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나를 덮쳐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무시하고,
외면하고,
억눌러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잊는다.
하지만, 한 켠이 찝찝한 것은 떨쳐낼 수 없겠지.
그렇게 그냥 일상을 흘려 보내면,
언젠가 완전히 잊히는 날이 있을 거야.
그럼 난 그날만을 학수고대하며,
그렇게 서서히 우울에 잠식되어야 하는 거겠지.
내가 우울을 잊는 다른 방법은,
팔을 긋는 것이다.
오늘은 마침 장난을 좀 쳐 놓았으니
그어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우울이 억눌러졌다.
그렇게 또 나는 오늘을 흘렸다.
아니 정확히는, 오늘의 감정을 흘렸다.
사실, 오늘 되게 심란했는데.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는 부모님이 부러워서,
집에 오니 있는 사람이 없어서,
아빠가 오늘 늦는다고 해서, 그 이유가 집회 때문이라서,
그럴 시간에 집안일을 좀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서,
엄마가 동생에게 돈을 쓰는 게 부러워서,
결국 그렇게 여기에 남아있는 게 나 혼자라서.
기분이 썩 좋지 못했는데,
어느새 기분은 흘러갔고,
우울은 억눌렸다.
속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 뿐,
그 이상의 무엇도,
그 이하의 무엇도 없다.
내게 남아있는 것은,
떨어질 지 모르는 두통뿐이다.
내 곁에서 변함없이 웃는 이는 인형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에 그렇게 인형을 부둥키고 산 건가.
아, 힘들어.
누가 제발 좀 들어줘요.
누가 제발 좀 알아줘요.
누가 제발 좀 구해줘요.
누가 제발 좀 죽여줘요.
제발,
내게 남은 미련이란 다 쓸모 없는 것들뿐이니,
내가 그러한 쓸모 없는 것들만을 끌어안고 울기 전에,
그렇게 무너져 내려 결국 저 바닥에 추락해,
우울의 파도에 휩쓸려 그렇게 우울에 파묻히기 전에,
그냥 날 좀 죽여줘요.
누군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난 더 이상 여한이 없어.
그러니 제발,
죽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