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티 한 잔

00.




 「미안. 난 너같은 애 질색이야.」

나카노인 히마리는 아주 수동적으로 살아왔다.
빛 하나 없는 새까만 머리카락, 굳게 다문 입술,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앞머리. 성적이 우수하고 그녀의 가문이 우수한들 특유의 우중충함은 다른 이들이 그녀에게 다가기를 꺼려하게 만들었다.

나카노인 히마리는 아주 수동적으로 살아왔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아버지에게서부터 단 한 번도 부정의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몇 번을 울음을 터뜨리자 단단히 혼난 이후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 없었다. 눈치를 살피는 게 가장 우선이었다.

 「솔직히 너 같은 게 날 좋아했다니 내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 건가 싶다.」

손 안에서 편지가 와득와득 찢어졌다. 그토록 내성적이었던 그녀가 한 문장을 적는데만 며칠씩 걸린 편지였다. 새하얀 편지가 곧 종이 쪼가리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히마리가 내리깐 시선에 편지에 적힌 글씨가 박혔다.

좋아해요.

말이 없는 히마리를 지나치는 그는 제가 찢어버린 편지를 밟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사라졌다. 히마리가 눈을 깜빡였다. 글자에 신발자국이 선연하게 찍혔다. 정신이 멍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도 아니면 슬픔에 잠겨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인지.

히마리는 쭈구려 앉아 풀 숲에 떨어진 종이조각을 주웠다. 좋아해요. 방과후에. 계속. 기억하세요? 선배. 일으켜주셨죠. 그 때부터. 다정함이. 마음을. 나와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 신경성 두통이 일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떻게든 종이를 주웠다. 자꾸만 시야가 흐려지는 것 같지만, 어떻게든 주웠다. 그리고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때 히마리는 제 마음이 부스러져 버릴 것도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에 편지 한 장을 쓰고자 버린 수많은 편지지와, 수많은 마음과, 그 만큼 수많게 본 별들이 떠올랐다.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평생토록 보고싶다고 생각했던.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걸으려 했으나, 두통 때문에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시야가 희뿌옇게 변했다.

주머니 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가 남겨준 유품이었다. 마음이 아프면 이것으로 너를 달래줄 것이라 했더란다. 그것밖에 잡을 것이 없었다. 쿡쿡 쑤시는 머리와, 희뿌연 시야와, 넘실대는 감정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가야지, 일단, 일단 집에 가서.

비틀거렸다. 손 안에 손수건을 꼭 쥐고서, 히마리는 발을 옮겼다. 숙인 고개 덕에 시야는 저의 발 아래까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신경쓸 수가 없어서, 다만 걸었다. 걷다보면 그녀를 데려온 기사가 ‘아가씨’ 하고 저를 부르겠지.

언제나와 다름 없는 그 목소리만,
그것만 들으면 오늘이 끝날 테니까.

 “이 악마 쌍둥이 녀석들─!!!! 이거나 받아라!!!!”

머리가 아팠다.

 “헙……….”
 “에에~ 전하가 그랬대요~.”
 “에에~ 전하가 그랬대요~.”
 “……….”

머리가 쿡쿡 아팠다. 찬 물을 갑작스레 맞은 것처럼. 어깨까지 차가워져서, 히마리는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뚝뚝, 히마리가 정신을 차린 것은 머리카락에서 툭, 달큰한 것이 입술로 떨어졌을 때였다. 고개를 드니 머리에 걸쳐있던 플라스틱 컵이 떨어졌다. 와르르, 투명한 얼음이 떨어진다. 축축했다.

그녀는 잔뜩 떨며 제 손을 확인했다. 어머니의 유품인 손수건에 녹녹하게 얼룩이 져 있었다.

 “미, 미안해! 저기, 괜!”

눈 앞에 아름다운 금색 머리칼이 하늘거렸다. 그보다도 아주 다정한 색의 푸른 눈동자가. 히마리는 그 다정한 색을 보고, 견딜 수 없는 감정이 흘러넘치는 것을 깨달았다.

 “흑…… 흐윽!”
 “나, 나카노, 아니, 미, 미안해! 미안해요!, 정, 정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마도 그녀가 기억하는 시간대로부터 처음, 나카노인 히마리는 남의 앞에서 한 시간을 넘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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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1 22:22 | 조회 : 928 목록
작가의 말
마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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