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다

"리지, 집에 잘 있어. 침대에 누워있으면 되는거야. 알았지?"
또 그 소리. 이리나는 이불을 잘 덮어주더니 수면제를 투여해주었다.
윗층에서는 기괴한 소리가 났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리나는 머리를 어루만지더니 문을 닫고 가버렸다.

나는 시한부다. 어떤 질병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가 일반 사람처럼 살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화요일은 온종일 수면상태로 죽은듯이 누워있으며, 수요일은 물리치료사에게 가고, 내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날은 단 일주일에 2일이다. 목요일과, 금요일. 윗층에 세들은 사람들은 몇 일 전부터 저렇게 무서운 삵 둘이서 싸우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법무부의 장관님이셔서 핀란드 돌아다니신단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소름끼치는 집구석에 애만 두고 저리 돌아다닐 수가 있지?
이리나는 나에게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윗층에 세들은 사들은 세 든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아마 이것이 우리 집에 지난 5년간 아무도 이 좋은 조건을 주어도 전세내는 것을 마다하였던 이유였을 것이다. 불행의 집. 아이가 시한부가 되고 애 아빠는 뛰쳐나간 집. 이리나는 내가 복받은 아이이고 전혀 불행한 아이가 아니라고 안심을 시키고 있지만, 나는 고아 신세나 다름없다. 나의 피붙이들은 모두 떠나갔다. 엄마조차도 사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리나는 어머니가 전 세계를 전전긍긍하며 나를 위해 돈을 버시는 것이라 자장가 마냥 되뇌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그날도 다른 여느 날들과 다름 없는 일상. 고이 잠이 든 날.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이 집에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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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8 14:34 | 조회 : 1,571 목록
작가의 말
nic71553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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