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는 양초이고 싶다

불꽃의 열기에 뜨거워 몸부림치며

그렇게 덧없이 녹아내려서

종래에는 무엇도 되지 못하고

그렇게 스러지는 이가 되고 싶다

약으로 시작하는 게 당연한 내일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환청에 귀를 막는 게 당연한 내일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아픈 곳을 내색 안 하고 참는 내일이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내일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

똑같이 힘들고 엿같은 하루.

그 하루에 지쳐가는 내가 있다

이미 지쳐버린 내가 있다

망가진 내가 있다

내색하지 않기에 망가지고 무너져 버려서,

내색하는 법을 배웠어

그런데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도닥여주는 사람 하나 없이,

다른 사람의 힘듦을 가져와 내 힘듦과 비교하는 사람만이 내 근처에 있어서,

나는 내색하는 법을 배웠음에도 무너졌다.

망가졌다.

그들은 알까

사소한 일상에 우는 내가 되어버렸다는 걸

내색하지 않아 눈물이 없다 소리를 듣던 내가

무너지고 무너져 이젠 사소한 일에조차 감정이 격해져 버린다는 걸

언제나 언제나 소금기를 머금고 글을 쓰고

언제나 언제나 메마른 눈으로 글을 읽는다는 걸.

손발끝이 차게 식어가는 기분

내일이 엿같을 것을 알기에 내일이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분

오늘이 엿같아서 오늘로 끝났으면 하는 기분

수많은 기분이 얽히고 얽혀

감정이 얽히고 생각이 얽혀,

결국 그 끝에 보이는 것은 죽음이라는 걸.

진통제가 없으면 시작되지 못하는 하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하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혼자 외쳐도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하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감정이 메마르는 하루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살려줘요

도와줘요

구해줘요

죽여줘요

죽어줘요

부디 내게 안식을 선물해줘요

오늘도 믿지도 않는 신에게 애걸하는 내 모습은

얼마나 역겹고도 비참한가.

매일같이 죽음을 그리는 내 모습은,

얼마나 한심하고도 무기력한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하루를 흘리는 내 모습은,

얼마나 혐오스럽고, 경멸을 자아내는가.

살려달라고 말하면 들어는 줄까.

죽여달라고 말하면 알아는 줄까.

죽어달라고 말하면 이해는 할까.

부디 내게 안식을

부디 내게 꿈을

부디 내게 끝을

부디 내게 암흑을

부디 내게 평온을

선사해줘

1
이번 화 신고 2020-05-12 23:05 | 조회 : 674 목록
작가의 말
SSIqkf

힘들다고 말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면서, 왜 물어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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