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두 개인 이유(7)

입이 바짝 마른 건 단순히 놀라서 생긴 현상이 아닐 것이다.
튄 돌 모래가 혓바닥 위를 굴렀다. 혹여 라도 눈에 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지금 당장은 살았어도 수명이 20년은 줄어든 거 같았다.

"사랑한다, 야우라..."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입에 담았다.

"뭐야, 징그럽게! 일어나! 지금 그런 소리할 때 아니거든! 머리에 돌 맞았냐?"

야우라가 한 대 쥐어박으려는 양 주먹을 쥐었다.

그 애의 말대로 정신 넋 빠진 사람 마냥 이상한 소리나 할 때가 아니었다. 우두머리는 몽둥이를 그렇게 휘두르고도 아직 팔팔했고 지친 기색이라고 꼽을만한 건 아까보다 침을 더 많이 흘리고 있었다는 거밖에 없었다.
어쩌면 더 신난 것일 수도 있지.

우두머리는 어떻게든 제대로 한 방 쳐보려는 것인지 몽둥이를 높이 쳐들었다.

나는 일어나려던 몸을 급하게 뒤로 물렀다.
야우라도 내 깃을 잡은 그대로 도망가는 탓에 나는 기는 것도 아니고 이상하게 땅바닥을 짚어 도망쳤다.

잔뜩 흥분한 코볼트가 급하게 내려친 한 방 이 또 다시 바닥을 내리쳤다.

한 번 더.
또 한 번.
다시.

우두머리는 거리도 재지 않고 되는대로 내려찍어댔다.
엉덩이 질질 끌고 가는 게 우스꽝스럽긴 해도 일단 살면 그만 아닌가.

"컹! 컹! 킁! 크어어엉!"

우두머리의 공격이 한 번 빗맞을 때마다 주변 무리도 울음소리를 내었다.

여전히 야유인지 격려인지 모를 소리에 반응하듯 우두머리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코볼트 특유의 등을 굽히고 있던 자세가 쭉 펼쳐지면서 평소의 두 배에 가까운 덩치를 보인 우두머리는 몽둥이를 휘둘러 제 옆에 내리쳤다.

그리고 일대 주변을 향해 발톱을 세우고 울대를 거칠게 긁었다.

"컹! 크라아아아앍....!"

가래 끓는 것 같기도 한 투박한 울음소리는 무리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보여줄 테니 입 다물고 있어라, 이런 건가.

순간 나는 우두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사람은 동물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그 순간만큼은 툭 튀어나온 주둥이의 벌어진 송곳니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이 몽둥이를 번쩍 들었다.

아까와는 다르다. 이번엔 몽둥이를 휘두르는데 급급하지도 않았고 몸을 일으킨 덕에 손닿는 거리도 더 길어졌다.
단 일격뿐이겠지만 저런 기둥으로 팬다면 일격이면 충분하다.

"캬아아악...!"

질척거리는 울음소리.
우두머리의 자세가 무너졌다. 무너졌다기보다 스스로 비틀고 있었다.
반 랜드레이가 녀석의 등, 뒷배를 찌른 것이다.

"커엉! 크엉...! 커엉...!"

주변의 무리도 울음소리로 반응을 보였다.

코볼트 우두머리는 세웠던 등을 다시 구부렸다. 끝까지 박혀 들어가지 않은 검을 거꾸로 뽑아내려던 반 랜드레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뽑히지 않는 건가.

그 사이 나는 뒤로 더 물러나 겨우겨우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났다.
다리가 가볍다. 아니 내 다리가 내 다리 같지 않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우두머리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어떻게든 뒤에 붙어있는 날파리를 떨쳐내려 하고 있었다.
반 랜드레이는 제 검을 꽉 잡고 버티고 있었다. 버틴다기보다 매달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발이 뜰 때도 있지만 용케 버티고는 있지만 오래 갈 수는 없어 보였다.

이제 어떡한다.
도와주긴 해야 할 텐데... 그러고 보면 내 검은 어디로 갔지.
정신없이 내빼느라 아주 잠깐 잊어버렸지만 내 검은 이미 부러져버렸다. 아무리 모자라도 맨 손보단 나으련만 지금은 저만치 떨어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저거, 큰일 난 거 아니야?"

야우라가 물었다.
큰일만 났겠나, 잘못하면 스칸달른의 용사님이 코볼트에게 탈락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조심해야 돼,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다치..."
"지금 간다아!"

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야우라가 용맹하게 우두머리를 돌진했다.
그래... 빨리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
뒤이어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야우라의 검이 공중을 날았다.
높게 날아 상당히 가파른 각도로 떨어지고 있는 검은 아무래도 이쪽으로 날아오는 거 같았다.

"우와, 씨...!"

나는 혼이 빠져나가라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피했다. 한 발자국 차이로 옆에 떨어진 야우라의 검은 단단한 흙바닥을 뚫고 박혀 들어갔다.
검을 잃어버린 야우라는 다행히 어딜 얻어맞은 거 같지는 않았다. 막아보겠다고 들이밀었다가 손이 미끄러진 건가, 이쯤 되면 야우라에게 검은 무기라기보다 폼 나는 일회용 방패가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이제 무기가 생겼다.
나는 박혀있던 야우라의 검을 뽑아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운 감각, 그런데 튼튼하기까지 하니 쿤투아마 씨의 실력은 그 수다에 뒤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반 랜드레이는 박혀 들어간 검을 포기하고 우두머리의 몽둥이를 피해내고 있었다. 검을 다시 되찾으려면 어떻게든 뒤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두머리가 계속 이리저리 몸을 틀어대는 통에 그게 쉽지 않아보였다.

게다가 녀석의 몽둥이는 건재했다. 끝을 갉아먹던 불길도 어느 샌가 꺼져 까맣게 그슬린 흔적만 남아있었고 흠집이 좀 더 늘어난 거 외엔 달라진 게 없다.

저 몽둥이만 못 쓰게 만들면...

우두머리는 지금 야우라랑 반 랜드레이에게 정신이 팔려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무리의 '고조'는 우두머리에게 물러설 여지를 남기지 않아 용맹을 불러일으켰지만 반대로 시야를 좁히고 있었다.

나는 몽둥이를 바닥에 끌고 있는 우두머리의 오른쪽 앞발을 세게 내려쳤다.

"크어어엉...! 크르르르릉..!"

끔찍한 비명소리.
잘려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아무렇게나 내려쳤다. 실제로도 손끝의 감각은 단단한 것, 즉 뼈를 내려치는 느낌이었다.
몽둥이를 놓친 우두머리는 그대로 몸을 크게 돌려 괴상망측하게 흔들거리는 오른팔을 휘둘렀다.

이런...

설마 그렇게까지 반격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나는 발톱이 솟은 이마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아예 목표를 바꾸어서 쓰러진 나를 보고 있는 코볼트의 눈은 이미 핏기로 가득 차있었다.

녀석이 온다.

무기가 없다하더라도 코볼트에겐 큰 턱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완력의 발톱이 있었다. 크기가 저러면 체중도 만만치 않을 테고, 사람과는 달리 뭐든지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우두머리는 아예 내 목덜미를 물어버리기로 결정한 것인지 턱주가리를 크게 벌리고 달려들었다.

"크어어엉, 칵...!"

무지막지한 기세로 달려들던 우두머리가 고개를 바짝 쳐들고 몸을 비틀었다.

"어딜 가...!"

어느새 어께 위에 올라탄 야우라가 케이프 자락을 이용해 녀석의 턱을 끌어당겼다.

"레이크! 이것 봐! 내가 잡았어!"

야우라는 소잡이꾼이라도 된 양 기세 좋게 소리쳤다.

한 곳에 정신이 팔려 무방비 상태가 되었던 코볼트는 고개를 아래로 잡아당기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등을 펴고 서서 상체를 비틀었다.

"으어어? 으어아?"

야우라는 미친 듯이 흔들리는 코볼트의 어께 위에 용케 다리를 걸치고 턱에 두른 케이프를 바짝 잡아당겨 버텼다.

그런 녀석의 뒤로 반 랜드레이가 붙었다.

"떨어지지 말고 버텨!"

몸에 박혀있는 자기 롱소드를 회수하려는 것이다.
두 손으로 검을 붙잡고 발로 우두머리의 엉덩이를 걷어차듯 밀어낸 반 랜드레이는 기어코 검을 녀석의 옆구리에서 뽑아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코볼트의 몸이 다시 한 번 크게 비틀렸다. 갑자기 그렇게 돼 버리자 위에 매달려있던 야우라가 케이프를 놓치고 아래로 추락했다.
다행히 오른팔부터 떨어져 머리나 목을 다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컹컹, 커어엉...! 컹컹, 커어엉...! 컹컹, 커어엉...!"

어느 샌가 규칙성을 띤 무리의 고조 소리가 더 커졌다.

우두머리는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서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온전한 왼발로 내가 떨어뜨린 검을 들고 있었다.
녀석은 그 검이 몽둥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닥에 두 번 땅땅 내려치고는 크게 울음을 질러 자신이 아직 쓰러지지 않음을 무리에게 알렸다.
그런 허세를 잔뜩 부리고도 우두머리는 턱 아래로 침을 흘리며 급한 숨소리를 울음소리마냥 내었다.

그렇게 우두머리 자리를 지키고 싶은 걸까.

반 랜드레이가 우두머리와 검과 검으로 대치하는 동안 나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야우라에게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그리고 얼른 부축부터하려고 했다.

"아아...! 아파파파파...!"

야우라는 내가 손 댄 오른팔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나는 얼른 손부터 때고 물었다.

"어디, 부러진 건 아니지?"
"몰라. 아파 죽겠는데 어떻게 알아!"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야우라가 소리쳤다.
꽉 감은 눈에 눈물까지 짜나오는 걸 보니 정말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레이크, 이것 좀 어떻게 좀 해줘어!"
"내가 뭘 어떡해."

아픈 건 이해하겠지만 나한테 말해봐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점화, 빙결, 발광. 가진 재주를 전부 다 들이 대봐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설 수는 있지?"

대신 그렇게 물었다.

"몰라아... 아아..."

성내듯 칭얼거리면서도 야우라는 주섬주섬 움직였다. 그러는 걸 보면 아무튼 설 수는 있다는 거 같았다.
일단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야우라는 일으켜만 세워주고 나는 다시 반 랜드레이 쪽을 보았다.

우두머리는 검을 몽둥이처럼 마구 내려찍었다. 기둥보다도 무게가 가벼워지고 길이도 더 짧아지니 휘두르고 싶은 대로 휘두르는 것이다. 그런 만큼 위력도 약해져 반 랜드레이가 검을 쳐내는 것도 가능했지만, 문제는 공세가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무기도 없이 맨 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자 생각해보자. 주먹으론 저 튼튼한 녀석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리치도 너무 짧다.
하지만 아무리 맨 손이라도 노출된 약점이라면... 가령 눈이나, 입 안 같은...

아. 그런 걸 생각 필요조차 없었다. 지금 우두머리 녀석의 오른팔은 부러져서 너덜거리고 있었으니까.

우두머리의 검격에 반 랜드레이는 검을 내렸다. 떨어뜨린 게 아니라 힘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는데도 검이 버티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장인이었던 거냐고 그 양반.

한 번 더 휘두르는 검을 반 랜드레이가 팔뚝으로 막아냈다. 롱소드를 다시 들 겨를조차 없어보였다.
그 동안 나는 우두머리에게 다가가 녀석의 움츠러뜨리고 있는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크르르르라아아앍...!"
"레이크 아이힐데른!"

우두머리의 비명 사이로 반 랜드레이가 소리쳤다.
녀석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도 빠져있어라!"

뭐?
반 랜드레이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무기도 없으면 물러나 있으라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기가 없으면 방해만 되는 수도 있지.
그런데, 그건 적어도 지가 이기고 있을 때 해야 하는 말 아니야?

"일단 너도나도 살고 봐야지!"
"나는 반 랜드레이다!"

반 랜드레이는 롱소드를 들어 크게 휘둘렀다.
롱소드는 우두머리의 검과 제대로 부딪혔다. 막아냈다가 보다는 궤적에 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우두머리는 몽둥이 대신 들 수 있었던 검마저 놓치고 말았다. 다만 베이기는 했지만 가슴팍의 상처는 깊지 않아 곧장 팔로 반격을 가했다.

"누가 모른데?!"

이 와중에 유세라니 별 꼴이야 정말!
나는 반 랜드레이를 향해 뛰어들어 녀석과 충돌했다.
우리는 뒤엉켜 바닥을 두어 바퀴 굴렀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발톱에 피부를 찢기는 것보단 낫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신 수습하고 몸을 바로 세웠을 때는 이미 우두머리가 송곳니가 훤히 드러나는 턱주가리를 벌리고 돌진해오고 있었다.

아직 뛰기에 자세는 불안정했다.
늦는다.

"까불지 마라, 스칸달른의 용사는 나란 말이다!"

반 랜드레이가 나보다도 앞서나가 우두머리의 턱에 제 팔뚝을 밀어 넣었다.

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코볼트 우두머리가 반 랜드레이의 팔을 깨물었다.

끼긱... 끼긱... 부스러질 듯한 소리.

반 랜드레이는 제 검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그 거리에서 롱소드를 한 손으로 다룬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 알 수 있는 거였다.
결정적인 한 방, 지금은 그게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가 굴러 내려온 이곳엔 부러진 검이 있었다.
나는 그 검을 주워 앞으로 내달렸다. 아무리 부러졌대도 얇은 금속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나와!"

나는 우두머리를 가리고 있는 반 랜드레이에게 소리쳤다.

짧은 칼로도 확실히 피해를 줄 수 있는 곳, 나는 검을 양 손으로 꽉 쥐고 코볼트 우두머리의 턱 아래, 목의 움푹 팬 곳에 찔러 넣었다.

"비켜야하는 건 너다!"

반 랜드레이는 녀석의 턱에서 왼팔을 빼냈다. 동시에 우두머리는 애꿎은 팔 보호대만 깨씹었고 반 랜드레이는 한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내딛으며 롱소드를 가슴에 찔러 넣었다.

"큭... 크륵...! 크르륵...!"

목과 심장, 두 군데 모두 꿰뚫린 코볼트 우두머리는 들끓는 소리를 내었다. 사납게 번뜩이는 눈으로 피며 침이며 온갖 걸 흘리고 쏟아내던 녀석은 마침내, 자신의 몸뚱이조차 견디지 못 하고 쓰러졌다.

"하... 허어... 후우..."

뭔가 헛웃음 섞인 숨이 헐떡이듯 나왔다.
드디어 잡았...

"뭐해! 뛰어!"

반 랜드레이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저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어?! 뭐, 왜!"

설마, 코볼트는 죽으면 시체가 폭발한다던가. 그런 건 아닐 테고. 뭐지?
나는 앞뒤 사정도 모른 채 반 랜드레이를 따라 달렸다. 그 와중에 야우라의 검을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쓰러졌다! 그럼 다음은 뭐겠어!"

우두머리가 쓰러졌으니 무리과시는 끝났고 그럼...
남은 코볼트들이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싸운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 근데, 그 전에 보통 침입자부터 처리하겠지...?

과연 넓게 퍼져 서서 투기장을 만들고 있던 코볼트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개중 몇 녀석은 벌써 원래 우두머리의 몽둥이를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고 우리를 쫓는 녀석도 있었다.

우리는 급하게 달려 다른 애들과 합류했다.

"얼른요! 레이크님!"

에반젤린이 급하게 불렀다.
그 표정만 봐도 뒤에 코볼트가 어떤 기세로 달려오는지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어우... 사제님, 전 사제님을 지키는 게 임무니까 어쩔 수 없어요!"

챠라가 먼저 에반젤린을 챙겨 우리가 뛰는 방향으로 달렸다.

"레이끄으...! 이쪽으로 오지 마요! 희생은 숭고하게 혼자 하는 겁니다아...!"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레샤와 야우라도 내달리면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니들 나중에 보자!"

어떻게 도망칠 때는 달리기가 저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

"정령술사! 설마 아직도 소환을 못한다는 건 아니겠지?!"

반 랜드레이는 다짜고짜 레샤를 윽박질렀다.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딱 한 번이면 돼. 정면 한 번만 뚫으면 된다!"

반 랜드레이의 말대로 우리의 정면에도 코볼트가 있었다. 애초에 우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으니 당연한 거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이시여어어...!"

레샤는 웬 알지도 못할 이교의 신 이름을 열거하며 스태프를 들었다.

그 기도가 그 분들께 닿은 것일까.
셀라임은 평소처럼 레샤의 머리맡에 떠오르듯 나타났다. 그리고 앞으로 날아가 정면의 코볼트들에게 불길을 내뿜었다.
그리 큰 불이 아니더라도 갈기며 털가죽에 불이 옮아 붙은 코볼트들은 여기저기 나가 떨어져 흙바닥에 몸을 뒹굴었다.

우리는 그 공백 사이로 재빠르게 지나갔다.

공터는 끝나고 나무숲, 팔라슈는 말편자의 바깥쪽은 바위가 많고 안쪽엔 비교적 나무가 많아, 안쪽인 협곡은 산 숲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산에선 코볼트한테 도망 못 간다면서!"

갑자기 전에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 내가 버럭 물었다.

"나도 모른다,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어!"

저, 정신 나간...!
거기까지 말하긴 숨이 차서 나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협곡의 어딘가에서 우리는 멈추었다. 더 이상 달렸다가는... 이라고 할 것도 없이 더 달릴 수가 없었다.

다들 주저앉아 겨우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나는 새삼 느꼈다.
고요한 숲...
코볼트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안... 쫓아... 오는... 데...?"

겨우겨우 묻자, 반 랜드레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우두머리가... 없어서 그런 건가...?"

저그들끼리 통제가 안 되서 추적도 못한다는 건가?

"뭐야... 이씨... 하아...!"

뭔가 맥이 탁 풀린 나는 아예 바닥에 누워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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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3-04 16:29 | 조회 : 81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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