그에 상응하는 시간이 내겐 없다는 것도
전부 짜증나고
힘들어
개념이해도 안 됐는데 문제를 어떻게 풀라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힘들어
지친다고
다 그만 두고 싶어
왜 날 괴롭혀?
왜?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아니지
이건 내 멍청한 선택의 결과
내 책임이야
즉,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니까
그래
그랬지
언제나 그래왔어
하지만
내 책임이라고 힘들지 않은 거 아니잖아
지치지 않는 건 아니잖아
살아남는 게 아니었어
억지로 버티는 게 아니었어
매일 같이 무너지고
그걸 다시 끌어올리는 일상
누구에게도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서
항상 가면을 쓰고 살아야하는 일상
ㅈ같아
이게 아마 기숙학교의 가장 ㅈ같은 점이겠지
내가 편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아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도
나락의 나락에 잠길 수 있는 곳도
존재하지 않아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
시험 직전이야
시험 직전인데 아는 게 없어
어떡하면 좋아?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힘들어
죽을 것 같아
아니
죽고 싶어
주변에는 온통 적
의중을 알 수 없는 이들만 가득하고
나는 그 사이에서 혼자 버텨
죽을 것 같아
딱 죽어버리고 싶은 만큼만 힘들어
제발,
구해줘
사실 공부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점수를 매기고
등급을 매기고
그렇게 사람을 나누는
망할 이분법적 사고에 지쳤을 뿐이야
독일에서는
대학을 안 가는 게 평범한 거래
대학은 진짜 공부하고 싶은 이들이나 가는 거래
근데 독일이 후진국이야?
아니잖아
강대국이라 꼽을 수 있는 나라잖아
선진국이라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잖아
근데 우린 왜 이래?
같은 선진국이라며
근데 왜,
왜 난 의미도 없는 경쟁에 청소년기 전반을 불태워야 해?
응?
알려줘
이것도 내 잘못이야?
한국에서 태어난 내 잘못?
그럼 내 잘못이 아닌 건 뭔데?
무엇이든 일단 내 잘못이라 여기고
책임지려고 하면서 살아왔어
근데 그 결과가 이거야?
이제 출생까지도 내 잘못이야?
아예 태어난 것도 내잘못이지?
죽지 못한 것도 내 잘못이고,
죽은 뒤에는 죽은 것도 내 잘못이네?
ㅈ같아
그럼 그렇게 하자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하자
그리고 내가 죽으면 되지 뭐
간단하잖아?
부디
부디
부디
부디
부디
부디
부디
부디
오늘이 이 역겨운 숨의 마지막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