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라는 건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건 줄 알았다. 공감은 티끌만큼도 안 되고 상상은 아지랑이만큼도 되지 않는 아득한 이야기. 그렇게 느끼는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누가 그 먼 과거의 일이 지금의 나에게 뒤돌려 차기를 날려버릴 줄 알았나, 그런 걸 예측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 방관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랬다.
레이크 아이힐데른은 정처 없이 팔라슈의 숲속을 떠돌고 있었다, 라고 할 게 아니라 나는 지칠 때까지 바위산을 헤맸다, 또는 나는 발목이 욱신거릴 때까지 산 속을 헤맸다, 또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때까지 걸었다고 해야 한다.
전부 다 똑같은 얘기지만 과거의 일과 지금 내가 겪는 일은 그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실시간으로 풍부하게 오감을 활용하여 지친다는 건 정말 진 빠지는 일이었다.
팔라슈의 숲은 흙과 바위가 번갈아가면서 보였다. 커다란 돌덩이가 땅 속에 박혀있다던가 큼직큼직한 바위가 많이많이 퍼져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흙이 쌓여있는데 거기에 큰 바위가 있는 건지, 아니면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움푹 파인 홈 사이에 흙이 들어찬 건지 그걸 모르겠다는 거다.
흙바닥과 바위를 걷는 건 완전히 다르다. 발바닥부터 아프다.
이제 와서 곱게 자란 터라 포장된 벽돌 도로가 아니면 잘 걷지 못해요, 같은 소릴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게 있다.
그건 야우라도 마찬가진 모양이었다. 그렇대도 나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 애는 별로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는 거다.
힘들진 않은데 하고 싶진 않아 보인다는 것이지.
한 번 물어볼까.
"야."
한참을 말없이 걷느라 어느새 잠겨있던 목이 잠겨있던 것인지 나는 헛기침을 이어 붙였다.
"왜?"
그 사이 야우라는 평탄하게 대꾸했다.
그 때 딱 뭔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왠지 물어보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
지금 같은 때에, 너는 안 힘드냐, 하고 물어보면 안 될 거 같은 그런 직감.
"아니야... 됐어."
"으응? 왜 그래, 힘드냐."
약간 앞서 걷고 있었던 야우라는 걸음 속도를 늦추어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파리지옥처럼 확, 어께동무를 걸었다.
"힘들어? 힘들어? 힘들어힘들어?"
야우라는 실실 웃으며 거듭 물었다. 딱 들어도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다.
안 물어봤는데도 이러면 물어봤으면 어쨌을까, 나는 알 수 없는 오한이 올랐다.
왜 얘일까.
내가 왜 얘랑 둘이서 산행을 하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그야 팔라슈가 한 그룹으로 찾기에는 너무 넓은 지역이었으니까.
그래서 둘로 쪼개지기로 했는데, 사제인 에반젤린과 체력이 약한 레샤는 선임 아키에스인 스렌이 '인솔'하기로 하고 나는 야우라와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아무리 팔을 다쳤대도 야우라는 몸놀림이 좋았다. 거기에 부목을 댄 팔뚝 말고는 잘만 움직이는 것이 진짜 다치긴 한 건지 궁금하다.
"왜, 뭘 봐?"
나는 내 목덜미 위에 걸려있는 녀석의 오른팔에서 시선을 거두고 반대편에 있는 얼굴을 보았다.
이것도... 괜히 안 물어보는 게 낫겠지.
"하아, 아니야."
"얘 이상하네. 갑자기 왜 이렇게 싱거워졌어? 더위 먹었어?"
야우라는 허리띠에 걸고 있던 물통을 내밀었다. 생각해주는 건 고맙다 치더라도 나는 지금 물 먹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건 도롱뇽 넣은 적 없어. 진짜야, 진짜. 아무것도 안 넣었어."
내가 받지 않자 야우라는 물통을 흔들며 재촉했다.
도롱뇽이고 자시고 그런 게 아니라... 잠깐만, 이건 넣은 적 없다고...?
아니 되었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대수라고. 이미 그 물을 마신 순간, 우리는 모두 도롱뇽 냉탕을 먹은 것이다. 차이점은 희석된 농도가 조금 다르다는 것 정도.
나는 그냥 물통을 받아 마셨다. 시원한 냉수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 생각했던 것보다 속이 뻥 뚫렸다.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실제로 몸은 물을 원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의 여운을 마저 즐긴 나는 다시 물통을 야우라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 애는 그걸 받지 않았다. 대신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툭 내뱉었다.
"내가 왜. 이제부터 네가 들어."
물을 준 건 이 한 마디를 위한 포석이었던가...
"야, 언제는 네 거라며."
이 물통은 스렌이 가져온 거였다.
그걸 좋다고 가져온 건 야우라였다.
"뭐어? 한 모금 마셨잖아. 그럼 이제부터 네 거지."
야우라는 얼른 어께동무를 풀고 앞으로 도망쳤다.
네 거냐 내거냐 하고 있지만 이건 분명 스우렌우나의 것이었다.
확 그냥 뒤통수에 대고 던져버릴까.
아니, 그건 지는 거였다.
이건 싸움이다. 다른 말로 하면 투쟁.
최종승자는 물통 없이 편안히 걷는 여정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너 아까 전에는 네 거라고 있는 꺼드럭 없는 꺼드럭 다 떨면서 난리치더니 귀찮아지니까 떠 넘기냐!"
나는 남겨놓았던 전력으로 야우라를 뒤쫓아 왔다.
내가 그거 한 번 얻어먹으려고 정말...
"우왓?! 뭐 그런 걸 가지고 잡아먹을 기세로 쫓아오고 그래에!"
야우라는 내가 뒤쫓는 걸 보자마자 뒤돌아 앞으로 내달렸다.
잡아먹을 기세로 쫓고 있는 나도 내가 스스로 이해가 안 가는 건 맞는데, 그걸 또 정색하고 도망가는 넌 뭐냐!
"진짜 엄청 끈질기네! 그거 하나 들어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
"어! 힘들어! 너무 힘들다!"
힘들어서 지금도 토할 거 같아!
"아주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내가 언제 그랬냐!"
우리는 지쳤던 것도 잊고 산길을 달렸다.
미친 짓이다. 이건 명백히 미친 짓이었다. 이게 만약 반 랜드레이가 있는 곳을 알아내서 달려가는 거라면 정말 행복할 텐데.
하지만 때때로 사나이는 물러서선 안 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 바로 지금!"
"네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야!"
"그게 내 탓이라는 거야?!"
"그럼 누구 잘못일까?! 어? 집에서 자고 있는 헤세 잘못일까?!"
옥신각신하면서도 나는 꾸준히 야우라를 따라잡고 있었다. 열 걸음 이상 차이 났던 거리는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줄어들어 어느 샌가 손가락을 그 뒷깃에 걸 수도 있을 거 같아 보였다.
행여나 붙잡힐세라 야우라는 더 악을 쓰고 달렸다.
이젠 물통 같은 건 잘 모르겠다. 오늘 내가 저 녀석을 못 잡으면 잠을 못 잔다.
"야...! 키키킼킼...! 다 왔어?! 지금 간다?! 크킄ㅋ...!"
다가오는 승리에 나는 웃음이 새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우와 진짜 징그럽다, 징그러! 그게 그렇게 억울하냐?"
"그럼 넌 좋겠냐?!"
"왜에에? 당연히 좋지! 생각을 해봐! 나처럼 미인 엘프가 마신 물통으루와아아아...!"
나는 야우라가 떠드는 사이 케이프로브의 끝자락을 붙잡았다.
떠들던 소리는 금방 비명으로 바뀌었다.
자연히 속도는 느려지고 이제는 물통을 허리에 거느냐 마느냐 손에 쥐어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아이자자! 나 팔 다쳤어?! 팔?! 팔 다쳤다고!"
"아는 녀석이 그러고 있어?!"
"아! 아프다?! 레이크! 사람이 아프다잖아!"
"뻥치지 마. 건들지도 않은 게 왜 아파!"
왼손은 말짱하니까, 나는 야우라에게 물통을 들이대면서 계속 밀어붙였다. 야우라는 전혀 받을 생각이 없다는 걸 양팔을 번쩍 들어 표현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도망은 계속 간다.
계속 그런데도 방법은 또 있었다. 나는 물통을 내려 야우라의 허리띠로 가져갔다.
모로 가도 고리만 걸면 된다.
"헛, 챠!"
야우라는 기이한 기합을 내며 그것마저 왼팔로 막아냈다.
재빠르다 못해 아주 약삭빠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올렸다가 내렸다가, 야우라가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탓에 우리는 조금씩 움직이며 공방을 계속했다.
"내 몸 건들지 마! 경비대 가고 싶어?"
"갈 땐 가도 네 물건은 챙겨가라, 어?!"
"놓으라니까."
"잡은 건 너지!"
"아, 야, 잠깐! 레이크 잠깐만! 넘어진다!"
야우라가 갑자기 당황스러운 척 능청을 부려도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이번에도 속으면 내가 바보다.
"너야말로 아주 입만 열면...!"
...라고 소리쳤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바위산에서 튀어나온 돌도 아니고 덤불에 발이 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야우라가 먼저 넘어지고 나도 같이 붙잡은 물통 때문에 같이 넘어졌다.
오른팔.
그게 먼저 생각난 나는 일단 야우라를 확 잡아당겼다.
아, 진짜.
한 번만 더 속을 걸.
그러면 사실이라서 속지 않았을 텐데.
거하게 넘어진 우리는 이름도 모를 키 작은 나무의 가지를 있는대로 다 꺾어가며 넘어졌다. 조금 찔려서 아프긴 해도 오히려 맨 바닥에 나자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보다는 야우라의 무릎이나 팔꿈치 같이 뼈가 뼈에 와 때린 곳이 더 아팠다.
야우라는 나를 깔개 삼아 누운 그대로 오른팔만 곧게 세워 들고 있었다.
"엇... 어어...! 사, 살았다..."
야우라가 중얼거렸다.
걔는 오른팔을 무사히 지켰을지 모르겠지만 깔려있는 내 몸은 아니었다.
"억... 밑에는 죽을 맛이니까. 팔 괜찮으면 이제 좀 비켜줄래...?"
"잠깐만 기다려봐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건 나중에 하고 좀 비켜. 죽겠다...!"
"아니 이게 옆에 나뭇가지가 많아서 움직이기가 좀..."
"야, 나, 진짜 너무 힘들어서 그래."
"뭐어어? 내가 그렇게 무겁다는 거야?"
이 자세에서 마주보기라도 하려는 것인지 야우라가 스멀스멀 움직였다. 오른팔은 안전하게 놔두고 그 짓을 하다 보니 어설픈 움직임이 날 더 뾰족하게 짓눌렀다.
"아아...! 야야야야! 가만, 가만히 있어! 제발! 야우라님?"
그 상태에서 야우라가 몸을 그대로 일으키면 무게가 한 곳에 쏠려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까지 계속 입이며 눈을 찌르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야우라가 한 손으로 움직이기는 힘들 테니 내가 어떻게든 치워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양손으로 야우라의 옆구리를 잡았다. 거의 동시에 야우라의 뒤통수가 퍽 내려와, 내 이마를 때렸다.
"야! 어딜 만지는 거야!"
야우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른 건 모르겠고 골이 울린다.
나는 얼른 야우라의 몸에서 손을 떼고 머리부터 문질렀다.
"만지긴 뭘 만져!"
"뭐어? 나 누님이거든? 누님이라고!"
"아효, 알았어, 알았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
그러자 정말 야우라가 발버둥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고 순종적인 처사인지라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래. 뭔 일 있냐?"
나는 얼른 물었다.
"너야말로 뭐하는 짓이냐. 레이크 아이힐데른."
대답은 우리가 찾는 그 목소리로 들려왔다.
구조란 늘 극적으로-
"아. 레이크 너 때문에 이게 뭐야, 창피하게. 레메른의 방랑검사가 숲에서 넘어졌다고 하면 뭐가 되겠어?"
야우라가 툴툴거렸다.
그 애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따로 긁힌 곳은 더 없는지 몸의 요모조모를 살피며 말했다.
"내가 시작했냐. 네가 시작했지."
"뭐어? 너 지금 물통을 빌미로 소녀의 몸을 그렇게 막 만져놓고 시치미 떼는 거야?"
...내가 말을 말지.
나는 야우라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옷가지를 마저 털어낸 다음 그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와아. 레이크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꽤나 박력이 있네요. 설마 덮칠 줄이야..."
챠라가 말했다.
"저기요. 제가 밑에 있었잖아요. 밑에서 죽을 뻔 했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챠라는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자리를 떴다.
저런 할 말만 한 채 듣지 않고 홀연히 가는 대화법.
아주 싫다.
싫어하기로 했다.
"그래서..."
반 랜드레이였다.
녀석은 그렇게 짧게 운을 떼며 나랑 야우라의 주의를 불러 모았다.
"뭐냐."
산만하던 시선이 모이자 녀석은 더 짧게 물었다.
팔짱을 낀 자세도 풀지 않고 늘 그랬듯 거만하게. 이러다간 용사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생길 것만 같았다.
"뭐냐니."
내가 되물었다.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제 와서 용서라도 빌러 온 거냐?"
"내가 너한테 용서를 왜 비니?"
"그럼 뭔데."
목적이야 간단했다.
"너 찾으러 왔지."
"그러니까 왜냐고 물었다."
"구조하러."
"구우조오?"
굉장히 아니꼽게 들리는 어조였지만 구태여 딴죽을 걸지는 않았다.
우리는 없는 걸 찾아 헤매는, 조난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반 랜드레이를 찾아 돌아가기 위해 온 것이다.
"구조라고? 덤불 안에서 노닥거리던 녀석들이 누굴 구조해?"
반 랜드레이는 숨김없이 비웃으며 말했다.
너무 불리한 얘기인지라 나는 차마 녀석을 똑바로 볼 수조차 없었다.
고작 그런 일로... 저 자식한테...
"그래... 그래서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도움 받으라고..."
그런 건 스렌이 전부 해결해줄 것이다.
나는 야우라에게 손짓했다.
"야우라, 그 구슬 안 잃어버렸지?"
"당연하지이 내가 누군데."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한 야우라는 주머니 안에서 푸른색 구슬을 꺼냈다.
이게 아키에스가 사용하는 물건인데. 어떻게 쓰는거랬더라, 그러니까 마력을...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구슬에 빛이 나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럼 반대편에 상호 연결되어 있는 스렌의 구슬에도 반응이 와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빛을 내게 하는 법은 알아도 아직 그걸 읽는 법 같은 건 배우지 못 했지만.
그야, 내가 아키에스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
스렌은 나머지 애들을 데리고 금방 나타났다. 에반젤린도 레샤도 별다른 일 없이 스렌의 발에 맞춰 잘 쫓아온 거 같았다.
그리하여-
반 랜드레이가 분개했다.
"정말 기가 막히는 군..."
어금니를 깨문 말투는 차분한 체 하고 있었지만 표정에서 그 화를 감추지 못했다. 일그러진 눈가하며 핏발 선 눈, 핏줄이 불룩 튀어나온 이마까지. 녀석은 분노를 표시하는 모든 지표는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지도가 잘못 되었다고...? 그럼 내가 속편하게 하하 웃으면서, 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얌전히 수긍할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반 랜드레이는 자기를 때려눕혔던 스렌을 겁도 없이 밀어붙였다.
"따로 원하는 것이 있나? 비셔스 경에게 얘기해보겠다."
바로 코앞에서 비아냥대는데도 스우렌우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아니! 이제 더 이상 너희 왕국 녀석들에게 놀아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 호쿤투라마니 렉쟈인의 검이니 하는, 이젠 남아있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서 난 아무 관심 없다."
"돌아가는 길이라면, 내가 안내하겠다."
"그럴 필요 없어. 돌아간다고 해도, 돌아서 가진 않을 거니까. 능선을 넘을 거다."
반 랜드레이의 말에 스렌이 처음으로 동요를 보였다.
"능선을 넘는다고? 그건 위험한 짓이다. 스칸달른 용사. 팔라슈는 올라갈수록 더 험한 절벽이 된다."
"이미 위험은 다 겪었어. 그 코볼트 녀석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게 좀 아쉽군. 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벌써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 너희 때문에 말이다."
반 랜드레이가 마음을 돌릴 여지조차 보이지 않자, 스렌은 잠시 뜸을 들이는 시간을 가졌다.
"알았다. 대신 따라갈 수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군, 나에게도 하사된 임무란 게 있다."
"...마음대로 해."
내뱉듯 말한 반 랜드레이는 먼저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말을 돌보며 멀찍이서 보고 있던 챠라도 금방 녀석에게 따라붙었다. 이어서 스렌도 따라가기에 나도 그 뒤를 쫓았다.
그 즉시 누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레이크...!"
레샤다.
"우린 그냥 돌아서 가면 안 되는 겁니까...? 위험하다잖아요..."
일리 있는 얘기였다.
위험은 피하는 게 좋지. 하지만 처음과 비슷한 맥락의 얘기였다.
"혹시 길 아는 사람?"
나는 모두에게 물었다.
당연히 손드는 애는 없었다.
"레샤님, 그러지 마시고 셰르파 따라간다고 생각하세요. 네?"
"예에...? 하, 하지만 그런 사람 함부로 따라가는 거 아니라고 했단 말입니다...!"
결국 에반젤린이 어르고 달래가며 우리는 이미 저 앞에가는 스렌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