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귀찮아

힘들어

지쳐

어차피 풀리지도 않을 걸 알면서 문제를 풀으려 발악하는 것도

그렇게 한 문제를 풀어도 풀어야할 문제는 수두룩하다는 것도

그에 상응하는 시간이 내겐 없다는 것도

전부 짜증나고

힘들어

개념이해도 안 됐는데 문제를 어떻게 풀라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힘들어

지친다고

다 그만 두고 싶어

왜 날 괴롭혀?

왜?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아니지

이건 내 멍청한 선택의 결과

내 책임이야

즉,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니까

그래

그랬지

언제나 그래왔어

하지만

내 책임이라고 힘들지 않은 거 아니잖아

지치지 않는 건 아니잖아

살아남는 게 아니었어

억지로 버티는 게 아니었어

매일 같이 무너지고

그걸 다시 끌어올리는 일상

누구에게도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서

항상 가면을 쓰고 살아야하는 일상

ㅈ같아

이게 아마 기숙학교의 가장 ㅈ같은 점이겠지

내가 편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아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도

나락의 나락에 잠길 수 있는 곳도

존재하지 않아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

시험 직전이야

시험 직전인데 아는 게 없어

어떡하면 좋아?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힘들어

죽을 것 같아

아니

죽고 싶어

주변에는 온통 적

의중을 알 수 없는 이들만 가득하고

나는 그 사이에서 혼자 버텨

죽을 것 같아

딱 죽어버리고 싶은 만큼만 힘들어

제발,

구해줘


사실 공부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점수를 매기고

등급을 매기고

그렇게 사람을 나누는

망할 이분법적 사고에 지쳤을 뿐이야

독일에서는

대학을 안 가는 게 평범한 거래

대학은 진짜 공부하고 싶은 이들이나 가는 거래

근데 독일이 후진국이야?

아니잖아

강대국이라 꼽을 수 있는 나라잖아

선진국이라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잖아

근데 우린 왜 이래?

같은 선진국이라며

근데 왜,

왜 난 의미도 없는 경쟁에 청소년기 전반을 불태워야 해?

응?

알려줘

이것도 내 잘못이야?

한국에서 태어난 내 잘못?

그럼 내 잘못이 아닌 건 뭔데?

무엇이든 일단 내 잘못이라 여기고

책임지려고 하면서 살아왔어

근데 그 결과가 이거야?

이제 출생까지도 내 잘못이야?

아예 태어난 것도 내잘못이지?

죽지 못한 것도 내 잘못이고,

죽은 뒤에는 죽은 것도 내 잘못이네?

ㅈ같아

그럼 그렇게 하자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하자

그리고 내가 죽으면 되지 뭐

간단하잖아?

부디

부디

부디

부디

부디

부디

부디

부디

오늘이 이 역겨운 숨의 마지막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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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7-12 18:36 | 조회 : 515 목록
작가의 말
SSIqkf

2020.07.12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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