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1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던 나의 표지판은 일순 방향을 틀어 바다로 향했다. 약간의 도피와 꿈을 가지고.




[2018년 12월25일]

/ 지이이잉- 지잉.. 달칵,


"처리는?"
"깨끗이 했어."
"복귀해."
"당장은 못해."
"무슨 소리야."
"잠깐 어디좀 들렸다가 갈게."
"누구 마음대로."
"잠깐이면 돼."
"아니. 바로 복귀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 부탁이야."
"내가 부탁같은거 들어주는 사람이었던가."
"제발."
"내가 갈까?"

"진짜 잠깐이면 된다니까"

조금은 격양된 나의 목소리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고 누군가에게 지시하는듯한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차 대기시켜"

"잠깐. 그럴필요없어. 지금 복귀하면 될거 아니야."
"늦었어."
"뭐?"

/ 뚜뚜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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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200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흰눈이 펑펑 내리던 날 밤이었다. 나는 일하느라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 펑펑 내리는 흰눈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천사가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932.. 933.. 934... 935.. 오늘은 일찍온다고 했으면서."

숫자를 세는 입에서 뿌연 뭉게연기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르다 한 순간 사라지는 연기를 보고있으니 순간 나의 인생도 저렇게 사라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으 춥다.."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팔로 감싸안은채 숫자를 세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때쯤, 저 멀리 언덕밑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함박 웃음을 지은채 나를 향해 팔을 휘휘젓는 어머니가 보였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도 가려지지 않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웃음이었다.

"엄마!"

내일이 크리스마스라는 것과 그 크리스마스 하루를 온종일 어머니와 보내기로 약속 받은 날이었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항상 바빴고 크리스마스에도 쉬지않고 항상 나가서 일을했기 때문에 이보다 더한 선물은 있을수 없었다.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서 나를 임신한 어머니를 두고 떠났다고 들었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상으로도 볼수 없었다.

"엄마 빨리 빨리! 춥단말이야!"

가쁜 숨을 내쉬며 힘겹게 언덕을 올라온 어머니는
"내새끼, 엄마가 추우니까 나와있지 말라고 했잖아" 라고 다그치다가도,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힘껏 안아준뒤, "오구오구, 우리 아들 사랑해.'' 라고 속삭여 주었다.

"엄마, 빨리 들어가자."

엄마의 품에서 꼼지락 거리며 빠져나와 몇번을 꼬매입었는지 모를 허름한 외투를 잡아끌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한기가 느껴지는 공기는 밖이나 안이나 비슷했지만 방 안 가운데 위치한 따듯한 난로 하나는 우리 둘의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우리아들 메리크리스마스!"
"치잇- "
"왜 또 삐졌을까?"
"오늘 일찍 들어온다고했잖아."

"에이. 당연히 일찍 들어오고싶었지."
"됐어 됐어. 항상 똑같은 말만 하고.."

쓴웃음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엄마의 손은 띵띵 얼어있었다. 어느곳하나 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따듯한 밥보다 엄마의 따듯한 품속이 더 필요하단 말이야."

입이 잔뜩 나온채 퉁퉁거리며 말하는 나의 모습에 ''그래그래 엄마가 잘못했어''라며 꼭 안아주었다.

"우리아들 내일 뭐하고싶어?"
"음, 하고싶은거 없는데"
"에이 하고싶은게 왜 없어. 잘 생각해봐."
"엄마랑 손잡고 바다가기?"
"다른거는?"
"엄마랑 .. 음.."
"세상에, 엄마랑 하고싶은게 그렇게 없어?"
"나는 엄마만 있으면 돼."
"엄마가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하하- 아들 하나 참 잘키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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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5일]
전화가 끊긴지 20분쯤 지났을까. 내 앞으로 검정색 세단차 한대가 급정거를 하며 섰고 난 그런 차를 가만히 주시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뒷자석 창문이 반쯤 열렸고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타고 뭐하냐."
"잠깐 어디좀 들렸다 가는게 왜 안되는건데."
"이정도면 많이 받아준것같은데 그만하자."

그리고는 나에게 두었던 시선을 싸늘하게 거두고 정면만을 응시한채 창문을 올려버리는 모습에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이끌고 올라탈 수 밖에 없었다.


차문이 닫힘과 동시에 얼어있는 얼굴 위로 그의 손이 날아왔다. 얼이 빠진채 돌아간 고개는, 원상태로 돌려놓을세도 없이 또 다시 날아오는 손에 의해 창문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 반동으로 숙여진 고개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꽤나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고통이 오늘따라 유독 더 길고, 깊게 느껴졌다.


"고개 들어."

그의 음성에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개새끼면 개새끼답게 굴자. 응?"

쓰다듬던 손으로 머리를 두어번 툭툭 치더니 나의 상의에 감쳐줘 보이지 않던 목줄을 잡아 꺼내 끌어 당겼다. 그덕에 그와 가까이 밀착하게된 나는 시선을 떨군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사슬의 날카로운 소리가 나의 몸안 깊숙히까지 후벼파고 들어와 아프게했다.

"반항할거면 제대로 하던가"
"...."
"이 한겨울에 내가 여기까지 오는 20분 동안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던 주제에."
"추워. 이거 놔줘."
"추워?"


"추워?''라는 물음과 동시에 더 세게 끌어 당기더니 다른 한쪽 손으로 내 턱을 들어올려 입술을 맞춰왔다. 언제나 그렇듯 집요하게 혀를 빨아당기다 자신의 입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날 계속해서 응시해왔다. 혀를 놓아주고는 입술을 빨아당겼다. 피가 몰려 붉어졌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다 무슨 영문인지 쉽게 놓아주고는 가볍게 입술을 핥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긴. 그 날 애미랑 같이 얼어디질뻔 했는데 추울만도 하지."

눈이 바르르 떨려오더니,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는 아무렇지않게 나의 아픈 부분만을 들쳐내며 울리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나의 바보같은 모습에 더욱 눈물이 차올랐다. 그가 또다시 픽 웃어보이며 나를 뒤로 밀어 눕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고 고개를 돌려 팔로 얼굴을 가린채 피해보려 했다.

"꽤나 실력있는 스나이퍼가 이렇게 가녀린 모습의 울보라는걸 누가 알기라도 하면 큰일이겠는데?"
"나쁜새끼."
"난 너 우는 얼굴이 제일 예쁘더라."
"보지마."
"보라고 나 여기까지 부른 거 아니야?''
"부른 적 없어."
"그러니까 내가 복귀하라고했을때 빠딱빠딱 들어왔으면 좋았잖아."
"어디 들릴곳이 있다니까."
"개새끼가 주인없이 들릴 곳이 어디 있어."

또 아무렇지 않게 할퀸다. 얼굴을 가렸던 팔을 내리고 그를 노려다 봤다.

"있어."
"없어."

또다시 말문이 막힌채 노려보고있으니 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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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19 15:47 | 조회 : 846 목록
작가의 말
그린소다

안녕하세요. '나의 회장님'을 연재했었던 그린소다입니다.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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