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오늘 잠깐 집나간 동생 집에 들어왔었다.

샤워 중이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옷만 대충 갈아입고 나가는 듯 했다.

그걸보고 엄마가 예전에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엄마가 너무 손을 빨리 뗀 것 같다고. 확실히 내 기억속의 엄마는 항상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린 언제나 우리끼리 놀았다.

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에도 우린 우리 둘이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데리러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어서, 가끔 친구 엄가 데려다 주시기도 했었다.

집과 학원은 그리 가까운 편이 아니었다.

물론 멀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걸어다닐만한 거리. 도서관에 갈 때도 엄마는 우릴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럼 우린 도서관이 닫을 때까지 책을 보다가 도서관이 닫으면 데리러오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직도 그 근처의 지리를 기억한다.

나는 그 당시에 그게 평범한 것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가 데리러 오길 바랬지만 엄마는 데리러 오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서도, 동생에게서도 손을 일찍 떼었다.

아마 내가 6에서 7살 때 즈음일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며 나는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는 동생에게만 손을 일찍 뗀 것이 아니었다.

물론 나보다 어릴 때인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내가 다 큰 후였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조금은 짜증이 났다.

언제나 동생을 보며 사춘기가 얌전히 지나간 내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나는 항상 떠올려야만 했다.

내가 사춘기였던 시기, 엄마는 내가 소리지르는 것을 막았다.

내가 조금만 예의 없게 행동해도 크게 혼이 났었고 나는 사춘기를 침묵과 함께 흘려보내야 했다.

딱 한번, 엄마에게 대들었을 때, 엄마는 매우 화가나 나와의 인연을 끊어버리겠다고 했었다.

솔직히 지금의 동생보다 훨씬 양호한 수준이었는데.

나는 그 이후로 삭히는 것을 선택했다. 내 선택을 옳았지만 옳지 못했다. 난 그 때의 선택으로 이 지경까지 왔다.

원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화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언제나 먼저 감정을 삭히기 위해 노력했다.

난 그게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는 줄 알았다.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원하는 걸 숨기고 이상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인 줄 알았다.

난 실제로 꽤 이상적인 딸로 컸다. 무조건 엄마의 편에 서고, 엄마가 창피당할 짓을 하지 않으며 언제나 엄마를 우선시하는, 꽤나 이상적인 딸로 자랐다.

그 속은 어떨 지 몰라도 적어도 겉은 그랬다.

그래서 억울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대도 혼나지 않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분노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나는 의문을 가져야만 했다.

“왜 동생에겐 관대해? 왜 내게 했던 것처럼 혼내고, 인연을 끊겠다며 겁을 주지 않아? 어째서 나한테만 그랬어? 왜 나는 그러면 안 돼?”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을 의문. 그리고 동시에 이는 생각의 화살은 우습게도 내게로 돌아갔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그렇게 나는 자기만족이라는 감정을 잃었다.

무슨 짓을 해도 한심하고 부족해 보이는 나에게 만족할 일은 그 이후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친구들에게 눈치없다고 욕을 많이 먹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야 당연하지, 내가 전교 몇등을 하든, 평균이 얼마나 나오든 나는, 내가 한심해 보이는 걸.

당연한 거잖아?

난 자기만족을 잃은 이후, 친구와의 관계가 힘들어졌다.

내가 나를 부족하다고 하면 욕을 먹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를 칭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애들은 내가 자신들을 물먹인다고 생각했다.

조금 짜증이 났다.

그저 완벽을 추구하고 감정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나는 힘들게 쌓은 인간관계에 영향이 미친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억울했다.

애초에 내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아진 걸 어쩌라는 거야.

또한 나는 어릴 때부터 무책임과 무능력에 관한 투덜거림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 결과, 나는 무책임과 무능력을 끔찍하게 혐오했다.

저 두말을 듣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아주 작은 실수에도 깊은 자괴에 빠져들었다.

이것 또한 내가 자기만족을 잃은 이유였다.

본론으로 돌아와 자기만족을 잃은 나는 나에겐 그저 한없이 한심한 대상일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뭘 잘했다거나 이뻐보인적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한참 심할 때는 거울조차 보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역겨워 거울을 깨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기에.

내가 뭔가 부족하게 행동하면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나에게로 향한 질타뿐이었다.

자기만족을 잃은 사람의 삶은, 행복할 수 없었다. 자기만족을 잃자 자연히 다음으로 잃은 것은 ‘자신을 향한 기대’.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기대를 해봤자 그건 상처를 키우는 멍청한 짓이 되었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우습게도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다른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무언가 해줄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뒤에 올 거절이 무서워서 이기도, 내 비뚤어진 성격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을 향한 기대도 잃었다. 기대를 잃고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종족은 실로 혐오스러웠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고 속이는 이 종족이 너무나 싫었다.

그렇게 나는 ‘인간’이라는 종족을 향한 신뢰를 잃었고 그것은 곧 ‘인간불신’이 되었다.

이 인간불신은 웃기게도 ‘자기혐오’로 발전했다.

그 결과 자해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나 같은 인간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내가 인간이라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멍청한 산소낭비 기계같이 여겼으며 내가 하루 빨리 소멸하길 바랐다. 단편적으로 말하면 ‘나’를 혐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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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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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6-29 12:23 | 조회 : 169 목록
작가의 말
얼 그레이

오늘은 무슨 내용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이렇게 된 이유 정도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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