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의 인연

꿈 아닌 꿈을 꾼듯한 기분. 저 앞에 보이는 운동화는 분명 내것일텐데,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아니, 손조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게 손이란게 있었던가? 손이란게 뭐였더라.

시야가 흐려진다. 내 이마를 타고 흐르는 이 뜨거운 액체는 뭘까.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가 어쩌다가 흐르기라도 한걸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마치 이불속에 있는듯한 포근한 온기가 나를 적셔온다. 그리고 내게 속삭인다.

다시는 깨어나기 힘들거라고.

갑자기 시야가 선명해진다. 볼에 닿은 차가운 흙의 감촉이 새삼스럽게 나를 놀래켰다. 게걸스럽게 피를 삼켜대던 흙도 피비린내 만큼은 차마 다 삼키지 못한듯 했다. 피비린내와 섞인 흙내음은 내 코를 전율시켰다.

"사...살려..살려줘요! 거...거,기....누..구...없...."

마지막 힘을 짜내어 보낸 외침을 이 숲은 무참하게 삼켜버렸다. 자신의 절기를 시험하듯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여느때와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숲을 누비는 풀벌레들의 작은 속삭임. 먹잇감을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눈치를 보는듯한 산짐승의 발소리.

이 숲의 작은 합주곡은 나의 장송곡이었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감기고, 더이상 남은 것도 없다며 흐르던 피조차 멎은 머리는 차갑게 식어갔다.

내 눈에 마지막으로 담긴 것은 나의 시체를 탐하러 다가오는 작은 산짐승이었다. 살랑거리는 꼬리가 귀여워 보인단 감상을 끝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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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7 23:39 | 조회 : 1,101 목록
작가의 말
nic89159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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