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쿠구궁
육중한 몸체를 일으킨 드래곤이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르륵 그르르륵]

날개를 퍼덕이던 드래곤이 이내 입을 쩍 벌리고 브레스를 머금었다.

“엘 고도 높이고 브레스!”

[큥!]

콰가가가
엘이 날개를 펴 고도를 높인 직후, 밀도 높은 붉은 불꽃이 주위를 휩쓸었다.

“브레스 뿜고 바로 고도 낮춰.”

[아이스 스피어]

엘에게 명령한 시아는 공기 중의 수분을 얼려 얼음 창을 만들어내었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얼음 창들이 금방이라도 드래곤을 향해 쏘아질 듯 웅웅거렸다.

후우욱
다시 한번 엘의 피막이 부풀고 곧 검보라빛 화염이 쏟아져 내렸다.

[키에에에엑]

좀 전과 똑같은 부위에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은 드래곤이 고통스러운지 몸을 뒤틀고, 그 사이에 엘에게서 뛰어내린 시아가 드래곤의 이마에 내려앉았다.

그녀가 손을 들자 맹렬히 회전하던 얼음 창들이 하나로 뭉쳐지고 그녀가 손을 내리자

푸확

얼음 창이 두껍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루셀리드 종의 비늘을 뚫고 피를 튀겼다.

[크륵 크르르륵]

“얕았네.”

혀를 찬 시아가 박혀있는 얼음 기둥을 붙잡고 냉기를 흘려보냈다.
뇌까지 얼어붙는 듯한 한기에 드래곤이 몸을 뒤틀며 울부짖자, 저 지평선 너머에서 심상찮은 울림이 들려왔다.

쿵 쿵 쿵

지축이 울리며 지평선 너머 시아의 아군이 있을 곳에서 싸우고 있어야 할 최상급 마물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이 드래곤 설마...마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줄 아는 건가?”

드래곤이 마물위에 군림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의지대로 조종한다는 소리는 듣도 보도 못했기에 시아의 두 눈이 커지며 얼음기둥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드래곤은 대체....?”

그녀가 손수(?) 드래곤의 이마에 박아넣은 얼음 기둥을 통해 마력을 불어넣자 드래곤의 마력에 숨겨져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 이질적인 마력이 느껴졌다.
‘마물의 마력이 왜 드래곤에게서...’
열심히 몸을 뒤트는 드래곤위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계속해서 마력을 불어넣던 시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엘!! 이 기둥에 브레스를!”

[키앙!]

그녀가 명을 내리고 훌쩍 뛰어 기둥에서 멀어지자, 엘의 브레스가 기둥을 타고 흘러 드래곤의 내부를 지졌다.

[크아아아아악]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드래곤의 움직임이 멎고, 엘이 드래곤 하트를 뽑아 완전히 끝내기 위해 접근했다.
그 사이 드래곤의 등 쪽에서 온 신경을 집중한 시아는 마물의 마력의 출처를 찾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에 마물의 마력이 고여있다...어떻게 두 가지의 마력을...’

드래곤의 힘의 원천. 드래곤의 모든 마력을 담아두는 드래곤 하트에 오염될 대로 된 마물의 마력이 고여있는 것을 확인한 시아는 심장을 뽑으려는 엘을 막아섰다.

“엘, 심장은 내가 뽑아 부술 테니까 넌 3셀론 밖에서 기웃거리는 루엘디움좀 접근 못 하게 막고 있어 봐.”

[큥]

따라오지 말라니까.
한숨을 쉰 시아가 얼음으로 검을 만들고는 드래곤의 가슴팍을 갈랐다.
가죽과 근육이 질기기로 유명한 루셀리드 종 드래곤도 그녀의 완력 앞에서는 종이짝 수준이었다.

한참을 파헤치자 사람 머리통만 한 새카만 구슬이 툭 떨어졌다.

“투명한 붉은색으로 빛나야 할 드래곤 하트가 어쩌다...”

생기를 잃고 까맣게 오염되어버린 드래곤하트를 조심스럽게 든 시아가 하트를 잃어 재로 변하기 시작하는 검붉은 드래곤을 눈에 담았다.

“우리가 미안해. 다음 생에는 온전한 왕의 밑에서 태어나기를. ”

‘온전한 왕의 심장을 갖지 못한 탓에. 드래곤이 통제를 벗어나 마물의 마력따위에 오염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고 동화까지 마쳐버린 엘은, 선대로부터 온전한 드래곤의 심장을 받지 못했다.
지금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그저 내버려 뒀지만.
문제가 생겼다면, 왕으로서의 힘을 길러 통제력을 강화해야 하기에 앞으로의 훈련을 상상해버린 시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제 지긋지긋한 토벌을 끝내자.”

다시 한숨을 쉰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서 날아오는 한 쌍의 드래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엘을 구슬린 것인지 모르겠다만 루엘디움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오지 말라니깐.”

작게 투덜거린 그녀가 묵직한 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물을 불러모으던 걸로 추정되는 드래곤의 심장을 부수면, 통제에서 벗어난 마물들만 마저 처리하면 된다.
끝이 보이는 토벌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심장을 놓고 검을 치켜들었다.
캉!
검은 심장에 금이 가고, 그녀가 검을 다시 내리치려던 순간,

쩌적 쩌저적

심상찮은 기세의 마력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요동쳤다.

“..!!!”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을 보며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단 한 명이었다.
‘루엘디움이 위험하다.’
즉시 엘과의 동화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그녀가 심장을 향해 보호막을 펼치는 동시에 엘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루엘 데리고 떨어져!! 오지 마!!”

그녀의 감정과 생각을 읽은 엘이 동공을 바짝 좁히며 나디엘에게 낮게 명령을 내렸다.

“나디엘? 나디엘!! 저쪽입니다. 이쪽이 아닙니다!”

루엘디움의 외침을 들은 척도 안 한 나디엘이 엘의 명령에따라 뒤돌아 날아가는 동시에 엘이 펼친 보호막이 그들을 감쌌다.
엘의 시야로 그들이 방향을 돌린 것을 확인한 시아가 곧 폭발할 듯한 심장을 내려보았다.
‘심장안의 마물의 마력이 퍼져서는 안 된다.’
마력으로 이중 삼중 사중으로 심장을 감싼 그녀가 주변에 둥그렇게 보호막을 펼쳤다.
아이스 포레스트를 전개하느라 소모된 체력에 그녀의 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를 악문 그녀가 보호막에 마력을 쏟아붓는 동시에,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드래곤의 심장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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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1-01-19 19:12 | 조회 : 840 목록
작가의 말
킴샤키

안녕하세요 슈퍼 지각쟁이 입니다. 댓글 하트 눌러주세요(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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