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그게 아니라니까(1)

"레이크님, 이마 좀 보여주세요."

에반젤린은 이미 양손으로 내 머리를 붙잡은 상태에서 말했다. 이럴 거면 허락을 구하는 것 같은 말은 왜 하는 걸까. 더군다나 코볼트에게 얻어맞아 생긴 머리의 상처는 아까 전에 처치를 끝낸 후였기에 헝겊에 붕대를 덧대놓은 상태였다.

들은 바로는 회복마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각각 힐과 리커버리라고 하는데, 원리는 같지만 회복속도에 있어 둘이 큰 차이를 보였고 그에 따라 사용방법도 제대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얕은 상처라면 어느 쪽이든 간단히 재생시킬 수 있지만 그게 아닐 경우 함부로 리커버리 계열을 사용했을 때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성당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고 했다. 회복마법을 받은 사람이 졸음을 느낀다던가. 구토, 어지럼증. 심한 경우엔 아예 탈진해버리기까지.
그런 사례들을 보면 회복이란 결국 몸이 하는 것이었다.

"어어? 본지 얼마나 됐다고..."

즉, 자꾸 본다고 해서 뭔가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붕대가 헐렁하진 않으세요?"
"뭐 괜찮은 거 같은데..."

오히려 좀 꽉 매인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헝겊이 좀 삐뚤어진 거 같아요."
"그 정도야 뭐..."

"안 돼요! 흉이 남으면 안 되니까."

에반젤린은 구태여 붕대를 한 번 풀어 다시 한 번 상처를 보았다.
갑자기 공기가 닿으니 쓰라리다. 근데 티를 낼 순 없었다. 아까도 조금 아픈 표를 냈더니 처음부터 다시 처치했다. 그게 무슨 짓이야 도대체. 자고로 사람은 상처가 나면 아프다. 안 아프면 그게 진짜 큰일이라고 우리 엄마가 말했다.

"흉이라니..."

흉이라고 해봐야 발톱 자국이 조금 남을 텐데 그런 건 흉터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누가 신경 쓸 정도도 아니고 머리카락에 가려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또 남자들에게 흉터란 간혹 증거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용기의 증거 말이다.
고향에선 2층에서 뛰어내려 생긴 흉터를 자랑스레 보여주던 녀석도 있었지.
냉정히 따져보면 멍청하고 우스운 짓이었지만 또 그게 그렇게 느껴지지만은 않으니 재미있는 것이다.

"괜찮다니까..."

나는 적당히 사양하며 몸을 뒤로 뺐다. 큰 상처가 아닌 것도 맞지만 이마를 가까이서 자세히 보려고 하는 탓에 얼굴이 너무 밀착되어 있었다.

"안 돼요!"

그에 반발하듯 에반젤린이 더 바짝 다가왔다.

뭐... 어... 그...
불편한 건 아닌데 불편하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눈을 감을 수도 없고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가 사람 마른침 삼키게 만들고 있었다.

"붕대도 다시 감아드릴게요."

에반젤린이 내 머리를 껴안았다.
사실 껴안은 건 아니다. 그저 내 뒤통수까지 붕대를 감으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모양새가 된 것 뿐이지.
둘 다 바닥에 앉아있는 탓이기도 했다. 의자가 있었다면 환자가 앉고 사제는 서서 처치를 했을 테니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에반젤린이 이번에야 말로 꼼꼼하고 예쁘게 붕대를 감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는 겸허히 눈을 감았다.

잠깐, 이러니까 옷자락이 부벼지는 소리가 더 잘 들려서 괜히 기분이 묘해졌다.

음 좋아, 레이크 아이힐데른. 이건 의료 활동이다.

...그럼 눈 떠도 되는 거 아닐까. 보는 게 무슨 죄라고.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저 에반젤린의 앞섬을 보고 있는 것뿐 아닌가.

"야, 레이크."

내가 아주 중대한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야우라가 날 불렀다.

"왜."

나는 뜰까말까 고민하던 눈은 여전히 감은 채 대강 대꾸했다.
그야말로 ''왜.''다. 왜 야우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기분이 차분해지는 거지.
아니, 차분해졌다기보다 쳐진 건가.

"물통 어디에 있어?"

야우라는 물통을 찾고 있었다. 물통 중요하지, 목이 마를 때 손바닥으로 퍼 올려 마시는 것보단 물통에 담는 게 훨씬 편했다.
그만큼 중요한 물통 어디로 갔느냐하면.

"어디에 있긴 말이 가지고 도망갔지."

우리가 가져온 물건은 전부 말에 실려 있었고 그 말은 동굴에서 코볼트를 만났을 때 놀라 도망가 버렸다.

짜식, 이왕 노자까지 챙겨서 도망갔다면 훌륭한 야생마가 되어 자유를 찾거라.
실은 코볼트에게 잡혀서 요깃거리나 되지 않았을까 그게 더 걱정이었다.

"아아, 그랬지. 어쩔 수 없네..."

쩝하고 입맛만 다시던 야우라는 금세 뭔가 떠오른 듯 쫄랑쫄랑 자리를 떴다.

"야, 챠라. 나 물통 좀 빌려주라!"

쟤는 확실히 어디 오지에 가져다가 떨궈놔도 굶어죽진 않을 상이었다.

"자, 다 됐어요."

그 사이 에반젤린은 붕대감기를 끝내고 물러서 앉았다. 그리고는 내 이마 언저리를 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이번엔 만족스럽게 감은 모양이었다.

대체 얼마나 잘 감았기에 저러는 것인지 궁금해진 나는 슬쩍 머리에 손을 가져다댔다. 결의 간격이 일정하기라도 한 건가.

"손대시면 안 된다니까요?"

단박에 에반젤린이 내 손을 제지했다. 말 뿐이었지만 너무 단호해서 나도 모르게 올라가던 손이 우뚝 멈추었다.

"살짝만."

심지어 만져보겠다고 부탁까지 해보았다.

"안 돼요."

에반젤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거 조금 만진다고 무슨 생긴단 말인가. 잠깐 눈치를 살폈던 나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이게 뭐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큰일도 아닌...

"자꾸 그렇게 손대시다 흉져도 전 몰라요?"

손가락 한 마디 만큼이나 움직였을까, 그 정도는 움직인 게 아니라 떤다고 할 정도구만 협박 같지 않은 위협에 나는 그냥 손을 내리고 살짝 흔들어 보였다.

알았다, 손대지 않겠다, 라는 의지의 표시.

애초에 손은 사제님이 더 많이 대지 않으셨나요, 하고 말해볼까 싶었지만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저 옆에 작은 바위 위에 앉아있는 레샤에게 손짓을 보냈다.

"야, 레샤."

이름이 불리자 레샤는 살짝 떨어져있던 고개를 들었다.

"...뭔가요?"

그 애는 약간 사이시간을 두고 대꾸했다.

"이 붕대, 대체 어떻게 생겼냐?"

나는 손을 꽤나 멀찍이 두고서 내 머리를 가리켰다.

"붕대가 다 붕대같이 생겼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설명을 바라는 것인지 아예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은 레샤는 투덜거리듯 중얼대다가 아, 하고 나와 똑같이 내 머리를 가리켰다.

"리본... 이 달렸습니다."
"리본이라고?"

내가 되묻자 레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했더니 리본을 묶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남자애한테 리본은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이 슥 올라갔다.

"레이크니임!"

그랬다가 에반젤린의 불호령에 자동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래! 나 리본 단 남자다.
하하!
입으로는 웃는 소리를 냈는데 왠지 거꾸로 서글퍼지고 말았다.

탁하고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아무것도 안 끝났다...!"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말투, 반 랜드레이였다.
녀석은 깨물렸던 왼팔에 감은 붕대의 매듭 끝자락이 거슬리는 것인지 저 혼자 입으로 물어 찢어내고선 대뜸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로 봐선 불쾌함을 넘어서 화가 치미는 가 본데, 잘 쉬고 있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다.

우리는 의아한 채 묻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사실 묻기도 뭣 할 정도로 두서없는 이야기였다.
그게 더 거슬리는 건지 녀석의 오른쪽 눈이 찡긋 일그러진다.

"아직 케이드린을 못 찾았는데 뭘 다 끝난 것처럼 놀고 있는 거냐."

어금니 꽉 깨문 한 마디에 그제야 우리 모두 탄성을 흘렸다.

"아아...!"

그것도 모자라 나는 손바닥으로 땅을 한 번 두드렸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게 의식 깊숙한 곳에서 번쩍 생각났다. 얼빠진 짓이긴 했지만 그러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 뭔가 이제 딱, 집에 가서 쉬어야할 거 같은 느낌이라서 깜빡했다."

하루를 일찍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오늘 할 일은 전부 다 한 걸 넘어서 모래 것까지 당겨한 기분인데 아직도 해는 밝게 떠있었다.
아니,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케이드린이라는 보석인지 돌멩인지 모를 물건을 찾으러 이곳에 온 거였다. 적당히, 해 떨어지면 집에 가도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건 사실이지만서도.

"쉬는 것도 죄냐?"

내가 말했다.

"누가 쉬는 것 가지고 뭐래? 아주 살판나서 놀더만."
"살판은 무슨 살판."

"무슨 살판이냐고? 내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하군."

녀석은 아주 신랄하게 눈을 치떴다.
아무래도 에반젤린이 붕대 감아줄 때 얘기를 하는 거 같았다.

혹시 내가 그 때 실실 쪼개고 있었나.
그것만큼 꼴불견이 없는데.

"그래서 어떡하자고."
"말 한 필을 잃었으니 물자가 모자르다. 배고파지면 그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 할 여력도 없어질 텐데?"

엄청 비꼬고 기분 나쁘게 말하고 있었지만 야외에서 춥고 배고프게 노숙하고 싶지 않으면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라는 의미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틀림없이 그 뜻이었다.

"그런데 너희 말은 어떻게 또 우릴 쫓아왔냐?"
"슈리츠는 내가 스칸달른에서 데려온 아이다. 너희 왕국의 조랑말 따위랑은 비교가 안 되지."

괜히 물어봤다.
왠지 그런 비슷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혹시나 궁금했던 마음이 사서 잘난 체 듣는 꼴이 되었다.
어쩐지 키도 좀 작고 억세게 생겼다 싶었는데 듣고 보니 딱 스칸달른 냄새나는 생김새였다.

뭐, 말이야 어찌되었든 반 랜드레이의 주장이 맞았다.
우리는 좀 더 기민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어찌어찌 팔라슈의 건너편으로 넘어오기는 했지만 주먹구구식이었고 우선은 지도를 이용해 현재 위치부터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붕대의 리본이 어쩌고자시고하고 앉았을 상황은 아니라는 거다.

"랜드레이 형제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어요."

어째서인지 에반젤린이 어르듯 말했다.

"나 아직 뭐라고 안 했어."

할 마음도 없었는데 반항아 취급이다. 진짜 반항아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레샤는 아까부터 조용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는 걸 보니 제 딴에는 몰래 눈치 본다고 보는 거 같은데 원래 시선이란 의식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눈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레샤 이제 이쪽으로 와."

엉덩이 땔 생각은 없어보였기에 내가 먼저 불렀다.
그나마 잠잠하던 그 애의 표정에 훅 음영이 낀다. 지금쯤 속으로 부르긴 왜 부르냐고 내 욕 엄청 하고 있을 거다.
그래도 오긴 왔다.

"제 생각엔 말입니다..."

레샤는 오자마자 작게 읊조렸다.

"저 지도... 믿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 애는 반 랜드레이가 아니라 그 손에 들린 지도를 노려보았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지도가 왜."
"그렇잖아요... 통과하는 길이라고 해서 갔더니 코볼트가 살고 있지를 않나...! 이번에도 따라갔다간 정말 오우거를 만날지도 모른다고요...?"

갑자기 코볼트를 조우했던 건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도 위엔 사람을 그리지 않는다. 그건 산 짐승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은가.
지도란 오랜 시간 지표가 되어 줄 기록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레샤가 한 말은 잘못되었다. 내용 말고, 그 말을 받는 객체가 말이다.

"그 지도 얘기, 나한테 하지 말고 가서 대장한테 말해."

대장이란 당연히 반 랜드레이를 말하는 거였다.
녀석은 지금 챠라와 함께 지도를 보며 현재 위치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레샤가 말 걸기 불편해하는 사람에 더불어 말 걸기 불편해하는 상황. 물론 나는 그걸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였다.

"레이크는 그런 사람이었군요...?"

레샤가 내리뜬 눈으로 날 노려봤다.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니잖아. 네 할 말은 네가 하라는 거지."

그런 우리 사이를 에반젤린이 중재했다.

"괜찮을 거예요. 지도가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좀 더 조심하면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에반젤린에게만큼은 투덜대지 않는 레샤는 여전히 불안이 가시지 않고 남아있는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어이!"

회의가 끝난 것인지 반 랜드레이가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시간 없으니까 우선 움직인다."

녀석에게 팔라슈에서 오늘을 넘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급하게 급하게 움직이던 반 랜드레이는 어느 순간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날 보며 물었다.

"근데 야우라는?"

왜 나한테 물어봐?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날 보며 말하긴 했지만 딱히 나한테 물은 건 아니겠지. 게다가 공교롭게도 난 그 애가 어디 있는지 바로 생각나기도 했고.

"아까 물 뜨러 간다 그랬는데."
"아직도 안 왔어? 물 뜨러 가서 멱이라도 감나 보지?"

반 랜드레이는 찌푸린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아주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아아주 살판났군."

그러니까 그걸 왜 자꾸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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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12 18:31 | 조회 : 73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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