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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날씨,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 구멍뚫린 낡은 옷. 제임스는 지독한 추위와 맞서싸우려 몸을 최대한 작게 웅크렸다.

그는 동물들이 추위로부터 열을 보존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같은 동물 집단과 함께 옹기종기 모인다는 것을 어린 날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에게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는 건장한 몸은 있을지언정 같이 몸을 맞대고 온기를 나눌 동료 집단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의 노숙자들은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온정을 베풀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숙자들 나름의 룰도 꽤나 엄격하여 이곳으로 흘러들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내기 노숙자인 제임스는 외곽쪽의 가장 추운 자리를 지정받아야만 했다.

나머지 서로 일면식이 있는 노숙자들은 이미 저들끼리 모여 서로의 온기를 나눈 채 어렵사리 잠을 청하고 있었지만 홀로 남은 제임스는 뼈마디가 시려오는 추위에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대로 잠이 들면 다음 날 동사한 자신의 시신이 아침 뉴스에 나와 미국 전역의 동정거리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만 했다.

하지만 역사상 최악의 폭설과 함께 영하로 뚝 떨어진 겨울날의 거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그저 정신을 온전히 붙잡고 있는 것밖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도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그것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벌써 일주일 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수면 위에서 심해까지 천천히 가라앉듯 의식이 차츰 아득해져 가는 감각에 제임스의 시선도 흐릿해져갔다.

그는 어릴 적부터 꽤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자신이 어째서 현재 노숙자의 신세인 것인지, 어째서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다가 쏟아지는 눈줄기 위로 얼핏 보인 사람의 그림자에 놀라 생각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눈 앞의 남자의 모습에 집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까만 차림의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제임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추위에 떨었던 제임스의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있었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

제임스는 눈 앞에 있는 남성에게 자신의 생사가 달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달러 짜리 지폐 몇 장만 적선해 준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지만 만일 지금 남성의 주머니에 핫팩이 있다면 그것을 빼앗고 싶은 욕망까지 느낄 정도로 제임스에게는 몸을 녹여 줄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급해진 제임스가 몸을 일으키려 다리에 힘을 줬을 때 잔뜩 움츠려 있던 몸이 삐끗하며 앞으로 넘어졌다.

하지만 제임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남성에게서 떨어질 무언가의 보상을 바라며 넘어진 자세 그대로 기어서 남성의 발치로 다가섰다.

남성의 구두 끝에 손을 올려놓은 제임스는 위쪽에서 들려오는 탄식 섞인 한숨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지만 이제와서 수치심을 느낄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온 몸이 꽁꽁 얼어버려서..."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리던 남성의 낮은 목소리가 금새 제임스의 귓가 근처에서 울렸다.

제임스를 번쩍 안아 든 남성은 힘든 기색도 없이 근처에 주차된 차로 향했고, 곧 운전석에 제임스를 밀어넣고는 급히 액셀을 밟았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안겨서 그리곤 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실려가는 제임스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아 그저 멍하니 옆자리 남성을 쳐다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지만 정작 그 모든 일을 실행한 남성은 태평하게 자동차 히터의 온도를 높이고 있을 뿐이었다.


"온도는 괜찮습니까? 일단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최대로 올렸는데 답답하면 말해요."

"아...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제 집으로 갈 건데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눈이라도 붙이고 있어요."


처음 보는 남성은 제임스를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인 마냥 능숙하게 제임스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무너뜨렸지만 정작 제임스 본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대신 처음보는 더러운 노숙자를 집으로 데려가려는 남자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지, 아니면 단순한 변태인 건지 생각하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오랜시간 딱딱한 바닥에서 추위에 떨던 제임스가 따뜻한 차 안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령 눈 앞의 남자가 정말로 변태이고, 집에 데려가서 온갖 추잡한 플레이를 시도해 본다고 하더라도 그는 지독하게 추운 밤 거리로 다시 되돌아가는 멍청한 짓만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힌 뒤였다.

제임스는 조금 전 잠을 자도 괜찮다는 남성의 말에 잠시 마음이 기울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정신만은 바짝 차리고 있겠다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적당히 데워진 차 안의 공기가 따뜻하게 온 몸을 감싸안는 그 상황에서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약 20분 뒤, 옆자리에 제임스를 태운 남성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남성은 제임스가 스스로 일어나기를 원했지만 차가 멈춘 것도 모른 채 숙면을 취하고 있는 모습에 다시금 그를 안아들었다.

제임스는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가뿐했고, 그 덕에 남성은 제임스를 깨우지 않고도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17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1743호로 들어온 남성은 아직도 차가운 공기를 뿜어대는 제임스의 몸을 더욱 힘주어 안았다.

제임스는 갑자기 무언가에 의해 몸이 옥죄이는 느낌을 받아 번쩍 정신을 차렸다.

낯선 천장의 무늬와 붕뜬 몸, 제임스는 서둘러 자신이 깨어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팔다리를 휘저으며 버둥거렸다. 그 바람에 제임스를 놓칠 뻔한 남성이 조금 놀란 듯한 눈동자로 시선을 부딪혀왔다.

남성은 제임스의 발이 바닥에 닿는 것과 동시에 실내용 슬리퍼 한 켤레를 꺼내서 제임스의 발에 직접 슬리퍼를 신겨 주었다. 그의 발은 죽은 사람의 것처럼 딱딱했고, 차가웠다.

남성은 핏기 없는 제임스의 발을 몇 번이고 주무르고 감싸쥐었다. 차가운 자신의 발과는 다른, 따뜻한 온기가 맴도는 남성의 손길에 이질감이 들어 잔뜩 긴장하고 있던 제임스가 몸을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남성은 제임스의 움직임을 신호로 다시 몸을 일으켰고, 곧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제임스와 눈이 마주쳐 자신이 방금 무엇을 했는지 문득 깨달았다.

갑자기 발을 만지다니, 그건 설령 사귀고 있는 사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여겼다면 포도필리아로 구분될 수도 있는 행위였다.

하지만 제임스는 화를 내거나 그 행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남성은 그저 속으로만 자신의 이상행동을 탓했을 뿐 제임스에게 따로 사과를 구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아직도 찬 기운을 내뿜는 제임스를 따뜻하게 하는 게 먼저였다.


"아직도 몸이 굳어있네요. 샤워할 테니까 이쪽으로 따라와요."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제임스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남성의 뒷모습을 급하게 쫓았다.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삐걱거리는 몸이 남성과 제임스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남성이 들어간 방으로 따라 들어간 제임스의 눈 앞에 사방이 대리석으로 도배된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한 벽면은 전부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남성은 넓은 욕조에 물을 채우며 온도를 체크하는가 싶더니 온도계를 내려놓은 순간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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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9 22:12 | 조회 : 2,118 목록
작가의 말
거짓말너구리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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