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징조? (上편)

목요일 아침이 찾아왔다. 죽은 듯이 조용한 집에 이리나는 벌써 퇴근했는지 없었다. 아, 아직 새벽이라서 그럴지도.
"....."
["가자--....."]

차가운 새벽 공기를 재치고 나는 강가로 걸어나갔다. 눈을 밟아 뭉개는 이 희열 때문에 그런지, 강가에 내 나름의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었다. 나도 나를 잘 몰랐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오는 걸까.
삽을 들었다. 눈으로 파묻었다. 무엇을?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삽으로 그것을 열심히 파묻었다. 강가에 오면 항상 하고 싶어지는 일이다. 이미 파묻었는데도, 더깊이. 더깊이. 마치 홀린 듯이 나는 금기의 영역을 깨고 삽으로 그것을 파묻는다. 쿡쿡 찌른다. 동시에 나의 자아도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그것을 묻은 지는 얼마 안됬다. 나의 사회적 위치가 그것보다 높으므로 밝혀지더라도 별 타격은 되지 않을 것이다. ......
이것이 바로 내 이야기다. 내가 집에 박혀 있는 이유. 내가 병이 도진 이유. 아무도 모르지만, 이것 모두 나의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저것, 내가 묻고 있는 것, 과 함께 묻어버리려는 시도이다. 일이 끝나면 나는 다시 인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 일과, 이 삶과, 지긋지긋한 시선들과도 멀어질 수 있다. 어쩌면 일이 잘 끝난다면, 연을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푹. 푹.
묻을 때마다 그것을 찌르는 소리는 매우 괴기스럽다.
마치 괴종시계의 추가 움직이는 소리처럼.
그래, 인정은 해야 겠다. 그 소리를 나는 들어본 지, 아니, 이해해본지 꽤 지났다.

병이 도진 이후로 나는 시간 개념이 없어졌다. 몇 시인지 인지할 수 없다. 낮과 밤이 같게 느껴진다. 내가 자폐아라는 소문도 한 때 떠돌았었지만 수그러들었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수재라고 불렸던 유능한 여자아이가 어떻게 한 순간 자폐증이 생긴단 말인가.
눈이 스치고 간 눅눅한 불명예의 자국들을 나는 벗어던졌다. 새로운 겉모습을 차리고 식탁에 앉아 한참을 그리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는 밝은 기운이 가득했고 족히 3시간은 지난 듯 했다. 아, 이렇게 인지해버리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지도...
어쩌면 병자 행세를 했던 예전이 더 나았던 걸까.
무릎을 눌렀다. 아직은, 아직은 안된다는 생각으로.
나의 이 긴 여정을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겠지만, 아무렴 어때. 이제 풀어야 할 시간이고, 감추려 했던 사람은 응징을 당할 시간이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가고 없다.
같은 논리로.. 그 사람이 부탁한 대로 내가 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없다.

위층에서 누군가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었다. 잠깐 동안 흔들리는 소리가 나더니 여자가 난간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이후 뒤따라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난간은 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듯 했다.
나는 성인 여자가 난간을 타고 내려온다는 발상을 한 것에 대해서 조금 불만스러웠지만, 뭐 별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짜증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가운데 나는 손을 살살 내져으며 공손하게 그녀의 무례에 답변하였다. (아니면 그렇다고 생각했던가.)

"괜찮습니다. 변상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워낙에 낡은 집이니까요." 나는 조금 주저하다가 여자를 안도시켰다. 난간 하나 부셔먹었다고 변상을 하라고 하는 것은 흉흉한 소문이 도는 판국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 여기 주인이니?" 젊은 여자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갈라진 목소리가 나를 놀래켰다.
지킬과 하이드에서 변호사가 하이드에게 받은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었던 것일까.
소름끼치는 느낌이 온몸에 퍼졌지만 나는 도로 앉았다. 그저 나의 심심함을 해소해준 하나의 묘기 쯤으로 여기기로 하였다.
여자는 곧이어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








"지금 누가 누구에게 변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사악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올려져 있었다. 입꼬리를 내리며 그녀는 매몰차게 부러진 난간을 던졌다.
"앗, 죄송합니다." 이어 그녀는 거듭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였다. 성가신 듯한 위선적인 인사를. "이러면 안되는 것이였죠? 다시 한 번 말할게요,"

"방을 착각하신 모양이네요. 여긴 제 집입니다. 제 소유고요." 여자가 싱긋 웃으며 따지듯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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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23 16:23 | 조회 : 1,119 목록
작가의 말
nic71553472

항상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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