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바랐던 것(8)

"이그니션...!"

나는 있는 힘껏 놈의 턱을 밀어내면서 주문을 외웠다.
타탁, 작은 발화는 순식간에 물주머니 안의 브랜디에 옮겨붙어 붉고 푸른 불꽃을 일으켰다.

"크르르르앍...!"

턱과 얼굴에 옮겨붙은 녀석이 정신없이 몸을 트는 동안 나는 제빨리 녀석의 몸통에 박힌 검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려는 움직임과 마수가 불에게서 도망치려는 움직임이 우연히 맞물려 검은 가까스로 뽑혀져 나왔다.

이제 무기를 되찾았다.

녀석은 불붙은 물주머니가 이빨에 걸리는 바람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며 뒤로 몸을 물렀다. 그렇데도 불꽃은 멀어지지 않는다.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느꼈기에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있는 이젤을 어께에 들쳐맸다.

"이봐요! 정신차려요...!"

축 늘어져있던 이젤의 몸이 약간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미친놈..."

작게 중얼거리는 이젤의 목소리.
기껏 구하려고 죽을둥 살둥 노력했더니 한다는 소리가 그거였다.

"거 참...! 말 좀 곱게 합시다."

나는 턱까지 찬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어쨌거나 내가 말했던대로 말 할 체력을 비축해두기라도 한 건지 이젤은 조금씩 제 힘으로 걷고 있었다.

"이 속도로 도망칠 수 있겠어...?"
"쟤 좀 맛이 간거 같아요."

마수는 허공을 향해 짖으며 앞발로 자기 얼굴을 마구 문질러대고 있었다. 불은 이미 꺼졌지만 이미 크게 데인 모양이었다.

"눈을 다친 거 같은데..."

몸부림치는 녀석을 흘깃 살폈던 이젤이 그렇게 진단했다.

"얼굴에 불을 끼얹었거든요."
"그럼 코도 정상은 아니겠군..."

"저래도 귀는 제대로 들리겠죠?"
"아마도..."

그 어떤 것도 낙천적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옮기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레이크!"

본당에서 나와 날 찾고 있었던 것인지 야우라가 랜턴을 들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 밥 말아먹은 놈은 어떻게 된거야, 네가 이겼어?!"

야우라는 피투성이인 이젤의 모습을 보곤
이젤은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고 나는 뒤늦게 마수를 보았다.

감각적 지표가 없어 제 몸하나 제대로 못가누던 녀석은 야우라의 큰 소리를 감지한 것인지 몸을 고쳐서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는 정확히 이쪽을 보았다.

....하.
확실히 귀는 정상이었다.

"아 이 화상아! 너 땜에 되는 게 없어!"
"뭐야아! 기껏 찾으러왔더니 갑자기 뭐래!"

"이거나 들어!"

나는 떠넘기다싶이 야우라에게 이젤을 지게 했다.
아직 마수를 발견 못한 야우라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젤을 부축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건데?"

설명할 시간은 없었고 발소리는 가까워지고 있다. 그제야 달려오는 커다란 개를 발견한 야우라가 비명을 질렀다.

"엄마! 저게 뭐야아!"
"그냥 뛰어!"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시간낭비였다.
덕분에 속도는 나서 우리는 양쪽에서 이젤을 부축하고 냉큼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수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된 터라 제대로 뛰질 못해서 우리는 본당까지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본당에 들어온 야우라는 냉큼 이젤을 바닥에 내팽겨치고 본당의 문을 닫아 걸어잠궜다.

"허어... 내가 그 상황에 살살하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니들은 환자 다루는 법을 좀 배워야겠다...

사실 상 반쯤 질질 끌려온 이젤이 바닥에 쓰러진 채 불만을 토로했다.

"저거 뭐야? 저거 뭐냐고!"

쓰러진 사람이 그러거든 말든 야우라가 내 멱살을 잡고 흔들며 물었다.

"나중에 얘기해줄 게 일단 레샤! 레샤 어디있어!"

나는 무자비하게 앞뒤로 흔들리면서도 그렇게만 말했다.

어쩐지 이젤 선도사가 말하는 방식이 이제와 조금 이해가 되는듯 싶다.
야우라는 에반젤린을 지키고 있다던 레샤를 데리러 갔고 나는 널부러져 있는 이젤 선도사를 기둥까지 끌고가 기대어 앉혔다.

동시에 마수가 본당 문을 부수고 들어와 바닥에 널부러졌다.
콰앙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얼빠진 소릴 할 수밖에 없었다.

"코요테는 경계심이 많다메요..."

이렇게 말이다.

"이젠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런가 보지..."

마찬가지로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이젤.
코요테의 경계심에 대한 사실 여부는 우선 뒤로 밀어두고 지금은 저 안하무인의 마수를 어떻게 막을지가 중요했다.

너무 세게 부딪혀서 이젠 머리도 정상이 아닌지 마수는 바닥에 몸을 문대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에겐 검이 있다.
저 놈은 코요테다.
개다, 개. 개...!

코요테는 온 몸의 물기를 털어내듯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났다.
저 녀석의 가죽은 내 실력으론 흠집도 낼 수 없는 그런 괴물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은 시각도 후각도 정상이 아니다. 뇌진탕도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이쪽이야! 빨리!"

회랑의 계단을 통해 들리는 야우라의 목소리에 마수는 고개를 번쩍 들어 반응했다.
그래선 안 되지.

"야!"

나는 검의 넓적한 면으로 기둥을 치며 마수를 불렀다.
녀석은 더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리에 우선적으로 대응했다. 아무리 맡으려고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거듭 킁킁거리던 녀석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그 후는 성큼성큼.
조금 가까워지는 것 만으로도 시선이 완전히 고정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녀석, 시각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마수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아슬아슬했다. 피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선택은 녀석과 부딪히기 전에 스스로 먼저 넘어지는 것뿐이었다.
나는 게걸스럽게 달려드는 녀석의 턱주가리에 검을 밀어넣고 발로 밀어 막았다.
찌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공간이 모자랐다. 볼부분의 살이 검에 찢어져 검붉은 줄줄 흐르는데도 녀석은 미친듯이 밀고들어왔다.
아까부터 그랬겠지만 지금은 더 제정신이 아니다.

"레이크!"
"레이끄으...!"

응원을 온 애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맞나? 헷갈린다. 이 개새끼가 컹컹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더군다나 힘이 남아도는지 나를 물려고 드는 힘이 바닥에 쓰러져있는 나를 밀고 갈 정도였다. 걸레질하듯이 쭉 미끄러진 나는 이윽고 벽에 부딪혔다.
이대로가다간 힘에 밀려서 잡아먹힌다.

"뭐든 해봐!"

나는 어딘가에 있을 애들을 향해 목소리를 쥐어짰다.

"아, 아...! 그러고 싶어도 레이크가...!"

레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긴 이렇게 가까우면 셀라임에게 공격하라고 할 수도 없겠지. 다른 녀석들은 공격력이 형편없었다.
야우라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지금 그 애한테 도와달라고하는 건 내 대신 물려달라는 것밖에 되지 않을테니까.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을 해봐, 생각을.

...세상 천지 어디에도 거대 코요테한테 깔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검이 점점 밀려들어온다.
지탱하고 있는 다리가 가랑이에서 빠져버릴 것 같다.

그러면 안되겠지만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녀석은 금속 째로 씹어먹어버릴 기세로 금속 위로 턱질을 계속했다.
까득, 까득 끼긱... 까득. 끽.
이빨이 금속을 긁는 소리가 그 소리가...

"케에에엥. 끼이이이잉...! 끼잉...! 끅...!"

그 소리는 어느 순간 강아지의 비명소리로 변했다.
나는 눈을 떴다.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시야를 압도하고 있는건 마수의 턱주가리. 그리고 그 옆엔 창백한 이젤 에텔리어가 있었다.
그는 오른팔로 마수의 목을 꽉 끌어안고 왼손으로 턱밑에 박아넣은 주머니칼을 한 번 더 비틀었다.

"카킄...! 카학...! 크극...! 크흑...!"

마수는 피를 철철흘리며 바람새는 소리를 내었다.
밀어붙이는 힘도 점점 약해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턱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어딜 찌를지 모르겠으면... 여길 노려."

이젤은 시뻘건 으로 자신의 목젓을 짚었다.
이미 머리가 젖을정도로 식은땀 투성이의 선도사는 휘청거렸다. 그가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야우라가 그를 지탱해주었다. 레샤도 얼른 나를 마수의 아래에서 꺼내주는데 도움을 주었다.

녀석은 이따금씩 발작을 일으키며 피를 뿜을 뿐 더 이상 움직이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그간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정말 최소한의 이야기만을 나눈 우리는 황급히 수사의 방 문앞에 섰다. 에반젤린을 데리고 피츠네 할머니가 있는 숲까지 내려가야 했다.

"왜 잠가놓은 거야?"

나는 예의 황동열쇠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레샤에게 물었다.

"아... 그게... 사제님이 평소랑 조금 달라서..."

그 애는 음영가득한 얼굴로 대꾸하며 조심스럽게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고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레이크 너무 놀라진 마."

문을 열기 전에 야우라가 내 팔을 붙잡고 말했다.

"빨리 해. 난 진짜 곧 죽을 거 같으니까."

난간에 겨우 몸을 기대고 선 이젤 선도사가 우릴 질타했다.
그 말이 맞다. 마음의 준비 운운하며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비정상으로 보일정도로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피츠와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에반젤린이 있었다.
피츠는 우리를 보자마자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왔다.

"저... 사제님...?"

레샤가 조심스럽게 부르자 에반젤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새하얐던 낯빛은 심하게 울긋불긋 달아올라 있었다.
미소도 온데간데 없이 그 애는 미간을 찡그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레샤 자매님..."

그 언성은 순식간에 높아졌다.

"제가 말할 땐 자신있게 확실히 하라고 했죠!"
"네... 넵...!"

레샤는 화들짝 놀라 대답을 두 번이나 했다.

"저기 이제 진정하라니까? 레샤가 무서워 한다고."

야우라가 말해도 반응은 비슷했다.

"야우라 자매님은 껄렁껄렁 말하지 말고요!"

이렇게 말이다.

"어어... 응..."

그 기세에 눌른 야우라는 의기소침하게 뒤로 물러섰다.

"아! 레이크님!"

뭐야, 이번엔 내 차례인가.
나는 일단 물러나기 위해 뒤를 살폈지만 그 자리는 이미 다른 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지긋이 노려보던 에반젤린의 얼굴이 선듯 풀어져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대체 어디 가셨던거에요. 세상에 그 피는 다 뭐에요?!"
"어어? 어..."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 행동에 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에반젤린은 나를 살짝 안아 등을 토닥여주었다.

"걱정마세요, 이젠 제가 있으니까... 무리하지말고 이대로 평생 백수로 사셔도 되요. 제가 어떻게든 할테니까..."

거기에 기절초풍할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 왜 이래?"
"몰라 깨어난 후론 쭉 이래."

야우라가 고개를 도리질 쳤다.
이게 오염의 증상인가. 하지만 이건 오염이라기보단 술취한 거 같았다.
상처에 브랜디를 부었다고 이럴 리는 없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계속 내 등을 토닥이던 에반젤린은 홱 몸을 떨어뜨리더니 성큼성큼 방밖으로 나갔다. 그 애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이젤 선도사가 있는 곳이었다.

이젤의 앞에 선 에반젤린은 험상궂은 얼굴로 대뜸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았다.
갑자기 뺨을 얻어맞은 이젤 선도사의 표정이 참 볼만했다.

"이젤 선도사님!"

에반젤린은 여전히 손바닥으로 이젤의 얼굴을 눌러 잡은 체 말했다.

"저는 선도사님이 싫어요!"
"아... 그래... 어..."

때 아닌 미움 고백에 이젤은 멍청한 목소리를 흘렸다.

"예의없고! 잘난척 심하고! 다른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존댓말도 안 하고!"

이젤은 더 없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뭔가 싶고 갑자기 세게 나오니 당황하는 것이 분명했다.

"저 아주 기분이 상했다고요!"
"어... 미안해요, 에반젤린 자매..."

이젤이 조심스럽게 사과하자 에반젤린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요. 잘했어요."

느닷없이 뺨 맞고 욕 먹고 사과하고 머리 쓰다듬어진 이젤 에텔리어 선도사는 마음 속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말라 비틀어져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이후에-

우리는 에반젤린과 이젤 선도사를 손수레에 태워 피츠네 집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여러 치료를 받았다.

에반젤린은 한 숨자고 일어나니 별 이상없이 원래대로 돌아와 평소와 같은, 우리가 아는 에반젤린이 되었다.

이젤 선도사는 훨씬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제 고집대로 수도원에 남기로 했다. 말로는 숲에서 실족하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도 혼자 지냈었다고 한다. 하여튼 수도원이 꽉 막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건 확실한 것 같았다.

피츠네 집을 비롯해 다른 약초꾼들은 이제 안카라를 내려가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것 같다.
하긴 마수가 나왔으니 여기도 곧 방역과 마력 소거가 이뤄질테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아 그리고 아저씨는 지하에 있던 걸 야우라가 발견했다. 옆에는 빈 술병이 엄청나게 많았다고 한다.
내막따위 알고 싶지 않았고 미크로셀로 돌아가면 클로에한테 이를 것이다.

...덧붙여 이번 기회로 나는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역시 수도원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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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4 21:11 | 조회 : 19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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